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를 공부하며
나는 현직에 있을 때 부터 공자사상에 관심이 있어 대구향교의 사서강의를 들어왔다
이제 퇴직후 7년차가 되었다
처음 사마천사기 130편 중 열전 70편을 몇몇의 한학선배들과 함께 윤독회에 참가하여 배우기 시작하였다
원형이정 4권으로 권당 600페이지정도의 책을 1권 중간이상을 윤독해 가고 있었다
토씨도 없는 순한문책 이었다
한문선배들은 윤독이 되었으나 나의 실력으론 아직 어려웠다 윤독 방법은 그 분들 중 고등학교 국어교사 출신인 최고령 선배께서 주로 윤독하여 가는 것으로 추진하다가 그 선배님이 유고가 있으면 다른 한문선배님들이 윤독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퇴직후 2016년 봄부터 사기열전윤독회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때부터 대구광역시청년유도회 감사를 맡기로하여
같이 감사를 맡은 서예서실을 운영하는 분의 서실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18:00부터 두시간정도 윤독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BC 145년에 출생하여 BC 90년에 생을 마치었다고 전하여 온다. 공자께서 BC 551년에 태어 나셔서 BC 479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성인이 태어나신후 근 500여년 후에 사마천이 태어났다
사마천은
전한 무제 시대에 태사령 벼슬을 하고 있는 중 흉노족 정벌에 나서서 끝까지 싸우다 포위당하여 투항한 지기인 이릉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 유철의 노여움을 사 마침내 남자로서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하여 목숨을 부지하며 사마천 사기 130편을 완성하였다.
이는 중국 고대로부터 전한 무제 때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 까지의 역사를 황제 헌원 때 부터 시작하여 표 10편 본기 12편 서 8장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130편을 저술한 것이다.
사마천은 천하 명문으로 전하여 오는 “報任 少卿書”에서 친구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받고 목숨을 부지하여 선고의 유지인 중국 고대사를 지으라는 뜻을 받들어 사기를 완성하고 이 글로 인하여 후대에 자기를 평가해 주기를 바랐다. 그는 사기를 완성하고 위의 글을 남기고 홀연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여 온다.
사마천은 19세에 공안국에게서 상서 동중서에게서 춘추를 배우고 BC 123년 23세 등과하여 낭중이 되어 한 무제 측근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사기 130편을 살펴보면,
본기 12편에는 五帝本記,夏본기,殷본기,周본기,秦본기,항우본기,한고조본기......,등이 있고
세가 30편에는 吳太伯世家,齊太公세가,魯周公세가,......孔子세가 제18, ...등이 있으며
열전 70편에는 伯夷열전을 시작으로 노자 장자신불해 한비 제3, 중니제자 열전제7, 맹상군열전제15...... 太史公自書 열전 제70 등으로되어 있다.
우리는 대구향교 선진 유학 반에서 사기 세가를 배우며 사기 열전을 윤독하기도 하였으나 한문 원문으로 된 사마천 사기를 수박 겉 핧기 식으로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대한 저술을 후세에 남기고 간 사마천이란 인물이 참으로 궁금하며 무었이 그를 모든 치욕을 무릅쓰고 이 글을 완성하게 하였을까
이는 성인 공자께서 남기신 행적과 글 도학 그리고 참된 삶
을 비롯하여 요순우탕문무주공 공자 로 내려오는 성인의 삶과 왕도정치 충신 열전등 그 역사와 도를 후세에 전함으로서 부친의 뜻을 받들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들어 내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