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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루쉰(魯迅 / 죠우 슈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0.03.21|조회수167 목록 댓글 0


                      

나는 하나의 종착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것은 무덤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곳까지 가는 길에 있다.

물론 길은 한 가닥이 아니다.

루쉰의 묘비문

人生最大的痛苦是梦醒了之后无路可走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不在沉默中暴发, 就在沉默中灭亡.

침묵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침묵에서 멸망하라


我在朦朧中,

眼前展開一片海邊碧綠的沙地來,

上面深藍的天空中掛著一輪金黃的圓月。

我想:

몽롱한 중에 눈앞에 바닷가 청록색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로 짙푸른 하늘에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希望示本無所謂有 無所謂無的。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這正如地上的路;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也便成了路。」

이는 땅 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 위에는 본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이 많아져 곧 길이 되었다. -루쉰 <고향> 中

時間, 每天得到的都是二十四小时,

可是一天的时间给勤勉的人带来智慧和力量,

给懒散的人只留下一片悔恨。

시간은 매일 24시간을 모두 얻는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이 근면한 사람에게 주어지면

지혜와 힘을 가져오고, 게으른 사람에게 주어지면

오로지 한장의 후회로 남는다!


“Without hope, there is no existence, there is no future, and there is no present.”

“희망이 없으면 존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한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


자식은 자기의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나누어져 있기에 또한 인류 속의 사람이다.

자기 것일진대 더욱 교육에 의무를 다하고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하고

또 내 것이 아니기에 해방시켜야 하고

모든 것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해주어야 하며

하나의 독립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생명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부조화가 아무리 많아도,

제아무리 인간 스스로 위축되고 타락하여 뒷걸음치더라도,

결코 이로 인해 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암흑이 사고의 흐름을 막는다 하여도,

어떤 비참이 사회를 습격한다 해도,

어떤 죄악이 사람의 도리를 모독한다 해도,

완전을 갈망하는 인간의 잠재력은 언제나 이런 가시철망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없던 곳을 밟고 걸어서 생긴 것이며,

가시덤불 속에서 개척해낸 것이다...


<隨感錄, 生命的路>

어느 날 밤의 단상

              

루쉰

나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꼽는 독자들은 종종

내가 진실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의 편파성에서 기인한 과도한 칭찬이다. 내가 일부러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밝히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표현하는 것은 단지 몇 가지 생각들로서,

인쇄인에게 넘기기에 충분한 정도의 것일 뿐이다.

내가 종종 남들을 분해하려고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사실은 내 자신에 대해서 수술칼을 갖다대는 것이다.

그것도 보다 냉정하게. 내가 자신을 가린 장막의 한 귀퉁이만을

들어올리면 예민한 정신들이 쏟아져 나온다.

만일 내가 자신의 전부를,

내 모습 그대로를 들춘다면 어떤 것일까?

때때로 사람들을 쫓아 버리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데, 그렇게 해도 그때까지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뱀과 괴물같은 놈”들일지라도 자신이 나의 친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결국은 나의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와중에서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혼자 걸어가면 되니까.

그러나 당분간 나는 이 생각을 실행하는 것을 참을 용기가 없고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고 나는 이것을 이미 서너 차례 말한 적이 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리의 ‘존경스럽고 올바른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들 사이에 불편한 느낌을 갖도록 할 수 있는 한, 내게 어떤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왜냐하면 내 자신도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히 중국에는 ‘대가’와 ‘인도자’가 많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

들지 못하며 그들도 나의 신념을 어쩌지 못한다.

내 자신이 확신하는 결과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내자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누구나가 아는 것이다.

문제는 이 최후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제껏 그 중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 하며, 나를 증오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존경스럽고’ 또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원숙한 노년에 이르도록 살지만 경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해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을 모호하게 감추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내가 나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어쩌면 ‘불일치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즉흥적으로 글을 쓰며, 말들이 너무 자유스럽게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먼 생각은 없다.

나는 일련의 망설임과 불확실성으로 제약받고 있고 벌써 오랫동안 자신이 전사나 선구자를 이루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서너해 전의 일이라고 기억되는데, 한 학생이 내 책중의 하나를 사기 위하여 찾아 왔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 손에 쥐어준 돈은 그의 체온으로 따뜻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펜을 잡을 때면 언제나 나는 그 학생과 같은 사람들을 해칠까 두려워한다.

나는 한 단어를 종이에 올리기 전에 오랫동안 망설인다.

내가 주저 없이 말을 할 수 있는 때는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비록 젊은 세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망설임을 버려야 한다고 때때로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我即使是死了,釘在棺材裡,也要在墓里,用這腐朽的聲帶喊出:我沒說過這句話。

"나는 죽어서 관에 못박혀도 무덤에서도

이 썩은 성대聲帶로 외쳐야 한다:

나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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