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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작성자햇살|작성시간23.12.03|조회수49 목록 댓글 2

건강

 

1987년 5월 22일에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의 메신저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다

 

우리는 앎의 학생들이 건강을 높은 수준으로 증진하도록 장려하고자 노력해 왔다. 건강을 지켜야 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측면들이 있으며, 특히 앎을 기르는 이들이나, 자기 삶에서 자신을 위한 목적이 신에게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당신이 건강을 증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영적 성장에 정진할 때 건강을 소홀히 하면 우리는 슬프다. 왜냐하면 건강을 소홀히 하면 앎을 받아들이는 역량이 제한되고,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의 높은 목적에 봉사하는 데 몸이 중요하므로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것은 태만한 것이다. 몸은 매우 많은 보살핌이 필요해 보이는 연약한 매개체이다. 그 이유 중 일부는 당신이 몸을 잘 돌보지 않기 때문이며, 그래서 몸은 항상 당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당신을 굼뜨게 한다.

 

어디서나 몸을 볼 수 있으니, 당신은 몸을 당연하게 여긴다. 몸은 골칫거리이다.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살 곳을 제공해야 하고, 하루 종일 끌고 다녀야 한다. 몸은 항상 요구하는 것이 많고, 항상 아픔과 고통이 있고, 병원에 가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따뜻하고 건조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온갖 주의력을 몸에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몸이 아닌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몸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몸을 보살피는 데 지쳤기 때문이다. 몸은 절대 자라지 않는 아이와 같다. 요구하는 것이 항상 많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하루 종일 이 몸을 지니고 다니는 것은 대단히 얽매이게 하지 않는가? 당신의 존재는 창밖으로 날아가서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가는 것을 훨씬 선호할 것이다. 아마 나중에 그럴 때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당신이 이 연약한 매개체를 돌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건강을 증진한다. 종종 아프고 싶지 않아 건강을 증진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건강을 증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건강 증진의 가치에 대한 매우 근시안적 관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인 이로움을 알기에 건강을 증진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삶을 더 깊이, 더 효과적으로 더 즐겁게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요점을 말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

 

당신에게는 이곳에 온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이 책임을 기억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은 뜻밖에 이곳으로 온 다른 모든 사람에게 둘러싸여,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모른 채, 그냥 뜻밖에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다. 당신은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 당신은 육신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육신에 들어가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다.

 

만약 당신에게 몸이 없다면,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신 능력이 아주 절실히 필요한 이 세상에 직접 공헌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며, 이곳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신이 말해도 그들은 당신 말을 듣지 못하거나, 듣더라도 아마 고개를 돌리거나 이상한 느낌을 느끼겠지만, 당신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그들이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생각에만 너무 빠져 있어 자기 마음 너머에 있는 어떤 것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 몸이 있다. 몸은 당신에게 자산이어야 한다. 몸은 선물이므로 당신의 신중하고 세심한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하다. 당신은 이곳에 오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당신은 마음대로 그냥 세상에 들어올 수 없으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극소수 사람만이 자신이 온 곳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이고, 어쩌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일지 모른다.

 

