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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홀로그램 우주》(Holographic Universe)텔보트

작성자山木|작성시간20.03.21|조회수152 목록 댓글 0

Holographic Universe

by Michael Talbot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을 체험한 모든 사람들은 어두운 터널과 영혼들의 영접,

지상의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의 존재가 없는 광경,

사랑의 느낌을 방사하는 눈부신 빛, 빛의 존재 앞에 나섬,

모든 것을 감싸는 맑은 평화에 둘러싸임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한 후에는

더 행복해하고 더 낙관적으로 변하고

더 편안해지며 물질적인 소유에 관심이 적어진다.

또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사랑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더욱 영적인 사람이 된다.


그 체험 이후 그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확고히 믿을 뿐 아니라

우주는 자비롭고 지성적이며 그 사랑의 임재감이 항상 그들과

함께한다는 깊고 변하지 않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반드시 그들을 더 종교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빛의 존재를 만났을 때에 대해서 똑 같은 말을 한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잘못으로 인하여

빛의 존재들에 의해서 결코 심판 받지 않았으며

그 존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오직 사랑과 자비

끝없는 관용만을 느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유일한 심판은

오직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 자신의 죄책감과

후회로부터 일어나는 자기 심판이 그것이다.

우주적인 심판이나 상벌체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종교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만큼이나 단순한 문제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로운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해도 다 용서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인 자신이 행한 일은 다시 자신이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 된다.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한가지는 사랑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메시지를 거듭거듭 강조한다.

"거기서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분노를 사랑으로 바꾸기를 배워야 하며,

더욱더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며,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 받게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죽어서 만나는

빛의 존재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도덕적 기준인 듯하다.

그리고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할 때마다

빛의 존재들은 그들의 질문에 단지 한가지 질문으로 대답한다.

그대는 사랑으로서 그렇게 행하였나요?

그 동기가 사랑이었나요?


빛의 존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이며,

그 사랑을 배우는 것만이 열쇠라고 말한다.


빛의 존재들이 강조하는 두 번째 가치는 지식이다.


우리의 삶은 최소한 어느 정도 미리 계획되어 있으며

우리는 각자 자신이 살아가기로 되어 있는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관여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전생의 학습으로도 미처 배우지 못했던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 배움은 끊임없는 과정이며 사후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후세계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문이든지 의문을 품으면

그 즉시 답을 알게 된다.

만일 내가 곤충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것 같은

의문을 품는 즉시 그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준이 되지 못하더라도

빛은 바로 올바른 답을 주고 우리가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내가 배운 것은,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은 다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슬픈 착각이다.

나는 이제 숲과 꽃과 새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나다. 나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만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 연결을 통해

사랑을 보낸다면 우리는 행복해 질 것이다."


간디와 더불어 인도에서 존경 받는 스리 오로빈도는

그것을 간단히 이렇게 말한다.


"빛나고 위대한 신령의 왕국에서 배우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든 분리는 미망이며 만물은 궁극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일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정한 영성(靈性)은 조직이나 교단으로부터 나올 수 없으며 오직 내면의 영적 우주로부터만 나올 수 있음을 평생 강조했다.


"우리는 마음과 감각의 덫, 그리고 말의 그물과 생각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영을 형체 안에 가두려고 우리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언제나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고 무한한 것을 위해

유한한 것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깨달음으로부터 깨달음으로,

경험으로부터 경험으로, 영혼상태로부터 영혼 상태로...

한없이 나아갈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가장 확고하게 믿는 진리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어떤 형태나 표현 속으로도

자신을 한정시키기를 거부하는 그것의 형태와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빛의 존재"의 아들과 딸들이며

이 땅에서 사랑이라는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작은 우주이며

잠시 "안정되어 있는(물질화된) 빛 덩어리"인 것이다.


Matter is also a kind of habit and is constantly born anew out of the implicate, just as the shape of a fountain is created anew out of the constant flow of water that gives it form.

