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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ar gadatta Maharaj

내가 있음의 느낌 /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작성자山木|작성시간19.04.24|조회수826 목록 댓글 0

내가 바로 그것이다. -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와의 대화
I AM THAT - Talks with Sri Nisargadatta Maharaj


1. <내가 있음(I am)>의 느낌

질문자 : 날마다 겪는 일이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전세계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이 세계는 어디서 나타납니까?

마하라지 : 무엇이 누군가에게 존재할 수 있기 이전에 먼저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나타남과 사라짐은 어떤 변하지 않는 배경을 전제하는 변화입니다.

질문자 :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저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마하라지 :   어떤 의미에서요? 잊어버린 것입니까? 아니면 경험을 하지 않은 것입니까? 의식이 없을 때조차도 당신은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앎이 없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기억 없음이 존재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실제적 경험으로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 타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잠잘 때 누가 부르면 당신은 깨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내가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습니까? 자고 있는 동안이나 졸도해 있는 동안에도 어떤 씨앗이 되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존재한다--육체로서--세계 속에'라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연속하여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세계 속에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단일한 관념으로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어느 누구로서 존재하지 않으면서,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질문자 : 저는 언제나 기억과 습관을 지닌 누구입니다. 그렇지 않고 달리 '내가 존재
한다'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마하라지 : 아마도 뭔가에 막혀서 당신은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자기 자신은 모를 때,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질문자 : 그 사람들의 지도 하에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추구해봅니다.

마하라지 :  당신 자신이 다만 하나의 육신(肉身)일 뿐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인지를 아는 것이 당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또는 어쩌면 전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가진 모든 문제가 당신 육신의 문제임을 모르겠습니까? - 음식, 의복, 주거, 가족, 친구, 이름, 명성, 안전, 생존 - 이것들 전부는 당신이 단순히 하나의 육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깨닫는 순간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질문자 : 내가 육신이 아님을 안다고 하여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마하라지 : 사실은 당신이 육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 모든 육신들, 가슴들, 마음들 혹은 훨씬 더 많은 무엇들입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 속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찾아낼 것입니다.
당신이 잘못 두거나 잊어버린 물건을 당신은 어떻게 찾습니까? 당신이 기억을 되살릴
때까지 당신은 당신의 마음 속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존재의 느낌이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이런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고 자신에게 질문하세요. 아니면 그냥 그 느낌을 조용히 지켜보세요. 마음이 '내가
있다' 속에 흔들림 없이 머물 때, 당신은 경험할 수는 있으나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상태 속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이 해야할 일이라는 것은 오직 반복하여 시도하는 것입
니다.

결국 '내가 있다'는 느낌은 늘 당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당신이 그 느낌에다
육체, 감각, 생각, 관념, 소유물 등등의 온갖 것들을 붙여서 왜곡시켰던 것일 뿐입니
다.
이러한 것들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들 때문에 당
신은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으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질문자 : 그러면 나는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 자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무
엇인지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감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묘사하는 것이 지식인 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 같은 것은 있을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부정(否定)을 제외하고, 당신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 말
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저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이것이 내 자
신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말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당신이 '이것'이
니 '저것'이니 하고 지적해낼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일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당신
은 다른 '무엇'일 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각(知覺)할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없다면, 지각도 상상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당신은 가슴이 느끼는 것을 관찰하고,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관찰하고, 육체가 행위하
는 것을 관찰합니다. 당신이 지각한다는 바로 그 행위가 당신이 지각의 대상이 아님
을 보여줍니다. 당신 없이 지각이나 경험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경험'이란 것은 반
드시 무엇에 속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경험이 자신의 경험이라고 주장해
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자 없이 경험은 실재할 수가 없습니다. 경험에 실재성을 부여
하는 것이 바로 경험자입니다. 당신이 가질 수 없는 경험이라면 당신에게 무슨 가치
가 있겠습니까?

질문자 : '경험자'라는 느낌이나 '내가 있다'는 느낌 역시 하나의 경험이 아닙니까?