당신은 특정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곳에 있는다. 그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세상에 있는 동안 당신의 목적을 인지하고 완수할 수 있을 때까지 단지 그 과정을 처음부터 모두 다시 거쳐야 할 것이다. 그 목적을 완수하면, 더는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서 경험한 것에 정직한 이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정말로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며, 특히 가는 곳을 인지하고 그곳에서 당신에게 약속한 자유를 인지하는 법을 배운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건강을 증진하려면 어느 정도의 집중력과 자제력, 헌신이 필요하며, 이것들은 누구에게나 유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나, 그런 노력을 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들이 여기서 가치를 매기는 것은 자기 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만약 삶의 변함없는 목적의식이 없으면, 당신은 몸이 당신에게 단지 또 하나의 귀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알아차리는 의식을 키우면, 또 당신이 매일 느끼는, 안내하는 힘으로서 그 의식이 더욱 실질적이 되면, 당신은 자신의 육신이 놀라운 성취물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깨달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근시안적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당신에게는 좋은 기회가 있다. 일단 당신이 이 지구의 방문자이고 이곳이 당신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당신은 어쩌면 자신을 파견한 이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목적을 깨닫고, 필요한 기량을 기르고, 자신의 육체적 매개체를 잘 돌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육신을 잘 돌보면, 육신은 당신에게 잘 봉사할 것이고 당신이 부과한 요구에 응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목적을 깨달으면, 당신은 자신의 삶이 점점 더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 필요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필요일 것이며 당신에게 유익하겠지만, 당신은 육체적으로 그 필요를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신들에게는 모두 내면의 교사가 있지만, 당신 몸이 무딘 매개체라면, 당신이 반응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당신 몸은 예민해야 하며, 자산이어야 한다. 당신 몸이 보살핌을 받으면, 몸은 벽이 아니라 창문과 같다. 당신은 몸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당신 몸은 당신이 신에게 받아야 하는 메시지를 더 직접적으로 받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몸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몸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이다. 몸은 숨는 곳이어서 아무도 당신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요새뿐이다. 그들은 당신을 정말로 볼 수 없으며, 당신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당신의 요새를 점령하여 외과 의사들이 하는 것처럼, 요새를 열어도, 여전히 당신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요새를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더라도 여전히 당신을 찾을 수 없다. 몸은 훌륭한 은신처이며, 아무도 당신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몸이 정화되면, 말 그대로 투명해진다. 당신은 몸 밖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은 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제 몸은 장애물이 아니라 소통의 자산이 된다. 오직 몸이 비워지고 맑아지고 깨끗해질 때만 마음은 자신을 부르는 것에 더 잘 접근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는 건강을 증진하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그리한다면, 건강을 증진할 만큼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당신이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신이 원하고, 그 건강 증진이 인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느낀다면, 아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더 크다. 당신 몸은 이제 더 나아져야 하며, 당신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매개체이자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에게 충분한 동기가 생길 것이고, 이때 필요한 변화와 초기 불편함이 무엇이든 그것들을 당신은 감수할 수 있다.

 

만약 몸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해 당신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일 것이다. 몸은 오류에 빠지기 매우 쉽고 여리다. 사람들은 몸에 마법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실제로 그다지 신비하지도 않다. 몸은 그저 기계일 뿐이다. 몸은 훌륭한 기계 장치지만, 일단 어느 선을 넘어 망가지면, 당신은 몸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음, 만일 내가 몸을 지나치게 쓰거나, 몸이 무너지면, 신이 와서 나를 위해 몸을 고쳐 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함부로 쓰지 말라. 이 소통의 매개체는 선물이다.

 

당신 자신의 앎에서 당신은 자신이 어떤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극단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은 바로 당신 앎의 일부이며, 당신이 자신을 변명하려고 내놓은 어떤 이유도 앎 그 자체를 압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당신 몸이 방치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몸은 당신에게 방해가 되고 문제가 될 것이다. 몸은 당신을 굼뜨게 하고 방해할 것이며, 당신 마음을 무디게 할 것이다. 몸은 원래 의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당신 몸이 기능 면에서 더 효율적이 되면, 당신은 자신의 깊은 능력들을 기르는 데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은 이제 더는 불변의 적이 아니며, 단순히 유용한 도구이다. 몸이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몸속에 편안하게 있고 좋은 목적으로 몸을 사용할 수 있도록 몸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다.

 

당신이 육체적 매개체를 개발하려면, 약간의 훈련과 몰두, 일관된 적용이 필요하다. 당신의 정신 능력을 개발하는 것에도 같은 의도가 필요하다.

 

이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아주 소수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온갖 일을 하는 것으로 일어난다. 아마 인구의 20% 정도가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새로운 세상을 연다. 다른 사람도 모두 일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열지는 못한다.

 

우리의 이 관점은 인류를 비난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며, 큰 공동체에 있는 당신 이웃들과 비교하면 인류가 지극히 게으르고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지구 환경이 매우 편안하고, 요구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큰 공동체에는 이런 환경이 매우 드물며, 그곳에서 살아남아 계속 발전하려면, 종족들이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것은 “내가 정말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든 것이 매우 편안하므로 이럴 필요가 없다.

