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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正觀諸法 진실한 관찰 『寶積經 迦葉品』

작성자山木|작성시간20.03.01|조회수68 목록 댓글 0

正觀諸法

진실한 관찰

如是迦葉!

부처님께서 카샤파에게 말씀하셨다.

菩薩欲學是寶積經者,應修習正觀諸法。

“훌륭한 보배의 모음[大寶積]인 이 법문에 의해 배우려는

보살은 존재에 대해서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云何為正觀?

무엇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수행인가.

所謂真實思惟諸法。

그것은 곧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真實正觀者,不觀我人眾生壽命,是名中道真實正觀。

그러면 또 무엇이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인가.

자아(自我)가 없다고 보는 관찰과

중생이 없다, 목숨 있는 것이 없다, 개인이 없다,

개아(個我)가 없다, 인간이 없다, 인류가 없다고 관찰할

경우 그것을 곧 중도(中道)라 하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라고 한다.

復次迦葉!真實觀者,觀色非常亦非無常,

觀受想行識非常亦非無常,是名中道真實正觀。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물질[色]에 대해서

영원하지도 않고 무사하지도 않다고 보는 관찰이다.

이와 같이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에

대해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復次迦葉!真實觀者,觀地種非常亦非無常,

觀水、火、風種非常亦非無常,是名中道真實正觀。

所以者何?以常是一邊、無,常是一邊,

常無常是中無色無形無明無知,是名中道諸法實觀。

我是一邊、無我是一邊,我無我是中無色無形無明無知,

是名中道諸法實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영원한 것이라거나

무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이 영원과 무상 사이의 올바른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자아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무아(無我)라고 하여도 이것 역시 극단론이다.

이 유아(有我)와 무아 사이의 올바른 것은 역시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復次迦葉!若心有實是為一邊,若心非實是為一邊,

若無心識亦無心數法,是名中道諸法實觀。

如是善法不善法、世法出世法、

有罪法無罪法、有漏法無漏法、

有為法無為法,乃至有垢法無垢法,亦復如是離於二邊,

而不可受亦不可說,是名中道諸法實觀。

復次迦葉!有是一邊、無是一邊,

有無中間無色無形無明無知,

是名中道諸法實觀。

마음이 실재한다거나 실재하지 않다고 주장

하는 것도 위의 경우와 같다.

또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다음과 같은 관찰이다.

공(空)한 성질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공한 것이다.

무상(無相)이 있어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무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상(相)이 없는 것이다.

무원(無願)이 있어 그것이 존재를 바람이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자성(無自性)이 있어 어떤 존재를 자성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寶積經 迦葉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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