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귀 기울이기
내면에 귀 기울이기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의미 있는 주제이며, 모든 상황에서 응용해볼 수 있고, 당신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응용해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신이 만약 여기서 우리가 말할 내용을 실천하는 일에 숙달되면, 당신이 참여하는 모든 일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일할 기회를 잡을 것이고, 정상적인 지각 범위를 넘어서 지극히 도움이 되는 것들을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내면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경청자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내면에서 오는 메시지와 외부에서 오는 메시지, 양쪽 모두에 훨씬 더 민감하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의도적으로 하는 경청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공허함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경청하면, 당신 내면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단히 예민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대화는 많이 하지만, 거의 듣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할 때, 상대방이 당신 말을 실제로 듣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당신은 항상 동시에 두 가지 방식으로 소통한다. 하나는 당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에서 그 순간 실재하는 대로 당신의 전반적 느낌이나 의도를 비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둘 중에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당신이 자신의 깊은 체험을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이런 능력을 성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숙련된 경청자는 사람들이 전하는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기술은 상담사나 교사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대단히 큰 이점을 준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마다, 당신은 아주 완벽한 소통의 체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체험의 대부분은 여전히 당신의 지각 범위를 벗어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실제로 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불편을 느낀다면, 바로 이때가 상대방 말을 경청해야 할 때이다. 이때는 말하는 것을 멈추고, 경청하기 시작해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든 마음이 불편하면, 이때는 말하는 것을 멈추고 경청해야 한다. 당신은 실재하는 것을 듣고자 하므로 이때는 판단하지 말고 경청해야 한다. 당신은 실재하는 것을 듣고 있는 동안 당신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내면의 소리와 외부의 말을 동시에 경청해야 한다. 이때 당신은 자신이 그 상황에 있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것이다. 그래서 개략적인 규칙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말에 불편을 느낄 때, 경청하기 시작하라. 당신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것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질 때는 그들에게 묻고 다시 귀 기울여 듣기 시작하라. 서로에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은 관계에 대단히 좋다. 당신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첫 만남에서 그들 자신에 관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당신들 중 상당수가 긴 관계를 불행하게 끝맺고 나서, “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것을 알았어. 처음부터 내 안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귀 기울이는 것이 그처럼 소중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배울 수 있으니,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당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당신에게 그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당신은 지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당신 주위 사람들이 온갖 경험을 하고 있으며, 당신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이 당신의 환상을 실행에 옮기므로, 당신은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현실은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들이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이것이 당신에게 시간을 절약해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이것은 대단히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당신 앎의 핵심을 체험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은 이것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은 양가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그래서 당신은 먼저 자신의 참자아인 앎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앎은 당신의 핵심이며, 당신 체험의 핵심이다. 만약 자신의 참자아를 꿰뚫어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 당신의 참자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청자가 되려면, 당신은 침묵을 배워야 하고, 침묵 속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명상을 시작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침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들은 바깥세상의 소음에서 빠져나와 안식처를 찾으며, 점점 더 자주 조용한 곳을 찾을 것이다.
경청자가 개발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자질, 삶의 모든 면에서 엄청난 이득을 주는 자질이 있다. 당신은 침묵에 익숙해져야 한다. 당신은 대단히 용감해져야 한다. 이 말은 당신이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것들을 기꺼이 보려고 하고, 기꺼이 들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당신은 대단히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체험을 깊이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또한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듣는 것은 대부분이 정말 무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 위해 단호해야 한다. 당신은 끈질겨야 하며, 자신을 존중해야 하고,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
이러한 자질들은 자연스럽게 개발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질 개발은 당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하다. 우리는 결코 어느 누구도 자신만을 위해서 이런 자질을 개발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이 그 혜택을 보아야 마땅할 것으로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신이 매우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것은 엄청난 원동력이 되고 자극제가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선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단지 당신 선물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할 때, 처음 만나는 것 중 하나가 당신 마음의 수다와 당신 자신의 혼란스럽고 모순되는 생각이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일 수 있으며, 어쩌면 여기에서 낙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할 때 알아차리는 생각은 자신의 참마음도 아니며, 진정한 내면의 소리도 아니다. 그 생각은 단지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정신상태의 자동 반응일 뿐이다. 당신 마음을 통합하는 것은 우리가 앎이라고 부르는 당신 내면의 큰 힘이며, 당신의 목표가 바로 이 앎이다.