 

이 지구는 조그마한 이상향이다. 큰 공동체의 다른 행성과 비교했을 때, 지구는 보석이다. 물론 아무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사람들 대부분은 이 보석을 망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신에게 매우 큰 것들을 요청하며, 자신의 목적이나 미래, 관계의 결과를 알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이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너지나 활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앎을 기르고 당신 마음이 더 맑아질수록, 마음은 더 초점을 맞추게 되고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당신의 육신은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이 기울이는 노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 몸은 마음의 의도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매우 외골수이다. 그들은 주변의 온갖 즐거운 것들에 끊임없이 휩쓸리지 않는다. 설사 이런 것들에 참여해도, 그들에게는 자원이 필요하므로 단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참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부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에 시간이나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 능력만큼 건강 상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과 몸은 이제 그들의 의도를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 건강을 매우 알맞게 증진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당신 몸이 더 심오한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당신 마음이 더 직접적이고 더 예리하고 더 민감하고 더 자각하고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 마음은 민감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당신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 몸은 당신에게 큰 부담이나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몸은 항상 당신이 관심을 두는 대상이다. “나는 몸을 바꿔야 한다. 나는 몸을 이렇게 해야지 또는 저렇게 해야지.” 항상 이처럼 몸에 공을 들이는 것은 정말 시간 낭비이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마침내 당신이 원하는 몸 상태를 얻었을 때는, 몸을 포기할 때가 될 것이다.

 

당신은 몸에 공을 들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며, 여기서 중요한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단지 몸을 못쓰게 만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은 자신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결과 당신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의지하는 이들이나 여기서 당신이 공헌하도록 하는 데 당신이 필요한 이들 역시 성공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당신이 이미 확립된 어떤 것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은 이것을 보여주지 않으므로, 당신은 내면에서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면, 당신은 이미 존재하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임이 세상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을 격려하고 당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적 관심사를 위해 큰 일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 관심사는 훌륭한 행동과 중요한 공헌으로 이어질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으며, 평범한 일을 넘어 종족 전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일로 사람들을 이끌 만큼 충분히 강하지도 않다.

 

사람들이 매우 우울한 것은 어떤 활력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고, 존재 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그들 몸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므로 몸을 탓하고, 그들 환경이 항상 그들을 방해하므로 환경을 탓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활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들은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안에 갇혀서 삶과 함께하지 못한다.

 

삶과 함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이다. 왜냐하면 삶과 함께할 때, 당신은 삶에 봉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삶의 엄청난 선물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일시적이 아닌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시적이 아닌 어떤 것에 봉사하기 위해 일시적인 것을 소중히 여긴다. 당신 몸은 영원한 어떤 것을 섬기는 일시적인 것이다. 영원한 어떤 것을 섬길 때, 당신은 책임을 깨달아 몸을 유지하고 보살피고 제대로 사용한다.

 

당신의 현 사회에서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 환경은 마치 당신의 육신을 아프게 하고 남용하고 방치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항상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오직 당신이 겪는 고통만이 그 반대로 가는 것이 옳다고 당신을 틀림없이 설득할 것이다. 남용은 즐거움으로 이어지지도 활력을 높여 주지도 않는다.

 

당신에게 활력이 있으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당신의 하루하루는 중요하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오늘이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여전히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오늘은 자신이 성장하고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다. 사람들 대부분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온갖 작은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이 활력감이다. 당신이 큰 일에 참여할 때, 사소한 일로 물러서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서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전쟁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면, 사회는 타락하기 시작하고, 그런 다음 큰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일시적으로 목적과 활력을 엄청나게 느끼게 된다. 끔찍한 파괴를 겪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몇 년 동안 평화를 즐기고, 그런 다음 새로운 전쟁이 일어난다.

 

모든 사람이 지구의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평화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오기 위해 평화로운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도 평화가 가능하지만, 당신은 평화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갈등에 휩싸여 살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바랄 수는 없다. 총알은 여전히 날아다니고, 국가들은 여전히 서로 공격할 것이다.

 

오랫동안 평화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 환경이 평화로우면, 분노가 드러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 환경이 평화롭지 않으면, 자신의 분노를 깨닫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자극이 전혀 없는 방, 짜증나는 일이 없는 아주 평화로운 방에 있다면, 분노가 드러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이미 전쟁 중임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앎에 맞서 투쟁하며, 자신과 싸운다. 그래서 세상에 평화가 없다. 사람들이 평화를 견딜 수 있는 만큼만 평화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평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평화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 갈등이 없다면, 세상은 자극이 거의 없는 작은 방과 같을 것이다.

