如實知見
있는 그대로 보기
世間集(세간집)을 如實正知見(여실정지견)하면
若世間無者無有(약세간무자무유)하며
世間滅(세간멸)을 如實正知見(여실정지견)하면
若世間有者無有(약세간유자무유)니라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세간이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고,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면
세간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다
- 잡아함 가전연경(迦旃延經)
我今當說世間.世間集.世間滅.世間滅道迹。諦聽。善思
내가 이제 세간과 세간의 발생․ 세간의 소멸․
세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思惟)하라.
云何為世間。
謂六內入處。云何六。
眼內入處。耳.鼻.舌.身.意內入處
어떤 것을 세간이라고 하는가?
6내입처(內入處)를 일컫는 말이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눈이라는 내입처[眼內入處]와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이라는 내입처[意內入處]니라.
云何世間集。
謂當來有愛.喜.貪俱。彼彼集著
어떤 것이 세간의 발생인가?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當來有愛]에 탐욕[貪]과 기쁨[喜]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云何世間滅。
謂當來有愛.喜.貪俱。彼彼集著無餘斷。
已捨.已吐.已盡.離欲.滅.止.沒
어떤 것이 세간의 소멸인가?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에 탐욕과 기쁨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즐거워하고 집착하던 것이 남김 없이 끊어지고,
이미 버리고 이미 토해내고 이미 다하여,
탐욕을 떠나 소멸하고 그치며 마치는 것이니라.
云何世間滅道迹。
謂八聖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
어떤 것이 세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가?
8정도(正道)를 일컫는 것이니,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이니라.
- 세간경(世間經)
昔(석) 朱世英(주세영) 嘗以書(상이서)
옛날에 주세영이라는 사람이 일찌기 편지로써
問 雲庵眞淨和尙云(문 운암진정화상운)
운암진정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佛法至妙(불법지묘) 日用如何用心(일용여하용심)
"불법이 지극히 미묘해서 일상에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며
如何體究(여하체구) 望慈悲指示(망자비지시)
어떻게 참구해야 합니까?" 바라건대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眞淨曰(진정왈)
진정 화상이 말했습니다.
佛法至妙無二(불법지묘무이)
"불법은 지극히 미묘해서 둘이 없습니다.
但未至於妙則(단미지어묘즉) 互有長短(호유장단)
다만 아직 묘한 데 이르지 못했다면
서로 장단(부처: 중생)이 있지만,
苟至於妙則(구지어묘즉) 悟心之人(오심지인)
진실로 묘한 데 이르렀다면 그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如實知(여실지) 自心究竟(자심구경) 本來成佛(본래성불)
여실(있는 그대로)하게 자신의 마음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본래 성불이며
如實自在(여실자재) 如實安樂(여실안락) 如實解脫(여실해탈)
여실히 자재하며 여실히 안락하며 여실히 해탈이며
如實淸淨(여실청정) 而日用(이일용) 唯用自心(유용자심)
여실히 청정함을 알아서 오직 일상생활 속에서 이 마음을 쓰십시오.
自心變化(자심변화) 把得便用(파득변용)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포착하여 문득 쓸지언정
莫問是之與非(막문시지여비)
옳고 그름을 묻지 마십시오.
擬心思量(의심사량) 早不是也(조불시야)
마음을 헤아려서 사량 분별한다면 벌써 옳지 않습니다.
不擬心(불의심) 一一天眞(일일천지)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그대로가 낱낱이 천진이며
一一明妙(일일명묘) 一一如蓮花不着水(일일여련화불착수)
낱낱이 밝고 미묘하며 낱낱이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아서
心淸淨超於彼(심청정초어피)
마음이 청정하여 저쪽(마음의 부자유)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所以迷自心故(소이미자심고) 作衆生(작중생)
그런 까닭에 자신의 마음을 미혹했기 때문에 중생이 되고
悟自心故(오자심고) 成佛(성불)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까닭에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而衆生卽佛(이중생즉불) 佛卽衆生(불즉중생)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중생이거늘
由迷悟故(유미오고) 有彼此也(유피차야)
미오로 말임암아 피차(중생과 부처)가 있게 됩니다.
