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行無常 제행무상
是生滅法 시생멸법
生滅滅已 생멸멸이
寂滅爲樂 적멸위락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항상하지 않고 무상하다.
이것이 바로 생하고 멸하는 우주의 법칙이다.
그러나 생하고 멸하는 것 마저 멸한다면
고요하고 진정한 열반락을 얻을 것이다.
설산동자 의 거룩한 구법(求法)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살인행(菩薩因行)을 닦으실 적에
무량 무수 겁을 두고 천한 사람, 귀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갖가지 몸을 받아가며 온갖 하기 어려운 선행(善行)과 고행(苦行)을 하셨다.
어떤 때는 남의 하인이 되어
참 어려운 괴로움을 참아가며
이웃과 상전을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큰 부자가 되어
옷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주고,
밥없는 사람에게 밥을 주며
병든 이 에게는 약을 주어
불우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며,
때로는 악녀(惡女)의 남편이 되어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자비로 인도하여 바른 길을 가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하가 되고 임금이 되어
보살만행(菩薩萬行)을 하는 가운데
그 어느 때인가는
설산동자(雪山童子)의 몸으로 계신 적이 있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이름 모르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
가지가지 약초가 즐비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깃들이며
뭇 짐승들이 몸담아 살고 있는 깊은 산속에서
인생과 우주의 참면목을 찾아
그 진리를 깨우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스물여덟 하늘[28天) 가운데
인간세상에서 두 번째 하늘인 제석천(帝釋天)의 천주(天主)인
제석(帝釋)에게 환희(歡喜)라는 천인(天人)이 이렇게 말했다.
"제석이시여, 인간세상에 중생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한량없는 고행을 닦으며
생사의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거룩한 설산동자가 있아옵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이고
괴로움의 씨앗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설사 금은(金銀)보배가 바다와 육지에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결코 탐내지 않을 것이며 침뱉듯이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부귀영화나 나라나 처자까지도
자신의 눈ㆍ귀ㆍ머리ㆍ몸뚱이ㆍ목숨까지도 버리고
오직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진리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을 깨우치도록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제석천왕은 이 말을 듣고 감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저 이는 세상의 모든 중생을 건져줄 분이로다.
만일 부처님의 나무가 있다면
하늘 사람이나, 지상의 사람이나,
아수라들이나, 모든 중생들이
그 부처님 나무의 서늘한 그늘 밑에 가 있으면,
번뇌의 녹이 다 없어질 것이다.
저 사람이 이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되면
우리들도 번뇌의 불길을 끄고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발심(發心)을 하였다가도
물위에 비치는 달의 그림자가 물이 흔들리면 따라서 흔들리는 것처럼
조그만 인연만 보면 곧 마음에 흔들리는것을 나는 많이 보았다.
내 이제 그에게 가서 정말 아뇩다삼먁삼보리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한번 시험해 볼 수 밖에 없다.
참으로 그대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거룩한 일인지 아닌지를 알아봐야겠다.
두 바퀴가 있어야 수레가 구르고 두 날개가 있어야 새가 나르는 것처럼
수도하는 사람도 계(戒)을 굳게 지키는 한편
밝은 지혜를 닦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에게 깊은 지혜가 함께 있는지 궁금하구나.
물고기가 알을 많이 낳지만 그 가운데 고기가 되는 수는 극히 적고,
암마라(庵摩羅) 나무가 꽃은 많이 피어도
그 가운데 열매는 적은 수 밖에 안 되는 것과 같이
중생들도 발심하는 사람은 많지만 성불하는 이는 적다.
진금(眞金)인지 아닌지는
불에 달구고 두들겨 보면 알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난 제석천왕은
설산동자의 발심한 보리심이 얼마나 강한가?
정말 불퇴전(不退轉)의 마음으로
성불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사람을 잡아 먹는 흉악한 나찰귀신(羅刹鬼神)의 몸으로
변화하여 가지고 설산으로 갔다.
그리고는 동자보살(童子菩薩)이 고행정진하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맑은 음성으로
역대 부처님들이 다함께 읊으셨던 제불통게(諸佛通偈)를 크게 외웠다.
"현상계의 모든 것은 모두 다 무상하니
[(諸行無常(제행무상)]
이것은 있다 없다 나고 죽는 법이라네"
[(是生滅法(시생멸법)]
지긋이 눈을 내리감고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있는 동자보살은
크게 외치는 나찰의 이 게송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그 게송의 뜻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진리임에 틀림없다고
마음에 계합했기 때문이다.
마치 망망(茫茫)한 대해에 표류하여 정처없이 떠내려 가던 사람이
구조의 배를 만난듯 기쁨과 기대에 가득 찬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며 동자보살은 사방을 두루 살핀다.
그 게송을 읊은 주인공을 찾아서 그 나머지 법문과
더욱 많은 거룩한 진리의 법문을 더 배우고 나누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전후좌우를 살펴보아도
그런 게송을 읊었음직한 도인다운 이는 고사하고
사냥꾼ㆍ나무꾼 같은 사람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이빨이 툭 튀어나오고
뒤짚힌 눈알을 부라리며 곧 동자보살을 잡아 먹을듯이 하고 있는
나찰귀신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동자보살은 혼잣말로 외치기를,
"누가 해탈(解脫)의 문을 열어보였는가?
누가 생사의 꿈속에 긴 잠꼬대를 깨어주는
거룩한 부처님의 말씀을 외어냈는가?
누가 생사해탈의 무상도(無上道)를 말했는가?
누가 이 게송을 읊어서 답답하던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는가?"
