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인의 장단점 : 이는 의혐심의 소유자이고 한데 불의한 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행동하며 명리에 초연하다. 몸이 민첩하고 순발력이 좋고 가끔은 엉뚱한 풍자, 유머, 해학 등을 구사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웃겨준다. 위대한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나 어려운 난세의 강력한 리더쉽을 지닌 인물 중의 I(-)인의 스타일이 등장한다. 권력의 부패를 신랄히 꼬집고 국민의 아픔을 대변하는 등의 활약이나 무사정신적 활동 등이 그 예다. 음식은 좀 시고 달게 먹어서 항상 열에 들떠 있거나 마르기 쉬운 체질적 약점을 보완하고 쓰고 더운 종류는 피해야 한다. 특히 담배가 해로운 독이 됨을 명심할 체질이다. 열대성 기후가 오히려 좋지 않고 습성 기후에 한 대성이 섞여 있는 듯하면 아주 좋아하는 체질이므로 거주 환경도 그에 맞추는 것이 좋다. 성격이 공격적이어서 입이 항상 거칠 수 있으므로 구설수에 오르기 쉬우나 비난의 언어 구사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송사나 큰 힘에 걸려 뜻을 펴지 못하는 수가 왕왕 있다. 돌아서면 지나간 분노나 격정을 잘 잊어서 남자답다는 평을 듣는 대신 치밀한 사고력의 부족으로 엉뚱한 데에서 실수를 잘한다. 즉 '건망증'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균형감각 : 인신(호랑이, 원숭이)의 해에는 조심해야 하며, 특히 그 해 여름의 신체리듬을 경계해야 하며 당뇨, 눈의 피로, 피로, 만성 편두통, 열성 피부염, 체중감소, 협심증 등의 화열성 질환에 아주 약하다. 남도 잘 혼내지만 자신의 반성 채찍도 극심해서 너무 긍정적 에너지를 죽이는 경향도 있다. 아울러 쾌락주의적 행위에 대한 혐오감도 대단해서 지나치게 윤리적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하는 형이기도 하다. 적당한 '약'은 꼭 필요한데 쓴맛, 톡 쏘는 맛만 남자답다고 좋아하고 '단맛'은 여자들이나 먹는 것으로 남성들은 위험하다. 신이 주신 맛은 섭취할 필요가 있는데 만약 단맛을 제거한다면 지구는 폭팔할지 모른다.
'완충지대'의 설정이 곧 단맛인데 백약의 독을 완화시키는 감초가 그 예다. I(-)인의 신맛과 단맛을 잘 절충 섭취해야 한다.
상과 벌 : 요컨대 건강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병법의 고전인 (육도삼략)을 가르치신 강태공의 정치이론을 보면 '상은 소치는 목동에까지 이르고 벌은 왕후장상에 미칠 수 있게 하라.' 즉 상벌의식 중 벌 의식이 곧 소양지기인데 이는 상 의식과 중용을 이루어야 한다. 부귀교만에 사용할 소양상화의 기운이지 그렇지 않아도 어렵고 기가 죽어 있는 빈천인에 쓸 기가 아닌 것이다. 앞의 궐음인은 소양인과 좋은 짝이니 유식과 무식이 서로 어울리고 귀한 이와 천한 사람이 손잡는 것은 태평성대의 징조이다. 재벌은 권력가와 혼인함보다 긴 세월의 안목으로 보아 자손번영을 위해 낮추어서 인연 맺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너무 강하면 부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용과 자연으로 회귀 : 소양인의 광택은 희고 붉은색인데 이 색이 지나쳐서 거칠어지면 위험한 징조이니 급히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야만 살 수가 있다. (예기)의 첫머리에 '천한 사람의 단점도 보고 원수진 사람이라도 그의 장점을 볼 줄 알라'는 말이 있다. 원한 잘 품는 I(-)인은 특히 남의 단점을 잘 보는데, 가깝고 애정 있는 사람의 단점만 보고 미운 사람의 결점을 들추지 않아야 스스로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하기사 이 교훈이 어디 I(-)인에게만 국한될 것인가? 요즈음 풍욕이 성행한다. 수풀 속의 가벼운 산보는 특히 I(-)인에게 효험이 많다. 웬만한 알레르기성 피부염은 며칠 동안 깊은 산 속 텐트생활로 치유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역시 자연을 최고의 의사로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 땅, 바람, 물, 햇빛, 공기 등등의 요소가 갖추어진 곳은 곧 회복실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귤, 키위, 모과, 산수유 등 신맛의 과일은 모두 한결같이 '바람'이 많은 곳의 산물이다. '바람'을 통제하면 그 열매의 맛이 시어지지 않는다. '바람'의 통풍이 필요한 I(-)인은 교제를 넓혀서 지우의 장점을 읽어야 한다.
선지식과 악지식 : 평생 동안 '악지식'만을 넣고 다니는 이가 있다. 공자의 말씀에 '과거의 나쁜 기억만 외고 있는 자는 죽어도 좋다'는 뜻의 교훈이 있다. 인간 존재는 선악의 반반합성이다. 타인의 나쁜 결점 기억만 잔뜩 넣고 다닌다면 그 운명도 그대로 될 수밖에 없다. '심보가 고약하다'는 옛말은 심포라는 지식 저장 창고 같은 무형의 장부에 악지식만 넣고 다니는 자를 뜻한다.
목적과 방법의 불분리 : 혁명주의자, 특히 폭력을 통한 개혁론자들은 명심할 것이 있다. 목표가 아무리 정당해도 목적은 '폭력없는 사회'지만 달성 방법이 폭력이라면 그 결과는 결국 폭력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방법과 목적의 분리는 도처에서 보여지는 악성논리인데 이는 힘있는 자나 복수심 가득 찬 이들이 모두 발로 차버려야 할 마약 같은 것이다. 방법과 목적의 불분리를 주장하면서 이제 태음, 양명, 소음, 태양, 궐음, 소양의 여섯 가지 체질론을 끝맺는다. 미흡한 부분은 훗날 다시 손질하기로 하고 이 졸고가 이 나라 건강의 증진에 도움이 되는 동양심리 의학적 제언으로 인식된다면 조금이나마 옛 선성과 금생의 현명한 스승 여러분께 다소간 은혜를 갚았다 자위하고 싶다.
건강으로 가는 주역탐구
황제의 꿈
전쟁과 기아, 질병 이 세 가지는 의사가 꼭 막아야 할 흉사이다. (내경)의 가르침에 '대의는 천하의 병까지 고치고, 소의는 신체의 질병만 고친다'했다. (내경)의 저자는 황제인데 곧 왕이자 의학에 도통한 인물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주역의 달통자이기도 하다. 그도 한때는 방탕하여 15년을 여색과 산해진미, 술 등으로 몸을 망쳤었다. 정신이 혼미하고 피부가 까칠해지며 입이 쓰고 머리가 맑지 못하여 정사가 귀찮아졌다. 자신이 쾌락에만 탐착한 나머지 일을 그르쳤는데 크게 후회하여 반성한 다음-. 약 15년 간 오로지 나랏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열중한 때문에 또 몸을 그르치게 되었다. 입이 타면서 산란한 마음과 함께 말을 안 듣는 수족의 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이기나 이타행이나, 괴로움의 원인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궁궐 한쪽의 구석진 데 움막을 짓고 고요히 홀로 거처해 보았다. 검소한 의식 생활과 함께... 일체 사람을 멀리하고 지낸 지 3개월 되던 날 황제는 꿈을 꾸었다. '화서국'이라는 나라를 가보았는데, 그 나라는 지배자가 없고 모든 것이 자연에 일임되어 있었다. 백성들은 욕망을 몰라서, 무엇이나 자연 그대로 좇고 있었다. 생을 즐길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요절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를 위할 줄도 모르고 남을 소외할 줄도 몰랐다. 그러기에 애증이란 것이 없었다. 남을 배반할 줄도 모르고, 남의 비위 맞출 줄도 몰랐다. 그러기에 이해란 것이 없었다. 아무도 사랑하고 아끼는 감정을 지니지 않고, 두려워하고 꺼리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곳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도 익사하는 법이 없고, 불에 뛰어 들어도 뜨거운 줄을 몰랐다. 무엇으로 베거나 때려도 상처가 안 나고 아프지도 않았고, 긁어도 아프거나 가렵지 않았다. 하늘을 땅처럼 걸어다니고, 침대에 누운 듯 허공에서 잘 수도 있었다. 구름이나 안개도 시야를 가리지 못하고. 뇌성도 그 청각에 혼란을 주지 못했다. 물론 미추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산이나 골짜기를 걸어도 넘어가는 일이 없었으니, 자유자재인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천로, 역목, 태산계의 세 대신을 불러 말했다. "나는 석 달 동안 한가히 있으면서, 마음과 몸을 고요히 가라앉혀, 몸을 보존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나, 그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지친 끝에 잠이 들어, 이 같은 꿈을 꾸기에 이르렀다. 이제야 진실한 도는 의식적으로 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알고 확실히 터득했건만, 그대들에게 이야기하려 하니까 말이 잘 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28년동안, 천하는 아주 잘 다스려져서, 거의 화서국 같이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가 돌아가자, 백성들의 울음은 2백여 년이나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은 (열자)에 나온 이야기이다. 이해와 애증으로 가득한 지구촌의 전쟁놀음에 놀아나서야 어디 단군의 이화세계의 명분에 맞는 한민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 포용심을 잃은 강대국이나, 표독해진 약소국이나 이제는 막 갈 대로 가는가 싶다. 노자의 말씀에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강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강국은 약소국을 떠받들어주어야 한다' 설파했다. 이제 한민족은 힘의 강약에 있어서도 그 중용을 잃지 말고 세계를 질서 잡는 조율사가 되어야 한다. 종교적 민족주의가 깊이 배경이 된 듯도 하고, 이권을 얻고자 하는 탐욕과 체면유지 등의 복잡한 명분으로 얼룩진 걸프전쟁의 해결사로서 감동적 충고를 해줄 수 있는 큰 의사는 없을까?
질병은 진리의 무지에서...
영국인 의사 '맥도널드 베인'은 천계의 성자에서 지도를 받게 된다. 인간의 질병에 대한 확고한 통찰의 말씀을... 전쟁의 황폐함과 질병의 엄습을 예방하기 위해 여기 인용해 본다.
'자네를 둘러싸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그 밑바닥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어리석음 때문에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인간 그것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진리와 진리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리와 법칙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 그것만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오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수학을 다루고 이용하듯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다. 조화된 음악에는 참된 음계가 있지만 거기에는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없다.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다만 잡음일 뿐이며 그런 것은 조화가 아닌 것이다.' '자, 질병이 모두 어떤 원인들의 결과이고 자연의 법칙을 어기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자네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무지, 공포, 사랑의 결여 곧 사랑을 주는 힘의 결여, 끊임없이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생겨난다. 병은 육체와 마음이 그 본래의 리듬을 잃었음을 나타내는 현상이며, 동시에 그것은 본래의 리듬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싸움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사람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 허둥댄다면, 마음의 주의는 나타나는 증상에 쏠리게 된다. 왜냐하면 육체가 신경을 통해 그 증상을 마음에게 알리면 마음은 육체가 느끼는 것의 포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육체를 그 증상에서 구해 내려고 애쓰게 된다. 그리하여 육체의 원자들을 휘저어 놓고 결국은 고통이나 불쾌감이 오게하는 것은 마음이 육체를 구해 내려는 싸움이다. 이런 이치를 알 때 싸움은 멎는다.
마음은 육체의 느낌을 의식하고, 그 느낌이 어떤 '병'으로서 마음에 기록되며, 거기에 어떤 병명이 붙으면 마음은 그 병명에 사로잡히고, 더구나 그것이 어떤 불치의 병이라 하게 되면 마음은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여 부담은 더더욱 커진다. 그러나 실은 병의 원인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무지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데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때는 그 무거운 부담이 사라지며, 대 생명인 한얼이 마음을 변성시켜 육체는 자연의 완전한 작용에 순응하게 된다. 병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뿐인 것이다. 얼은 병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아는 바 없다. 이기심, 빼앗고 받기만 하는 마음, 탐욕, 미움, 적의, 인색, 완고, 난폭은 자아의 것이며, 이것들이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다.
비인격적이며 치우침 없는 한얼은 그런 부덕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다. 따라서 치우침 없고 비인격적인 것이 신유이다. 비인격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친절해진다. 왜냐하면 사랑은 비인격적인 것이며, 사랑은 용서요, 치유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신이며, 사랑은 무릇 반작용이 따르지 않는 완전한 작용의 바탕이다. 진리에 따라 이끌어줌으로써 병자는 고통이 한때의 것이고 스스로 지어낸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무릇 나타나는 현상은 한때의 것이며, 한때의 것은 그저 끊임없이 유동하고 그 자체의 근거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밖의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것은 무지한 자아뿐이다. 실재는 이 무지한 자아와는 전혀 다른 것, 실재야말로 완전하고 비인격적인 참 나이다. 만약 병이 실재라면 그것은 고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재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공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뿜어내는 암시를 받아 공포 속으로 더욱 깊이 빠진다. 죽음에의 공포가 인류라는 한 가족에 스며 있는 여러 가지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 공포를 떨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인 것이다.' - 맥도날드 베인, (히말라야를 넘어서) 정신세계사.
