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가타 / 장로게경
Channā me kuṭikā sukhā nivātā
vassa deva yathāsukhaṃ
Cittaṃ me susamāhitaṃ vimuttaṃ
ātāpī viharāmi vassa devā'ti.
“나의 초암은 지붕이 이어졌고,
바람이 들이치지 않으니, 쾌적하다.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나의 마음은 잘 집중되어 해탈되었고,
용맹정진하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소서.”
(테라가타 Thag.1, 전재성님역)
Taṇhā avijjā ca piyāpiyañca,
subhāni rūpāni sukhā ca vedanā;
Manāpiyā kāmaguṇā ca vantā,
vante ahaṃ āvamituṃ na ussahe.
“갈애, 무명, 여러 가지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형상, 즐거운 느낌,
마음에 드는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토해 냈으니,
내가, 토해서 버려진 것을 다시 삼킬 수 없으리.”(Thag.1131)
Sabbattha te citta vaco kataṃ mayā,
bahūsu jātīsu na mesi kopito;
Ajjhattasambhavo kataññutāya te,
dukkhe ciraṃ saṃsaritaṃ tayā kate.
“마음이여, 어떠한 경우이든 그대의 말을 들었다.
다생에 걸쳐 그대는 내게 항복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생겨난 것은 그대의 은혜를 입었고,
나는 그대로 인한 고통속에서 오래도록 윤회했다.”(Thag.1132)
Idaṃ pure cittamacāri cārikaṃ,
yenicchakaṃ yatthakāmaṃ yathāsukhaṃ;
Tadajjahaṃ niggahessāmi yoniso,
hatthippabhinnaṃ viya aṅkusaggaho.
“예전에는 이 마음이 원하는 것에 따라
좋아하는 것에 따라, 즐거움에 따라 떠 돌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치에 맞게 제어하리라.
코끼리조련사가 미친 코끼리를 제어하듯.”(Thag.1136)
Tathā tu kassāmi yathāpi issaro,
yaṃ labbhati tenapi hotu me alaṃ;
Vīriyena taṃ mayha vasānayissaṃ,
gajaṃva mattaṃ kusalaṅkusaggaho.
“그러나 나는 주인으로서 행세하리라.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코끼리몰이꾼이 미친 코끼리를 길들이듯.
나는 그대를 힘으로 나의 지배아래 두리라.”(Thag.1145)
Ye tuyha chandena vasena vattino,
narā ca nārī ca anubhonti yaṃ sukhaṃ;
Aviddasū māravasānuvattino,
bhavābhinandī tava citta sāvakā
“남자들이나 여자들의 어떠한 행복이든
그대의 욕망과 기호를 좇아서 누린다면,
마음이여, 그들은 무지한 자들, 악마에 사로잡힌 자들,
존재에 환희하는 자들, 그대의 노예들이다.”(Thag.1151)
1. 송출자
“이름에 걸맞게 종성에 걸맞게
여법하게 살아가며
전념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나태를 여의고 살았으니
행위의 궁극을 성찰하는 자들이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불사의 경지를 통찰하고 촉지하여
그 의취를 선언했습니다.”
-지혜: 세 가지 지혜를 갖춘 것을 말한다. 생득적 지혜, 후천전 지혜, 수행에 의한 지혜.
-의취(atthaṃ) : ‘의취’라는 것은 읊어진 게송이 자신과 관계되거나 타인과 관계되거나 세간과 출세간에 관계된 의미를 말하는 것. 영어로는 ‘works for welfare’
2. 깡까 레바따
“한 밤중에 빛나는 불꽃처럼
광명을 주고 눈을 주며
오는 자들의 의혹을 제거하니.
이렇게 오신 님들의 그 지혜를 보라.” (Thag.3)
따타가따: 담마빨라는 이띠부따까 주석(Ita.I.117-120)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1) 이렇게 오신님(tathā āgato)
여러가지 바라밀을 닦고 많은 것을 버린 뒤에 비빳씨 부처님 이래로 올바로 깨달은 님으로 오신님이다.
2) 이렇게 가신님(tathā gato)
비빳씨 부처님 이래로 땅에 안착 되는 발을 가지고 태어나자마자 북쪽으로 칠보를 걸어가신 님이다.
