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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

작성자山木|작성시간20.07.02|조회수289 목록 댓글 0

                       

"원래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자신의 소원을 잘 바라보라.

끊임없이 바라는 것,

그 내용을 응시하라.

아주 작은 소원 혹은 평범한 소원이라도,

그 안에 허영심이나 허세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찬찬히 음미해보라.

어느 누구도 자신처럼 생각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깊고 차분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누구도 자신처럼 생각해주지 않는다.

제 머리에 모자를 얹을 수 있는 게 자신뿐이듯,

생각하는 것도 언제나 자신이 해야만 한다.




당신이 좋다면 그것으로 됐다

누가 그것을 시시하다고 말했는가.

처음부터 부정했는가.

멋지다며 찬성해주었는가.

누가 부정했든 찬성했든 당신이 좋다면 그것으로 되지 않았는가.

부정이든 긍정이든 단지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든 그것으로 사실이 바뀔 리 없다.




비교하는 건 나쁜 버릇이다.

비교하는 버릇은 좋지 않다.

비교로 가치의 우열을 결정하는 나쁜 버릇은 이제 그만두자.

어떤 사람이든 어떤 물건이든 각각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다.

예컨대 디자인이 훌륭한 소파와 연인과 가는 극장 입장권.

이 두 가지의 가치를 비교하는 일은 터무니 없는 난센스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이런 식으로 비교할 수 없다.

하물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다.




생각이란 영상으로 그리는 것

생각이란 스스로 어떤 영상을 그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자신의 눈앞에 또렷이 그려지는 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결국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다 옳지는 않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그 문법은

가장 논리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논리적으로 바르게 생각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생각한 문장 하나하나는 분명 논리적이지만,

다음 문장과의 연결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생각이 늘 현실에 입각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현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위보다도,

훨씬 넓고 다채롭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잘못을 확대하지 마라

타인의 아주 작은 상처나 사소한 잘못을 망원경으로 보고

너무 크다고 말하지 마라.

반대로 거꾸로 잡은 망원경으로 자신의 잘못을 보며

별거 아닌 사소한 것이라 말하지 마라.




하찮은 생각에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바람이 불어와 거대한 나무를 마구 흔든다.

우리도 그런 나무와 같다.

아무래도 좋은 생각에, 하찮은 생각에,

별 볼일 없는 생각에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남이 알 정도의 재능이라면 아직 얄팍하다

천재는 최상급 수준의 재능을 가리키지 않는다.

천재란 재능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힘을 말한다.

남의 눈에 뛸 정도의 재능이라면,

아직 얄팍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재능은 샘과 같다

재능은 신선한 물이 콸콸 솟아나는 샘과 같다.

다만 그 맑고 신선한 물이 주위로 튀어 흩어지면,

제아무리 풍부한 샘이라도 아무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



천재는 빛을 한 점에 집중시킨다

천재는 빛을 가진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도 역시 빛을 갖고 있다.

그 빛의 양과 질은 천재든 보통 사람이든 완전히 같다.

그러나 천재는 돋보기로 그 빛을 한 점에 집중시켜,

눈부신 광선으로 만들 수 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하다.

만일 누군가 "나는 가난하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의 자산 상황을 속속들이 조사하여 평균 소득과 비교해 정말로 빈곤한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여기에 일반적 기준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복은 무언가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행복은 이미 말이 아니라 일종의 외침이나 액션 같은 것이다.

행복이라는 표현은 기쁨에 반사적으로 내지르는 소리와 같다.

                          

자연법칙은 고작 인간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우리 눈에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자연법칙은 고작 인간의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정리한 것이 자연법칙이다.

따라서 그 자연법칙과는 전혀 다른 법칙에 의해

자연이 크게 변하는 일도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다.




인생과 세계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일상 속에 숨어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에 신물이 난 우리는, 어딘가 먼 곳으로 가면 특별하고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인생에 큰 의미가 될 체험이 어딘가에 있다고 꿈꾼다.

그러나 타인이 일상을 사는 다른 장소로 갈 필요는 없다.

진정한 수수께끼는 우리의 일상 속에 가득 채워져 있기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손쉽게 지나가는 매일의 생활 속에

인생과 세게의 깊이가 감춰져 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의 일상은 완연히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자신을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마라

당신은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을 세상에 비싸게 팔려고 한다.

그렇다면 마치 상품 같지 않은가.

상품으로서 당신은 다른 물품과 함께 점포 진열대 위에 진열된다.

먼지를 뒤집어쓰면,

개점 전에 점원이 퉁명스레 먼지를 털어줄 것이다.

그리고 고객이 찾아와 상품인 당신을 발견한다.

다른 많은 물건과 비교하고, 끈적거리는 손으로 집어 들어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면서 마치 살 것처럼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고는 돌연 이런 물건 따위 전혀 갖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진열대 위에 거칠게 다시 내려놓는다.




비유가 사고방식을 구속한다.