분열의식의 통합 태극사상
분열증후군의 거대한 몸살은 곧 전쟁이고, 작은 징조는 몸과 마음이 병고이다. 전쟁의 원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분리의식의 조장이지만, 분열증의 혼란한 마음과 그로 인한 어지러움증, 상기증, 혹은 체증과 같은 기울증 등은 모두 고통을 만들어낸다. 불열의 증상은 수천만 가지인데, 예를 들어 간추려 보자. 첫째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정신분열이요, 둘째는 목적과 방법의 틈에서 느끼는 시간적 분열이요, 셋째는 나와 남의 비교에서 오는 파괴적 경쟁의식 분열이요, 넷째는 숙명적으로 태어난 성의 차별에서 오는 생리적 분열감이요, 다섯째는 삶과 죽음의 단절의식에서 오는 망상분열증이다. 첫째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정신 분열은 교육의 허구성에서 그 원인이 발견된다. 교과과정이나 가정의 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유토피아나 윤리 도덕성과 권선징악 등의 관념이 현실적으로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는 사회악의 충격에서 오는 분열증이다.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온 각종의 악이 실제로 범죄영화 이상으로 실제 존재하고 있고, 그 행위자가 바로 자기에게 이상향을 가르쳐 주었던 선생이나 가계 지도자라는 데 청소년은 충격을 받게 된다. 모범 부재시대의 상황이 연출되는 비극인데, 꿈과 현실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자기 꿈의 실현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포기, 집착으로 일관하게 된다. 반복적인 정신병원의 입원과 퇴원보다는 솔직한 교육을 통해 인간의 자기집착 개인주의 성향을 일찍부터 일깨워 주지시키고, 에고이즘의 타파가 곧 교육의 본질임을 가르쳐주었다면, 과연 현실 적응에서 오는 정신분열이 이다지도 심했을까?...
분열증 소고 : 시간의 분리의식이나 성의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 등은 아주 미묘한 분열증을 일으키는 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침투되어 있는 괴로움이다. 청소년 시기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분열증은 뚜렷한 병증으로 구별되기가 쉬우나, 인간사회에 모두 전염되어 있는 미래를 향한 야심의 충동질은 어쩔 수 없을 정도이다. 오늘의 별볼일 없는 자기와 미래의 훌륭해져야 할 나의 희망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시간의식 문제인데 심리적인 시간적 공간의 과정은 좀더 위대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고는 그 노력의 과정은 꼭 필요한 인내처럼 괴로움을 미화시킨다. 현재 과정의 괴로움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필요하다. 이는 모든 교육사회의 그럴듯한 전제이다. 이래서 생긴 시간의 분열은 아예 합법화되어 버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교육은 과정도 즐겁고 결과도 즐거워야 한다. 그러나 훌륭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야심을 품으라고 가르친다. 태극사상은 목적과 방법의 분열없는 일심의 사상이요, 내혁 즉 자신의 내부를 혁명하자는 가르침이 숨어 있다. 태극이 음약으로 분열되고 다시 사상 팔괘로 나뉘어진다고 평면적 각도로 파악한 것같이 보이는 주역체계지만, 알고 보면 다양한 개성의 혼합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태극심왕 사상 : 태극사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왕을 일깨워준다. 신성은 불성이요, 도이다. 누구나 다 왕이다. '왕이 될 것이다'가 아니다. '왕처럼 되어라'도 안 된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가 다 왕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누구처럼 되어라'를 가르친다. 스스로 열등의식을 느끼는 불쌍한 피교육자는 목표를 설정하고는 매진하기 시작한다. 교육자는 가정의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요, 사회의 교사들인데 스스로 못다 한 꿈마저 얹어주며 더욱 야심을 부채질한다. 마음의 평화라든가 행복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채... 태극은 무극이다. 양극이 없으니 무슨 출발과 도착지가 있을 리 없다.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는 모두가 내면의 심왕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교에 의한 열등의식은 언제나 자신을 높이 보이기 위해 별스러운 노력을 다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은 정신병자가 되든지 야심적 정치가가 되는 길밖에 없다.
우월의 증명방법 : 썩은 야심가 정치인 무리는 어찌 보면 가장 열등한 의식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야심은 현대심리학에서도 열등감에서 비롯된다고 증명하고 있다. 아예 미쳐버려 '내가 수상, 대통령이요!' '바로 나만이 왕'이라 주장하는 길은 지름길이다. 아주 쉽다. 대신 그는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러나 그는 그 착각을 즐기며 살아간다. 로이드(Lloyd George)는 영국 수상이었다. 전쟁 중 등화관제 시간에 산책하다가 경보 사이렌을 들었다. 조지 수상의 집은 꽤 멀리 있었고 이제는 내일 아침까지 꼼짝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가장 가까운 집의 문을 두드려 주인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나는 로이드 조지 수상이오. 하룻밤만 재워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잡아갈 것이오." 그러자 집 주인은 그의 멱살을 잡고, "조용히 해라! 소란 피우지 말라. 잠은 재워준다. 그러나 매맞고 싶지 않거든 조지 수상이라고 떠들지 말라." 조지 수상이 문을 두드린 곳은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세 명의 조지 수상을 자처하는 정신병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밤새 꼼짝없이 입 다물고 있을 수박에 없었다. 진짜 수상은 그 세 명의 로이드 조지 수상 망상 정신병자들의 열띤, 자기만 수상이라는 증명 토론을 들어야만 했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우월한 인간이라고 선언해 버리면 되는 쉬운 길이 정신병자의 길이다. 신라시대의 눈물겨운 향가가 있다. 백수광부의 죽음이다. 평생을 강가에서 살면서 '나는 왕이 될 거야'를 읊어대던 백수광부는 어느 날 강에 빠져 자살하였다. 백수광부, 즉 흰머리의 미친 남편, 그의 아내는 지아비의 시체를 붙들고 노래를 하다. 아마도 이는 왕권과 귀족에 대한 부러움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을 때이고, 모르긴 몰라도 권력 중심의 상하 분열의식이 낳은 정신분열의 시대 징조일 것이다. 뭐하러 '저 나라에 가서 왕이 될 거야'를 읊는가? 확실히 미쳐서 '나는 왕이다' 할 일이지.
건강한 참 종교성 회복은 분열증후군의 약
샤르트르는 그의 논문에서 말했다.;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평화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당장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그것은 격한 감정 대신 객관적인 지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주역이 요구하는 마음과 육체의 평화와 더불어 지구촌의 안녕을 리드하는데 필요한 자각을 위해서 다음의 인용으로 이 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미치는 일은 우월한 인물이 되는 지름길이며, 정치는 우회로이다. 그러나 둘 다 같은 목적지에 이른다. 세상이 온전하고 정상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이 두 유형의 사람들. 미친 자와 정치인들이 다 치료되어야 한다. 둘 다 병들어 있다. 다만 한 사람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고 한 사람은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잘 기억하라. 미친 자가 정치인보다는 덜 해롭다는 것을. 미친 자는 단순히 그의 우월성만을 주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은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 증명의 대가는 아주 비싸다. 히틀러는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는가? 그는 자기가 가장 우월한 최고의 뛰어난 종족 아리안(Aryan)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단순히 정신 병자였고, 지름길을 택했더라면 세상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러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은 더욱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 증거를 가진 정신병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속에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뛰어다니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목표에 도달하고, 온갖 수단과 모략을 써서 마침내 그것을 성취하는 정신병자들인 것이다. 열등하다고 느낄 때마다 인간은, 자기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단순히 자신의 우월성을 믿도록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리고 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미친 자는 종교적으로 될 수 없다. 따라서 에고가 강한 자는 어떻게 해서든 정치인이 될 것이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 분야에서 그들은 정치인 노릇을 할 것이다. 내가 정치라고 말할 때 내가 의미하는 것은 에고간의 싸움,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이다. 나의 에고가 너의 에고와 싸움을 하게 되면 그때 우리는 정치인이 된다. 내가 누구의 에고와도 싸우지 않을 때 나는 종교적인 인간이다. 우월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나는 우월하다. 그러나 이 우월함은 열등감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열등하다는 느낌'의 사라짐이다.
여기 우월함의 다른 유형이 있다. 이 우월성은 열등감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열등감의 사라짐, 열등감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을 때, 그대 어떻게 열등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거기에 비교의 대상이 될 아무도 없다면, 그대가 지상에서 유일한 인간이라면 그대가 열등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때 그대는 열등할 수 없다. 그대 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우월하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다. 그대 아래에도 아무도 없으니까. 그때 그대는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말한다. 이것이 곧 영혼의 우월함이다. 꽃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장미는 장미대로 독특하고, 이름 없는 풀꽃은 풀꽃대로 독특하다. 각자 최선을 다해서 피어날 뿐,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할 때 그대는 핵심을 놓친다. 과녘에서 빗나간다. 그대는 항상 다른 사람을 주시할 것이다. 어떤 두 사람도 똑같을 수가 없다. 모든 개인은 고유하고, 모든 개인은 우월하다. 그러나 이 우월성은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대는 우월하다. 왜냐하면 그대는 다른 무엇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월성이 그대의 본성이다. 거기 야심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비정치적이다. 그는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에 새삼 증명할 아무런 것이 없다. 그는 이미 선언되었기 때문에 새삼 선언할 아무런 것이 없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 증명이고 선언이다. 그는 존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따라서 이것을 기본적인 법칙으로 기억하라.
그대가 종교 안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한다면 그대는 정치 속에 있는 것이다. 그대는 종교 속에 있지 않다. 이것이 곧 왜 모든 종교가 정치적으로 되는가 하는 이유다. 그들은 줄곧 종교적인 용어를 쓴다. 그러나 뒤에 감추어진 것은 정치이다. 무엇이 회교인가? 무엇이 힌두교이고, 무엇이 기독교인가? 무엇이 불교인가? '무엇이 유태교이고, 무엇이 이슬람교인가?(필자 삽입)' 그들은 모두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집단, 정치조직이다. 그대가 기도하러 사원에 갈 때 그대는 단지 기도하는가, 혹은 비교하는가? 종교 안에서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대는 단순히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는 그대의 내적 존재가 된다. 그것은 비교되어지는 외적인 무엇이 아니다. 이 비교할 수 없는 기도, 비교할 수 없는 명상은 모든 존재와 고유한 우월성으로 그대를 이끌어갈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야심을 갖지 말라고. 왜냐하면 야심을 통해서 그대는 항상 열등한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심을 떠나라. 그래서 그대 고유의 우월성을 얻으라.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새삼 증명되거나 획득되어질 필요가 없다. 이미 그대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을 획득했다. 그것은 이미 그곳에 있다. 그것은 이미 그곳에 있다. 그것은 항상 그대와 함께 있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대 존재가 바로 우월함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곳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대의 정체를 찾는 데에 그대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찾고 증명하는 데에 그토록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는 것이다. 아아,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대가 한번 그것을 알기만 하면 그때 거기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 그대는 이미 우월하다. 그리고 우월한 것은 그대뿐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월하다. 모든 존재가 우월하다. 왜냐하면 신은 하나, 존재계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기 더 이상 열등한 것도, 우월한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야심이 사라진 마음, 야심이 버려진 마음은 이것을 깊이 깨닫는다. -라즈니쉬, (장자), 예하.
남녀가 없는 태극사상 : 똑같이 생긴 뱀 두 마리의 남과 여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비단 보로 위에 놓으면 그냥 특성이 나타난다. 특별하게 도통하지 않는 수놈이라면 아무래도 암놈보다 더 움직이게 되어 있다. 수놈은 더 동적이라는 말이다. 무극이 동해서 양이요, 무극이 정해서 음이다. 양동 음정은 수놈과 암놈의 결정적 특성이다. 남은 양의 능이 있고, 여는 음의 능이 있다. 남은 동하는 괴로움이 있고, 여는 정하는 괴로움이 있다. 성의 분리에서 오는 분열증은 정말 심각하다.
