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이 무엇인지만 이해하려고 하라
질문자 :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가 있음'조차,
우리가 그것을
마음 속으로 인식하는 방식은
실제로 그러한 방식이 아니라는 거군요?
마하라지 :
이런 식으로 보십시오.
이것은
복통이나 목이 아픈 증세가 있을 때
우리가 겪는 것 정도로
좋거나 나쁘다고 말입니다.
제가 완전한 상태에서는
저에게 전혀 통증이 없었지만,
'내가 있음'이 있을 때는
갑자기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 '내가 있음'은
나타나고 사라지겠지만,
저는
'내가 있음'이 없었던
그 완전한 상태입니다.
저는 '내가 있음'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제가 어떤 수준에서 이야기하는지,
어떤 수준으로 그대를 이끌고 있는지
그것만 이해하십시오.
이 영적인 담화가 날아간
비행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도처에서 행해지는
보통의 영적인 접근방법은
온갖 명칭으로
이 의식을 숭배하는 것이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통증이고
저는 그것을 없애고 싶습니다.
질문자 :
마하라지께서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자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계속 의문을 던지고 있는데,
특히 수행을 더 많이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마하라지 :
모든 활동은
1) 의식 2) 마음 3) 생명력
의 영역 내에 있습니다.
'마음을 아는 자'는
하나의 '주시자'일 뿐입니다.
주시자는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스승의 은총이란
'그대가 있다는 앎'을 뜻합니다.
그대가
그 확신 안에 자리 잡으면
그것이 열려서
그대에게
모든 지(知)를 줄 겁니다.
그것이 은총입니다.
'그대가 있으면'
일체가 헤아릴 수 없이 있습니다.
그대는
'그대가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그대의 존재성(의식)이
표현된 결과인 온갖 현상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질문자 :
저의 성향은
내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보는 것입니다.
마하라지 :
그것은
'절대자'인 그대의 성질이 아니라,
그대의 '내가 있음'이 가진 성질입니다.
그대는 몸을
그대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피상적이며,
그대는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질문자 :
맞습니다.
저는 제 몸의 기관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그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릅니다.
마하라지 :
이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
그 행위들 모두의
'견본들'도
그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질문자 :
'존재하는 것'(What is. 실재)은
그 자신을 모릅니까?
마하라지 :
그 상태에서 그대는
그대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존재성(의식)이라는 도구,
혹은 보조수단을 가져야
그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질문자 :
그 도구를 가지고
우리는 넘어서려고 하는데요?
마하라지 :
의식을 넘어서려고 하지 말고
존재성(의식)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이해'하려고만 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의식이 없었다는 증거는
오직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절대자인 그대가 그 증거 입니다.
자발적으로,
청하지 않았는데도
이 존재성이 왔는데,
이 존재성이
절대자인 그대에 의해서
주시됩니다.
질문하십시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질문자 :
저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냥 마하리지와
함께 있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하라지 :
아주 적절한 말입니다.
그냥 여기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그대의 마음은 절멸될 것입니다.
'마음'이 다시 싹틀 경우에는
질문을 하여 그것을 차단하십시오.
마음은 싹이 트고 있고,
다양한 개념들로
그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고
놓아 버리십시오.
그대의 마음이 가진 개념들을
받아주는 고객이 되지 마십시오.
질문자 :
음식을 얻고,
정시에 식사를 하고,
돈을 벌고 하는
이런 모든 일들은
마음의 개념이고
마음에 의해 반응을 얻습니다.
만일 그런 일에
반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마하라지 :
얼마든지 마음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마음 속에 매몰되지는 마십시오.
마음을 지켜보고,
그 마음 흐름에 대한 '주시자'가 되십시오.
ㅡ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