3) 이러한 특징으로 오신님(tathalakkham āgato)
일체의 물질적-비물질적 사실의 개별적-일반적 특징에 맞게, 다르지 않게, 앎의 행보를 통해, 실패하지 않고 도착한 님이다.
4) 이렇게 사실에 맞게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tathādhamme yathāvato āgato)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일치하도록 올바로 깨달은 님이다.
5) 이렇게 보는 님(tathādassita)
천상계를 포함하는 신들과 인간의 한량없는 세계에서 한량없는 뭇삶의 시각등의 범주에 들어 오는 대상이 있는데, 그것을 세존은 일체의 형태로 알고 또한 보는 님이다.
6) 이렇게 말하는 님(tathāvādita)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을 성취한 그날 밤부터 남김없는 열반에 든 그 날 밤까지 45년간의 세존께서 설한 경전과 게송 등이 일체가 청정하고 원만하고 탐욕의 도취 등을 떠나 한결같고 틀리지 않는 님이다.
7) 이렇게 행하는 님(tathākānita)
세존께서는 언어로 말하는 대로 몸으로 행하고, 몸으로 행하는 대로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하는 님이다.
8) 승리의 의미(abhbhavanaṭṭha)
세존은 최상의 세계에서 밑으로 지옥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그의 계행, 삼매, 지혜, 해탈, 해탈지견에서 그와 비견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없으며 모든 뭇삶의 최상자이다.
3. 발리야
“죽음의 왕의 군대를 쳐부수는 것은
큰 거센 흐름이 허약한 갈대의 교각을 휩쓸 듯하니,..” (Thag.7)
악마: 악마는 모든 경우에 부처님과는 다른 입장에 선다. 악마는 대조적인 견해를 드러내서 깨달음의 길을 분명히 하는데 활용된다. 번뇌, 업의 형성력, 존재의 다발을 상징한다. 악마는 실제로 약한 존재로서 힘이 거의 없는 오염의 군대를 상징한다.
4. 꾼다다나
“다섯을 끊고 다섯을 버린 뒤
그 위에 다섯을 더 닦고
다섯 가지 염착을 마침내 극복하면
거센 흐름을 건넌 수행승이라고 불리운다.” (Thag.15)
-다섯을 끊음(오하분결): 개체가 있다는 견해, 회의적 의심,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 분노
-다섯을 버림(오상분결: 미세한 물질계에 대한 탐욕, 비물질계에 대한 탐욕, 자만, 흥분, 무명
-다섯 가지 닦아야 할 것(오근: 신근염정혜) : 믿음, 정진, 새김, 집중, 지혜
-다섯 가지 염착(탐진치만견): 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견해
5. 니그로다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스승께서는 불사에 밝으시니,
두려움이 남아 있지 않은 곳으로
그 길을 따라서 수행승들은 나아간다.” (Thag.21)
그길을 따라서: 윤회의 두려움을 보기 때문에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6. 싸밋디
“나는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믿음으로써 출가하였다…” (Thag.46)
믿음: 가르침에 대한 의욕을 일으켜 업과 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7. 밥빠
“보는 자는 보는 자도 보고
보지 못하는 자도 본다.
보지 못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자도 보지 못하고
보는 자도 보지 못한다.” (Thag.61)
지혜의 눈이 없는 자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의 본성으로부터 알지못한다. ‘이자는 맹목적으로 눈이 없다.’라고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의 눈으로 본다.
8. 빡카
“해야 할 일을 행했고, 즐길만한 것을 즐겼으니,
지복은 행복을 따라 왔다.” (Thag.64)
해야 할 일: 네 가지 길과 알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 닦아야 할 것(지단증수).
9. 아뚜마
“어린 대나무가 꼭대기 순에서 자라서
가지가 생겨나면, 제거하기가 어렵듯,
제가 아내를 얻는 것도 이와 같으니,
허락하십시오, 저는 이제 출가했습니다.” (Thag.72)
어린 대나무인 내가 아내를 취해서 성장하여 아들, 딸 등의 가지가 달리면, 나는 재가의 삶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뜻이다.
10. 멘다싸라
“나는 죄악을 정화시키지 못하고
무수한 생의 윤회를 유전했다.