칼 마르크스가 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절대적 빈곤의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 심리적 빈곤은 좀더 추구해야 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인데 상대적으로 자신이 빈곤해 보이는, 그 이면에는 좀더 나은 음식과 쾌적한 환경을 가진 자에 대한 비교의식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이 추구해 보면 프로이트가 주장한 대로 성의 충동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힘, 권력의 추구가 전부라고 본 니체의 연구는 사실 그 다음의 얘기다. 첫째, 자본의 안정, 살림의 기본 등이 보장되는 신체리듬의 충족 뒤에는 둘째, 감성의 만족을 찾게 되어 있는데 이의 연구가 너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이다. 이니 지구촌의... 성이 다름으로 해서 오는 무의식의 핍박감, 우울증은 특히 사회적으로 불순시 되어 있는 성 의식구조 때문에 자꾸 지하로 숨는다. 숨다 못 해 간접 표출시켜 보는 것이 예술을 빙자한 카타르시스인데 이것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시킨다. 그래서 환상을 키워나가게 되고 이 환상과 현실의 격차를 메울 길이 없어서 방황을 한다. 똥, 오줌을 같이 싸는 형제, 부모에게서 느끼는 환멸감은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이성의 신비를 창출해 내고 스스로 도취된다. 한편, 모든 간접적 성문화 예술이 음식의 메뉴와도 같아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갈증을 채워주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 미래의 인기 있는 무엇인가 되어 보이겠다는 야심 뒤에는 어쩌면 위대한 인물이 되어서 이성으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함도 포함되어 있는지 모른다. 성이란 무엇인가? 오늘도 짜증 부리는 자식의 무의식은 무엇인가? '유명 메이커 운동화에, 고급 책상에, 스탠드에, 독방에, 침대까지 해주었으면 되었지!' '야! 우리 때는 단칸방에 콩나물시루 같은 데에서...' 큰소리로 혼을 내지만 청춘 남녀 자식들은 마냥 불만이다. 아마 아버지가 좀더 유명인사가 아니라서 비교하고 있는 못난 열등분자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은근히 이성을 갈망하고 또 거꾸로 잘못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성의 분리는 의존성을 낳는데 이 지구촌의 의존성이 아주 큰 구속이어서 두려움도 준다. 싸구려 상품화된 성을 돈 주고 사려는 매춘문화는 아주 쉽게 이성의 간격을 메워보려는 시도인데, 어느 날 육체적으로 다른 구조라는 이유만으로는 무조건 상대를 인정할 수 없음도 안다. 어처구니없는 이성간의 의식 차이, 소유욕, 비열한 야심, 거만함, 비겁함, 종교적, 정치적 분리의식 등을 발견하고는, 단지 음양의 육체적 결합말고도 상당히 많은 부분의 텔레파시 주파수를 맞추어야 된다는 결론을 얻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의식이 다른 부부가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권 속에서 묶여지고, 또 그로 인한 아늑함, 이익, 명에 등이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위선적 삶은 자식들에게 불행과 지옥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의심을 가져보는데 과연 결혼이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암의 원인은 배우자와의 불화
스트레스의 질병과 질병의 예측 : 강한 스트레스를 빚어낼 만한 사건을 당한 뒤에 어떤 질환을 앓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의사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을 통해 관찰하였다. 즉 심리적 갈등을 경험한 뒤에 발병한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궤양, 고혈압, 심장병, 두통 따위 같은 병뿐 아니라 전염병이라든가 요통, 또는 사고 같은 일들이 증가된다는 사실에 주목해 온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의사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가 워싱톤 의과대학의 토마스 홈즈 박사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생활현장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양과 심리적 동요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홈즈 박사와 라헤 박사 두 사람은 스트레스를 빚어내는 사건에 각각 특정한 수치를 정한 척도표를 고안했다. 이에 의해 생활현장에서 경험하는 하나 하나의 사건의 스트레스값을 가산함으로써 그 사람이 체험하고 있는 스트레스의 종합가를 판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스트레스 척도표를 다음에 소개한다. 배우자의 사망 100, 이혼 73, 배우자와의 별거 65, 형무소에 입소, 및 감옥생활 63, 가족 한사람의 사망 63, 부상 혹은 질병 53, 결혼 50, 실업 및 해고 47, 배우자와의 관계 회복(재결합) 45, 퇴직 45, 가족의 건강상의 변화 44, 임신 40, 성생활의 문제 39, 가족 수의 증가 39, 사업상의 변화 39, 경제상의 변화 38, 가까운 친구의 사망 37, 전직 36, 부부 싸움 빈도의 변화 36, 1만 달러 이상의 차용 31, 저당잡힘 30, 직책의 변화 29, 자녀의 자립 29, 처가식구와 다툼 29, 현저한 업적(상을 받는 등) 28, 배우자의 취직 및 실직 26, 자녀의 입학, 졸업 26, 생활환경의 변화 25, 습관의 변화(술, 담배끊기) 24, 상사와의 언짢은 일 23, 근무시간 및 조건의 변화 20, 전거(신축, 이사 등) 20, 전학 20, 레크레이션 습관의 변화 19, 신앙생활의 변화 19, 1만 달러 이하의 차용 17, 수면 패턴의 변화 16, 가족 모임의 빈도와 변화 15, 식사습관의 변화 15, 휴가 13, 크리스마스 등의 계절 12, 법률상의 가벼운 위반행위 11. -칼 사이몬튼, 마음의 의학, 정신세계사
이 척도표는 일상적으로 우리들이 체험하는 스트레스로 가득 찬 사건의 거의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즉 아내의 죽음, 이혼, 실직과 기타 이른바 고통 및 즐거운 경험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남녀는 자력처럼 이끌리는데 한때는 그렇지만 왜 지고한 영적인 행복을 서로 나누지 못할까? 자녀는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아주 심각해 하다가는 어느 날 시대의 관습대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게 되고 또 자식들에게 비슷한 말을 한다. '커보면 알게 될 거다!' 그러나 실제 성은 커보면 알 것이라는 단순 연령 비례적 의식 각성의 명제가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남녀의 탄생의 책임은 각자 스스로에 있다는 티벳의 비밀경전의 말이 있다. X, Y 염색체 운운하는 부모 결정적 논리에 익숙한 이 시대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인용해 본다.
이 윤회 존재로 떨어지느라고 탐욕에 미치는 사람들이라거나, 마음으로라도 윤회의 미계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아! 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며 몸서리쳐질 일이겠는가! 아! 정신 차릴지로다.-혹은 '구루'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꼴이 되어서 윤회의 험한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떨어져 들어갈 것이오. 그러고는 끝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고통을 겪어야 될 것이오. 이 같은 운명 속에서 영겁의 앞날을 신음하기 전에 내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오. 그리고 내가 천도해 주는 이 모든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겨 간직하도록 하오. 미혹이라거나 반발을 일으키는 감정을 단호하게 거절하시오. 그러고서 내가 그대에게 제시해 주려고 하는 자궁 입구 봉쇄 방법의 한 가지를 외도록 노력하시오. 자궁 입구를 봉쇄하시오. 그러고는 반대 것을 생각해내시오. 열심성과 순수한 사랑이 필요한 때요. 되풀이해서 알려주어 왔듯이 질투를 버리시오. 그리고 '구루, 부모'에게 명상하시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만약 장차 남자로 태어나기로 되어 있다면 어머니 쪽엔 매혹의 감정, 그리고 아버지 쪽엔 매혹의 감정, 그리고 어머니 쪽엔 반발이 생길 것이오. 이 모두가 질투의 감정과 함께 그대 앞에 차츰 나타날 것이오. 이때를 위하여 심원한 가르침이 있소. 오! 기품 있게 태어난 이여. 매혹이라거나 반발이 생길 때, 다음과 같이 명상하시오. '정신 차릴지로다! 나는 웬일로 이 같은 사악한 까르마의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지금까지 윤회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은 매혹과 반발이 원인이었구나. 만약 내가 앞으로도 이같이 매혹과 반발을 느끼고 나간다면 나는 무한한 윤회 험로의 방랑자가 될 것이다. 그 속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아 들어가면서 영겁의 세월 동안 불행한 고해 한 바다 속에서 신음할 것이로다. 정신 차릴지로다. 나를 위하여! 이후부터는 결단코 매혹이라거나 반발에 의해서는 행동하지 않으련다!' 오! 기품 있게 태어난 이여. 미혹되지 말고 들으오. 그대의 마음을 한 초점에 집중시키고 이 결심을 보존하도록 하오... -(사자의 서). 경서원. 참고로 사저의 서는 죽은 후 49일 간의 영혼천도 이유와 그 과정을 상세히 밝힌 티벳의 비밀경전.
협력자로서의 이성 : 남녀가 분리되는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면 모든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위의 예화는 가설 윤회사상에 근거한 것이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삼계론)에 보면 이 우주의 어느 세계 이상부터는 남녀간의 성 분리가 없다 하니 정말로 남녀가 없는 세계가 있다면 애증의 고통이 없을 것은 분명하다. 범부로서는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성경)에도 '하늘나라에는 시집 장가 가는 일이 없다'고 단언한 예수의 말씀이 있는 걸 보면, 모든 종교적 탐구의 극치는 애욕의 번뇌로부터 벗어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확실하다. 여하튼 이 사바세계의 뭇 생류에게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은 숙명인데, 인류는 이 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 계발해야 한다. 룸살롱 문화에서부터 카바레, 대학의 미팅, 예술가의 나체화, 포르노비디오, 술, 마약복용 등 이르기까지 성의 질곡과 압박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이 제법 고급스러운 해결과 저질스러운 배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성의 만남이 가져다줄 것 같은, 실제로는 잘 만나진 이성간에서 나타나는 행복과 희열에의 갈망이다. 이 갈망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애증에 눈물 흘리는 마음은 또 무엇인가? 무의식적으로 성을 갈망하는 데는 실로 완전해지고 싶은 희망이 숨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불완전한 두려움에서 완전하고 싶은 충동이 성의 밑바탕이다.
도서관에 책 읽으러 가는 것은 찬성하는 부모나 교사가, 이성교제를 금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책 읽어 유식해져 성공하려는 욕망은 내버려둔다. 성공=행복이라면 꼭 책 읽어서 행복해지라는 법은 없지만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비 체험적이긴 하지만 간접체험을 통해 지식의 누적과 기술 축적 연마가 가져오는 권위와 삶의 안정을 가져오는 책에는 안전하다. 책은 배반하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배고파하지도 않고 자존심 상해하지도 않고 비교하지도 않는다. 빼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맞아주는 검은 활자 무생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때로는 자기가 인식한 대로 조종해 볼 수도 있고... 책의 지식인은 가장 '안전빵'의 길을 택했다. 스승을 택한 지식인은 예외이다. 알고 보면 활자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나의 소유로 금방 둔갑된다. 저자보다는 저자의 책을 즐겨 읽는 이면에는 저자와의 인간관계가 싫기 때문이다. 굽신거리고 묻고 틀렸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에고의 출혈이다. 책은 에고의 출혈이 없다. 그러나 같은 지식인이라도 스승 밑의 제자는 다르다. 제자는 부단히 자기 시간을 바쳐야 한다. 스승의 담배, 술 심부름도, 심지어 술집의 외상 술값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 스승의 부인, 자녀에게도 예의를 다해야 한다. 스승 눈에 벗어나면 절대로 전달될 수 없는 지식은 자기의 포기 순종 헌신이 뒤따라야 전수된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자기포기의 피흘림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책은 아주 쉽게 지식을 전달한다. 멋대로 자기 상상까지 덧붙이면 더 큰 책을 쓸 수도 있다. 이러한 활자문화가 연애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성도 책부터 시작하는 데 큰 허물이 있다. 관념으로 무장된 이성의 인식은 사물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오직 이성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환상과 경멸의 순환은 이성 교제를 숱한 실패로 몰고 간다. 조건 지워진 남녀음양이 없는 세계로 안내하는 인도자, 협력자로서 충실히 이해해 간다면 단순히 성의 대상이 아닌 여러 가지 단점과 장점의 종합체인 애인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녀 성기 구조의 차이와 피임법 등으로 무장된 성교육은 오히려 삶을 조건 지워 버린다. 호기심의 만족이 성은 아니며, 아기의 출산이 목표가 아니다. 이성은 분명 숙명이지만 성욕은 자기발견의 무의식적 충동이다. 성욕을 무시하면 행복의 갈구도 무시되어야 한다. 도서관과 음식점이 폐쇄될 수 없듯이 감성리듬의 개화 장소도 잘 발전시켜 주어야 한다. 건전한 이성교제는 상대를 꼭 이성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전인격체로서 인정하는 교육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다고 당당히 군림하는 자세도 없다. 상대 앞에서 모든 사념, 조건, 사회적 체면, 자기 위치 등등이 사라져 비교 당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이성은 음양의 특성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나누어 가졌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그 하나임을 서로 자각하게 하는 사다리의 연출이 각각의 사명이자 헌신이다. 춤문화, 예술문화 등으로 간접 카타르시스 되는 성의 승화는 인류가 숙제로 풀어야 할 필연적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음과 양, 반쪽 에너지 편중현상의 실제 이해와 더불어 음양 이전의 태극의 상황에 대한 명상적, 철학적, 자기고찰적, 깊은 교육적 진단이 필요한 지구촌이다. 더욱 더 성폭력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더욱 더 마약문화의 어두움이 덮이기 전에...
