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요하라
슈리 푼자
진리를 알고싶다면,
진리를 완전히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의 길과 지식의 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알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상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대가 말할 수 있는 것,
그대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잠을 잘 때는 사랑하는 이의 꿈을 꾸어라.
낮에는 사랑하는 이에 대해 생각만 하지말고
사랑하는 이 앞에 앉아라.
그러면 그대는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참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다른 존재도 사랑할 수 없다.
그 결과는 고통이다.
그대의 참나를 사랑하라.
참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모든 존재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대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라.
지금이든 언제든 그대를 도와줄 유일한 친구는
그대의 참나 뿐이다.
두려운 암흑의 날에는 아무도 그대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빛 그 자체인 어떤 것을 보아야만 한다.
복종하라.
침묵이 그대를 차지하게 하라.
그대의 가슴에 복종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신에게 복종하여 고요히 있는 것이다.
지혜란
신을 탐구하며 고요히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소용돌이다.
모든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다.
이 삼사라(윤회의 수레바퀴)는 소용돌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과
복종하는 법을 알고있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그대를 구해줄 것이다.
신은 없다.
그대가 그것을 창조했다.
신은 그대의 창조물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대상물 너머에 있는 ‘보는 자’이다.
그 지고의 힘에게 돌아가라.
그것이 바로 그대이다.
그것이 진정한 나이다.
죽음 이후에 지옥이나 천국을 준다는
신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라.
지금 여기에서 ‘나는 그것이다’를 앎으로서 천국을 누려라.
그것만이 홀로 존재하며 그 있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대의 참나에게는
항상 정직하라.
왜냐하면 참나는
깨어있고, 꿈꾸고, 잠자는
이 모든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하라.
그리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라.
오로지 그 뜻에 따라
그대의 마음, 감각, 행위가 일어나게 하라.
이 드넓음 속으로 들어가라.
노력하지 말라. 생각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머물러라.
생각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훌륭할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참사랑이다.
여기에 머물러라.
모든 것이 저절로 행해질 것이다.
어떤 무엇이 그대를 떠맡게 하라.
어떤 무엇이 그대의 내면에서 일어나게 하라.
내가 행하고 있다. 내가 이루었다. 내가 할 것이다.
이것이 현상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그대가 그것을 진정으로 지켜본다면
그대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지켜봄이 존재다.
궁극의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참나를 지혜롭게 경배하면
참나를 얻을 것이다.
참 스승을 섬기지 않으면
그 밖의 어느 것도 소용이 없다.
사라지는 것과 친구가 되지 말라.
사라지지 않는 그것과 친구가 되라.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나 가치가 없다.
시간이란 죽음, 불행, 과거 그리고 마음을 의미한다.
시간과 마음은 그 어떤 차이도 없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과 친구가 되라.
그러면 그대는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지혜이며 참스승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진리를 향해 나아가라.
늘 고요하라.
현재의 생각,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근원을 찾아라.
오로지 생각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발견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마음 자체가 과거이다.
마음 자체가 생각이다.
마음을 바라보라.
그러면 마음은 빙빙 도는 일을 멈출 것이다.
그대 앞에 있는 생각을 바라보고 그것에 집중하라.
그대가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 생각이 올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라.
그것은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대가 생각할 때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행복할 것이다.
오직 참나를 경배하라.
그대의 참나를 숭배하고 찾아라.
나머지는 저절로 돌봐질 것이다.
쓸데없는 활동과 쾌락을 멀리하라.
오로지 고요하라.
참나를 보려면 그대가 빛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빛을, 지혜를 보려거든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
마음에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그저 고요하라.
그저 고요하라.
모든 것이 다 좋다.
지금 여기에서 고요하라.
그대는 행복이며 평화이며, 자유이다.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라.
가슴을 열고, 그냥 존재하라.
이해를 포기하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이해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지도 말라.
고요하지 않은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
그대가 고통을 받을 때는
“이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계속 반복하라.
그리고 마음을 이 방향으로 전환시켜라.
“나는 참사랑, 참평화, 참나를 원한다.”
필요한 것은 참나에 대한 사랑뿐이다.
겸손하라.
그리고 참나에게 헌신하라.
그저 고요하라.
노력하지 말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내면을 바라보라.
참나를 가리고 있는 것이 벗겨지면 참나를 볼 것이다.
행위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카르마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행위는 내일의 운명이다.
행위하지 않는 자에게는 카르마가 없다.
이것이 자유다.
그대가 근원을 만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모든 질문들, 해답들, 그리고 경험들은
근원으로 이르는 과정에만 있을 뿐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기차 안에서는 짐을 들고 있지 않는다.
이것이 현명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을 들고 있다.
의심을 없애고
평화와 지혜와 자기를 다스림으로
불멸의 참나를 경배하라.
내면을 바라보라.
그곳에는
그대와 참나, 참스승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대는 늘 자유롭다.
거기에는
스승도 제자도
가르침도 없다.
단지 고요히 머물러라.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완벽하다.
거울을 깨끗이 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것은 항상 다시 더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도 없고, 내려앉을 먼지도 없다.
다만 그대가 참나가 아니고 ‘다른 것’이 있다는
오만을 없애라.
거울을 던져버리고
모든 것이 참나임을 깨닫는 것이 더 낫다.
사물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음이 그렇다고 말할 때뿐이다.
마음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이 모든 것이 꿈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오든지 그것은
모두 꿈이라는 것을 이해하라.
꿈속의 호랑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설령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이 세상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신들조차 자유를 원한다면 이곳에 태어나야 한다.
그대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완수하지 못했기에 이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일이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
그대는 신이다
비차라(탐구)는 특별한 시야이다.
그대는 눈을 통하여 보지 않으며
그대는 참나를 통하여 본다.
참나가 참나를 본다.
눈을 감았을 때도 그대는
눈이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사물을 아는 것은
이 시야를 통해서다.
이것을 그대는 해야만 한다.
시력이 나오는 곳을 보라.
그 저장고는 시력으로 가득 차 있다.
눈의 뒤를 바라보라.
앞을 향해 본다면
그대는 대상들을 보겠지만
눈의 뒤를 본다면
그대는 주체, 즉 보는자를 보게 될 것이다.
보는자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사랑과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슈리 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