우리는 흔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까지도 사물에 빗대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시간이 그렇다.

우리는 시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흘러간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가버린다' '시간을 써버린다' '시간이 아깝다'...

이 같은 말은 보통 강물이나 바람,

음식 같은 사물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것을 간단히 시간에 적용시켜 시간이 그런 물질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는 관념을 갖게 만든다.

그렇게 비유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은 어느새 일종의 사물이 되어버린다.

그 자세로 변화를 시간으로 보는, 다른 사고방식은 가질 수 없다.

한 가지 사고방식만 가진다면,

그 사고방식에 따른 인생밖에 살아갈 수 없다.

                             

철학이란 정리정돈이다.

과학과 철학을 무언가에 비유해보자.

예컨대 과학이란, 무거운 벽돌을 하나씩 가져와 정확히 놓고

그 곳에 튼튼한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철학은 자유로이 어질러져 있는 방을 보고 한숨지은 뒤

조금씩 정리정돈해가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도중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인테리어에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수선한 방을 말끔하고 상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이러쿵저러쿵 말하며 다른 방법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쉬운 설명이란 자세한 설명이 아니다.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단순히 자세하고 세밀한 설명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상대가 이해했다고 여기도록 설명하는 것이

이해를 낳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가 이해했다고 여길까?

그 상황을 상대방이 완전히 내려다보았다는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결국 상황 전체의 전망을 잘 보여주는 설명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면 상대는 그 상황을 스스로 파악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다. 완전하지 않아도 그것이 이해의 첫걸음이다.




말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두 사람이 동일한 말을 사용해도 그 둘이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완전히 같은 말이라도 각자 다른 의미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말은 정해진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가 어떤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같은 말을 쓰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소원에 허영심이 섞여 있지 않은가?

자신의 소원을 잘 바라보라.

끊임없이 바라는 것, 그 내용을 응시하라.

아주 작은 소원 혹은 평범한 소원이라도,

그 안에 허영심이나 허세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찬찬히 음미해보라.




자만심은 실패를 불러온다

예기치 않게 성공했다고 안심하지 마라.

생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자만하지 마라.

이는 눈밭을 걷는 중 잠시 주저앉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곧 기분이 좋아지고 점차 졸음이 몰려오고 그대로 얼어 죽는다.




용기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두려움을 어떻게든 짓밟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단지 약간의 두려움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에 만족할 수 없게 되는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키워라.

용기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아무리 요령이 좋아도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

용기만이 기회를 넓히고, 위기에서 구원하고,

자신감과 능력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용기 없는 타인들을 알아차리고 비웃는다고

자신의 용기가 커질 리 없다. 사람을 평가하지 마라.

먼저 용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세상을 헤쳐 나가라.




모두에게 맞추지 않아도 된다

모두 계속 걷는다고 자신도 보조를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모두가 저편을 보고 있다고

자신도 그쪽으로 시선을 줘야 한는 건 아니다.

제자리에 멈춰서도 좋고,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벌레나 꽃을 바라봐도 상관없다.

사람들보다 뒤처져도 좋지 않은가.

그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모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볼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시간이 부족하다고 슬퍼하지 마라.

시간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시간을 무언가의 양이라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시간이 있거나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무엇을 하는가.

무엇이 일어나고 그것에 자신이 어떻게 맞서는가. 이런 것들이다.

일어나는 일 없이 시간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기에.




행위가 그 사람을 말한다

누군가의 가치관이나 선악의 기준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무엇에 대해 자주 미소 짓는지 눈여겨보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떤 것이 좋아 손아귀에 넣는지, 늘 먹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빼앗기는지.

그 사람의 행동 전부가 그 자신을 표현한다.




생각한다는 것에도 각기 다른 해석이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생각한다는 것일까? 우리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한다'는 말을 상황 속에서 배운다.

혹은 그 말의 사용법을 흉내 내며 배워왔다.

따라서 어떤 이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현 단계에서 자신의 이익과 손실이 어찌 될지를 재빨리 계산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이에게는 '생각한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말이나 답을 자신의 기억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눈앞의 상대가 사라질 때까지 뭐가 어찌 되든

시선을 내리깔고 말없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세계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세계도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면

그에 따라서 세계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이고

더욱 커질 것이다.

당신과 세계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 어떤 단단한 세계의 단편에 당신이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세계다. 그리고 그곳에 당신은 살고 있다.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당신의 세계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사실 , 당신 자신이 하나의 소우주다.



당신 인생에 제한은 없다.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게 숨막히는가.

사는 게 괴로운가.

그것은 자그마한 한 점만 끊임없이 응시하고

거기에 있는 작은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제한도 없다.

당신이 원하는 온갖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곳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망설여진다면 자연에서 배워라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일도 환경도 아닌 태도를 바꿔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삶의 방식을 바꿔라.

상대를 이해하고 싶다면

상대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

누군가의 침묵을 두고 할 말이 없다는 증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잘 죽을 수 있도록 현재를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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