마하라지 : 분명히 경험되는 모든 것은 경험입니다. 그리고 모든 경험 속에서 경험자
가 나타납니다. 기억이 지속성(持續性 continuity)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실제
로는 각각의 경험은 그것만의 경험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성(同一性 identity)이
라는 느낌은 모든 경험자-경험 관계의 뿌리에 있는 공통 요소에서 기인합니다. 동일성
과 지속성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각각의 꽃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색깔은 동일한 빛에서 기인하
듯이, 많은 경험자들은 나누어지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는 자각(自覺 awareness) 속에
서, 기억 상으로는 각각 나누어진 것처럼, 그러나 본질적(本質的)으로는 동일한 것으
로 나타납니다. 이 본질이 모든 경험의 뿌리요, 기초요, 무시간적이고 무공간적인 '가
능성(可能性)'입니다.

질문자 : 제가 어떻게 하면 그것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마하라지 : 당신은 그것에 도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올 것입니
다. 비실재(非實在)에 대한 집착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실재(實在)가 빠르고 매끄럽
게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이것' 또는 '저것'이라거나 '이것을 한다'
혹은 '저것을 한다'는 상상을 멈추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모든 것의 원천이요 중심이
라는 깨달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깨달음과 함께 위대한 사랑, 선택이나 편애(偏愛)
나 집착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사랑할 가치가 있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힘인 위대한 사
랑이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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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갈등과 마찰의 뿌리 /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문: 당신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마하라지: 왜 내게 특정한 견해를 가지라고 강요하는가? 내게는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견해도 없다.       

문: 하지만 이 끔찍하고 잔인한 학살극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쉽게 서로를 죽이는 것일까요?

마하라지: 내면에서 범인을 찾아보라. '나', '내 것'이라는 관념이 모든 갈등과 마찰의 뿌리이다. 이런 관념을 버리면 그대는 갈등에서 벗어날 것이다.



마하라지: 그대는 자신을 외물(外物)과 분리된 개체로 지키기 위해, 특정한 이름과 형상으로써 생존하기 위해 항상 타인과 싸우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그대는 파괴해야만 한다.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그대는 주변 환경과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를 박멸하기 위한 무자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죽음이 그대를 해방시킬 때까지.



마하라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한편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가 이 어린 아이를 죽였으며, 우리 모두가 이 어린 아이와 함께 죽는다. 세상의 모든 사건에는 무수한 원인이 있으며 무수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연역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하라지: 순진무구함 속에서 우리 모두는 결백하지만, 행위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분명히 들여다보고 이해해서 기억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기억은 상상을 낳고, 상상은 욕망과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문: 내가 상상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의식의 빛은 기억이라는 필름을 통과하면서 그대의 뇌에 어떤 그림들을 남겨놓는다. 그런데 그대 두뇌의 무질서하고 혼란된 상태 때문에, 그대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그대의 기호에 따라 왜곡되고 채색된다. 그대의 사고를 질서있게 바로잡고 감정의 채색 작용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투명하고도 자비 어린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대의 탄생을 지켜보는 자와 죽음을 지켜보는 자는 똑같다. 이 주시자는 그대의 고통과 사랑을 지켜본다. 이 세상이 아무리 분열되고 여러 경계선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한다. 우리는 서로 싸우고 죽이고 인명과 재물을 파괴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우애를 나누고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수많은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다. 우리의 삶은 온통 모순 덩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 집착한다. 이 집착이 모든 것의 뿌리이다. 하지만 이 집착 또한 전적으로 표피적인 것이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매달리지만 다음 순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린다. 진흙으로 파이를 만들며 놀다가 곧 잊어버리는 아이와 같다. 그 파이를 부숴버리는 아이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겠지만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면 쉽게 잊어 버린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므로 그 삶에 대한 사랑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다양한 것을 좋아한다. 슬픔과 기쁨의 교차, 우리는 서로 대조되는 것들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 간의 확실한 분리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얼마동안 그것들을 즐기다가 싫증을 낸다. 그리고 순수 존재의 침묵과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
  우주의 심장은 끊임없이 뛰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자인 동시에 그 심장이기도 하다.  


 
마하라지: 어린 아이를 예로 들어보자. '나'라는 감각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퍼스낼러티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다. '자기 인식'을 가리는 장애물은 거의 없지만 자각의 투명성과 강도, 그 폭과 넓이가 결여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 자각이 점점 강해지지만 숨어있던 퍼스낼러티 또한 발현되면서 애매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딱딱한 나무가 더 뜨거운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퍼스낼러티가 강할수록 그것의 파괴를 통해 더 밝은 빛을 뿜어낸다.



마하라지: 존재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나의 본질은 사랑이다. 고통마저 사랑스러운 것이다.

 

명상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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