상하명분 부동설 : 괘는 건괘요, '천' 즉 하늘이라는 뜻이다. 양의 중의 양이요, 왕과 위엄, 강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위치는 낮을수록 좋다. 건천 괘가 위에 있고 곤지 괘가 아래 있으면, 64괘 중 가장 흉한 괘 중의 하나인 '천자비'괘가 되는데 이는 당연한 위치, '하늘은 위' '땅은 아래'를 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뜻인 '비'라는 명칭을 달아 나쁜 징조로 보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거꾸로 '지천태'는 '클 태'로 표시하여 길한 상으로 보았으니 (주역)의 오묘한 사상이 이에 있다. (좋다! 싫다! 생각해 보자!)에서도 피력했지만 수화의 괘상도 이와 비슷한 설명을 한 바 있다. 화가 위에 수가 아래 있는 괘상. 화수미제는 수화기제에 비해 불길한 것임을 말이다. 화수미제 괘상은 더운 불은 불대로, 찬물은 물대로 각각 노는 괘다. 곧 중심이 파괴되어 그 생명이 없으니 화가 아래 있으면 자동적으로 수화가 오르고 내린다. 이로 보아 사람의 위인 머리는 차야 하고 아래인 배는 더워야 하는 생리적 구조가 적당한 것이다. 두한족열(머리는 차고 다리는 더워야 한다)의 원리는 바로 이것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말로 복무열통 두무냉통(배는 더워서 아픈 법 없고, 머리는 차서 아픈 법 없다)의 이론도 이것에서 비롯된다. 하늘의 양과 땅의 음이 비록 위 하늘, 땅 아래 같아도 같이 되면 양은 위로 본래 뜰 것이고, 음은 아래로 그 성질 따라 가라앉을 것이 분명하다. 천지부와 같이 되면 중심이 없고 위태로운 지경이 된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음덕이 위에 있고, 강하고 씩씩한 양덕이 아래 있으면 같이 순환이 되어 활동이 자연 안전할 것이다. 대체로 윗사람은 음덕을 지니고 여성적이어야 하고, 아랫사람은 양덕으로 남성적이어야 할 것이다. 여성적인 것이 상위라면 남성들이 기분 상하겠지만 남성이 살려면 여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천리다.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닫고 나서, '이것이 있으메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메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하메 저것이 생한다. 저것이 생하메 이것이 생한다'라고 소위 상대성, 불교용어로 상의성 진리를 갈파하셨다. 대입하면, 하늘이 있으메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메 여자가 있고 찬 것이 있으메 더운 것이 있고 천한 것이 있으메 귀한 것이 있고 꼴찌가 있으메 일등이 있다. 등등 모든 상대적인 맞물림을 응용할 수 있다. 물론 거꾸로도 되는 말이듯이 여자가 있으메 남자가 있다. 우월망상에 젖은 남성이 존재하는 것은 여성이 있음으로서다. 요즈음 일부 여성들은 남성을 타파하고 싶어하지만 남성을 타파하면 여성도 죽는다. 상호의존적 철리를 깜박 잊고 사는 이 진리망각 문명 지구촌은 식물과 동물의 공존도 파괴한다. 식물이 있으므로 동물이 있다면 마구 자연파괴를 해도 되겠는가 안되겠는가 묻는 것이 어리석다. 모름지기 위의 왕은 여성적이어야 한다. 곤의 덕은 유순함을 특징으로 하고 겸손함을 그 용으로 한다. '과인'의 '과'자는 '부족할 과'이다. 항상 옛 임금들은 '과인이 덕이 부족하여...' 등의 말을 사용하였다. 윗사람은 낮은 마음을 쓰는 것이 제일이며 온유해야 하는데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명령은 위 아래를 모두 강하게 하여 부러지는 일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혈기의 아들 딸을 지도하는 윗사람은 유약한 듯해야 한다. 쇠파이프 대신 수수깡을, 박달나무 방망이 대신 고무풍선 막대기로 가르쳐야 할 윗사람이 오히려 초강경을 지시한다면 중심의 원을 그릴 수 없음이 자명하다. 상하는 결국 한몸이지만 각기 명분이 달라야 한다. 물과 기름이 섞이면 불꽃이 안 일듯이 그 직분의 분기점이 다를 것은 달라야 한다. 설사 아랫사람이 강하고자 하여도 윗사람은 약하고자 해야 한다. '대의는 천하의 병을 고친다' (내경)의 간절한 말인데 이 사회 이 나라 지구촌은 중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강대국의 윗사람 부인조차 적국 윗사람의 교수형을 보고 싶다는 끔찍한 인기용 발언을 쏘아대고, 가까이는 유약한 아랫사람, 초강경한 윗사람의 한국 사회를 보면 천하의 병이 심각해도 한참 심각하지 않은가?
심정부침 : 이 나라 3대 의성은 허준, 이제마, 사암 도인이시다. 동의보감, 사상의학, 오행침법을 나란히 개발한 선조들은 각기 그 독특한 개성으로 민족의학을 꽃피웠다. 선승이었던 '사암'은 그저 바위굴 속에서 닦았다 하여 사암이다. 그의 행적은 없고 치료경험의 예만 손으로 손으로 전해 내려왔는데 그 서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심칠정부침 의자 의야.' '칠정, 즉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의 뜨고 가라앉음을 살핀 연후에라야 의사로서 뜻을 얻었다 할 수 있다'하셨다. 감정의 파악 없이는 의사 노릇 할 수 없다는 뜻일진대 심리적 관찰을 선행하라는 가르침 아닌가? 그래서 '이심치심' 즉 마음으로 마음을 치료하는 심의를 옛 사람은 최고로 했다. 알고 보면 세계 4대 성인 및 모든 거룩한 현자들은 모두 심의인 셈이다. 예수 사랑, 부처 자비도 심의의 처방이요, 스크라테스의 '이데아'의 세계나 공자의 '중용'의 도리나 다 심의로서 내준 마음약들이었다. 실험실의 화학약품으로 마음을 마비하거나 환각적 약물복용에 자신의 번뇌를 씻는 것은 의타적 방법이요, 자신 있는 문화인의 도리는 아닐 것이다. 교육이 분석적, 과학증명적으로 되다보니 육안 파악 문화만 제일로 치고 안 보이는 마음 문화를 우습게 보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학자가 실험에서 세계를 콩가루로 만들 수 있는 폭약을 개발하면 그 공로로 일생 잘 먹고 지낼 수 있는 세상이다. 마음속에 사랑과 동정과 연민이 있다면 어떻게 살상무기를 연구하는데 그렇게 시간을 소비할까? 독한 찌꺼기나 쇳물이나 화공약물이 흘러나와도 상관없이 산업공장을 가동시켜서 외화 획득을 하면 훈장을 주었다. 그만큼 우리는 급했다. 마음보다는 몸, 자연보다는 공장, 수양보다는 기술로 치닫는 사상의결과는 참혹할 뿐이다. 돼지고기 잘 썰고, 찌고, 볶아서 제품 잘 내놓는 수백만의 기술자를 다합쳐도 돼지 한 마리를 만들어낼 수 없지 않은가?
생명에 대한 신비와 외경 사상은 사라졌고, 이용과 살육으로 멍들어온 문명시대다. 꽃씨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비창조적 인간 주제에 베고, 자르고, 태우는 파괴의 신은 잘도 자처한다. 이제 칠정의 움직임을 차분히 관조할 때다. 가속도 붙어 마구 치닫는 속도문화 열병은 중심을 잃었다. '마음을 마음으로 치료한다'는 이심치심의 전수는 옛이야기의 전설로 되었고, 공자는 골치 아픈 윤리 도덕가가 되어버렸으며, 소크라테스는 이상을 좇는 비현실적 철학가로 둔갑되고, 예수는 거대한 종교집단의 우상적 권위자로 잘못 인식되고, 부처는 앉아서 졸고 있는 몽상가로 매도되는 이 시대다. 처방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참교육 부재의 이 시대는 적어도 성인의 법을 귀감으로 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땅에 넘어진 자는 땅 짚고 일어난다'는 옛말같이 마음 잘못 써서 오는 모든 질병과 사회악은 마음에서 짚고 일어나야만 한다. 주역의 중심은 태극에 있는데 이는 음양의 조정능력이다. 어두운 음적인 마음과 밝은 양적 기분의 조화를 비롯하여 욕심과 분노, 쾌락과 고통, 질투와 선망, 공포와 즐거움 등으로 점철된 마음의 세계를 조절하는 능력이 곧 태극의 마음이다. 태극기의 중심에 있는 태극 마크를 국기로 내건 뜻과 좌우상하에 건천괘, 곤지괘, 감수괘, 이화의 네 괘를 시설한 의지는 무엇인가? 건곤의 강약과 수화의 음양을 잘 조율하라는 뜻일 게다. 태극의 마음으로써...
분리의식의 산물인 전쟁과 진리에의 무지로 인한 질병, 독점욕의 부작용인 기아는 종교적인 구제 사명이다. 전쟁이 끝났지만, 상처는 크고 원한에 찬 마음은 미래의 전투를 준비한다. 평화란 단지 전쟁의 부재기간일 뿐이요, 인류의 역사는 잠정적 전쟁 준비기간인 가칭 평화시와 전쟁의 순환에 불과하다. 오만한 모습의 승리자는 전술의 탁월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노자의 말씀에 '군대는 흉기'라 하셨다. 흉기는 얼른 거두어 손을 씻고 미안한 마음으로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 그런데 갖가지 자랑을 일삼아서야... 전쟁의 도발은 교육에 있다. 최면적 교육은 마음의 고집스러운 편견을 만든다. 종교적 분리주의는 그 해독이 엄청나서 신의 이름을 전쟁의 마왕으로 둔갑시킨다. 신의 이름으로 죽이면 더욱 거룩하게 포장되는 양심이다. 게다가 각 나라는 다투어 상혼을 발휘하여 전쟁 폐허 복구사업의 주문을 받으려고 난리들이다. 희생자인 무고한 양민들이나 패자 승자 모두 희생군인의 위령제를 의논하거나 제안하지는 않는 채... 나라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전투는 그 얼마이며 사상, 피부색, 종교의 명분으로 피차가 나뉘어 이상이 굳어 일으킨 그 파괴는 얼마인가? 하루 8억 달러씩 들어간 전쟁비용(다국적군)을 합하면 전 세계 난민, 기아 선상에 허덕이는 인구를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것이요, 걸프 만에 부어버린 기름 용량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이며, 그 공해를 다시 원위치로 회복시키는 데는 10년이 걸린단다. 쿠웨이트의 유정에 붙은 불은 끄는 데 2년이 걸린다니 이 지구인의 어리석음은 참 끝도 없다. 승리의 도취를 얻기까지 문명파괴와 시간 퇴행적 손해를 치러야만 항복한다는 말인가? 악의 응징은 필요하다. 그러나 방법이 폭력적이면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제는 누구나 힘을 추구할 것이다. 더 나은 병기의 개발과, 전술의 공부와, 교묘한 살생의 방법론을 인류는 공부할 것이다. 더 큰 전쟁의 학습에 불과한 이번의 싸움에서 오는 각 나라의 각성은 오직 군비강화일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는 무정물이지만 달리고 싶어하듯이 무기는 만들어 놓으면 쓰고 싶어진다. 군비강화에서 오는 민족주의적 힘의 추구는 언젠가 꼭 전쟁을 유발시키고야 말 것이다.
이긴 자는 무기를 수치스러워하고, 패권을 휘두르지 말아야 할텐데... 어디 징조가 그러한가? 승자에 대하여 으스스한 암시적 공포가 저절로 느껴지는 각국은 이제 '비굴한 아첨이냐, 강한 자기실력 배양이냐'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복종과 타협을 통해 힘의 신질서를 숭앙하여 폭력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제 세계는 도의 덕을 나타내야 하는 때다. 겸손하고 유약한 강자의 미덕을 발휘하여 부득이 휘두르는 총칼을 부끄러워한다면 멋진 지구촌이 되어질 징조이다. 그러나 승전을 빙자하여 요구, 주문, 압력 등을 일반사로 삼는다면 웃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정반의 논리는 필연적이라서, 꼭 반대급부의 세력을 만들게 되며, 다시 세계는 힘의 냉전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게다가 종교적 반골정신까지 가미되면 극단으로 갈 것이다. 세존께서는 석가족의 국민이 피해 받는 전쟁을 막아보려 세 번씩이나 진군하는 적군 코앞의 그늘 없는 뙤약볕 아래 앉아 계셨다. 왕의 적개심을 결국 돌리지 못해 일어난 석가족의 최후의 전쟁시에 세존은 '절대 무기를 들어 같이 맞싸우지 말라!'가르치셨다. 한탄하시되 '정업은 어쩔 수 없구나!'하시며... 장렬하게 업을 치렀던 석가족은 최후까지도 무기를 들지 않았다. 국민의 고통을 보다 못한 한 대신은 적국의 왕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내가 물 속에 있는 동안만은 사람을 죽이지 말아 달라!" 이를 허락 받자 그는 연못 속으로 뛰어들 때 큰돌을 몸에 꽁꽁 매었다. 살생을 중지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떠오르지 않아 적국의 왕은 시체를 꺼내어보았다. 그도 인간인지라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성문을 열어 문을 일부러 터주었지만 석가족은 비폭력 무저항으로 남문으로 나간 저는 다시 동문으로 들어가고, 서문으로 내쫓긴 자는 다시 북문으로 들어왔다는 눈물겨운 이야기... 감동 없는 이 시대-. 석가세존의 비저항 시나리오는 업을 씻는 자기 이익도 있지만, 후세인에게 모범을 보이자는 뜻이 깊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이 석가족 멸망의 원인도 알고 보면 사소한 것이 씨가 되었다.