如今學道人(여금학도인) 多不信自心(다불신자심)
요즘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마음을 믿지 않고
不悟自心(불오자심) 不得自心明妙受用(부득자심명묘수용)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마음의 밝고 미묘한 수용을 얻지 못하며
不得自心(부득자심) 安樂解脫(안락해탈)
자기 마음의 안락과 해탈을 얻지 못하고
心外(심외) 妄有禪道(망유선도)
마음 밖에 망령되게 선도가 있다고 하여
妄立奇特(망립기특) 妄生取捨(망생취사)
망령되이 기특함을 세우고, 망령되이 취하고 버립니다.
縱修行(종수행) 落外道二乘(낙외도이승)
禪寂斷見境界(선적단견경계)
비록 수행하더라도 외도나 이승들의
선적과 단견의 경계에 떨어집니다.
所謂修行(소위수행) 恐落斷常坑(공락단상갱)
그래서 '수행하는데
단견이나 상견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두렵다'라고 한 것입니다.
其斷見者(기단견자)
단견이라는 것은
斷滅卻自心(단멸각자심) 本妙明性(본묘명성)
자기 마음의 본래 미묘하고
밝은 성품을 결단코 아주 없다고 여겨서
一向 心外着空(일향 심외착공) 滯禪寂(체선적)
한결같이 마음 밖에서 텅 비어 없음을 집착하여
선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常見者(상견자) 不悟一切法空(불오일체법공)
상견이라는 것은 일체 법이 공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執着世間諸有爲法(집착세간제유위법)
以爲究竟也(이위구경야)
세간의 온갖 유위법에 집착하여
그것을 구경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邪師輩(사사배) 敎士大夫(교사대부)
삿된 스승의 무리가 사대부들에게 가르치기를,
攝心靜坐(섭심정좌) 事事莫管(사사막관)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조용히 앉아 모든 일을 관계하지 말고
休去歇去(휴거흘거)
쉬고 또 쉬라."라고 합니다.
豈不是將心休心(기불시장심휴심)
이것이 어찌 억지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그치는 것이 아니며,
將心歇心(장심흘심)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쉬는 것이 아니며,
將心用心(장심용심)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若如此修行(약여차수행)
如何不落外道二乘(여하불락외도이승)
만약 이처럼 수행한다면 어떻게 외도와 이승들의
禪寂斷見境界(선적단견경계)
선정의 적정과 단견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如何顯得自心(여하현득자심) 明妙受用(명묘수용)
究竟安樂(구경안락)
어떻게 자기 마음의 밝고 미묘한 수용과 구경의 안락과
如實淸淨解脫變化之妙(여실청정해탈변화지묘)
여실하게 청정한 해탈 변화의 묘용을 드러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須是當人(수시당인) 自見得(자견득) 自悟得(자오득)
모름지기 당사자가 스스로 보아 얻고 스스로 깨달아 얻으면
自然不被古人言句轉(자연불피고인언구전)
자연히 고인들의 말과 글귀에 따라가지 않고
而能轉得古人言句(이능전득고인언구)
능히 고인들의 말과 글귀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如淸淨摩尼寶珠(여청정마니보주) 置泥潦之中(치니료지중)
예컨대 청정한 마니보주를 진흙 속에 두어서
經百千歲(경백천세) 亦不能染汚(역불능오염)
백천 세를 지나더라도
또한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以本體自淨故(이본체자정고)
그 까닭은 본체가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此心亦然(차심역연)
이 마음도 또한 그와 같아서
正迷時(정미시) 爲塵勞所惑(위진노소혹)
미혹할 때는 번뇌 망상에 미혹한 바가 되지만
而此心體(이차심체) 本不曾惑(본부증혹)
이 마음 자체는 본래 일찍이 미혹되지 않습니다.
所謂如蓮花不着水也(소위연화불착수야)
이른바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忽若悟得自心(홀약오득자심) 本來成佛(본래성불)
만약 문득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인지라
究竟自在(구경자재) 如實安樂(여실안락)
필경에 자재해서 여실히 안락함을 깨달으면
種種妙用(종종묘용) 亦不從外來(역불종외래)
갖가지 미묘한 작용이 또한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니,
爲本自具足故(위본자구족고)
그것은 본래 스스로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소경 계임(陳少卿 季任)에게 보낸 대혜 선사의 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