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와 대상을
없애버리십시오.
그러면
순수의식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두 명의
뉴질랜드 부인과
한명의 영국 부인이
함께 방문했다.
그 중의 한 부인이
바가반에게 질문했다...
질문자 :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최선의 길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세계란 무엇입니까?
평화는 무엇이며,
일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세계는
그대의 잠 속에는 없고,
생시에 그대의
마음의 한 투사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평화란
어지러움(번뇌)이
없는 것입니다.
어지러움은
개인 안에서 생각들이
일어남으로써 생기는데,
이 개인이란
순수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에고일 뿐입니다.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생각에서 벗어나
순수 의식으로서
안주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그대 자신이
평화로운 상태로
있을 수 있으면,
어디에나 평화가
존재할 것입니다.
질문자 :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옳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을
큰 잘못으로부터
구하는 경우라면,
그 행위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마하리쉬 :
무엇이
옳고 그릅니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의견들은
그 개인의
성품에 따라,
그리고
주변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
의견이란 관념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런 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 말고,
생각을
없애 버리십시오.
만일 그대가 항상
옳음에 머무르면
그 옳음이 세상에
두루 미칠 것입니다.
질문자 :
명상을 할 때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명상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대는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 때문에
방해를 받습니다.
한 생각을
착파하여
다른 생각들을
몰아내십시오.
꾸준히 수행하면
명상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힘이
강해집니다.
명상은 구도자가
진보한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만약
명상을 할만한
수준이라면
그 '생각하는 자'를
곧바로 붙잡을 수 있고,
그러면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근원,
즉 순수의식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 '생각하는 자'를
곧바로
붙잡을 수 없다면
신에 대하여
명상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그 사람도
충분히 순수해져서,
'생각하는 자'를 붙잡고
절대적 존재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함께 방문한
여사들 중 한명은
이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바가반은
남에게서 잘못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잘못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
옳고 그름의
분별이
죄의 시초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가
바깥에서
반사되는데,
개인은 무지하여
그것을
남에게 덧씌웁니다.
그대에게
최선의 길은
그런 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잠 속에서
옳고 그름을 봅니까?
잠 속에서는 그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까?
생시의 상태에서도
잠들어 있으십시오.
진아로서 안주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오염되지 마십시오.
더욱이 남들에게
아무리 충고를 해도,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고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대 자신이
올바르게 살면서
침묵하고 있으십시오.
그대의 침묵이
말이나 행위보다
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의지력의
계발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천국이
될 것이고,
그 천국은
그대 안에 있습니다.
질문자 :
만일
우리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면,
세계는
왜 있습니까?
마하리쉬 :
세계가
어디에 있으며,
그대는
스스로 물러나서
어디로 갑니까?
비행기를 타고
허공을 넘어 갑니까?
그것이
물러남입니까?
사실은 이렇지요
- 세계는
하나의 관념일뿐
이라는 것입니다.
그대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대가
세계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계가
그대 안에 있습니까?
질문자 :
제가
세계 안에 있습니다.
저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마하리쉬 :
그것이 오류입니다.
만일 세계가
그대와 별개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그대에게 와서
자기가 존재
한다고 말합니까?
아니지요.
그대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봅니다.
그대는
깨어 있을 때
세계를 보지,
잠들었을 때는
보지 못합니다.
만일 세계가
그대와 별개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그대에게 그렇다고
말해야 하며,
잠들어 있을 때도
그대는 세계를 지각
해야 합니다.
질문자 :
생시에 그것을
지각하게 됩니다.
마하리쉬 :
그대 자신을
자각하게 된 다음에
세계를 지각합니까?
아니면 세계를
지각하게 된 다음에
자신을 자각합니까?
아니면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자각하게 됩니까?
질문자 :
동시라고
말해야 되겠지요.
마하리쉬 :
그대 자신을
자각하기 전에는
그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대는 세계를
지각하기 전과
지각하게 될 때,
그대가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질문자 :
예.
마하리쉬 :
그대 자신이
항상 존재한다면,
왜 잠들었을 때는
세계를 지각하지
못합니까?
세계가 자기와
별개로 존재한다면서
말입니다.
질문자 :
(잠에서 깨어나면)
저는 저 자신도 지각하고
세계도 지각하게 됩니다.
마하리쉬 :
그러니까
그대가 그대 자신을
지각하게 되는군요.
누가 누구를
지각하게 됩니까?
두 개의
자기가 있습니까?
질문자 :
아닙니다.
마하리쉬 :
그래서 그 지각에
'지나가는 국면들'
(지각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상태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을 알 것입니다.
진아는 항상
지각하고 있습니다.
진아가 '보는 자'
(대상을 보는 자인 주체)와
그 자신을 동일시 할 때는
대상들을 보게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창조가
바로 세계의 창조입니다.
주체와 대상들은
<순수의식의 창조물>
입니다.
그대는 영화에서
스크린 위를 움직이는
영상들을 봅니다.
그런데 <영상>에
몰두해 있으면
<스크린>은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상들은
그 이면의 스크린없이는
눈에 보일 수 없습니다.
<세계>는
<영상들>을 나타내고,
<의식>은
<스크린>을 나타냅니다.
그 의식은 순수합니다.
그 순수의식은
영원하고 불변인
진아와
동일합니다.
주체와 대상을
없애버리십시오.
그러면
순수의식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질문자 :
그러나 만약
그가 그렇게 의도
하지 않았다면,
순수한 브라만이
왜 이스와라가 되어
우주를
현출했습니까?
마하리쉬 :
브라만이나
이스와라가
그대에게 그렇게
말하던가요?
그대는 브라만이
이스와라가 되었다는
등의 말을 하는데,
이 또한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는
하지
않은 말입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만
그대는
브라만, 이스와라,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생시의 상태>는
<주체와 대상의 이원성>인데,
이 <이원성>이 있는 것은
<생각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들은, 그대의
<생각이 창조한 것>입니다.
질문자 :
그러나
세계는 제가
잠들어 있을 때도
존재합니다.
제가
그것을 지각하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마하리쉬 :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질문자 :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지각합니다.
마하리쉬 :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까?
아니면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도
(생시의)
세계를 보는
다른 사람들을
지각합니까?
질문자 :
아닙니다.
그러나 신은
항상 지각합니까?
마하리쉬 :
신은
상관하지 말고
그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대는
신을 모릅니다.
그는
그대가 생각하는
신일 뿐입니다.
그가 그대와
별개입니까?
신은
모든 관념이
그 안에서
형성되는
순수의식입니다.
그대가 바로
그 의식입니다.
ㅡ 라마나 마하리쉬 ㆍ대담록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