세자비로 석가족의 공주를 요구한 나라에 속임수로 하녀를 보낸 것이 화근이 되어, 어느 날 하녀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엿듣고 보니 자신의 비천한 출생을 궁녀들이 비아냥거리며 수군거리지 않는가? 이를 안 왕자는 훗날 왕이 되어 석가족의 속임수에 앙갚음을 하게 된 것이다. 무서운 인과가 아닌가? 이 지구촌의 교육을 보자! 어려서부터 '여호와' 이외에는 다 적이라고 가르친 것은, 종교적 민족주의를 혹시 가르친 것은 아닌가? 이름 명 자에 끄달려 증오의 귀신을 삼고 지구를 얼룩지게 하는 신들의 전쟁은 '여호와' '알라'가 다 한껏 비웃으실 게다. '저 인천교에 불과한 XX쟁이'라 조소하는 법사가 세뇌시키는 지구촌의 사찰은 무슨 징조란 말인가? 일찍이 '주일학교'를 다니는 어린 영혼은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보다는, 사탄과 같이 살고 있다는 저주 의식을 배우고 있지는 않는가? 일찍이 '룸비니동산'을 다니는 어린 영혼은 부처님의 위대한 자비보다는, 마군과 같이 살고 있다는 저주 의식을 배우고 있지는 않는가? 일찍이 '탈무드학교'를 다니는 어린 영혼은 여호와의 위대한 창조보다는, 파괴병과 같이 살고 있다는 저주 의식을 배우고 있지 않는가? 일찍이 '알라교실'을 다니는 어린 영혼은 알라신의 위대한 통찰보다는, 우매함과 같이 살고 있다는 저주 의식을 배우고 있지는 않는가?
택화혁 : 이 시대는 모든 곳에서 혁명을 요구한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러난 N장관의 TV인터뷰에서도 개혁의 필요를 역설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시작해야 할지 갈파를 잡지 못한다는 실토도 사실이다. 혁명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바깥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면 안의 마음이 바뀔까? 안의 마음을 내혁 하다 보면 밖의 어지러움이 정리될까? 주역의 괘상이 8곱하기 8은 64인데 그중 '혁'을 나타내는 '택화혁'이 있다. 못 택과 불 화가 합친 택화혁 괘상이다. 태택은 상이고 리화는 하이다. 상괘와 하괘의 복합은 무엇을 뜻할까? 자못 난해한 괘의 풀이이며 공자님께서도 세 번이나 (주역)의 가죽끈을 끊어뜨렸다는 이 경전의 해석은 다양하다. 필자 나름대로 유심 유물적으로 분석함은 비록 독단의 허물을 면치 못했으나 주역의 해독의 근본 목적이 인간의 각성과 진리교화에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혁은 유물적으로 '가죽'의 의미로도 쓴다. '가죽'의 질감과 강인함은 원형을 잘 단련시킴으로써 만들어진다. 택괘는 인체 내부의 제3통로 태음경력을 관장하는데 이 태음의 뜻은 비의 경락과 폐의 경락을 뜻한다. 특히 중앙토에 해당하는 비장 경락은 '사' '의'등 사고 작용을 주관한다. 가, 불가, 긍정, 부정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사색하는 힘을 만드는 경락이 태음경락인데 정사로 작용하면 건강이요, 사사로 나타나면 질병이다. '사무사'를 말씀하신 공자의 교훈을 기억해 보면 생각의 삿됨은 아주 치명적인 악이라 할 수 있다. 정사와 사사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마도 택화혁의 괘상 중에 리화의 아랫불로 확 태워버려야 할 것은 사사, 즉 삿된 생각일 것이다. 비장경락의 주관인 중앙토의 '사'는 '비주사'라 하여 동의학 고전에 잘 나타나 있다.
간주노, 폐주비, 심주회, 신주공과 더불어 각 장부와 마음과의 관계를 드러낸 옛 의성들의 예지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분노=목, 기쁨=화, 슬픔=금, 두려움=수로 나누어 목화는 동적인 것, 금수는 정적인 것과 양과 음의 기운으로 파악했다. 음양이 있어 양극단을 이루는데 그 음양 가운데 충화지기가 있어 중앙토라는 개념으로 설정하였따. 물질로 나타내면 수와 화의 음양 가운데 습의 상황이 존재하는데 '태음은 습토'라 하여 태택괘는 축축한 습의 개념과 함께 토의 대표적인 오행을 가진다. 수증기, 안개 등의 어중간한 상태는 차갑게 하여 물로 변하기도 쉽고, 덥게 하여 바로 기화시키지도 쉬운 중간자적 표현이다. 마음으로도 '좋다', '싫다'를 결정하기 전, 선택일보 전의 상태를 '생각'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혼사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권력 있는 집안을 선택할까?(A집안) 재산 있는 집안을 선택할까?(B집안) 물론 권력과 재산이 다 있으면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A 집안은 돈이 없고, B 집안은 권세가 없다. 욕심은 물론 A+B의 대상인데 세상에는 이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 없는가 보다. 이때의 갈등, 선택 이전의 번민이 곧 생각 사의 짙은 병적 형태이며, 이런 갈등의 번민을 오래 끌면 끌수록 태음경락의 작용이 굳어져 심한 '기불승강'의 삿된 울기가 쌓이게 된다. '묵은 갈등, 의혹을 지혜의 불로써 태운다.' 이는 혁명의 뜻이다. 원하는 것이 더 복잡하게 많아져서 권세와 재물 말고도 고학력과 미모까지 원한다면 아마 그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한데, 바로 사사의 원인은 다양한 욕망 추구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사=갈등=의혹=번민...으로 번져 가는데 최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것저것 다 원하는 욕심에 그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이로 상징된 지혜의 불로 명군은 무엇으로 상징된 묵은 갈등을 해소한다.' 이것이 곧 택화혁의 의미가 아닐런지... 화는 이라고도 표현한다. 한방에 '청리자감탕'이 있는데 '이' 즉 화를 맑히고 '감' 즉 수를 보충한다는 '음허화동(폐결핵 종류로서 체중 감소를 수반하는 소모성 질환)'에 쓰이는 성약이다. 즉 청화보수의 작용이 있는 보음지제인데 이와 화는 동격이다. '이는 수려하다'는 뜻도 있지만 말 그대로 이별의 뜻이 강하다. 이별은 헤어짐이다. 변화의 화다. 물에서 기로의 전환이다. 불이 없으면 기화작용이 어렵듯이 에너지화의 기본은 불로 시작된다. 유형의 물질을 소화시키는 힘도 열이다. 이는 물질의 죽음이자 신령스러운 기운의 탄생이다.
'혁'은 변혁인데 물질의 죽음을 뜻하니 곧 육의 사망이요, 영혼 부활의 시작이다. 체제의 변화는 '혁'이 아니요, 오직 물리적 힘의 전이 현상일 뿐이다. '탄생'의 의미다. '나'의 죽음, 즉 무아의 현현은 곧 혁이니 이는 내혁을 뜻한다. 내혁한 마음엔 갈등이 없으며, 갈등이 없으므로 빛나고 편하다. 인체의 군주지관인 심장이 밝고 편해야 전체 12경락이 편하다. 그러므로 동양의학 고전에 '심에서는 신명이 출한다'했다. 신명 나는 마음이 나오는 '혁'의 과정은 곧 '혁'의 빛남과 같다. 또한 질긴 가죽 같아서 면면히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 지혜의 광명이 세세손손 막히지 않도록 지도자는 길을 터야 한다. 이는 백성을 교화육성하는 기본 사상이다. 이 시대의 말세적 증후군인 암의 창궐은 무엇 때문인가? 모두가 사사의 결과이다. '석가'가 제시한 팔정도의 첫머리도 정견, 정사...로부터 출발한다.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는 도의 근본이다. 중앙 네거리의 교통정리가 엉망이면 사방의 순환이 막힌다. 그림과 같이 중앙토의 비 기능은 교통순경의 직능이다. 모든 명의는 기혈의 순환을 도모하고, 큰 의사인 왕은 민심의 교류를 뚫었다. 없는 자와 있는 자, 귀한 자와 천한 자, 유식과 무식 등등 서로 상대적 계급간의 소통을 도모했다. 있는 자 더욱 있어지고, 없는 자 더욱 없어지면 중앙의 기가 증발되어 유기체인 나라나 지구촌은 멸망하게 된다. 즐거운 자는 즐겁고 화나는 자는 더욱 화가 난다면 쾌락적 흥분성의 열이 맥박을 가동시켜 맥박수가 120-150으로 올라 죽을 것이요, 분노의 중풍성 화가 머리를 강타하게 되면 뇌혈관이 터져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양극간의 조화를 이루는 중앙토의 조절작용이 아주 중요한데 이를 명철한 지혜로 조정해야 함이 혁의 뜻이다. 해묵고 찌든 갈등은 과감히 청산하고, 정도 실천의 지성의 불로 바른 생활을 유도해 나감이 '택화혁'의 기본 뜻이 아닐까 거듭 밝힌다. 그럴듯한 혁명론자들이 세상 뒤집어 엎어보았지만 변소에서 향수 뿌리는 격이니, 이는 아예 변소에서 나옴만 못한다. 혁명은 초월이지 앞면에서 뒷면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다. 폭력으로 백성을 다스리거나, 더구나 폭력으로 혁명하자는 논리는 일종의 복수극이요, 원한 파급의 불길한 방법인 만큼 참으로 생을 사랑하신 옛 성인의 한탄하시는 바 아니겠는가?
지뢰복 : '지뢰복' 혹은 '부'의 괘상은 동짓날의 기운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는 첫 효만이 양의 상징으로서 모든 음기 가운데 호로 일양이 생함을 말한다. 비록 동자가 춥지만 그 가운데 양기가 나오면서 봄을 예고하니 부흥의 징조이다. 거꾸로 하지의 괘상은 맨 아래의 음의 상징 하나뿐으로, 하지가 덥기는 하지만 벌써 일음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우주 순환의 천리로 보면 영원한 상승의 양기도 없고, 영원한 하강의 음기도 없다. 음극즉양이요, 양극즉음이다. 지뢰복의 아래 뢰는 인체에 있어서는 담경락에 속하며 소위 소양상화의 출처에 속한다. '담'을 단순히 간 가운데 있는 '쓸개'라는 기관으로 인식한다면 곤란하다. 소화기관의 탱크 역할로서 단백질과 기름의 분해 효소가 나오는 정도로 인식한다면 한의학의 경락체계를 너무 모르는 소치다. '쓸개 빠진 놈'이라 말할 때 우리는 그 어떤 마음의 용심이 부족한 사람을 비꼬아서 말하지 않는가? 담은 '중정지관'이라 하여 바로 그 중도를 잃지 않게 하는 유심적 기능의 경락으로서 넷째 발가락을 지나는 엄연한 유체생리적 기관이다. 더구나 상화는 소양이라 표현하여 '족소양담경'이라 통칭하는데 '서로 상' '불 화'의 합성어인 상화의 뜻은 매우 중요하다. '자존심', '오기' 등의 주체적 사고 능력이 배제된 인물을 '쓸개 빠진자'라 하듯이 담은 인간의 독립자존적 자주심에 해당한다. 기생적 의타성 성분의 인간은 언제나 대담하지 못하다. '담력이 부족하다'이 뜻은 무엇인가? 곧 용기, 의로움, 주체성, 한번 죽을 각오 등 투혼의 결여를 말한다. 지는 '곤'이라고도 한다. 좋은 의미로 부드러운 여성적 모성을 뜻하지만 나쁘게 작용하면 곰살 궂은 악에 해당한다. 매사에 너무 긍정적 칭찬만 일삼는 모성은 자식을 유약하게 키운다.
엄부의 질책이 없는 유약함은 곤괘의 나쁜 발전이다. 그러므로 소양지기의 날카로운 담력으로 유약함을 징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흥한다. 이것이 지뢰복의 깊은 의미다. 뇌는 번개와 같이 오는데 괘는 진뢰라고도 한다. 한번 크게 '오기'를 내어 큰 분심을 내어 자신의 나약, 나태를 꾸짖어 큰 발심을 하면 부흥할 것이다. 담기능이 향상되어 대담한 마음을 쓰고 보면 절로 부하가 따르게 되니 곧 장군의 용심이다. 또한 소양상화는 바깥의 충고이니 나를 키워주는 고언은 달게 받아야 한다. 졸장부가 감언에 속아 대사를 그르치니 소양경의 담은 그 내용물이 비록 쓰나 몸에 이롭다. 오죽하면 웅담의 힘을 빌려서 기를 기르려 했을까? 이는 곰의 대담무쌍한 기를 취하고자 함이니 만물의 영장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웅담을 크게 채취하고자 곰을 수개월 송곳으로 찔러서 화나게 만들어 죽여보면 정말로 곰 쓸개가 크다고 한다. 간특한 인간의 지혜라 아니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담은 용기와 의분심 등의 오기와 관계가 있다. 고이 자란 곰은 아무리 커도 웅담이 자그맣다는데 인간도 너무 '오냐 오냐' 키우다 보면 쓸개 빠진 자가 되지는 않을런지...
