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주 강력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것,
우리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인 의식이
언제나 모든 것을
그대로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와같이 명상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식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 자체는 저항하지 않는다.
의식은 지금 있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당신의 참된 본성인 의식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좋은 하루를 누리고 있다면,
당신의 참된 본성은 당신이 좋은 하루를
누리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불쾌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당신의 참된 본성은
당신이 불쾌한 하루를 보내는 것 역시 방해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의식은 있는 그대로 허용한다.
우리의 의식이 하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지만 , 그것이 바탕이다.
정말로 자유로워지는 열쇠들 가운데 하나는
명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정말로 모든 것을 그대로 허용할 때,
그런 내적 분위기,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그런 내적 태도를
취할 때,
그것은 매우 비옥한 공간,
매우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의식 상태이다.
그러한 내맡김의 순간에
창조적인 어떤 것이
당신에게 올 수 있다.
그것은 통찰이 일어나는 공간,
계시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것은 지혜가 떠오르는 공간이며,
"아하!"하는 통찰이 떠오르는 공간이다.
그것은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는
단지 마음 속 작은 한 점의
의식이 아니라
의식 전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 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깨달음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바로 의식 자체임을,
우리 자신이 바로 존재 자체의
드러나지 않는 바탕임을 깨닫는 공간이다.
<아디야샨티의 참된 명상 67~69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