 

연마된 마음에는 자극 없는 방이 멋진 장소이다. 갈등에 휩싸인 마음에는 자극 없는 방이 끔찍한 곳이다. 맑아진 마음에는 광야의 침묵이 소중히 간직할 멋진 경험이다. 갈등에 휩싸인 마음에는 광야의 침묵이 짜증나는 일이다.

 

당신에게는 성취해야 할 두 가지가 있으며, 그 둘은 당신이 이곳에 온 것에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의 믿음이나 관점에 상관없이 그것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신과 타고난 능력을 개발해야 하며, 세상에 중요한 어떤 것을 공헌해야 한다. 비록 당신 생각으로는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존재는 이것을 안다. 당신의 존재는 이 둘을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짜증이 날 것이며, 이 둘은 함께 당신의 목적을 구성한다.

 

우리는 몸을 이야기했지만, 몸은 단지 건강의 한 측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 마음이 전쟁 중이면, 마음은 건강한 몸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몸이 조용한 방과 같아 짜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방은 갈등에 휩싸인 마음에는 매우 지루하다. 마음은 조용한 방을 견딜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신이 내적 평화를 점점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면, 조용한 것을 찾을 것이다. 당신은 자기 몸이 조용하기를 원할 것이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조용한 방을 원할 것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할 것이다. 왜 그러는가? 왜냐하면 조용함 속에서 당신은 신을 체험하고, 의미 있는 모든 것이 당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몸을 방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 방은 시끄럽고 부딪히는 소리가 날 수도 있고, 아니면 조용하고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 조용하고 텅 빈 방은 그 방의 진가를 아는 마음에는 멋진 선물이고, 멋진 성소이다. 몸은 불평 없이 몸의 역량에 맞게 기능한다. 그러다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당신은 훌륭한 임시 거처가 되어준 몸에 감사할 것이다.

 

몸과 씨름하면서 당신 삶을 보내는 것은 정말 낭비이다. 일단 세상을 떠나면, 당신은 이 일을 되돌아볼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이것은 마치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루 종일 옷장을 뒤적거리다 밤이 되었지만, 심지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가 다 가버렸다. 무엇이든지 입고 밖으로 나가라.

 

사람들은 자기 몸이 높은 목적에 봉사할 때만 자기 몸을 사랑한다. 다른 이유로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이기적인 이유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은 분노를 야기할 것이다. 당신 몸은 당신이 삶에서 관계의 감각을 확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몸은 감옥이다. 몸은 당신을 제지하고 가두어 놓는다. 그리고 당신 마음도 여전히 갇혀 있는 느낌일 것이다.

 

당신은 몸이 문제가 되게 해서는 안 되며, 자산이 되게 해야 한다. 당신은 이미 이것을 안다. 당신은 자기 몸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알며,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당신 매개체의 일부인 당신 몸이 그저 당신을 굼뜨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애가 있는 사람도 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장애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몸의 사용이다.

 

실제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당신이 먹는 것에 대해 매우 세심해야 하고, 성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해야 하며, 몸을 어디로 데려갈지, 환경에 몸을 어떻게 노출할지에 대해서도 매우 진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몸을 훼손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더 적게 든다. 만약 당신이 돌보지 않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면, 돌보지 않는 것으로 당신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깨닫기가 어렵다.

 

앎이 성장하면서 마음은 참된 근원과 참 자아를 발견한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당신은 점점 더 민감해지고, 심지어 당신 몸도 민감해지며, 지장을 주거나 당신 능력을 방해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자신의 안녕에 역효과를 내는 음식을 점점 더 못 먹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것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믿음들을 갖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이다. 당신은 이제 자기 몸에 대해 실무적이 된다. 당신은 단지 몸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하고, 그것은 자신의 습관을 바꿀 수도 있는 변화의 기준이 된다. 당신 세상은 이러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당신은 세상의 호응을 얻는 일이 거의 없이 이것을 해야 한다.