제2장 본래 없는 질병과 건강
종이 방학
여백은 활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여백은 가끔 여백인 체로 있고 싶어한다. 마음의 여백은 마치 수면과 같아서 언제나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 여백이 없는 마음은 불건강이요, 질병 그 자체이다. 많은 인식과 감정과 숱한 이론과 법은 마음의 여백을 장식한다. 그러나 하루쯤은 터엉 빈 채 남겨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 종이에게도 방학을...
담양 가는 길
광주에서 담양 가는 길목 왼쪽에 월산초등학교강 있다. 흰 매화가 만발한 교정은 뒤에 대숲이 있어 더욱 멋지다. 온통 대나무숲인 담양 가는 길은 한 뼘만 서울 땅에 옮겨두고 보아도 그 절개가 빛날 것이다. 공장이 안 들어선 전라도의 소나무는 그 빛이 더욱 푸르르다. 먼 훗날 산업체로 꽉 차게 되면 오늘의 풍치를 꿈같이 그리리라. 속아도 스스로 한참 속은 도시 산업문명의 속임수. 물 한컵을 얻으려 생수를 사듯, 공기 한움큼 마시려면 산소 마스크를 사야 하리라. 초등학교 뜨락에는 국화 싹이 올라오고 대나무와 매화꽃이 있는 정경.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학교인데도. 난초만 안 보이지 매란국죽의 사군자가 거지반 있는 시골. 전원. 자연. 이제 앞으로는 전설로 남으리라. 그러고는 공장 근처에 통닭 튀김집, 맥주홀, 카바레가 생기고, 뒷방에서는 고스톱과 포카가 벌어지리라. 변화와 생기 없는 공장문화여! 재미를 인위적인 데에서 찾으리라. 이제는 대나무도 시멘트 모조품으로 만드리라. 매화꽃도 플라스틱으로. 그려서 찍어내는 국화와 난초를 역겹지만 봐야 하리라. 소나무는 누렇게 퇴색해 가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펑펑 나오리라. 안산. 경기도 신도시 안산의 앞바다에서는 바람이 신나게 불어온다. 갯벌이 유별나게 많은지라 '무슨 찌린내가 나는가?' 의심했지만 눈을 들어 건너다보니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시멘트 연통에서 검은 마왕같이 치솟는 그을음. 찌린내가 아니라 썩다 썩은 폐수 냄새가 아닌가? 인천 앞바다에 커다란 배가 수십 척 떠 있는 모양은 어떤가?
그러고는 그 기름투성이의 바닷물을 펌프 호수로 빨아올려 수족관의 생선에 공급하고 있는 것은? 환한 네온사인 속에서 행복하게 살 한 점, 두 점, 술과 함께 들고 있는 가족의 파티는 어떤가? 눈이 한쪽에만 붙은 괴어, 지느러미가 내리 붙거나 울통불통해진 뼈를 지닌 기이한 물고기가 접시에 올라와 복수를 한다. 인간의 태아도 사자가 오그러진 모습, 반은 동물의 모습, 얼굴 없는 귀신의 형상 등으로 원수를 갚는다. 2천 6백여 공장의 폐수가 설사 잘 걸러져 낙동강을 흘러나간다 해도 그 물이 어디 산 물인가? 상추를 기름물에 푹 삶았다가 깨끗한 물에 헹구어 놓으면 어디 그게 상추인가? 진 다 빠진 물과, 혼탁해진 공기는 잘살고자, 편리하고자 만든 산업사회의 발전에 들인 비용의 수억만 배를 들어도 회복하기가 어렵다. 비틀어 꺾어놓은 팔을 제 아무리 우수한 기술로 원상복귀 시켜도 성한 것만 할까?
싸아! 달콤한 매화꽃 내음에 때 이른 벌이 어느덧 윙윙거리는 초봄. 매화 냄새에도 재채기가 나는 도시인은 오늘도 방황하고 있구나! 주저주저하고 있구나! 저주받을 문명을 떠날까 말까?
팔문팔답
첫째 물음 : 이 우주간에 첫째가는 물건은 무엇이며 질병의 괴로움을 퇴치하되 영원히 없애려면? 답 : 그것은 삼성하반월이니 별 셋 밑에 반달이다.(나옹선사 말씀 중) 또한 질병은 몸이 있으므로 생기니 몸이 없으면 병도 없는데 몸이 없으려면 태어나질 말아야 한다. 안 태어나는 방법은 한 번도 태어난 일, 죽은 일 없는 물건을 깨닫는 수밖에 없다. 그만 질문을 쉬고...
둘째 물음 : 어째서 남자 여자라는 상대가 있으며 결혼의 의미는 무엇인가? 답 : 남녀가 없어 시집 가고 장가 가는 일이 없는 곳이 있는데, 서로 도와서 그곳에 도달하는 작업을 성실히 수행함이 결혼의 참다운 의미이다. 실상은 남녀가 본래 없는데 양전기와 음전기와 음전기적 두 가지 마음의 집착으로 남녀가 나뉘었다. 한 생각의 망상으로 남녀가 나뉘는 바람에 반쪽의 삶에서 합해야 완전해지는 추구를 서로 맹렬히 하나 상호의존과 구속의 공포는 자칫 두터운 업을 더 쌓기 쉬운 허물이 많다. 각자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셋째 물음 : 시간의 초월이란 도대체 어떤 뜻으로 쓰이는 말인가? 답 : 시간의 개념상 두 가지가 있는데, 즉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일정한 곳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왜 없겠는가? 문제는 출발과 도착의 중간에서, 즉 목표까지의 도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지루감, 초조감, 달성의욕 등을 말하는데, '시간'의 초월이란 이러한 심리적 '권태감', 즉 '아! 빨리 왜 안 가나?' '심심해'등등의 번뇌적 상황을 관조하는 것이다. 인생을 돌이켜보거나 앞을 내다보거나 '왜 오늘은 옛날 같지 않지?' '오늘은 쥐어짜더라도 미래에는 행복해야지' 등등, 자꾸 과거심, 미래심으로 치닫는 비교의 마음을 시간적 슬픔이라 하고 죽은 마음이라 한다. 너무나 즐거운 일에는 자연히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게 된다. 초조하게 자꾸 들여다봐지는 시계는 심리적 시간의 표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을 잊어 즉각 즉각 살고 현재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는 하나 실천해야 할 행복의 명제이다. 특히 규칙과 시간의 노예인 이 문명시대의 두뇌는 장차 필히 해방되어야 한다. 일(직업)이 곧 취미인 사람이라면 그는 거의 시간의 해탈자임이 틀림없다고나 할까?
넷째 물음 : 몰두, 즉 집중과 명상의 차이점은? 답 : 명상은 깨어 있음이고, 집중은 고도의 몰두 현상이다. 비유하면, 운전중 기사가 골똘히 어젯밤 부부싸움의 원인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면, 그 차의 운전 상태는 가히 신뢰스럽지 못하다 할 수 있다. 백미러까지 수시로 살펴가면서 엔진의 소리로 진단도 하고 브레이크, 엑셀러레이터, 클러치를 면밀히 작동시키고, 도로도 살피고 승객의 분위기도 민감히 파악할 수 있는 각성된 기사가 모는 차는 안전하다. '나는 오직 엔진 오일의 개발에 전념하겠다!'의 프로 정신이 집중과 몰두의 산물이라면, 전체를 작동하는 완벽한 운전을 행하는 운전사의 역할은 명상이다. 마음은 전체적으로 깨어 있되, 부분적 몰두 연구의 산물인 발전적 용심이 필요하다. 물론 먼저 주가 될 것은 명상 공부부터이지 결코 집중 훈련이 아님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물음 : 명상이 주는 건강에의 도움은? 답 : 영향은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수면 현상을 보자. 천하 없는 즐거운 일도 언젠가는 피로하게 마련인데, 열 가지 일 다 제쳐놓고 우선 잠부터 보충시키고 그 다음 삶을 영위하지 않는가? 명상이 어찌 수면보다 못하겠는가? 예민하게 깨어 있는 작업은 수면조차 주시할 수 있는 자가 객관화 작업이다. 아무리 바빠도 오줌, 똥 마려우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명상이 대, 소변 해결하는 것만 못 하겠는가? 비워버리는 작업 이것은 재충전이니, 곧 건강 에너지의 원천이다. 산해진미 등, 최고의 맛을 다 본 후에는 혓바닥을 깨끗이 물로 헹구어내야 다음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어찌 명상이 물보다 못할까 보냐? 담담한 마음으로 되돌아와서 분주히 사용했던 마음을 씻어야만 다시 의식 감정의 흐름 맛을 정확히 느끼고 판단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깨어 있음(예민), 비움(휴식), 담백함(무정). 이 세 가지는 명상의 추춧돌이며, 건강의 지름길이라 단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섯째 물음 : 약이 안 되는 풀 이름 한 가지만? 답 : 어떤 풀 이름을 대도 틀린다. 왜냐? 약이 안 되는 풀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뒤집어 얘기하면 모든 식물이 다 약이 된다. 보는 눈이 없어서 약이 아니라고 여길 뿐이다.
일곱째 물음 : 마악 잠이 들려 할 때 숨을 내쉬는 것으로부터 잠이 시작되는가? 들이쉬는 것으로부터 잠이 시작되는가? 답 : 내쉬는 숨부터 잠은 시작된다. 잠은 의식의 배설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마지막 죽는 순간은 어떤 호흡부터 시작될까? 그건 가봐야 한다. 잠은 아주 예리한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조사할 수 있지만 죽음은 오직 한 번의 경험이지 않은가? 잠들 때 정밀히 깨어서 주시하면 호흡 상태를 증명할 수도 있지만 죽을 때는 딱! 한 번 죽으니 그때 가서 관찰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 자신의 호흡을 응시할 내관의 힘은 평소 수면까지도 주시하는 습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여덟째 물음 : 비에 젖지 않는 물건은? 답 : 일찍이 성월 대선사께서 '일성장저출운래 : 한 소리 긴 파리가 구름으로부터 나온다'라 하셨다.
유심론적 한방치료 1
올바른 양생의 근본은 이럴까 저럴까 의혹하여 심한 사랑 분별하는 그 분별을 놓는 데서 출발한다. 혹하므로 공상이 생긴다. 모든 질병은 탐욕과 분노에서 생긴다. 지나친 탐욕은 냉병을 일으키고 지나친 분노는 열병을 불러들인다. 몸이 차면서 비대한 사람 치고 욕심 적은 이가 드물다. 몸이 더우면서 수척한 사람 치고 분노심이 적은 이가 드물다. 이 극단의 두 마음은 모두가 질병의 뿌리가 된다. 예를 들면 입술을 모으고 숨을 들이쉬면 입안에 차가운 기운이 생기듯이 모든 취하고자 하는 기운은 차가움을 수반한다. 남녀간에 서로 애욕의 정이 생기면 자연히 남녀의 두 근에 애수가 판다. 무릇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것이 형상화될 때는 물을 수반하며 심하면 냉기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차갑고 아픈 냉통의 감각까지 질병이 진행되었다면 무엇인가를 사랑하여 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누적시켰던 결과이다. 대체로 욕심의 대상은 형상 없는 데 대한 욕심과 형상 있는 데 대한 욕심으로 나눌 수 있다. 형상 없는 데 대한 욕심의 대표는 명예욕, 권력욕이다. 형상 있는 데 대한 욕심의 대표는 재물욕과 성욕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지속되는 것은 가장 굳은 재물욕이며, 성욕은 그 부드러운 감촉을 위하고자 함이니 재물보다는 덜 지속되며, 형상 없는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비교적 빨리 나타났다 없어졌다 한다. 그러므로 그 대상에 따라 그 취하고자 하는 기운도 다르겠지만 근본은 탐욕에 있다.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구하여 탐한 마음을 잘 조절하면 곧 양생의 대도이다. 마음에 거스르는 일이 있으면 누구나 다 충격을 받는다.
충격을 받으면 저절로 열이 나는 것은 정신의 세계나 물질의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충격의 열을 하루하루 쌓아가다 보면 저절로 상기가 되면서 더러는 어지러워지고 습관적으로 투쟁적인 분심이 솟을 것이다. 이 분노심의 점차적인 누적은 대단히 아픈 열병이나 현기증을 수반하는 질병이 된다. 이 탐욕과 분노는 종이의 양면과 같아서 탐욕으로 인하여 분노가 생기는 상대적인 관계가 생긴다. 물론 거꾸로 분노로 인하여 탐욕이 생긴다는 역이론도 성립된다. 인간이 애당초 마음에 욕심이 생기어 그 무엇인가를 취하고자 하므로 뜻에 맞으면 만족하지만 욕심만큼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그 역현상인 분노심이 생기게 된다. 분노심의 특징은 파괴하려는 것이다. 즉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없애려는 경향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의 탐욕과 분노의 조절은 양생의 대도이다. 양생이라 함은 죽지 않고 오래 장수하여 연명하는 길만이 아니고 살되 무병하고 건강하며 평화롭게 사는 길을 말한다. 천하를 얻었다 한들 자신의 정신과 건강이 균형을 잃었다면 그 기쁨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대의라면 사회의 병도 과감히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질병,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면, 대의는 더 큰 안목으로 참다운 이치를 관찰하여 능력껏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어지러운 전란이 일어나서 난세가 되었는데 자기의 손 아래 떨어지는 환자나 치료하고 있다면, 이는 소의이다.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알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기에 앞장선다면 그 자세가 곧 대의의 자세이다.
