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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고산지원] 구도자가 명심할 일

작성자山木|작성시간20.03.21|조회수55 목록 댓글 0

설산 동자의 법을 구하는 것을 사모하고

선재 동자의 스승 찾는 것을 배우라.

慕雪山之求法 學善財之尋師

모설산지구법 학선재지심사


<치문 시학도(緇門 示學徒)>



孤山圓法師示學徒

구도자가 명심할 일 …孤山智圓(고산지원)


於戲大法下衰去聖逾遠。

슬프다.

불법이 점점 쇠약해지는데 부처님 가신 지는 더욱 멀어 지는구나.


披緇雖眾謀道尤稀。

비록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은 많으나

도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구나.


競聲利為己能。視流通為兒戲。遂使法門罕闢教網將頹。

명예와 이익 다투는 것을 본분으로 삼고 불법을 유통하는 데는

아이들 장난으로 삼으니 마침내 법문의 문을 여는 이는 드물고

교법(敎法)이 쇠퇴해지는구나.


實賴後昆克荷斯道。

진실로 뒷사람에게 힘을 주고자 하면 이 도를 굳게 걸머져야 한다.


汝曹虛心請法潔己依師。近期於立身揚名。

遠冀於革凡成聖。

너희들은 마음을 비우고 법문을 듣고 몸을 깨끗이 하고

스승 을 의지해서, 가깝게는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멀리는 성인(聖人) 이 되기를 기약하여라.


發揮像法捨子而誰。

정법(正法)을 발휘하려면 그대들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 

 

故須修身踐言慎終如始。

그러므로 몸을 닦고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라.


勤爾學問謹爾行藏。避惡友如避虎狼。事良朋如事父母。

학문을 부지런히 하고, 행동을 삼가하여 악한 벗을 보거든 호랑이를 피하듯이 하고, 어진 벗을 만나거든 부모를 섬기듯이 하라.


奉師盡禮為法亡軀。有善母自矜。起過務速改。

예의를 다해 스승을 받들고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어야 하며,

선행(善行)을 하더라도 자랑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허물이 있으면 즉시 고쳐라.


守仁義而確乎不拔。處貧賤則樂以忘憂。

自然與禍斯違與福斯會。

인의(仁義)를 지켜서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빈천貧賤에 거처하되 즐거운 마음으로 근심을 잊는다면

자연히 화를 이기고 복을 부르게 될 것이다.


豈假相形。問命諂求榮達之期。

어찌 관상을 보고 운명을 물음으로써

영달의 시기를 아첨하여 구할 것이며


擇日選時苟免否屯之運。

날을 선택하고 때를 가림으로써 막히고

어려운 운세를 구차하게 면하기를 빌겠는가.


此豈沙門之遠識。實惟俗子之妄情。宜乎見賢思齊。

이것이 어찌 사문의 원대한 식견이리요,

실로 오직 속인의 망령된 뜻일 뿐이다.


當仁不讓。慕雪山之求法。學善財之尋師。

名利不足。動於懷。死生不足憂其慮。

어진이를 만나거든 어진 이가 되기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구도 (求道) 정신을 사모하며,

선재(善財)동자가 스승을 찾아 다닌 것 을 본받아서

명예와 이익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생사(生死)를 근심하지 말라.


倘功成而事遂。必自邇而涉遐。

만일 공이 이루어지고 일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로 올라가야 한다.


不沽名而名自揚。不召眾而眾自至。

智足以照惑。慈足以攝人。

명예를 구하지 않는데도 명예가 스스로 드러나고

대중을 부르지 않았는데도 대중이 스스로 오게 되고

지혜가 가득하여 번뇌를 몰아내고

자비가 넘쳐 흐르면 사람들을 포용하게 될 것이다.


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使真風息而再振。

慧炬滅而復明。可謂大丈夫焉。可謂如來使矣。

궁핍하면 곧 홀로 그 자신만을 착하게 하고

통달하면 곧 천하까지 겸해서 착하게 하여

잠잠하던 참된 교화의 바람을 다시 떨쳐 일어나게 하고

꺼졌던 지혜의 횃불을 다시 밝게 밝힌다면

가히 대장부라 일컬을 것이며 가히 여래의 사자라 일컬을 것이다.


豈得身棲講肆。跡混常徒。在穢惡則無所間然。

於行解則不見可畏。以至積習成性自滅其身。

그런데 어째서 세속의 더러운 풍습에 휩쓸려 살면서

자신의 잘못도 깨닫지 못하고 악습만을 쌓고 익혀서

스스로의 몸을 망치려 하는가?