당신이 내면에 귀 기울이기 연습을 시작할 때, 당신의 첫 번째 목표는 성실한 연습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연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당신의 의욕을 꺾을 만한 것들이 당신 안에 많지만, 당신 삶에서 평화·화합·사랑·은총에 대한 당신의 열망이 당신을 가로막을 만한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당신은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분이므로 당신 마음 안에는 내면의 소리가 나오는 큰 시발점이 있다. 이것이 신성하고 영원히 사는 당신 참자아의 핵심이다. 이 참자아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당신 내면에 있는 이 참자아는 그 자신과 직접 관련되어 있고 소통할 수 있는 다른 개인들을 특별히 더 찾고 있다. 참자아는 당신 주변 세상에 공헌할 수 있도록 당신을 성장시키고자 한다.
내가 잠시 말을 멈추면, 우리 함께 귀 기울여 들어보자. 바깥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방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그저 듣기 위해 들어보라. 그 소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에만 집중하라. 잘했다. 그럼 이제 우리 함께 좀 더 길게 연습해보자. 이번에는 몸 전체를 통해서, 마치 당신 몸 전체가 듣고 느낄 수 있는 막으로 형성된 것처럼 들어보라. 마치 소리의 진동이 당신 몸 전체에 부딪히는 것처럼 들어보고 느껴보라. 소리의 진동은 실제로 당신 몸 전체에 부딪힌다. 당신의 몸은 전체가 훌륭한 청음기이다. 당신이 듣는 것에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라. 이것은 순수하게 듣는 체험이다. 이전에 당신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엿들어 보려고 했을 때, 이런 체험을 해보았다. 당신은 대단히 집중하여 들었으며, 단순히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고자 했다. 그래서 정말로 귀를 기울였다. 혹은 어떤 사람이 멀리서 나는 소리를 가리키며, “저 소리 한 번 들어봐.”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대단히 집중하여 들었다. 이런 식으로 듣는 능력을 연습할 때, 당신은 내면에 있는 진실에 진정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되고, 외부의 것을 훨씬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신은 우리가 앎이라 부르는 완벽한 안내 체계를 당신 내면에 심어놓았다. 당신이 원한다면, 앎을 성령이라 불러도 된다. 이 앎은 내적 안내 체계이다. 앎은 깊이 스며드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며, 드물게는 실제로 당신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하고, 당신을 강하게 자극하기도 한다. 앎의 힘은 대단히 막강하며, 당신이 간섭할 수 없도록 당신 내면에 안전하게 숨어 있다. 앎은 당신보다 훨씬 더 강하지만, 실제로는 당신 자신이다. 만약 당신이 개성도 없고, 몸도 없다면, 그리고 당신 마음이 온전히 통합되어 있다면, 당신은 실제로 당신 자신인 내면의 소리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삶에서는 그 내면의 소리가 두꺼운 껍질 안에 단단히 쌓여 봉인된 것과 같다.
당신은 메시지가 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되었다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당신 삶은 메시지이지만, 당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이것이 당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안이나 불편함의 원천이다. 당신이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보든, 외부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자신의 참자아가 아닌 채로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당신 불편함의 원천이다.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할 때, 당신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생각을 듣고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만약 이러한 생각들에서 도망가는 일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생각들을 관찰하면, 당신은 그 생각들을 통과해서 지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들은 당신이 생각 너머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막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붙잡힌 포로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보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마치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신을 떼어낼 수 없다. 그러면 당신은 달리 비교할 것이 없으니, 스크린은 당신에게 더욱더 현실이 된다. 당신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체험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그 영화는 당신에게 더욱더 강한 영향을 끼치며, 당신은 매 순간 더 강하게 사로잡힌 관객이 된다.
당신에게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주고 당신의 행동을 몰아붙이는 이런 것들은 그저 당신의 생각일 뿐이다. 그것들은 안개와 같으며, 아무런 실체가 없다. 하지만 그 너머를 보려는 당신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참으로 깊은 사랑의 샘이기 때문이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참된 스승들이다.
