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니(깨달은 자)
더위는
달빛으로 누그러집니다.
가난과 빈곤은
칼파카 나무에 의해 없어집니다.
죄는
신성한 갠지스 강물에 의해 씻겨 나갑니다.
이 모든 고통들은
비길 데 없는 성자를 달샨(친견)하는 것으로 사라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슴에 있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고
머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갸니는 가슴에 삽니다.
갸니는 다닐 때나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그가 보는 것은 자신의 가슴에서
자신의 진정한 참나로 실현된 절대자,
지고의 실재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갸니는 어느 누구도 무지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는 모두가 갸니입니다.
지혜의 상태에 있는 갸니는 무엇을 보더라도
그것들이 참나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참나는 오로지 빛나는 순수한 지혜입니다.
갸니는 그 어떤 것도
진리, 실재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갸니는 참나를 봅니다.
갸니에게는 의식의 세 가지 상태가 똑같이 비실재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이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깨어 있는 상태가 실재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갸니에게는 실재 그 자체가 실재의 기준입니다.
순수 의식인 이 실재는 본래 영원하며,
그대가 깨어 있음, 꿈, 수면이라고 부르는 상태들 동안에도
항상 똑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재와 하나가 된 갸니에게는 마음도 없고,
세 가지 상태도 없으며,
안과 바깥도 없습니다.
갸니는 항상 깨어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영원한 참나에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상태는 항상 꿈꾸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세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상태는 늘 잠자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몸이 나라는 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갸니들은 진리인 실재를 알고 있으므로
어떤 상태나 어떤 조건에서도 늘 같은 채로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움직이고, 다른 모든 일을 하는 일생 생활에서
갸니들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행위를 합니다.
단 하나의 행위도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이 육체적인 상처나 고통을 느끼지만,
마음이 희열 속에 가라앉아 있는 갸니들은 그것들을
마치 꿈인 것처럼 느낍니다.
여인들은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걸으면서도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주의는
내내 머리 위의 물에 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갸니가 활동을 하고 있을지라도
활동은 그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절대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