하며 당사자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내가 슬기롭지 못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혹시 이 나찰이 전생에 부처님을 뵈온 일이 있을 때
이 게송을 들었을지도 모르며
그래서 들은 풍월로 외워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동자보살은 나찰에게로 가서
"당신은 어디서 이런 게송을 들었오?
이 게송은 진실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정도(正道)요,
외도(外道)의 법에는 이런 진리를 들을 수가 없는 글이었오."
그러나 나찰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나는 하두 여러 날을 굶었더니 도무지 기운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오."
설산동자는 나찰에게 다시 말했다.
"당신이 만일 나머지 게송의 반을 마저 일러 준다면
나는 일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어 지성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당신이 조금 전에 말한 반쪽의 게송은
글로도 반쪽밖에 안 되고
뜻으로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재물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그 복이 다 할 때도 있지마는
법으로 남에게 진리를 보시한 인연은 그 공덕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게송을 듣고 놀라고 기뻐하는 한편
마지막 결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주 의심스럽고 궁금하니
나머지 게송의 반을 마저 가르쳐 주시오"
이에 나찰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나치게 꾀가 많아서
자기만 알고 남의 사정은 아예 모르는구나.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말할래야 말할 수도 없도다."
설산동자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대체 당신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배가 고프단 말이오?"
"내가 먹는 것을 당신은 묻지도 마시오.
내말을 들으면 당신도 놀라서 까무라칠 것이오.
내가 먹는 음식은 사람의 더운 피와 살이오.
나는 전생에 극악무도한 죄업(罪業)을 지었기 때문에 사람을 먹어야 하는데,
그러나 천상의 신들이 사람들을 수호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악신(惡神)이 사람들을 잡아 먹을 수가 없다오. "
이 말을 들은 설산동자는 기꺼이 말했다.
"당신이 만일 남은 반쪽의 게송을 마저 가르쳐 주기만 하면
나는 기꺼이 이 몸을 당신에게 공양하겠오.
설사 내가 좀 더 살다가 죽는다 하더라도
이 육신이야 별 수가 있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필경에는 호랑이 늑대ㆍ여우의 밥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니
나에게 무상대도(無上大道)의 법문을 일러 준 당신에게
이 몸을 바치는 것이 공덕이 될 것이요.
보잘 것 없는 육신의 몸을 버리어
금강 같은 법신(法身)의 몸을 구하려는 것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나머지 법문을
어서 말해 주시오."
이에 나찰은 또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의 그 말을 어떻게 꼭 믿을 수가 있겠오?
나머지 반쪽 게송을 듣기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버리다니
도무지 곧이 들리지가 않소."
"세상 사람들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의 보배 그릇을 가지라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듯이
나도 이 언약하고 허망한 이 몸을 주고
금강(金剛) 같은 진리의 몸과 바꾸려는 것이오.
나의 이 말은 범천왕(梵天王) 제석천왕(帝釋天王)과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나의 이 일을 증명할 것이며
남의 마음을 환히 아는 타심통(他心通)을 얻은
자비보살이 다 증명할 것이오."
이렇게 하여 나찰은 설산동자의 몸을 먹이로 얻기로 하고
나머지 반쪽 게송을 일러주게 되었는데, 그 게송은 곧 다음의 게송이다.
"나고 죽는 이 법이 없어지고 다하면
[生滅滅已(생멸멸이)]
고요한 열반으로 즐거움을 얻게되리"
[寂滅爲樂(적멸위락)]
게송을 다 읊고 난 나찰은 설산동자를 향하여
"이제 당신은 소원을 성취하셨소?" 하고 물었다.
설산동자는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했으며
게송의 뜻을 다 알아들은 동자는
기뻐서 그지없이 좋아하여 여기저기 돌과 벽과 나무에
그 게송을 다 새겨서 뒷날의 발심수도(發心修道)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고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이 세상 사람들이여, 간탐하고 인색한 사람들이여,
모두 와서 내가 몸을 던져 법을 구하는 모습을 보라.
또한 적은 것을 보시하고 큰 것을 구하며 뽐내는 사람들은
와서 진리의 게송을 위해 육체의 생명을 아낌없이 버리는 뜻을
새겨 참다운 도를 위해 발심하라."
말을 마친 동자는 나찰 있는 곳으로 몸을 던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때 제석천은 일부러 나투었던 나찰의 몸을 변하여
본래의 몸인 제석천의 모습을 나투었다.
그리고 설산동자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두 손으로 동자의 몸을 받들어 땅에 내려 놓고 동자에게 예경하였다.
그러자 제석천왕을 따라 왔던 여러 하늘들이
다함께 동자의 발 아래 예경하였으며 제석천은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당신은 정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무량중생을 구제하실 대보살(大菩薩)이십니다.
캄캄한 이 암흑(暗黑) 세계에 밝은 법의 횃불을 켜 주실 어른이며,
망망대해에 표류(漂流)하는 불쌍한 중생들을 건져주실 하늘이며,
인간세상의 참된 구세주(救世主) 이십니다.
내가 큰 법을 아끼기 위해 당신을 시험하였아오나
그 죄를 이제 진심으로 참회하오니 자비로 받아 주십시요.
당신은 반드시 오는 세상에 반드시
위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룰 것이니
그때는 꼭 저희들을 제도하여 주소서." 하고 물러 갔다.
보살은 이렇게 나의 목숨과 온갖 것을 아끼지 않고 온갖 수행을 하며
오직 크고 바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만을 위하여
보살행을 일념으로 닦고 또 닦았다.
이때 보살의 이름이 호명(護明)이었으므로
호명보살(護明菩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