삶에서 당신의 부름은 당신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다. 그곳에서 활성화되기를 기다리며, 밖으로 드러나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안팎의 모든 조건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 삶에서 당신이 느끼는 변화는 대체로 이 부름이 드러나도록 당신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변화에서 행복과 실망 둘 다 당신에게 길을 열어 준다. 당신 삶에서 앎이 활동하는 것을 실제로 느끼기 시작할 때, 이때부터 당신 삶이 당신에게 이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의 과거는 이제 고통스러운 만남의 기록이 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진정으로 가기로 되어 있는 길의 중요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내면에 귀 기울이기는 당신 성장에 이처럼 중요한 부분이다. 내면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스승들에게서 오는 메시지, 당신 삶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메시지, 당신 앎에서 오는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다. 이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지만, 뜻있는 시간이다. 판단하는 일 없이 귀 기울이며 시간을 보낼 때마다, 당신은 대단히 많은 시간을 절약하며, 당신의 목표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다.
당신의 의식적 마음과 당신 내면 깊은 곳의 비개인적 마음 사이에 있는 이 위대한 만남의 장소에서, 당신은 통합되고, 삶에서 통합을 이루는 세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개인적 삶이 앎으로 부음 받았다는 뜻이다. 당신이 자신과 접촉했으며, 신이 당신과 접촉했다.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앎으로 부음 받는 것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단번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정말로 당신 내면에서 접촉했다는 것을 느낄 때, 당신은 내면에 여전히 많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여전히 많은 양가성이 있고, 당신은 자신이 가진 것을 여전히 두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당신 스스로 가진 불신을 해소하고, 판단에서 자신을 해방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내면에 귀 기울이기는 아주 간단하다. 그저 앉아서 귀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연습이며, 이런 식으로 숙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연습할 기회가 자주 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 너머를 듣기 시작할 때, 당신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것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삶 너머에서 오는 매우 심오한 것들과 마주치기 시작할 것이다. 들을 수 있으면,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때,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앎을 표현하며, 또한 앎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당신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때 당신은 자신의 앎을 의식하게 된다. 당신의 앎은 당신을 보호하며, 지금도 당신을 안내하고 있다. 마치 당신이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큰 힘과 같다. 곤경에 처하거나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앎은 당신에게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당신은 자신의 삶에 안내하는 현존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앎에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매일 앎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즉, 앎이 당신을 통합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막아주며, 당신에게 진정으로 이롭고 유익한 사람들과 상황들 쪽으로 당신을 인도하고, 유익한 변화를 가져다주며,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의미 있는 만남을 갖도록 해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나와 함께 연습해볼 수도 있다. 나와 함께 연습해보자. 그냥 숨을 깊이 쉬고 나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들어보라. 당신의 귀가 땅바닥까지 닿을 만큼 엄청나게 크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마치 레이더 안테나와 같다.
이런 연습은 육체 운동과 대단히 흡사하다. 당신이 운동을 시작할 때, 맨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육체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이다. 하지만 이때 당신이 끈질기게 밀고 나간다면, 운동해서 얻은 효과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고, 점점 불편함에서 멀어질 것이다. 당신이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용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겠는가! 신은 고요한 곳에 있다. 하지만 아무도 고요히 있지를 못한다. 관계는 고요한 곳에 있다. 하지만 아무도 관계를 느낄 수 없다. 당신의 스승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눈은 너무 빨리 움직인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수용적이 되는 법을 배우는 앎의 학생들은 점점 더 내적 고요함을 소중히 여길 것이며, 이런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의 외적 환경을 조정할 것이다. 이 연습을 하고 나면, 당신은 지금 자신을 해치고 있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열릴 것이고, 그 열린 마음으로 생각과 통찰과 방향이 들어올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당신 삶을 더 단순하게 함으로써 더 강력하게 만들어 당신이 당신 삶을 통합하도록 도울 것이다. 주변 상황과 무관하게 당신과 함께 머무는 관계, 세상보다 훨씬 더 큰 힘의 원천을 당신은 점점 더 느낄 것이다.
