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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Remarkable men 제4의 길 / 구르지예프 제목없음

작성자山木|작성시간24.06.17|조회수50 목록 댓글 1

오직 배워야 할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다만 存在하는 것이다.

다만 存在하라.

그저 지켜보는 者가 되라.

모든 것을 지켜보라.

그대의 몸은 그대가 아니고

그대의 마음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는 오직 지켜보는 자이다.

그리고 이 지켜보는 者는 永遠하다.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必要로 하는 全部이다.

窮極의 體驗은 無心의 體驗이다.

無念

無心

無選擇

但只 沈默하면서

그대 自身 안에 뿌리내린 채

기뻐하는 것.

그 體驗으로 戰慄하고

온 宇宙에 커다란 恩寵이 흘러 넘치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唯一한 宗敎이다.

다른 모든 宗敎는 但只 欺瞞일 뿐이다.

..제4의 길은 '여전히 세상 속에 살고 있되

세상이 그 안에 살게 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길이다.

제4의 길은 초월의 길로,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키지도 않고

물질이 의식을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아무 것도 다른 것을 바꾸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 존재할 뿐이며

우리는 단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뿐이다.

초월은 배척이나 포기를 통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전적인 수용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저 '지켜보는 자',

그러니까 '관조자'로 남아 있으면 된다는 것이

제4의 길의 핵심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언덕위의 파수꾼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대는 육체도 아니요,

감정도 아니며 사념도 아니다.

단지 순수한 관조,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세상에 머물되 이방인으로서 혹은 지나가는 행인으로 존재하다.

영원한 삶이 앞에 있는 것처럼 이 순간을 살되

다음 순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삶을 살되 여전히 관조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몰입하되 언덕위의 야경꾼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언제나 그리고 무엇을 하든 동시에 두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 두가지란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고

그대 자신도 즐길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관습들로부터

주관적 도덕성이 형성된다,

하지만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관습이 아니라

양심에서 기인한 객관적 도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까 사람들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존재하는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야

이해란 알고자 하는 강한 의도를 갖고 습득한 정보와

개인적으로 체험한 온갖 종류의 경험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인식하게 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할 때 - 그것이 그의 지식에 관련한 것이든 이해에 관련한 것이든

상관없이 -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말하는

사람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자질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내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가치관이나 확신들에 대해

일종의 재평가 작업이 저절로 일어난 셈이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의식 그리고 그 본성의 자동적인 발현 사이에서 불가피한 마찰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끊임없이 상기시킬 수 있는 환경을 내 주변에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현상을 더 높은 힘들의 섭리를 보여주는 징표라고 여겨왔지요.

나는 이것이 자신의 명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부과한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고자 한사코 노력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소이다.

더 높은 힘들의 영향 아래 들어가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전에

반드시 영혼을 가져야만 하오. 이때 영혼을 얻는 길은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하게 된 경험들과 과거에 일어난 실제 사건들에 관해

의도적으로 습득한 정보를 통해서만 가능하지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목적에 대자연으로부터 받은 확고한 자질을 낭비하기 전인 청년기에

만 영혼을 가질 수가 있소.

이러한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목적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형성해 온 삶의 조건들 때문이라오.

모든 종교를 존중하라. 객관적인 도덕을 신(神)이 부여했다면 주관적인

도덕은 사회나 문화, 전통이 만든 것이다. 네 자신이 된 다음에는 신도 악마도 중요하지 않다. 소금이 없으면 설탕도 없다. 스스로를 자각하는 신앙인은 자유롭고 감정 중심으로 믿는 신앙인은 노예이며 기계적으로 믿는 신앙인은 우둔하다. 여러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데 ‘이론 만들기(theorizing)’는 필요 없다. 여러분 내면에 간단하고 적극적인 이성의 행사만 있으면 된다.

죄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게 죄다. 신앙을 잃고 싶다면, 사제와 친구가 되면 된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잘못된 확신, 자기애, 이기주의가 죽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은 비전(秘傳) 기독교(esoteric Christianity)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신(神)이 직접 가르쳐준 비결(祕訣)을 유지해온 형제단(brotherhood)이

예수 탄생 1000년 전에 창립됐다. 예수도 이 형제단 소속이었다.

Meeting with Remarkable Men by Gworge Ivanovitch Gurdjieff,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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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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