물질 역시 일종의 습관이고 숨겨진 질서로부터 계속해서 다시

새로 태어난다. 마치 분수의 모양이 계속해서 흐르는 물로부터

다시 새로 창조되듯이.

(계속되는 진동 공명 작용에 의하여 물질형태를 유지한다)


Bohm admits to believing that the universe is all "thought" and reality exists only in what we think.

데이비드 봄은, 우주는 모두 "생각"이고

현실은 오직 우리가 생각하는 것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고 인정했다.


Everyday reality, dreams, 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 are fundmentally the same.

일상의 현실, 꿈꾸기, 변성 의식 상태는 근본적으로 같다.

(현실 상태와 꿈 상태 및 최면 상태의 각 뇌파 패턴은 동일하다)


수 많은 말들이 흘러 다녀도 그 말은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들릴 뿐, 열려 있지 않는 귀에는 스치는 바람과 다를 바 없다.

수 많은 방송 전파가 대기를 채우고 있어도, 주파수가 동조된 채널로만 방송을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밤 하늘에 우리가 보는 별은 그 별이 수 억광년 전에 보낸 빛의 흔적일 뿐,

그 별이 아니고, 눈 앞에 보는 나무가 빛을 타고 온 파장의 흔적을 뇌로 인지하는 것이지,

우리가 보는 것은 나무가 아니다. 나무의 사진이 나무자체가 아니듯, 우리가 보는 나무도 실체 나무가 아니다.

마음 밖에 물건이 없다. 플라톤이 "동굴 우화"에서 설명하였듯이 우리가 보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이다.

What we see around us is in our minds but not in our brains.

When we look at something, in a sense our mind touches it.

우리가 보는 주변의 사물들은 우리의 정신 안에 있지 두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정신이 그것을 만지고 있다. 

 

<루퍼트 쉘드레이크, 과학의 망상,>


늙지 않는 육체 시간 없는 마음


새로운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감정이란 외딴 정신의 공간 속을 스치듯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의식의 표현이며 생명의 근본적인 질료라는 사실이다.


모든 종교 전통 속에서 생명의 숨결은 곧 영혼이다.

영혼을 고양시킨다거나 저하시킨다는 것은

인체가 반드시 반영해야 할 근본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의식은 노화현상에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온다.

고등한 생명 형태를 지닌 모든 종이 노화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식을 다시 노화 자체로 재번역한다.

늙어가는 것에 절망을 느끼기 때문에

한층 더 빨리 늙어가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아량으로 받아들이면

육체적·정신적인 많은 불행을 막아낼 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늙는다'는 속담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계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정보의 자극이다.

우리가 나무, 별, 산, 바다라고 부르는 에너지와 정보의 덩어리도

자연계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이와는 다르다.

자연계는 자신의 생각의 형태가 일단 정해지면

거기에 고정되어 버린다.

행성이나 나무와 같은 사물은 생겨나고 발달하고

쇠퇴하고 분해되는 자동적 단계의 성장 사이클을 따른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의 주기 속에 갇히지 않는다.

인식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에 참여한다.


우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마이클 탤보트(Michael Talbot)는 자신의 저서

<홀로그램 우주(The Holographic Universe)>라는

책에서 이것을 희랍 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 왕에 빗대어 재치있게 이야기한다.

자기가 손을 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므로,

마이더스 왕은 사물의 실질적인 재질을 알 수가 없다.

물도, 밀알도, 살도, 깃털도, 모두가 그가 손을 대는 순간

단단한 금속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은

양자의 장을 일상의 물질적 현실로 바꾸어 버리므로

우리는 양자적 현실 그 자체의 재질을 알 수가 없다.


오감을 통해서도 알 수 없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 또한 양자의 장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생각은 공허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떤 시공간적(時空間的) 사건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육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특정한 시공간적 사건이다.


우리는 순전히 추상적인 잠재력을 고형의 물체로 바꾸어 놓은

마이더스의 손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육체의 물질성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의식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육체를 바꾸어 놓는 자신의 행위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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