전쟁의 부산물로 나타나는 숱한 질병은 전쟁만 없으면 곧 없어지게 될 병들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도 인간이 일으킨 것이고 한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난 살기가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난 살기가 인간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파되어 천하를 뒤덮는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요컨대 어떠한 전쟁, 질병, 고통도 근본은 한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난세라도 근본은 한 인간의 어지러운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되어 그것이 세력을 얻으니 시대가 살육의 시대도 되고 음란의 시대가 된다. 마음의 음기가 양과의 조화를 잃고 홀로 쌓여 독해진다면, 그는 이미 살인자의 소질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양기가 음과의 조화를 잃고 홀로 분분히 날뛰면 그는 이미 음란의 소질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음양으로 치우친 것은 아니지만 애매한 마음만 길러내다 보면 그는 이미 세상을 혹할 소질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전쟁, 갈등, 혹란의 근본이 한 사람의 살기에서 출발하듯이 평화나 건강의 근본도 한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유심론적 한방치료 2
한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므로 그 마음이 전파되어 세상에 평화의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일과 사회의 빈곤과 질병을 없애는 것은 대의의 사명이다. 한 사람이 평안하므로 가족이 평안하고 가족이 평안하므로 이웃이 평안하고 이웃이 평안하므로 국가가, 천하가 평화롭다. 내 마음이 평안하므로 어떠한 악심에 물들지 아니한다. 악심이 없으므로 악한 병이 없게 된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의사 자신의 양생으로부터 출발한다. 양생 잘한 의사로 인하여 수많은 환자가 양생 잘 할 것이다. 스스로 살펴보아 마음의 음양이 너무 치우치지 않아서 나도 양생하고 남도 양생하며 나아가 천하를 양생하는 것이다. 대도의 실천은 다른 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도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진심을 찾아서 응용이 자유자재하여 그 덕을 드러내어 펼치는데 있다. 마음의 본체로 본다면 참도 없고 거짓도 없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다 포함하는 것이 곧 마음이므로 이것은 참이다. 분별하는 것은 이미 본체에서 멀어진 것이다. 무분별, 무작, 무위는 거의 본체에 가까운 표현이다.
즉 '있다 없다' 하는 상태의 유무를 초월한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이 진심이다. 만질 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있는 것이다. 선악, 생사, 미추, 우열, 명암 등의 일체 상대적인 세계가 없다. 이것이 사람마다 모두 지닌, 진심이 본래 가진 덕이다. 이 묘한 덕을 잘 개발하여 사용하여 나가되 진심으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거짓된 마음은 스스로 고통이고 남에게도 고통이다. 거짓된 마음은 인류의 질병의 시초이다. 거짓된 마음은 거스르는 마음이다. 순화하는 마음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와 순환에 순종하고 따르는 마음이 곧 진심이다. 즉 양의 시절에는 양다운 마음이 진심이다. 음의 시절에는 음다운 마음이 진심이다. 천시는 사시로 구분되고 하루는 밤낮으로 구분되고 남녀로 구분된다. 봄에는 봄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며, 여름에는 여름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며, 가을에는 가을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며, 겨울에는 겨울다운 마음을 지키는 것이 진심이다. 낮에는 낮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며 밤에는 밤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다. 남자는 양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며 여자는 음다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심이다. 춘하에는 양다운 마음을 쓰고 추동에는 음다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심이다.
봄, 여름에는 천지에 양의 기운이 충만하므로 마음을 발양하여 분수에 넘치지 않게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다. 이렇게 천기와 같이하여, 특히 살기라든가 비통한 마음이나 공포에 마음을 나누지 말 것이다. 가을, 겨울에는 천지에 음의 기운이 작용할 때이므로 마음을 수장하여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천기와 같이 하여 특히 지나친 교만이나 음란한 마음, 초조한 마음을 나누지 말 것이다. 살기나 비통한 마음이나 공포심은 양기를 상하게 하므로 만물의 생장을 방해할 것이니 부득이 처벌할 일이 있거든 가을, 겨울에 가볍게 처리할 것이다. 지나친 음란이나 초조한 마음과 교만심은 음기를 상하게 하고 만물의 수장을 방해할 것이니 부득이 생색을 내야 할 일이 있거든 봄, 여름에 가벼이 드러내야 할 것이다. 봄, 여름과 낮과 남자에게는 양실병이 많을 것이며 음허병이 많을 것이다. 가을, 겨울과 밤과 여자에게는 음실병이 많을 것이며 양허병이 많을 것이다. 봄, 여름과 낮과 남자에게서 약간 양기가 성한 것은 병으로 볼 수는 없으며, 가을, 겨울과 밤과 여자에게는 음기가 약간 지나친 것은 병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봄, 여름과 낮과 남자의 경우에는 음악으로써 양실을 교정하고, 혹은 양약으로써 양허를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가을과 겨울의 밤과 여자의 경우는 양악으로써 음실을 교정하고, 음허를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봄, 여름과 낮과 남자에게 양약을 쓰는 것은 천시에 따라 생장의 기능을 거들어주는 것이고 음악을 쓰는 것은 지나침을 교정하는 것이다. 가을, 겨울과 밤과 여자에게 음악을 쓰는 것은 천시에 따라 수장의 기능을 거들어주는 것이며 양약을 쓰는 것은 지나침을 교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천시와 운기에 순응하여 마음과 섭생을 조절해 나가면 언제나 진심을 잃지 않고 양생의 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의도입문
음양 : 음양을 어렵게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구구이 문자와 지식에 집착하여 현란하게 학설을 나열함은 이로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분란만 조장하여 유파의 독선과 자만이 생길 것이다. 한 마음 밝으면 양이요, 한 마음 슬프면 음이다. 한 마음 선하면 양이요, 한 마음 약하면 음이다. 한 마음 알면 양이요, 한 마음 모르면 음이다. 한 마음 기억하면 양이요, 한 마음 잊으면 음이다. 한 마음 더우면 양이요, 한 마음 추우면 음이다. 한 마음 들뜨면 양이요, 한 마음 침울하면 음이다. 한 마음 깨어나면 양이요, 한 마음 잠자면 음이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요컨대 양의 근본은 마음에 맞는 쪽으로 흐르면 일컬어 붙일 수 있는 이름인 것이다. 음은 마음에 맞지 않는 경우 부를 수 있는 칭호이다. 사람이 어떠한 대상에 부딪혔을 때 마음에 맞는 다면 그는 이미 양인이요, 마음에 맞지 않는다면 이미 그 순간 음인인 것으로, 음이 순하게 작용함을 음덕이라 하고 양이 순하게 작용함을 양덕이라 한다. 마음에 맞는다 할 수도 없고 맞지 않는다 할 수도 없을 때의 기운을 충화지기라고 한다.
충화지기가 역하면 혼돈된 마음이 생하고 순하게 작용하면 중화의 묘한 덕이 생하게 되는데 음이 지나쳐 균형을 잃거나 양이 지나쳐 균형을 잃으면 병이라 일컫는다. 이것은 인체에 고통을 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면목의 마음은 음, 양, 충화지기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그 어느 것도 다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의사는 이러한 마음의 양면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명확히 분별하여 치병의 기초를 닦아야 할 것이다. 단지 초근목피나 약의 이름만 많이 외면 능할 바 있겠는가? '마치 칼만 수집해 놓고 칼 쓰기를 안 배우는 경우와 같다' 하겠다. 지나치게 병명에 의존하여 처방하거나 스승이나 혹 다른 이의 치험례를 들고 맹신하여 음양의 구분 없이 비방인 양 사용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일 것이다.
오운육기 : 오행과 육기를 유심적으로만 전개하되 부조화된 상태의 오행과 조화된 상태의 오행으로 나누어보았다. 한 마음이 어지러우면 목의 실조이며, 한 마음이 초조하면 화의 실조이다. 한 마음에 의심 있으면 토의 실조이며, 한 마음이 슬퍼하면 금의 실조이다. 한 마음이 두려워하면 수의 실조이며 한 마음 즐거워하면 목의 덕이라 할 수 있다. 한 마음 환희하면 화의 덕이라 할 수 있고, 한 마음 올바로 사색하면 토의 덕이라 할 수 있다. 한 마음 자비스러우면 금의 덕이라 할 수 있고, 한 마음 조심하면 수의 덕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맞되 그 즐거움이 지나치지 않으면 양의 덕이 생기고, 곧 그것에서 목화의 덕이 생기는 것이다. 마음에 맞지 않되 그 싫어함이 지나치지 아니하면 음덕이 생기고 곧 그것이 금수의 덕과 일치하는 것이다. 토의 덕은 곧 충화지기의 덕이니, 충화시키려는 마음의 세력이 온유함을 말한 것이다. 육기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한 마음이 탐욕하면 한기라 할 수 있으며 한 마음 권태하면 습기라 할 수 있다. 한 마음 방탕하면 서기라 하고, 한 마음 우치하면 조기라 할 수 있다. 한 마음 분노하면 화기, 분주하면 풍기라 한다. 이상은 풍한서습조화의 육기가 실조된 상태를 비교한 것이다.
한 마음 고요하면 풍기가 순화될 것이다. 한 마음 청정하면 한기가 순화될 것이다. 한 마음 조심하면 서기가 순화될 것이다. 한 마음 정진하면 습기가 순화될 것이며, 한 마음 지혜로우면 조기가 순화될 것이다. 한 마음 자비로우면 화기가 순화될 것이다. 이상은 육기의 실조된 상태로 변했을 때의 마음을 비교한 것이다. 즉 마음이 산란한 이는 풍병에 걸리기 쉽고, 마음이 탐욕스러운 이는 한병에 걸리기 쉽다. 마음이 방탕한 이는 서병에 걸리기 쉬우며, 마음이 나태한 이는 습병에 걸리기 쉽다. 마음의 분노가 심한 이는 화병에 걸리기 쉽다. 다시 역으로 얘기하면, 마음이 고요한 이는 풍병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청렴한 이는 한병이 없을 것이다. 마음에 조심성이 있는 이는 서병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부지런한 이는 습병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지혜로운 이는 조병이 없을 것이며, 마음이 자비로운 이는 화병이 없을 것이다.
어지러운 증상이 많은 이는 마음이 고요하지 못함을 반성할지언정 무조건 약의 효력에만 의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몸이 찬 사람은 지나친 욕심을 반성하여 가며 약에 의지해야 하며 몸이 너무 더운 사람은 마음의 방면함을 억제해야 할 것이다. 몸이 비대하여 습병이 심한 사람은 마음의 권태로움을 반성하여 약에 의지해야 한다. 몸이 지나치게 건조한 사람은 적당히 골고루 흡수하는 지혜가 부족함을 반성하여 가며 약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상기가 잘 되는 이는 자비심을 길러가면서 약에 의지해야 할진대 마땅히 의사는 이에 대응하여 상품의 치우침을 관찰한 후 대중 치료를 행하여 그 지나침을 다스려야 한다. 풍서화병은 대체로 음약으로 다스리고, 한습조병은 대체로 양약으로 다스리면 별 과오는 없을 것이다.
정도 : 요약하면 의사나 환자나 이미 자기의 마음속에 병도 있고 약도 있다. 이치는 그렇다지만 어찌 누구나가 다 스스로 병을 다스릴 수 있을까? 때로는 부자 같은 극약도 필요하고, 세상이 태평하면 비교적 병이 완만하여 인삼이나 지황 정도로 잡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구병 방법은 마음의 순화가 기초를 이룬다 하겠다. 왕왕 환자는 중증까지 온 과정은 까맣게 잊고 의사에게 조속한 치료를 요구하며, 의사는 지나친 책임감과 욕심에서 독극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일을 그르치니, 피차에 불행한 현상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오히려 간단하고 명백하고 담담한 데 있다. 자꾸 사려 분별하여 본성에서 멀어짐은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의, 약사로서는 약방문을 조금밖에 못 욀망정, 음양, 표리, 한열, 허실만은 분별하여 병을 서서히 잡아주는 것이 떳떳할 것이며 환자 치료의 최선책이라 본다. 성품이 급한 사람이 오거든 마음을 느슨히 하여 음적인 약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나 의자된 사람부터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무슨 재주로 환자의 심기를 관찰할 수 있을까? 차라리 병을 더하게는 안 하겠다고 겸손한 자세로써 처방을 낸다면, 무난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우리는 옛날의 대도에 견해를 같이할 수 있도록 자꾸 연구해야 하겠다.