나는 그러한 고통을 겪었으나
이제 고통의 다발은 모두 사라졌다.” (Thag.78)
태어남 등을 통해서 생겨난 세 가지 괴로움을 통한 괴로움을 겪는다. 고통의 괴로움(고고성), 변화의 괴로움(괴고성), 형성의 괴로움(행고성)이다.
의취는 백 가지 표정을 지니고
백 가지 특징을 지녔으니,
어리석은 자는 한 가지 고리만 보고
슬기로운 자는 백 가지를 본다.”(Thag.106)
“오고 가는 것의
길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니,
그 뭇삶이 어디서 왔는지,
그대는 ‘나의 아들’이라고 울부짖는다.”(Thig.127)
“오고 가는 것의
길을 그대가 알더라도,
그것을 슬퍼하지 말라.
뭇삶의 운명이 그러할 뿐이다.” (Thig.128)
“청하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이곳에서 떠났다.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며칠 동안 지내다가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간다.” (Thig.128)
“죽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그는 윤회하며 갈 것이리라.
오는 것처럼 갔으니,
거기에 어떠한 슬픔이 있겠는가?” (Thig.128)
Udahārī ahaṃ sīte,
sadā udakamotariṃ;
Ayyānaṃ daṇḍabhayabhītā,
vācādosabhayaṭṭitā.
“나는 물 긷는 하녀였는데,
귀부인의 처벌에 두려워하고 떨면서
화내는 말의 공포를 시달리며
추울 때에도 물속에 들어갔다.” (Thig.237)
Kassa brāhmaṇa tvaṃ bhīto,
sadā udakamotari;
Vedhamānehi gattehi,
sītaṃ vedayase bhusaṃ
“존귀한 자여, 무엇이 두려워
항상 물속에 들어가는가?
사지를 떨면서도
그대는 심한 추위를 견뎌낸다.” (Thig.238)
Yo ca vuddho daharo vā
pāpakamma pakubbatī,
Dakābhisecanā sopi
pāpakammā pamuccati.
“노인이건 젊은이건
악한 행위를 하는 자는
목욕재계하면,
악한 업에서 벗어난다.” (Thig.239)
Saggaṃ nūna gamissanti
sabbe maṇḍukakacchapā,
Nakkā ca suṃsumārā ca
ye caññe udake carā.
“일체의 개구리, 거북이,
그리고 용, 악어,
다른 수생생물들도
천상세계로 갈 수 있겠네요?” (Thig.241)
Orabbhikā sūkarikā
macchakā migabandhakā,
Corā ca vajjhaghātā ca
yecaññepāpakammino,
Dakābhisecanā tepi
pāpakammā pamuccare.
“또한 양도살자, 돼지도살자,
어부, 사슴사냥꾼,
도적, 사형집행인과
다른 악한 자들조차도
목욕재계만으로도
악한 업에서 벗어나겠군요.” (Thig.242)
Sace imā nadiyo te
pāpaṃ pubbe kataṃ vahuṃ,
Puññānimāni vaheyyuṃ
tena tvaṃ paribāhiro.
“이 강물에 예전에 지은
그대의 악업을 씻어낸다면,
공덕도 씻어낼 것이니.
그러면 그대는 소외자가 될 뿐이오.” (Thig.243)
Yassa brāhmaṇa tvaṃ bhīto
sadā udakamotari,
Tameva brahme mākāsi
mā te sītaṃ chaviṃ hanī.
“존귀한 자여, 그대는 떨면서
항상 물속에 들어가는데,
존귀한 자여, 그만 두시오.
냉기가 피부를 상하게 하지 마시오.” (Thig.244)
“공개적으로나 비밀리에나
악한 행위를 하지 마시오.
그대가 악한 행위를
만약에 하려거나 한다면,” (Thig.247)
“날아가거나 도주하더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대가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만약 괴로움을 싫어한다면,” (Thig.248)
“여여한 깨달은 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하시오.
그리고 계행을 지키시오.
그대에게 이익이 될 것이오.” (Thig.249)
Olaggessāmi te citta,
āṇidvāreva hatthinaṃ;
Na taṃ pāpe niyojessaṃ,
kāmajāla [kāmajālaṃ (syā.)] sarīraja
“마음이여, 나는 그대를 제어한다.
코끼리를 쐐기문으로 이끄는 것처럼.
