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 ㅡ '나'-의식 ㅡ 몸-의식
질문자 :
몸-의식이 돌아온 뒤에는...
마하리쉬 :
몸 - 의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먼저 말해 주십시오.
의식과 별개인 그대는 누구입니까?
몸이 보이는 것은
'나' - 의식에서 일어나는
몸 - 의식이 있기 때문이고,
'나' - 의식은
다시 (실재인) 의식에서 일어납니다.
의식 ㅡ '나'-의식 ㅡ 몸-의식
항상 의식이 있으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대가
지금 몸 -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덧씌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의식만이 있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경전에서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은
진아의 사랑스러움 때문이다"라고 하는
의미도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자살이 왜 있느냐?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왜 자살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불행하니까
그 불행을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살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은,
모든 불행을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살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은,
모든 불행을 대표하는
그 육신과의 연관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육신을 죽이려면
죽이는 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살을 한 뒤에도 살아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아입니다.
ᆞᆞᆞᆞᆞᆞ
질문자 :
스리 바가반(마하리쉬) 께서는,
깨달음의 상태는
생각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들은
사물들의 질서(신의 창조질서)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보다 낮은 차원에서 말입니다.
마하리쉬 :
생각들은
'나'라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데,
이 '나'라는 생각은
다시 진아에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진아가
'나'와 기타 생각들로 나타납니다.
생각들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 있습니까?
질문자 :
좋은 생각들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들은
깨달음에 이르는 진정한 방편,
즉 사다리의 낮은 계단 아니겠습니까?
마하리쉬 :
그렇지요.
좋은 생각들은 나쁜 생각들을
몰아내 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들 자체도
사라져야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질문자 :
그러나 창조적인 생각들은
깨달음의 한 측면이고,
따라서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방금 말한 점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진아 안에서는
그런 생각들이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좋든 나쁘든
생각들은
그대를
더 멀리 데려가지,
더 가까이 데려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아는
생각들보다 더 친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바로 진아인 반면,
생각들은 진아에게 낯섭니다.
질문자 :
그러니까 진아는 결국
자신의 깨달음을 도와준
그 자신의 창조물을
흡수하는거로군요.
반면에 문명은
(숭배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
잘못 숭배하고,
따라서 자신의 진보를 도와준
그 자신의 창조물들을
분리하고 '단절'시킵니다.
마하리쉬 :
그대는 생각들과 별개 아닙니까?
그 생각들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생각들이
그대 없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ᆞᆞᆞᆞᆞᆞ
마하리쉬 :
마음을 찾아 보아
마음의 힘을 소멸하십시오.
마음을 조사해 보면
그 활동은 자동적으로 그치게 됩니다.
마음의 근원을 찾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 근원은
신이나 진아 혹은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면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결국에는
그 한 생각도 사라집니다.
생각들을 제어하면서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에 떨어지고 맙니다.
질문자 :
마음을 어떻게 찾습니까?
마하리쉬 :
호흡제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목표 자체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것을 기계적으로 하는 동안에도
마음 속으로는 깨어 있으면서
'나'라는 생각을 기억하고
그 근원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호흡이 가라앉는
바로 그곳에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들('나'라는 생각과 호흡)은
함께 가라앉고 함께 일어납니다.
그와 동시에
빛나는, 그리고 무한한
다른 '나 - 나'가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지속되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신, 진아, 꾼달리니-힘, 의식 등이 그것입니다.
ㅡ 라마나 마하리시 대담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