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 사완싱 지의 편지
Excerpts from Baba Sawan Singh Ji’s Letters
《내면의 진보 PROGRESS WITHIN》
Spiritual progress primarily depends on the training of the mind.
영적 진보는 주로 마음의 훈련에 달려 있다.
The path of the Masters is along and it takes time to mold the mind.
The withdrawal of the scattered attention into the eye center requires patience, perseverence, and faith.
The learned get impatient when they find themselves helpless in controlling their mind.
They begin to doubt the efficacy of the method given.
They want quick results, little knowing that mind is a power which is moving the world, and the dances of its tune.
스승의 길은 길며 마음을 다듬는데 시간이 걸린다.
흩어진 주의를 눈의 중심으로 모으는 것에는 참을성과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학식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할 때 참을성을 잃게 된다.
주어진 방법의 효과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빠른 결과를 바라며 마음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며 마음에 맞추어 세상이 춤추는 것을 알지 못한다.
It expresses itself through lust, anger, greed, attachment, and pride, and who is free from them?
To try to concentrate the mind in the eye center is to pick up a quarrel with it, and it is a lifelong quarrel.
If successful in this struggle, the prize is everlasting bliss.
Then there is no more revolving on the wheel of birth and deaths.
마음은 육욕과 분노, 탐욕, 집착과 자만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니
누가 거기서 자유로운가?
마음을 눈의 중심에 집중하려는 것은 마음과 싸우는 것이며
평생 동안의 싸움이다.
이 투쟁에서 성공하면 그 보상은 영원한 지복이다.
그러면 더 이상 생사윤회는 없을 것이다. (Letter 131)
In the beginning, there is a hard struggle to bring the attention to the eye focus, and it may be a work of years with some, while cases are known to have gone within at once.
But when the habit to reach the focus has been acquired,
the glimpses of the inner world make this study interesting.
...No period can be fixed as to when the attention of any person will begin to stay within the focus.
It depends upon the longing, faith, perseverance, and his past record.
처음에는 눈의 중심에 집중하는 것이 힘든 싸움이며
대략 수 년간 걸릴 수 있지만 일단 내면에 들어가면
싸움이 끝난다.
중심에 도달하는 습관을 얻게 된다면
내면 세계를 엿보는 것이 이 노력을 흥미롭게 한다.
어떤 사람이 내면의 중심에 머물기 시작하는 시간은 정할 수 없다.
이는 열망과 믿음 인내와
그의 과거의 기록에 달려 있다. (Letter 135)
《믿음 FAITH/BELIEF》
It (Sant Mat) is a liberal system and does not stifle opinion or insist on blind belief.
To start with, it asks you to accept some fundamental concepts, only by way of a working hypothesis…
You must not forget, however, the subtle nature of the subject which cannot be adequately discussed and understood by mere intellectual reasoning.
산트 마트는 자유로운 체계로 의견을 억압하고 맹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효과적인 가설을 통한 방법 만으로 기초적인 개념을
받아들이기를 요청한다.
단지 지적 추론에 의해 제대로 논의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대상의 미묘한 본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It deals with eternal truths, beyond the reach of mind and intellect, and can therefore be comprehended properly only when the student goes in and gets some background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s…
We do not force conviction upon anybody.
We like the conviction to grow from within as a result of one's own personal experience.
마음과 지성이 닿는 곳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를 다루기에,
배우는 자가 개인적인 영적 체험의 바탕으로 들어가서 얻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자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각이 자신의 개인적 체험의 결과로 내면에서부터 성장하기를 원한다.
(Letter 103)
That which may be a fact to one may not necessarily be a fact to another.
And it will not become a fact to him until he has had a similar experience.
Facts of Sant Mat are reproducible, like facts of any science, and can be demonstrated in the laboratory of Sant Mat.
한 사람에게 진실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아니다.
그가 유사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진실이 되지 않는다.
산트 마트의 진실은 모든 과학적 진리처럼 재현할 수 있으며
산트 마트의 실험실에서 입증할 수 있다.
The laboratory of Sant Mat is inside of man.
Anybody who enters this laboratory (brings his scattered attention within himself at the eye focus) can see, feel, and realize what the saints say, and he can repeat the experiment as often as he likes.
산트 마트의 실험실은 사람의 내면에 있다.
누구든 이 실험실에 들어가는 사람은 내면의 흩어진 집중을
눈의 중심으로 가져가면 성인이 말한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자주 그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
Sant Mat deals with facts only, not with theories or beliefs.
It lays down a practical course for its devotees.