이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주어야겠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문제를 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하므로,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여기서 하는 말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당장은 분명해보이지 않겠지만, 이것을 진지하게 묵상한다면, 당신의 모든 문제가 하나의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면 그 해결책을 훨씬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신 없이 신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이 세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내면에 귀 기울이기를 연습할 때, 당신은 자신이 신 없이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대단히 실망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엄청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신 없이 신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더 고립되고, 혼자가 된다. 그러면 당신 주위를 둘러싸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생각들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그물망 한가운데 붙잡혀 있으며, 이것은 큰 덫이다.
귀 기울일 때, 당신은 그 그물망 너머에서 오는 것을 들을 것이다. 때가 되면, 당신은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가두는 그물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 스스로 설계한 그물,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설계했고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설계하고 강화하고 있는 그물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그물망은 엉성하게 짜여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 그물망을 통과해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대단히 고요해져야 한다.
그래서 신 없이 신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당신이 깨닫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큰 도전이다. “당신 스스로 삶에 근원이 되라! 스스로 삶을 결정하라! 스스로 삶을 이끌라! 당신 주변의 삶을 통제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라! 몸에 명령하라! 마음에 명령하라!” 이러한 것이 모두 작은 신이다. 아주 작은 신이지만, 당신은 혼자가 되니, 신이 되는 놀이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당신 내면에서 열리기 시작할 때, 당신은 신이 당신과 함께 있고, 신의 메신저들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의 당신의 관계와 관련되고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인식과 관련된, 한결같고 자비로운 관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깨닫는다. 세상은 당신 마음처럼 머물기에 끔찍한 곳일 수 있다. 세상은 그 모습이 무섭고 위협적이며, 당신 마음처럼 어찌해 볼 수 없는 큰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내면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할 때,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이 이러한 모든 끔찍한 것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이런 생각들이다. “세상에, 내가 이런 끔찍한 생각을 했다니! 이런 생각은 미친 사람들만이 하는 거 아닌가!” 혹은 끔찍한 영상을 보기도 한다. “오 이런, 내가 이런 영상을 그리고 있었다니! 아주 형편없는 미치광이임이 틀림없네!” 당신의 생각은 당신이 보는 세상, 최상과 최악, 가장 사랑스러운 것과 가장 혐오스러운 것으로 반영된다. 하지만 당신의 앎은 이런 모든 것 너머에 있으며, 당신은 신에게서 분리되지 않았다.
당신이 세상에 파견된 것은 당신 앎이 드러나는 것을 허용하여 당신의 특정 선물을 베풀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 베풂의 좋은 점은 그 선물이 인간으로서 당신이 존재한 것을 영예스럽게 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진실로 당신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드디어 당신은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변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사람은, 어쩌면 내밀하게 그럴 수도 있지만,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은 자신의 본성을 존중할 수 있고, 그 본성과 함께 일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제한적인 특질을 모두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의미 있게 그 특질들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연히 제한된 상태에 있다. 몸 안에 있는 것은 제한된 상태이다. 이 큰 덩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상당히 성가신 일이다. 먹여 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고, 씻겨 주고, 입혀 주고, 예쁘게 치장해 주고, 편하게 해주고, 다치거나 아플 때마다 돌보아주어야 하는 등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때때로 그냥 날아가 버리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몸은 당신이 세상에 있는 동안 입는 의복이며, 이 의복을 입었을 때 당신이 이곳에서 소통할 수 있다.
몸이 없는 상태에서 소통하려고 하면, 당신은 주의를 많이 끌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가 어렵다. 만약 당신이 그들의 주의를 끌게 되면, 그들은 기겁하여 다시는 그런 체험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주지만, 그것은 그들 내면에서 나올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과는 달리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저세상에 훌륭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당신이 보는 것에 겁먹지 않으며, 과거에 이 길을 여행해보았다. 그래서 당신의 상황을 대단히 친숙하게 이해하며,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도 안다.
삶에서 당신의 목적은 당신이 자신의 참자아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앎을 발견하는 것이다. 당신은 참자아로서 특정 선물을 베풀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떤 것을 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베풀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참고향과 이곳의 삶 너머에 있는 관계들을 기억해 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단히 풍부하게 공급받고 있으므로 진정으로 공헌할 위치에 서게 된다. 그들에게 이제 기억이 회복되고 있으니, 그들은 방해받는 일 없이 삶에 공헌할 수 있다. 이것이 큰 행복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