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 전설 2.
일행은 저녁 무렵에 상원사에 도착하였다. 해발 1,050 미터나 되는 치악산 정상에 있는 상원사는 폐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주지 스님도 병중에 있었다. 모두들 주지 스님께 병문안을 드리고 함께 공양을 했다.
이튿날 이생님은 주지 스님께 토굴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토굴이란 글자 그대로 흙을 파서 만든 굴이 아니라 나무와 흙을 층층으로 쌓아 올려 지붕을 얹은 단칸집을 말한다. 아무도 이생님께 토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생님은 이곳에 올 때부터 그곳을 염두에 두셨던 듯하였다.
주지 스님은 비어 있는 토굴이니 누가 그곳에서 공부를 하겠다면 말릴 수는 없노라고 말하며 승낙은 했지만 한마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 토굴이 여간 터가 세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몇 스님들이 크게 결심을 하고 정진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지만 모두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초죽음이 돼 물러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토굴은 상원사에서 약 5백 미터쯤 아래쪽에 있었다. 지금(1985년)도 그곳에 반쯤은 스러진 채로 그러나 거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토굴을 볼 수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깊고, 그 건너편에서는 높은 산봉우리가 계곡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왼쪽으로도 작은 계곡을 이루고 있어서 약간 우묵한 곳인데, 토굴자리라야 십여 평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토굴 자체도 사방 여섯 자 이상은 되지 않은 작은 집이다. 높이도 여느 사람 같으면 바로 설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부엌이 하나 있고 문이 둘 있었다.
이생님이 그곳으로 내려왔을 때 토굴 앞에 날감자가 하나 있었다. 이생님은 그걸로 3일을 잡수셨다고 한다. 윤처사와 장보살 등이 땔나무라든지 먹을 것들을 구해 왔다.
밤중에는 이생님 혼자 토굴에서 지냈다. 밤이 되면 토굴 주변은 무서운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이생님은 문을 안으로 굳게 잠그고는 거의 말씀도 없었고 외출도 하지를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예전에 길에서 이생님을 만나 간질병을 나은 여인이 그곳을 찾아왔다. 그 여인은 수소문 끝에 백련사로 갔지만 이생님이 상원사로 가셨다는 말을 듣고 뒤따라 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여인이 돌아간 뒤부터 이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원주를 중심으로 인근 수십 리까지 퍼져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생님을 찾아 치악산을 올랐다. 그러나 이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토굴 문을 안으로 잠그고 아무 대답도 없이 묵연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찾아온 사람들은 가지고 온 초나 향 따위를 토굴 밖에 두고 정성을 드린 다음 떠나갔다.
그리하여 이생님에 대한 신비스런 소식은 원주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던 내게도 전해지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분이라면 한 번 뵙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이 무슨 소원을 기구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아직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까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돈 삼백 환과 양초, 과일 등을 준비한 다음 상원사로 떠났다.
겨울이었다.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에 산길은 아주 미끄러웠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반은 얼음길이 돼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섰는데도 상원사에 도착해 보니 오후 4시나 돼 있었다.
절에 도착해 보니 적어도 이삼백 명은 될 사람들이 모여서 혹은 법당에서 정성을 드리는가 하면, 혹은 공양을 하는 등 온통 잔칫날 같았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나는 이생님이 계신다는 토굴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도 이삼백 명은 될 사람들이 토굴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덩달아 그들 뒤를 따라갔다. 그때 누군가가 이생님이 오신다고 말했다. 보니 아주 조그맣게 생긴 분이 토굴 쪽으로 올라오고 계셨다. 사람들은 그분을 뒤쫓아서 모두들 다시 토굴로 올라왔다. 그분은 토굴에 도착하자마자 조그만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그 방 앞에 가지고 온 것들을 놓고 기원을 했지만 이생님은 일언반구가 없었다. 나도 간신히 기회를 얻어, 가지고 온 것들을 문 앞에 놓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생님께서 문을 여셨다. 내가 공손하게 절을 드렸더니 이생님이 말씀하셨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한 번 만나겠지요.”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처럼 아무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그분이 유독 내게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런데 그 말씀의 의미는 나중에야 밝혀졌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처음 내게 이생님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의 새삼스런 권고도 있고 해서 약 한 달 뒤에 다시 상원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이생님과 단 둘이서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생님의 말씀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주지 스님이 이리 오실 거요. 주지 스님은 학생보고 이곳 절 일을 도와달라고 그러실 텐데, 두말 말고 그러겠다고 대답하도록 해요.”
나는 한편 무서운 생각도 들고 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내 심중을 아셨던지 이생님이 나를 달랬다.
“내가 학생을 중 만들려고 그러는 게 아니오. 여기 있으면 여러 가지로 배울 게 많을 것 같아 그러오.”
나는 얼떨결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해 버렸다. 이생님은 내게 몇 가지를 물으시더니 그러면 언제 다시 오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생각나는 대로 정월 스무 날 다시 오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이 여간 이상하게 된 게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은 절간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약속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내 주변을 정리하고 정월 스무 날 상원사로 올라갔다.
거기서 내가 맡았던 일은 땔나무 준비, 방에 불을 때고 밥하기, 잔심부름 따위였다. 나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한 달간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이생님을 보려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치악산을 올라왔다. 하루면 약 5-6백 명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식사를 했고 또 일부는 잠을 잤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곳에는 나 말고도 행자가 한 사람 더 있었지만 일손은 턱 없이 부족했다. 한 달 동안 나는 한 번도 방안에서 잠을 자보지 못했다. 한 달 쯤 지났을 때 나는 그만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을 게 뻔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하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생님이었다. 내가 하산을 작정한 걸 어떻게 아셨는지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말리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주저앉고 말았는데 얼마 지나자 또 다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왜 그런 마음을 먹느냐면서 간곡하게 타이르시는 것이었다.
두 번이나 마음먹은 것을 들키고 나서야 나는 이분이 보통 어른이 아니구나 싶었고, 그 뒤부터는 내 마음이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