It is practical through and through, and it can be executed by young or old, male or female, wise or simple-minded-while, at the same time, they are enjoying the fullness of home life.
산트 마트는 이론이나 믿음이 아닌 진실만을 다룬다.
추종자에게 실용적인 길을 제시한다.
이것은 완전히 실용적이며 남녀 노소와 현명한 사람도 둔한 사람도 수행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완전한 가정 생활을 누리게 된다.
(Letter 157)
Spirituality is real when one has experience of it, and unreal so long as he has not experienced it.
Man has the capacity to experience it because man is a combination of spirit, mind, and matter: first, spirit; second, mind; third, matter.
체험을 하게 되면 영성은 진짜가 되며 체험하지 못하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영혼과 마음, 물질로 이루어져있기에
이것을 체험할 능력이 있으며
영혼이 첫째고
마음이 둘째요.
물질이 셋째이다.
(Letter 181)
《스승 THE MASTER》
Masters in the flesh are rare.
They are superior beings and have fully developed their latent powers.
their attention, unlike ours, is not confined to the physical plane.
At will, their attention has access to the astral, mental, and spiritual planes, and functions on these planes.
육체를 지닌 스승은 드물다.
그들은 높은 존재이고 잠재력을 완전히 계발하였다.
우리와 달리 그들의 집중은
물질적인 차원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들의 집중은 자유롭게 아스트랄과 정신적 차원,
영적 차원에 연결되며
그 차원들에서 기능한다.
(Letter 105)
The Master is not a body only.
He is the power which guides and helps us at every stage and in every
region, during our inward spiritual journey.
When we are in the physical body, he instructs us through his physical form, and as we proceed further, he assumes the form of each region-all the way up to Sach Khand 9the highest spiritual region).
스승은 육체만이 아니다.
우리 내면의 영적 여정에서 모든 단계와 모든 영역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도와주는 힘이다.
우리가 물질적인 몸을 가졌을 때 그는 물질적 형태를 통해서
가르치고 우리가 더 나아가면 지고의 영적 영역인 사츠 칸드로
가는 모든 길에서 각 영역의 모습을 취한다.
(Letter 179)
The Master does not expect anyone to idolize him.
A boy, reading in primary classes, cannot judge the attainments of a B.A. or M.A.
The Master only wants you to look upon him as your elder brother or friend, to follow his directions, as those of a benefactor, and work hard to go into the higher planes within you.
When you go there, you will see for yourself the position and dignity of the Master in those regions.
스승은 누구든 자신을 숭배하기를 원치 않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의 학력을 판단할 수 없다.
스승은 당신이 자신을 단지 형이나 친구로 보기를 바라며 은총을 주는 스승의 지도를 따르고 당신 내면의 더 높은 차원에 가도록
애쓴다.
당신이 거기에 이르면 그 영역에서 스승의 지위와 위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Letter 58)
Meeting a Master in this life is something unique, for after meeting a Master, there is no coming back in the cycle of life and death.
To meet a Master in this life is to enter on the way to life eternal.
Really fortunate are they who have com across a Master, have been connected by him with the sound current, and are practicing the sound current.
이생에서 스승을 만난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며 스승을 만난 후에는 생사 윤회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생에서 스승을 만나면 영원한 삶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우연히 스승을 만난 사람은 정말로 행운이고 음류(the sound current)를 통해서 그와 연결되며 음류를 수행하게 된다.
(Letter 180)
《살아있는 스승의 필요성 NEED FOR A LIVING MASTER》
To follow a Master means practicing the Word – catching the sound current from the eye center and riding on that.
Only a living Master can give us the Word.
스승을 따르는 것은 말씀을 수행하는 것이며
눈의 중심에서 음류를 듣는 것이며 거기에 타는 것이다.
살아있는 스승만이 말씀을 줄 수 있다.
We can neither get it from books nor from Masters not now alive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Word is not present in books, nor with their help (books) can we catch it from within ourselves, and we do not know how to come in contact with them (Master).
우리는 책이나 살아있지 않은 스승에게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말씀은 책에 있지 않고 책의 도움으로는
우리 내면에서 그걸 잡을 수 없으며
그 스승들과 만나는 방법을 모르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The teaching of living, or the dead Masters when they were alive, is and was the Word, and if the Word has not been contacted in human form, one's life has been "fruitless".
Living a good moral life, giving charities and doing service to humanity, and such other things are not really the teaching of the Masters.
This is the sphere of moralists, social reformers, preachers and schoolmasters.
