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가 모르는 것이 올바른 상태다
질문자 :
저는 마하라지께서
제가 이 추구를 끝내는 것을
도와 주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마하라지 :
그대가 이해한 것을
저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까?
질문자 :
그것은 다 개념이고
다 환상입니다.
마하리지 :
그렇지요.
질문자 :
저는 시간이 걸리고
규율이 필요한 절차들을
믿지 않습니다.
다 해 봤으니까요.
저는
그것을 끝내고 싶습니다.
마하라지 :
기본적인 사실
(즉, 그대는 그 몸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쯤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지요.
그대는
세상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이렇습니다.
《생기(生氣)가
'생각과 말'이 되어 나오면
'마음'인데,
그래서 그것을
'생기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작용 원리'입니다.
존재성,
곧 의식은
그 생기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신'
입니다.》
의식은 간섭하지 않고
《단지 지켜보기만 합니다.》
그대가
불행한 이유는,
일하는 것이 '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은
제 의식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개념이라는 것을
실감하겠습니다.
마하라지 :
'그대가 있다는 것'과
'세계가 있다는 것',
둘 다 개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 :
이 앎은 어떻게 작용합니까?
제 말은, 당신께서 말씀을 해 주시면
어떤 이해의 느낌이 따라옵니다.
그것은 하나의 심적인 과정입니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주시하는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마하라지 :
《'마음'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질문자 :
그러면 그것은 모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군요?
마하라지 :
맞습니다.
《'마음'은
어떤 '개념'이든지
'해석'하는데,
그 기초는 그때
그 개념이 일어나는
토대인
'의식'입니다.》
질문자 :
그러면 우리가
이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고,
의식에 '접촉'할 수 없고,
언어로 의식에 '도달'하지도 못한다면,
실제로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항상, 바로 지금,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때문에
여기 있습니까?
'행위'는 '마음'에 속하고
(그것은 분명합니다),
마음은
'하나의 자동 인형'처럼
움직입니다.
이제 분명히 알겠습니다.
제가 이 마음을
의식에
복종시키고 싶어 합니다.
이해되십니까?
마하라지 :
그런 모든 개념화,
그런 모든 설명은
'그대가 있다'고 하는
원초적 개념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났습니다.
그 개념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에도
어떤 개념,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질문자 :
깊은 잠과 같을 때 말입니까?
마하라지 :
그것이
깊은 잠과 같다는 그 개념은
틀리지 않지만,
깊은 잠도
여전히
하나의 개념입니다.
원래의 상태는
개념들을 넘어서 있습니다.
질문자 :
이제
사실은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
지금 이 순간
그대가 깨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개념입니다.
그것이
가라앉도록 하십시오.
질문자 :
하나의 영화로군요.
마하라지 :
근원으로 돌아가십시오.
'내가 있다'는
이 존재성의 개념이 일어나기 전에
그대의 상태는 무엇이었습니까?
질문자 : 모르겠습니다.
마하라지 :
"그대가 모르는 것",
그것이
"올바른 상태"입니다.
이 의식 뒤에 나오는
모든 것은
그대가 이룰 수는 있지만,
한 줌의 소금 같은 것입니다.
아무 쓸모없습니다.
의식은 쓸모가 없습니다.
질문자 :
그러니까
탐색이란, 탐색의 모든 측면은,
그 의식에 속하는군요?
마하라지 :
이 의식이 나온 뒤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 모든 경험
기타 일체를
던져 버리십시오.
그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던져 버리는 것 말고는,
그대가
점점 더 깊이 흡수되고 있는
이 굳은 확신 너머에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