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있음'만 숭배하라
마하라지 :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생명력'에 기초하고 있지만
'아뜨만 곧 주시자'는
전적으로 무관하며,
어떤 행위도
아뜨만에 귀속될 수 없습니다.
생명력, 곧 생명기운을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
ㅡ 그것의 언어는
생명기운을 통해서 흐르는
네 가지 유형의 말인데 ㅡ
마음이
그대에게 일러주는 모든 것을
그대는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그대에게 제공하는 그 개념들이
그대에게는
최종적인 것이 되겠지요.
질문자 :
네 가지 유형의 말이란 어떤 것입니까?
마하라지 :
그것은 뭐냐 하면,
빠라(para, 근원의식),
빠시얀트(생각의 방출),
마드햐마(마음속 언어형성),
바이카리(언어의 방출)입니다.
보통의 무지한 사람은
그 전 과정을 시발하는
빠라와 빠시얀티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너무 미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드햐마(마음 속 언어 형성)에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것은
마음과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옵니다.
마음이
말과 생각을 방출하고,
이것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니 '내 것'이니 하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시하는 자'와 독립해 있고
전적으로
'생명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의식(주시자)이
그 자신을
몸, 생각, 말과
잘못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여
공덕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생명력의 활동을 통해서
일어날 뿐입니다.
이 생명 기운, 생명력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심적인 개념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생각의 노예입니다.
질문자 :
진언을 오래하고 나면 그것이 해소되겠습니까?
마하라지 :
진언과
그 진언에 대한 믿음
둘 다 해소되겠지요.
진언에는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진언은
큰 영험이 있습니다.
진언에 집중하면
그 진언 이면의 형상이
허공에서 나타나겠지만,
그런 것은 다
시간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의 보존, 의식의 보존을 위해
온갖 것들을 발전시켰지요.
저는 몸이나 생명기운
그 어느 것도 지속시키는데
더 이상 관심이 없고,
더 이상 그런 것을 원치도 않습니다.
세 가지 상태와
세 가지 속성의 저 다발(몸)이
태어난 이상,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저 다발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저는 거기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혀 두려움이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되었을 질병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제가
태어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버렸지만
오랫동안 저와
관계를 맺었던 것에 대한
약간의 애착은 있습니다.
그것은 84년 동안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생긴
티끌만한 애착입니다.
가령 제가 오래 전부터 알던
고향사람을 만났다고 하면,
그가 오고 갈 때
제가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티끌만한 애착은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의식은
자기가 그 몸이며
세 가지 구나를 통해서
작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것과 무관합니다.
그 전체가 하나의 환(幻)입니다.
질문자 :
죽고 난 뒤에는
기억의 연속이 전혀 없습니까?
마하라지 :
사탕수수나 설탕이 있어야만
단맛이 있겠지요.
몸이 없는데
기억이 어떻게 있겠습니까?
존재성(의식) 자체가
사라졌는데 말입니다.
질문자 :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마하리지 :
이 방에 스무 명이 있는데,
스무 명이 다 떠나 버리면
남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떠나 버린 사람은
그 남은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속성이 없고
동일시가 없고
조건지워지지 않은
저 빠라브라만(절대자) 안에서,
질문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이해해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체험과 그것을 체험하는 자가
하나여야 합니다.
그대가 그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이 빠라브라만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 답은, 봄베이는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어떻고
봄베이의 분위기가 어떻다고 말하지 말고,
봄베이의 일부만 줘 보십시오.
봄베이가 무엇입니까?
말할 수가 없지요.
빠라브라만도 그와 같습니다.
빠라브라만(절대자)은
주거나 받을 수가 없고,
오직 그대가
그것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질문자 :
저희는
마하라지께서 즐기시는
그 상태를 원합니다.
마하라지 :
영원한 진리가 있지만,
주시하기로 하면
그것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종교니
깨달음 법이니 하는 이름의
그런 공부나,
기타
그대가 공부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십시오.
오직 한 가지만 하십시오.
저 '내가 있음' 혹은 의식은
가장 신적인 원리인데,
생명기운이
존재하는 동안만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그대의 성품입니다.
그것만 숭배하십시오.
저 '내가 있음'은
사탕수수의 단맛과 같은 것입니다.
그대의 존재성이라는
그 단맛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만
영원한 평안에 도달하여
거기에 안주하게 됩니다.
ㅡ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