 

당신의 불평과는 상관없이, 당신은 매우 관대한 사회에 산다. 큰 공동체와 비교하면, 당신 사회는 지극히 관대하다. 여기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좋은 점으로는 당신 사회가 훌륭한 것들을 낳은 표현과 탐구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점으로는 시민들이 나약하고, 방종하며, 변화에 그다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나 가능성과 장애물이 있다. 이것이 그 안에서 당신이 일해야 하는 환경이다. 이것은 특별히 헌신을 옹호하는 환경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발견을 효과 있게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지는 않더라도, 발견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원하는 건강한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면, 당신 마음은 주된 목적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의 욕구나 관심사와 같은 온갖 마음의 자체적인 갈등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주된 주안점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어떤 일이 있고, 다른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육체적으로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단지 당신은 몸이 당신을 섬기기를 원하지, 당신이 몸을 섬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은 당신에게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다. 기능적 차원에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몸에 봉사하는 하인이다. 몸은 불필요하게 당신을 지배하고 제한한다.

 

건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신은 육체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어 산을 뛰어넘고 먼 거리를 헤엄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곡예사나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육신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하루를 적절히 마칠 수 있고, 이곳 지구에서 건강하게 수명을 다하고 성취하면서 당신의 일생을 살 수 있으면 된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심각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인류 진화의 놀라운 측면이다. 이것은 사실 물질 우주의 공통된 특징이다. 삶이 더 편안해질수록 활력을 잃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이것은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선호하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여기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부유해지고 편안하면, 그것이 나에게 더 큰 활력을 줄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활력이 건강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더 큰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더 큰 안전이 더 큰 활력을 낳는가? 사람들은 삶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확실히 얻기 위해 자신의 “소원” 목록을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그들은 완벽한 관계, 아름다운 몸매, 좋은 직업을 요구하며, 자신들이 원할 때마다 신이 나타나기를 요구한다. 그러면 활력이 생기는가? 만약 당신이 매우 부유한 사람이 되어 당신 자녀들이 부유하게 자라면, 그들에게 활력이 생기는가?

 

이것들은 중요한 질문들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들은 당신이 삶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장 큰 활력을 주는가? 나는 일시적인 목적의식과 해결책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가? 결국 건강이 좋아져야 한다는 확신이 들 만큼 신체 건강이 나빠지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내가 아는 것에 기꺼이 책임을 지기 전에 내 관계가 참을 수 없게 될 정도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라고 자문해 보라.

 

활력이 핵심이다. 우리가 건강을 말할 때, 우리는 활력을 말한다. 당신이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산을 뛰어올라도 활력이 전혀 없으면, 멋진 몸매를 지닌 죽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어도 완전히 빛날 수 있다. 왜 빛나는가? 왜냐하면 당신은 삶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당신은 빛난다. 왜냐하면 좋은 일은 보상이고 나쁜 일은 기회여서 모든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삶을 너무 편안하게 산다면, 삶에 전념하지 못해 우울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삶을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가? 왜 삶을 더 활기차게 살려고 하지 않는가? 편안한 것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편안함의 유일한 가치는 더 큰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당신이 참여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일한다. 우리는 며칠 휴가를 내어 놀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휴가 내어 놀러 가면 당신은 곤경에 처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과 놀이 사이에 구분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일은 활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이 그들에게 활력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휴식을 취하는데, 이 휴식 역시 그들에게 많은 활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활력이 무엇인지 모른다.

 

당신은 활력을 얻기 위해 마법 같은 경험이나 신비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활력이 아니다. 활력은 당신 자신의 앎에 다가가 당신을 통해 앎이 표현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활력은 당신 내면에 있는 신성하고 활기찬 힘에 다가가 그 힘이 당신의 육체적 매개체를 통해 삶 속에서 표현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제 함께 고요한 시간을 갖자. 잠깐 우리 몸이 조용한 방, 자극이 없는 방이 되도록 허용하여, 우리가 삶의 내용, 신인 삶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당신을 숨기는 이 몸이 당신 기도의 성소, 거룩한 곳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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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햇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03 당신은 몸이 문제가 되게 해서는 안 되며, 자산이 되게 해야 한다. 당신은 이미 이것을 안다. 당신은 자기 몸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알며,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당신 매개체의 일부인 당신 몸이 그저 당신을 굼뜨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애가 있는 사람도 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장애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몸의 사용이다. - 본문 중에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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