始教慕彼上賢。終見淪於下惡。如斯之輩誠可悲哉。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저 위의 현인(賢人)들을 사모하다가

중도에서 악으로 빠지는 것을 보나니

이 같은 무리야말로 참으로 불쌍하고 슬플 뿐이로다.


詩云靡不有初鮮克有終。斯之謂矣。中人以上可不誡歟。

《시경(詩經)》에 "처음은 있으나 끝이 있기는 지극히 어렵도다."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니 보통 사람 이상의 그릇이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抑又戒慧分宗大小異學。悉自佛心而派出。

意存法界以同歸。

또 율종(律宗)이니 논종(論宗)이니 하여

마치 불법에도 대소(大小)의 학문이 다른 것 같으나

모두 불심(佛心)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니

마음을 법계(法界)에 두어서 함께 들어가야 한다.


既而未曉大猷。於是各權所據。習經論則以戒學為棄物。

宗律部則以經論為憑虛。

習大法者則滅沒小乘。聽小乘者則輕毀大法。

그러나 이미 대법(大法)을 알지 못하니

경론을 익힌 자는 계율을 버릴 물건으로 알고,

율을 주장하는 자는 경과 논을 쓸데없는 것으로 알며,

대승을 익힌 자는 소승을 멸시하고,

소승을 들은 자는 대승을 업신여긴다.


但見人師偏讚。遂執之而互相是非。豈知佛意常融。

이는 단지 남의 편견을 따라 서로 시비하는 것이니

어찌 부처님의 참뜻에 융합할 수 있겠는가?


苟達之而不見彼此。應當互相成濟。共熟機緣。

진실로 통달 하여 피차를 보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면

서로가 서로를 구제하고 함께 부처님의 참뜻을 익히게 될 것이다. 

 

其猶萬派朝宗無非到海。百官蒞事咸曰勤王。

비유하면 만 가지의 종파(宗派)가 바다에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며, 문무백관이 모두 임금님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같다.


未見護一派而擬塞眾流。守一官而欲廢庶績。

한 파를 보호하기 위해 큰 흐름을 막으며,

하나의 관직을 지키지 위해 다른 모든 관직을 없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原夫法王之垂化也。統攝群品各有司存。

小律比禮刑之權。大乘類鈞衡之任。

營福如司於漕輓。製撰若掌於王言。

본디 무릇 법왕이 교화를 드리움에 여러 종류의 중생들을 통괄하여 끌어안고자 각각에 소임所任을 두었으니, 소승의 율律은 예부와 형부의 권위에 비견되고 대승大乘은 재상의 임무와 비슷하며 복을 짓는 일(營福)은 배나 수레를 조종하는 것과 같고 서적을 찬술하는 일(製撰)은 마치 왕의 말을 관장하는 것과도 같다.

[부처님이 교화를 펴기 위해서 마치 나라에서 관리를 임명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듯이 율종이니 논종이니,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것도 그와 같다. ]


在國家之百吏咸修。類我教之群宗競演。

果明此旨豈執異端。

나라에서 모든 벼슬아치가 함께 자신의 직분을 닦는 것은

우리 불교의 여러 종파들이 다투어 포교하는 것과 유사하니

과연 이 취지를 밝히면 어찌 이단異端임을 고집하겠는가.

[그러므로 국가의 관리가 자기 소임을 다해 나라 일을 보듯이

불교의 여러 종파가 경쟁하며 포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뜻이다.

이러한 의미를 깊이 안다면 어찌 나의 주장 만 옳다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


當須量己才。能隨力演布。

性敏則兼學為善。識淺則顓門是宜。

그러니 각자의 재능을 헤아려서 능력에 따라 공부하되

성품이 넓고 민첩한 사람은 여러 종파의 학문을 겸하여 배우는 것이 좋고, 지견이 얕은 사람은 한 가지 전공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若然者雖各播風猷。

而共成慈濟。同歸和合之海。共坐解脫之床。

夫如是則真迷途之指南。教門之木鐸也。

이렇게 알고 공부한다면 비록 강줄기는 다르지만

함께 화합의 바다에 돌아가며,

함께 해탈의 자리에 앉아 어두운 길의 나침반이 되고

교문의 목탁이 될 것이다.


居乎師位諒無慚德。趣乎佛果決定不疑。

스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덕이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면 불과(佛果)에 나아가는 데 결정코 의심이 없을 것이다.


汝無矜伐小小見知。樹立大大我慢。輕侮先覺熒惑後生。

너희는 쓸데없는 소견으로 아만심만 잔뜩 불려

선지식을 업신여기거나 후인들을 현혹하지 말라.


雖云聽尋未補過咎。言或有中。汝曹思之。

비록 나의 말이 허물을 없애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중에는 맞는 말이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그것을 깊이 생각하라.


(緇門警訓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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