衆生本来仏なり 水と氷の如くにて
水を離れて氷なく 衆生の外に仏なし
衆生近きを知らずして 遠く求むるはかなさよ
たとえば水の中に居て 渇を叫ぶが如くなり
長者の家の子となりて 貧里に迷うに異ならず
六趣輪廻の因縁は 己が愚痴の闇路なり
闇路に闇路を踏そえて いつか生死を離るべき
중생이 본래 부처다. 물과 얼음과 같이.
물을 떠나 얼음 없이 중생 밖에 부처 없다
중생에 가까운 줄 모르면서 멀리 구걸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야
예를 들어 물 속에 있으면서 갈증을 외치는 것과 같아서
부호의 집안의 자식으로 거지 촌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육취 윤회의 인연은 나의 어리석은 푸념의 미로이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밟고 언젠가 생사를 떠나야 하리
夫れ摩訶衍の禅定は 称歎するに余りあり
布施や持戒の諸波羅蜜 念仏懺悔修行等
そのしな多き諸善行 皆この中に帰するなり
一座の功をなす人も 積し無量の罪ほろぶ
悪趣何処にありぬべき 浄土即ち遠からず
かたじけなくもこの法を 一たび耳にふるる時
讃歎随喜する人は 福を得る事限りなし
대승의 선정은 찬탄으로도 모자람이 있다.
보시와 지계의 여섯 가지 바라밀, 염불 참회 수행 등
그 많은 선행들이 모두 이 안에 귀속되고.
한번의 좌선의 공을 이루는 사람도 쌓여 무량의 죄 멸하리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의 삼악취(三惡趣)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극락정토 먼 곳에 있지 않네
황공하옵게도 이 법을 한번 귀담아 들을 때
찬탄 귀의(歸依)하는 사람은 복을 얻을 일 한계가 없다
況や自ら回向して 直に自性を証すれば
自性即ち無性にて 既に戯論を離れたり
因果一如の門ひらけ 無二無三の道直し
無相の相を相として 行くも帰るも余所ならず
無念の念を念として うたうも舞うも法の声
하물며 스스로 회향하여 곧 자성을 밝힌다면
자성은 즉시 무성(無性)으로 이미 희론(戯論)을 떠났나니
인과 일여의 문열림이요
무이 무삼의 도의 길잡이라
무상의 상을 상이라 할 때
가고 옴이 모두 본향이라
무념의 염을 염이라 할 때
춤과 노래 조차 모두 진리의 말씀이다.
三昧無礙の空ひろく 四智円明の月さえん
この時何をか求むべき 寂滅現前するゆえに
当所即ち蓮華国 この身即ち仏なり
삼매는 걸림 없이 비어있고
네가지 지혜는 달처럼 뭔만하니
이순간 무엇을 더 구하랴?
적멸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이곳 저곳이 모두 정토이고
이 몸이 바로 붓다인 것을
Hakuin Ekaku (Japanese, 1685-1768), 하쿠인 에카쿠白隱慧鶴
All sentient beings are essentially Buddhas.
As with water and ice, there is no ice without water;
apart from sentient beings, there are no Buddhas.
Not knowing how close the truth is we seek it far away—what a pity! We are like one who in the midst of water cries out desperately in thirst. We are like the son of a rich man who wandered away among the poor. The reason we transmigrate through the Six Realms is because we are lost in the darkness of ignorance.
Going further and further astray in the darkness,
how can we ever be free from birth-and-death?
As for the samadhi of the Mahayana,
there are no words to praise it fully;
the six paramitas, such as giving, maintaining the precepts, and various other good deeds like invoking the Buddha’s name, repentance, and spiritual training, all finally return to this.
Even those who have experienced it for only a single sitting will see all karma erased.
Nowhere will they find evil paths, and the Pure Land will not be far away.
If we listen even once with open heart to this truth, then praise it and gladly embrace it, how much more so then if on reflecting within ourselves we directly realize Self-nature, giving proof to the truth that Self-nature is no nature.
We will have gone far beyond idle speculation.
The gate of the oneness of cause and effect is thereby opened, and not-two, not-three, straight ahead runs the Way.
Realizing the form of no-form as form, whether going or returning we cannot be any place else.
Realizing the thought of no-thought as thought, whether singing or dancing, we are the voice of the Dharma.
How vast and wide the unobstructed sky of samadhi!
How bright and clear the perfect moonlight of the Fourfold Wisdom!
At this moment what more need we seek?
As the eternal tranquility of Truth reveals itself to us, this very place is the Land of Lotuses and this very body is the body of the Buddha.
「両手を打って声あり、
隻手になんの声かある
두 손뼉을 치면 소리가 있고
한손에도 무슨 소리인가 있다
隻手の声を拈提せよ」
한손의 목소리를 내놓으라
「片手で叩く音を聴きなさい、
聴けたら私の処へ来なさい。
その時あなたに悟りの方法を教えよう」
한손으로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라.
듣거들랑 나한테 오너라.
그때 그대에게 깨달음의 방법을 가르쳐주마
어느 무사가 백은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지옥과 극락은 정말 있는 것입니까”
선사는 무사에게 비웃듯이 말했다.
“바보같은 놈. 지옥과 극락이 있는 장소를 묻다니.
이 애숭이 무사여, 죽어봐야 알지 않겠는가”
무사는 자신을 조롱하는 선상에게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아무리 선승이라고 하지만 나를 조롱하다니 가만히 둘 수 없다”
무사는 백은선사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선사는 무사의 칼날을 가볍게 피하면서 무사를 더욱 조롱했다.
“겨우 그런 솜씨로 칼을 차고 다니다니 정말 한심하구나”
더욱 화가 난 무사는 칼을 더욱 크게 휘둘렀다.
무사의 칼을 계속 피하던 선사가 말했다.
“자 이제 알겠느냐. 화를 내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지옥이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사는 자신의 무지와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무사는 백은선사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선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지금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니라”
백은선사에게 지옥과 극락의 존재에 관한 난문(難文)은 숙명적인 화두였다. 백은선사는 지옥과 극락의 구분이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음을 무사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백은선사는 중생들을 위해 척수음성(隻手音聲)이라는 공안을 창안했다.
척수음성이란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다.
백은선사는 척수음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양손바닥은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그러나 한손은 아무리 휘둘러 보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무생음(無生音)은 귀로 들어서는 안된다.
사량분별을 멈추고 견문각지의 작용을 떠나
행주좌와중에 잠시도 멈추지 말고 참구에 들어가면
이치가 다하고 말길이 끊겨 홀연히 생사의 뿌리가 뽑히고
무명의 어두운 굴이 무너져 평안에 이르게 된다”
일체의 삼라만상이 사라지고
오직 한손의 박수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그 조화로움이여,
이 한손의 박수소리[隻手音聲]가 바로 메아리 없는 계곡이요,
불이의 세계이며, 열반적정의 구경열반이리라.
백은선사는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갈파했다.
“생명을 던지는 수행 없이는 진정한 견성도 없다.
한가하게 방석 위에 앉아서 졸기만 한다면 무엇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