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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余少讀《論語》,端木氏之言曰:「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讀《易》,乃知畜性與天道在是。
내 젊은 시절 논어를 읽을 때 단목씨의 말에 의하면 공자님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지만, 공자님의 말씀에서 性과 天道는 얻어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주역을 읽으면 性과 天道을 기르는 게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
周道衰,舜、禹、湯、文、武、周公致治之法,煥乎有文章者,棄爲陳跡。孔子旣不得位,不能垂諸制度禮樂,是以爲之正本溯源,使人於千百世治亂之故,制度禮樂因革之宜,如持權衡以御輕重,如規矩準繩之於方圜平直。言似高遠,而不得不言。
주나라의 도가 쇄약해지고 순임금, 우임금, 탕임금, 문왕, 무왕, 주공의 다스리는 법과 문장에 있어서 밝힌 것은 널브러진 족적으로 삼아 버려 버렸다. 공자께서는 왕이 되지 못해 제도와 예악을 드리우지 못했기에 정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며 천백세토록 어지러운 원인을 다스리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도 예악을 떳떳하게 바로잡도록 한 것이다. 바른 법도를 가지고 경중을 제어함과 같고, 규구와 준승으로 방원 평직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씀은 높고 멀지만 말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自孔子言之,實言前聖所未言;微孔子,孰從而聞之?故曰「不可得而聞」。
공자로부터 말씀하심은 실제로 그 전 성인들은 말하지 않은 것이니 공자께서 미약하다면 누가 따라서 들을 것인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얻어 들을 수 없다.'
是後私智穿鑿者,亦警於亂世,或以其道全身而遠禍,或以其道能誘人心有治無亂;而謬在大本,擧一廢百;意非不善,其言衹足以賊道,孟子於是不能已於與辯。當是時,群共稱孟子好辯矣。
이는 후에 사사로이 지혜를 갈고 닦는 자는 또한 어지러운 세상을 경계하여, 혹 그 도로써 전신을 재앙에서 멀게 하고, 혹 그 도로써 능히 사람 마음에 어지럽지 않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유도함이다. 謬도 큰 바탕이 있고서 하나를 들어 백을 덮으니, 그 말씀이 도적의 도로 적당한 것이다. 맹자는 이에 더불어 말하는 것에 이미 능하지 않았다. 이 때를 당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맹자는 호변가라고 칭했을 것이다.
孟子之書,有曰「我知言」,曰「遊於聖人之鬥者難爲言」。
맹자 책에 있기를 '나는 말씀을 안다.' '성인의 다툼에 노는 것은 말씀하기 어렵다.'
蓋言之謬,非終於言也,將轉移人心;心受其蔽,必害於事,害於政。彼目之曰小人之害天下後世也,顯而共見;目之曰賢智君子之害天下後世也。相率趨之以爲美言。其人人心深,禍斯民也大,而終莫之或寤。辯惡可已哉!孟子辯楊、墨;後人習聞楊、墨、老、莊、佛之言,且以其言汩亂孟子之言,是又後乎孟子者之不可已也。苟吾不能知之亦已矣,吾知之而不言,是不忠也,是對古聖人賢人而自負其學,對天下後世之仁人而自遠於仁也。吾用是懼,述《孟子字義疏證》三卷。韓退之氏曰:「道於楊、墨、老、莊、佛之學而欲之聖人之道,猶航斷港絶潢以望至於海也。故求觀聖人之道,必自孟子始。」嗚乎,不可易矣!休寧戴震。
대개 말의 오류는 그 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니 장차 사람의 마음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그 폐단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일에 해악이 되고 정치에도 해가 된다. 저 망목에 말하기를 소인의 해악은 천하후세이다. 나타나면 같이 당한다. 망목에 말하기를 현명하고 지혜로운 군자의 해악도 천하후세이다. 사로 거느리고 좇아서 아름다운 말로 생각한다. 그 사람마다 마음으로 깊이 재앙이 되니 백성에게는 크다. 끝내는 혹시라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쁜 것을 판별 할 수 있겠는가? 맹자는 양주 묵적을 판별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양주 묵적 노자 장자 부처의 말들을 듣고 익히면 또 그런 말들로써 맹자의 말씀과 난잡하게 섞일 것이니 이는 또 맹자의 후인들이 불가능할 것이다. 진실로 나는 알 수 없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알지만 말 못함은 불충이다. 이는 옛 성현들을 대함에 그 배움이 부담스럽고, 천하 후세의 어진 사람을 대하자니 仁이 스스로 멀어짐이다. 나는 이 두려움을 사용하여 맹자자의소증 3권을 저술한다. 한퇴지씨의 말에 의하면 양, 묵, 노, 장, 불의 학문의 도에서 부처의 학문을 성인의 도로 하고싶다. 오히려 바닷가에 가서 배가 항구도 끊고 나루터도 끊기를 바라는 게 낫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를 구하기를 바라면 반드시 맹자로부터여야 한다. 아! 쉽지 않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