몸에서 생겨난 욕망의 그물이여,
그대를 악으로 나는 이끌지 않으리.”(Thag.355)
Yathā kuñjaraṃ adantaṃ,
navaggahamaṅkusaggaho;
Balavā āvatteti akāmaṃ,
evaṃ āvattayissaṃ taṃ.
“갈고리를 가진 자가 힘이 세면,
새로 잡은 야생의 코끼리마저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선회시키듯,
그차럼 나는 마음을 선회시키리라.”(Thag.357)
Yathā varahayadamakusalo,
sārathi pavaro dameti ājaññaṃ;
Evaṃ damayissaṃ taṃ,
patiṭṭhito pañcasu balesu.
“탁월한 말들을 훈련시키는데 밝은
우수한 조련사가 준마를 교련하듯,
실로 다섯 가지 힘을 확립하여
그처럼 나는 마음을 훈련시킨다.” (Thag.358)
“끈과 막대로 엮어 졌는데,
갖가지로 춤을 추는,
나무막대로 만든 잘 채색된
꼭두각시의 작은 인형들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끈과 막대를 뽑아 던지고
자르고 흩어지게 하고,
발견할 수 없게 하고, 조각낸다면,
그 가운데 어디에 정신을 묶어야 할까요?
이 작은 몸뚱이도 그와 같으니,
그러한 사실들이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가운데 어디에 정신을 묶어야 할까요?
노란 웅황으로 칠해진
벽 위에 그린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대의 시각은 혼란되었으니,
인간의 지각은 쓸모가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환영과 같고,
꿈꾸는 끝에 보이는 황금나무 같고,
사람들 가운데 인형극과 같은,
눈먼 자여, 당신은 헛된 것을 쫓아갑니다.”
(Thig.390-394, 테리가타 14장 삼십련시집, 쑤바 지바깜바바니까 장로니의 시, 전재성님역)
[쌉빠다싸]
“집을 떠나 출가한지 나는
이십오 년이 되었으나,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큼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심일경성을 얻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의 탐욕으로 괴로워하며
팔을 움켜잡고 울면서
정사(精舍)를 박차고 나왔다.”
“차라리 칼을 들어 자결해 버릴까?
나에게 목숨이 무슨 소용이랴?
학습계율을 포기하고,
나와 같은 자가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삭도를 가져와
침상이 있는 곳으로 왔다.
나의 정맥을 자르기 위해
면도칼을 갖다가 대었다.”
“이치에 맞는 정신활동이
그 때문에 일어났고
위험이 분명해졌고
싫어하여 떠남이 정립되었다.”
“그 때문에 나의 마음이 해탈되었다.
여법한 훌륭한 가르침을 보라.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하였으니,
깨달은 님의 교법이 나에게 실현되었다.”(Thag.408~410)
“죽음과 질병과 늙음,
이 세 가지는 화마처럼 다가온다.
항거할 만큼의 힘도 없고
도망칠 만큼의 빠름도 없다.”(Thag.450)
“하루를 적거나 많거나
헛되이 보내지 말라.
하룻밤이라도 낭비한다면,
그 만큼 그의 목숨이 줄어든다.”(Thag.451)
“걸어가거나 서 있거나
앉아있든 누워있든,
최후의 밤은 다가오니,
방일할 시간이 그대에게 없다.”(Thag.452)
Mayā pavattitaṃ cakkaṃ
(selāti bhagavā) dhammacakkaṃ anuttaraṃ,
Sāriputto anuvatteti
anujāto tathāgataṃ.
“쎌라여, 내가 굴린 위없는 바퀴.
위없는 가르침의 바퀴를
싸리뿟따가 따라서 굴립니다.
그가 곧, 여래를 닮은 자입니다.”(Thag.827)
Tādisaṃ kammaṃ katvāna
bahuṃ duggatigāminaṃ
Phuṭṭho kammavipākena
anaṇo bhuñjāmi bhojanaṃ.