살아있는 스승이나 돌아가신 스승의 생전의 가르침이
바로 말씀이며 인간의 형태를 통해 말씀이 전해지지 않으면
삶에 『결실이 없게 된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보시를 하고 인류에게 봉사하는 그런 일들은 실은 스승들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다.
이는 도덕주의자와 사회 개혁가나 설교자 교사의 분야이다.
(Letter 105)
It is true that only a living Master can grant initiation and consequent salvation to non-initiates, and therefore it may be said that a Guru gives salvation only when alive.
단지 살아있는 스승만이 입문을 시키고 그 결과 입문하지 않은 자를 구원할 수 있기에 스승이 살아계실 때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Letter 120)
윤리적인 삶 ETHICAL LIVING
We are constantly beset by five foes-passion, anger, greed, worldly attachments, and vanity.
All of these must be mastered, brought under control.
You can never do that entirely until you have the aid of the Guru and are in harmonic relations with the sound current.
But you can begin now, and every effort will be a step on the way.
우리는 항상 다섯 가지 장애 즉 욕정, 분노, 탐욕, 세속적인 집착,
오만에 시달린다. 이 모두를 정복해야 하며 제어해야 한다.
스승의 도움을 받고 음류와 조화로운 관계가 되기 전에는 결코
그것들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시작할 수 있고
가는 길의 모든 노력이 한 걸음이 된다. (Letter 206)
홀로 있음 SOLITUDE
The sound current and the Master are within you.
Yoy need no other company…
The greater the solitude, the better.
There is no better luck than solitude.
Solitude is good for spiritual progress…
Social functions, besides wasting one's time, distract one's mind which, therefore, becomes difficult to concentrate.
음류와 스승은 당신 내면에 있다. 다른 동료가 필요 없다.
더 고독할수록 더 낫다. 혼자가 되는 것 이상의 행운은 없다. (Letter 118)
고독은 영적 진보에 이롭다. 사교 행사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고 마음을 산만하게 하여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Letter 108)
A man who, while living in this world and doing its work keep his mind free from it, can be said to have renounced the world; and one who, living in solitude, has his mind full of worldly desires, should be called a man of the world.
이 세상에 아직 살고 일을 하면서 마음이 그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세상과의 관계를 끊었다고 할 수 있고 외딴 곳에 살지만 마음에 세속적인 욕구가 가득하면 세속적인 사람이라 불러야 한다. (Letter 141)
음식 DIET
I must point out that animal food, even if a single particle is eaten, is detrimental to spiritual progress.
Meats, eggs, and alcoholic drinks must be given up by the practitioner.
These articles of diet dull the soul.
동물성 식품은 심지어 한 조각을 먹어도 영적 진보에 해롭다고
나는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Letter 21)
수행자는 고기와 달걀을 먹고 술을 마시길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음식들은 영혼을 흐리게 한다. (Letter 148)
사랑 LOVE
Outward love also is not bad, but the real love and devotion can be manifested only when you rise above the nine doors of the body.
Eating sweet thing is different from just talking about them.
But even talk of sweet things is also interesting.
As long as there is any worldly attachment, it is no use.
If you want Love and Grace, then use all your energy in going up.
Such people are not non-existent, but they are few.
외적 사랑도 나쁘지 않지만 진정한 사랑과 헌신은 신체의 아홉 문을 넘어섰을 때만 나타난다.
단 것을 먹는 것은 그걸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다.
하지만 단 것을 말하는 것조차 흥미롭다.
세속적인 집착이 있는 한 그것은 소용이 없다.
사랑과 은총을 원한다면 올라가는데 모든 힘을 쓰라.
그런 사람은 없지는 않지만 아주 적다. (Letter 5)
The Master showered his grace when he initiated you.
Now your duty is to practice concentration and go up.
Then love will come automatically.
스승은 당신을 입문시킬 때 은총을 쏟아준다.
이제 당신 의무는 집중해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사랑은 올 것이다. (Letter 7)
When your love for that power exceeds your love for yourself and the “I-ness” has been replaced by “Thou-ness,” the Form of the Guru will make its appearance visible within.
그 힘에 대한 사랑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당신이란 존재』가 『나란 존재』를 대신할 때
스승의 모습이 내면에서 나타나 볼 수 있게 된다.
(Letter 47)
Your inability to concentrate properly is due to your worldly desires, which must be brought under control till you reach the point when love of God becomes an all-consuming passion, and you consider it the be-all and end-all of your existence.
제대로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세속적 욕망 때문이며
신의 사랑이 불타는 열정이 되고 신의 사랑이 존재의 본질이자
전부인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 욕망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Letter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