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觀諸法
진실한 관찰
如是迦葉!
부처님께서 카샤파에게 말씀하셨다.
菩薩欲學是寶積經者,應修習正觀諸法。
“훌륭한 보배의 모음[大寶積]인 이 법문에 의해 배우려는
보살은 존재에 대해서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云何為正觀?
무엇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수행인가.
所謂真實思惟諸法。
그것은 곧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真實正觀者,不觀我人眾生壽命,是名中道真實正觀。
그러면 또 무엇이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인가.
자아(自我)가 없다고 보는 관찰과
중생이 없다, 목숨 있는 것이 없다, 개인이 없다,
개아(個我)가 없다, 인간이 없다, 인류가 없다고 관찰할
경우 그것을 곧 중도(中道)라 하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라고 한다.
復次迦葉!真實觀者,觀色非常亦非無常,
觀受想行識非常亦非無常,是名中道真實正觀。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물질[色]에 대해서
영원하지도 않고 무사하지도 않다고 보는 관찰이다.
이와 같이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에
대해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復次迦葉!真實觀者,觀地種非常亦非無常,
觀水、火、風種非常亦非無常,是名中道真實正觀。
所以者何?以常是一邊、無,常是一邊,
常無常是中無色無形無明無知,是名中道諸法實觀。
我是一邊、無我是一邊,我無我是中無色無形無明無知,
是名中道諸法實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영원한 것이라거나
무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이 영원과 무상 사이의 올바른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자아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쪽에 치우친 극단론이다.
무아(無我)라고 하여도 이것 역시 극단론이다.
이 유아(有我)와 무아 사이의 올바른 것은 역시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될 수도 없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 즉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復次迦葉!若心有實是為一邊,若心非實是為一邊,
若無心識亦無心數法,是名中道諸法實觀。
如是善法不善法、世法出世法、
有罪法無罪法、有漏法無漏法、
有為法無為法,乃至有垢法無垢法,亦復如是離於二邊,
而不可受亦不可說,是名中道諸法實觀。
復次迦葉!有是一邊、無是一邊,
有無中間無色無形無明無知,
是名中道諸法實觀。
마음이 실재한다거나 실재하지 않다고 주장
하는 것도 위의 경우와 같다.
또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란 다음과 같은 관찰이다.
공(空)한 성질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공한 것이다.
무상(無相)이 있어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무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상(相)이 없는 것이다.
무원(無願)이 있어 그것이 존재를 바람이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자성(無自性)이 있어 어떤 존재를 자성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 중도이고 존재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다.”
『寶積經 迦葉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