“이와 같이 나쁜 곳으로 이끄는
많은 악업을 짓고
아직 그 업보에 맞딱뜨리지만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Thag.882)
“미래의 시기에
최후시대가 오면,
수행승들과 수행녀들의
행실이 이와 같으리라.”(Thag.977)
“해탈의 시대, 삼매의 시대, 계행의 시대, 학습의 시대, 보시의 시대이다. 첫 번째 해탈의 시대인데,그것이 사라지면, 계행의 시대가 전개되고, 그것도 사라지면, 학습의 시대가 전개되고, 그것도 사라지면 보시의 시대가 전개되는데, 학습의 시대때 부터가 최후의 시대에 해당한다. 학습의 시대에는 탐욕 등의 욕망 때문에 계행이 완전히 청정하지 못하고 학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논의의 주제를 끝으로 하는 학습이 일체 사라지면, 그로부터 흔적만 남을 것이고 그 때 부터는 재물을 모아서 보시로서 베푼다. 이것이 최후의 올바른 실천이다.”(테라가타 977번 게송에 대한 3097번 각주, 전재성님역)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계곡이나 평원에서나
거룩한 님이 머문다면,
그 지역은 즐거운 곳이다.”(Thag.991)
Kadā nuhaṃ bhinnapaṭandharo muni,
kāsāvavattho amamo nirāso;
Rāgañca dosañca tatheva mohaṃ,
hantvā sukhī pavanagato vihassaṃ.
“언제쯤이나 누더기 옷을 걸친 성자로서
가사를 걸치고 나의 것이 없이 소망이 없이
탐욕과 성냄뿐만 아니라 어리석음도 버리고
나는 행복하게 산기슭에서 지낼 수 있을까?”(Thag.1098)
Bahūni vassāni tayāmhi yācito,
‘agāravāsena alaṃ nu te idaṃ’;
Taṃ dāni maṃ pabbajitaṃ samānaṃ,
kiṃkāraṇā citta tuvaṃ na yuñjasi.
“여러 해 동안 그대에게 나는 청원을 받았다.
‘재가의 생활은 너에게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출가한 수행자인데.
마음이여, 왜 그대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가?”( Thag.1113)
Taṇhā avijjā ca piyāpiyañca,
subhāni rūpāni sukhā ca vedanā;
Manāpiyā kāmaguṇā ca vantā,
vante ahaṃ āvamituṃ na ussahe.
“갈애, 무명, 여러 가지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형상, 즐거운 느낌,
마음에 드는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토해 냈으니,
내가, 토해서 버려진 것을 다시 삼킬 수 없으리.”(Thag.1131)
Sabbattha te citta vaco kataṃ mayā,
bahūsu jātīsu na mesi kopito;
Ajjhattasambhavo kataññutāya te,
dukkhe ciraṃ saṃsaritaṃ tayā kate.
“마음이여, 어떠한 경우이든 그대의 말을 들었다.
다생에 걸쳐 그대는 내게 항복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생겨난 것은 그대의 은혜를 입었고,
나는 그대로 인한 고통속에서 오래도록 윤회했다.”(Thag.1132)
Idaṃ pure cittamacāri cārikaṃ,
yenicchakaṃ yatthakāmaṃ yathāsukhaṃ;
Tadajjahaṃ niggahessāmi yoniso,
hatthippabhinnaṃ viya aṅkusaggaho.
“예전에는 이 마음이 원하는 것에 따라
좋아하는 것에 따라, 즐거움에 따라 떠 돌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치에 맞게 제어하리라.
코끼리조련사가 미친 코끼리를 제어하듯.”(Thag.1136)
Tathā tu kassāmi yathāpi issaro,
yaṃ labbhati tenapi hotu me alaṃ;
Vīriyena taṃ mayha vasānayissaṃ,
gajaṃva mattaṃ kusalaṅkusaggaho.
“그러나 나는 주인으로서 행세하리라.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코끼리몰이꾼이 미친 코끼리를 길들이듯.
나는 그대를 힘으로 나의 지배아래 두리라.”(Thag.1145)
Ye tuyha chandena vasena vattino,
narā ca nārī ca anubhonti yaṃ sukhaṃ;
Aviddasū māravasānuvattino,
bhavābhinandī tava citta sāvakā
“남자들이나 여자들의 어떠한 행복이든
그대의 욕망과 기호를 좇아서 누린다면,
마음이여, 그들은 무지한 자들, 악마에 사로잡힌 자들,
존재에 환희하는 자들, 그대의 노예들이다.”(Thag.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