심의가일침 1
'나는 육체병의 왕이요, 세존께서는 심의왕이시다!' 부처님을 만나 뵙고 나온 '기바'동자는 혀를 내둘렀다. 해부, 생리, 병리, 약리에 이르기까지 육체의 비밀을 모조리 섭렵했기에 세계 최고의 의술을 달통한 기바는 일찍이 은사로부터 전수 받은 의학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터. 그러나 부처님을 마음병의 왕이시라 찬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법 선시같은 유행가사 한마디. '세 치 가슴속 열어 보여도 사랑은 보여줄 수 없고, 봄이 되면 나뭇가지에 꽃이 피어도 그 가지 속엔 꽃이 있던가.' 누가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나 뉘 안 보이는 마음을 부정하리오? 동양의학에서 분류하는 의사의 등급 그 첫째가 심의이다. 식의, 약의, 즉 식이요법과 약을 잘 쓴다 해도 마음으로써 마음을 치료하는 심의에 못 미친다. 이심치심(마음으로써 마음을 치료한다)의 비법은 조계종의 어원이 된 조계산에 주석 하셨던 육조 혜능 대사의 부촉에도 잘 나타나 있다.
마음의 중용 즉 중도의 묘한 뜻을 잃지 않게 하라는 가르치심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너에게 법의 뜻을 묻되 있음을 물으면 없음으로서 대하고 무를 물으면 유로서 대하고 범(범속함)을 물으면 성(거룩함)으로 대하며, 성을 물으면 범으로 대하여 두 도가 서로 인하여 중도의 뜻이 살아나게 하라.' 법보단경.
요컨대 마음의 평화로 안내하는 길이 심의의 사명인데 행복, 즉 참건강은 중에 있으니 양 극단을 피한다. 말법시대가 되니 마강법약하여 흑백론적 극단주의가 판을 쳐서 유자(있는 자)는 오직 있는 놈과 친하고, 무자(없는 자)는 없는 놈과 패거리를 짓고 있으니 부익부 빈익빈이 되었다. 부자와 가난한 계급의 상호 교통은 커녕 부르주아 타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의 폭력공산주의 이념이 강화되어 있지를 않나, 게다가 싸늘한 자본주들의 교만과 냉혈동물 같은 경멸 또한 비열한 폭력에 불과하다. 육조의 분부대로라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서로 의지하여 둘이 서로 의존하게 하라. 그리하여 유와 무, 미와 추, 성과 범, 선과 악, 유식과 무식, 어두움과 밝음, 남자와 여자, 현명함과 어리석음, 강함과 약함 등등이 상호 의존하는 인연이 되어 중도의 화평을 살아나게 하라'는 뜻일텐데 전혀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말세 중의 상말세가 작금 지구촌의 실태라 아니할 수 없다. 의학의 기본은 건강인데, 근육질 강한 임이 건강이라면 사자나 곰에게 건강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역기나 아령으로 잘 단련된 체격 속에 감추어진 마음으로 내뱉는 사이 비성 기도(?).
"오! 주여! 저 사탄의 후예 우상숭배자들을 남김없이 벌하소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게헨나(지옥)의 불길에 빠지게 하소서!" 쿵푸나 태권도로 잘 뭉쳐진 단전에 힘주고 안 보이는 마음으로 내뿜는 사이비 기원(?). "나무관세음보살! 저 마군들의 후예 인천교에 불과한 하근기의 교인들! 무간지옥에나 빠지게 하소서!" 종교로 똘똘 의식화되어 피차를 나누어놓고, 시시비비로 먹칠된 마음을 가진 근육질은 건강이 아니라 병 중의 악질 병이 아닌가? 분리의식 없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건강! 사부대중의 등불인 불법대해는 이거다! 저거다! 의 고집스러운 편견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총명한 심의왕의 후손인 불자들은 실생활에서도 마땅히 절대주의적 망상을 없애야 한다. 송이버섯, 상어간유, 알로에, 죽염, 초란, 로얄제리, 작설차, 커피, 야채생즙, 산삼 등 음식, 건강식품, 약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절대로 끝내준다' '어떤 병이든지 절대적으로 낫게 해준다'는 식의 법은 없다는 것을... 아! 마음조차 극단을 피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육체가 뚱뚱한 사람이 축축한 습지의 미끌미끌한 버섯을 먹어서야 어디 이거... 또한 열이 많아 눈이 충혈되고 두통이 있는 사람에게 인삼, 산삼 등을 먹여서야... '뚱뚱하거든 건조한 것, 열이 있거든 찬 것, 이도가 서로 인하여 중도의 뜻이 살아나게 하라.'(금오단경(?)) 만고불변의 상대성 진리를 모르고서야 어찌 '심의왕의 제자'라 하겠는가? 마음과 육체가 어디 둘이던가?
심의가일침 2
복차무불유
너희들 유학인 연각 성문이 금일에 회심하여 대보리인 위없는 묘각에 나아가려 할 새, 삼매와 비파사나를 닦을 적에 미세한 마사가 생기는 것을 알지 못하나니, 음마나 천마, 귀신이 붙거나 도깨비를 만날 적에 마음에 분명히 알지 못하여 도적을 잘못 알고 아들인 양 여기기도 하고, 또는 그 중에서 조금 얻고 만족하다 하면 제4선천의 무문비구가 '성과를 증하였노라' 허망하게 말하다가 하늘의 과보가 끝나 쇠하는 모양이 나타날 적에 '아리한도 후유신을 만난다'고 비방하다 아비자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되리라. 능엄경 단편일람, 동국역경원 능엄경 주해(운허 큰스님 주)
이는 수행자의 공부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마사를 경계하심이니 모두가 색, 수, 상, 행, 식의 오음 변화이다. 비유하면 혀로 맛본 크림맛이 곧 혓바닥의 본체로 아는 것 같으니, 중생의 모든 병이 이와 같이 전도된 착각에서 온다. 아픈 경계를 느끼는 감각의 주인공은 혓바닥이고 아픔은 쓴맛이라 가정하면, 쓴맛은 혀의 대상이지 곧 본질은 아니다. 쓴맛만 보다 보니 그에 혀의 본 맛으로 알고 중독되다 보니 모든 것이 쓰게 보일 뿐 다시 찬 냉수로 헹구어내고 보면 달고 신맛도 다 아는 혀 아닌가? 혀라면 모름지기 맛을 다 분별해야 하고 마음이라면 모든 식을 잘 분석해야 한다. 내가 '안다'고 하면 모를 때의 나는 누구이며 내가 '모른다'하면 알 때의 나는 누구인가. 눈이 '빨갛다'보면 푸를 때의 눈은 무엇인가? 종교인은 모름지기 병을 관하여 깨달음으로 변신해야 하는데 다음의 인용으로 대신한다. 화두금강이 여래의 앞에 합장하여 불의 발에 정례하고 사뢰었다.
"저는 오랜 겁 전에 탐욕의 성품이 많았나이다. 불이 출세하시니 이름이 공왕이시라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더미가 된다 하시면서 저로 하여금 백해와 사지의 차고 더운 기운을 두루 관하라 하시었나이다. 신기한 광명이 속으로 엉기면서 음란한 마음이 변화하여 지혜화가 되었으며, 그때부터 여러 불이 저를 불러 '화두'라 하였사오니 저는 화광삼매의 힘으로 아라한을 이루고 큰 서원을 발하여 부처님네가 성도하실 적마다 저는 역사가 되어 마원을 항복받나이다. 불원통을 물으시니 저의 큰 지혜의 광명을 내어 무상각에 으뜸과 제일이 되겠나이다."
잘만 관하면 음욕이 곧 지혜의 광명도 되는가 보니 보살경에 '탐욕이 곧 보리심'이라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병자들의 쌓인 업이 두터워 스스로 주체하기 힘들고 스스로 관할 힘이 없어 그렇지 어떠한 독이라도 변화할 전환점인 부처의 가피를 얻으면 무불유할 것이다. 즉 '낫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능엄경) 복차무불유라! '능엄경을 먹은즉 낫지 않음이 없으리라!' 그런데 '아난아! 알아라! 말법시대에 있어 출가 수도하는 척하면서, 음욕을 찬탄하고 마의 권속이 되게 하며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음과 음으로 전하며, 이러한 사정들이 사람의 심부를 매혹하여 죽은 뒤에는 반드시 마민이 되어 정변지를 잃어버리고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라...' 호된 경고의 말씀이 계시니 애욕은 욕심으로 인정하는 솔직함이 낫지 않을까? 유마거사께서 '직심이 도량이라' 하셨거늘 이 지구촌의 수행자들은 차라리 자신의 탐욕과 분노를 인정하고 정밀히 관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무리 묘한 낙이라도 그곳에 안주처를 얻은 양 허망한 사견으로 인도한다면, 무상법칙에 따라 낙은 고로 변하고 견혹의 과보는 과보대로 치러야 하리라. 끔찍한 일.
있어야 할 자리 : '매경한고 발청향' '매화는 춥고 매운 겨울을 지나야 맑은 향을 토한다.' 대충 이런 뜻의 글이 있다. 겨울 지난 이른 봄의 산수유 꽃 냄새도 정말 일품이다. 수선화, 매화, 산수유... 이들 꽃의 향기의 특징은 톡 쏘는 데 있으니 겨울의 억제함 속에서 단련된 맛이다. 약간 독한 듯하면서도 싸아한 향 내음은 달콤한 맛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누군가 꺾어버린 산수유꽃 한 가지에 봄은 이미 성큼 다가왔건만, 있어야 할 자리를 잃은 꽃이 불쌍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꽃가지도 슬프지만 사람의 위치에는 더욱 한심함을 금할 수 없다. 본래 음양의 상대적 관점으로 삶을 관조해 낸 동양철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 절대의 말장난인 의식분열로 몰고 간 학문이 아니다. 태극은 곧 심왕이요, 부처요, 열반이요, 신이다. 남녀, 음양이 있을 리 없고, 사랑, 미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등불은 높이 걸어야 하듯이 법은 높은 곳에 올려져야 하는데, 비법, 사법이 우상화된 작금의 모든 종교계를 한탄한다. 이 나라뿐 아니라 전 지구촌의 종교계는 진리보다는 비진리를 숭배하고 있다. 힘, 돈, 매력의 스타들이 심왕보다 더 높고 행복을 주는 약이라고 아우성친다. 곧 사라지거나, 좀 길게 가거나 무상한 거점에 자신을 확보하려고 기를 쓰다가 얻은 이는 지키기에 바쁘고, 못 얻은 이는 질투가 나서 안달이다. 거점 확보는 자신을 스스로 속임이요, 만들어낸 십상이다.
내가 멸도한 후에 보살이나 아라한들을 시켜 응화신으로 말법중에 태어나서 가지가지 형상으로 윤전하는 이를 제도케 할 적에 혹 사문, 거사, 왕, 재상, 동남동녀와 음녀, 과부, 간사한 도적, 도살자, 육류 판매자가 되어 그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불승을 칭찬하여 그들의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삼매에 들어가게 하되, 끝끝내, '내가 참말 보살이며 참 아라한이다'말하여 불의 밀인을 누설하여 말학에게 경솔히 말하지 말게 하거니와, 다만 죽을 적에 가만히 유언할 수는 있다 하였거늘 감히 어찌 중생을 혼란하여 대망어를 할까 보냐. 내가 비구들을 가르치되 '직심이 도량이라'하여 사위의의 일체 행동 중에 조금도 허망하여 가식됨이 없게 하였거늘, 어떻게 상인법을 얻었노라 자칭하겠는가? 마치 궁핍한 사람이 제왕이라 망령되어 자칭하면 주살을 당하거든, 하물며 법왕을 어떻게 망칭하겠느냐? 인지가 참되지 못하면 과보가 비뚤어지거늘 부처의 보리를 구하려 하여도 배꼽 씹는 사람과 같으리니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느냐? 비구의 마음이 활줄 같으면 모든 것이 진실하여 삼매에 드는데 마사가 영원히 없으리니 이 사람은 보살의 무상지각을 성취하리라 내가 인가하노라.
이상은 (능엄경) 말씀인데. 노파심 간절하신 세존의... 그런데 '나는 얻었다!', '끝냈다', '도달했다'는 자만심을 일으킨 주인공은? 나는 '봤다!' 하지만 보는 놈을 어찌 보며, 얻었다는 신념을 가지지만 그 신념을 내는 놈을 어찌 얻어 가지는가? 얻어 가진다면 외부에서 온 것이니 본래 나는 아니요, 조작된 것이니 가진 것은 잃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듣는 놈을 들을 수 없고, 말하는 놈은 말할 수 없으니, 관음보살 무설설 남순동자 불문문이라니...
심의왕
돌팔이 심이 난처 고백기
팔의론 : 팔의론이 있는데 소설 (동의보감)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고금의 의서에 무불통지하고 보하고 사하는 의술을 통달하고도 의원으로서 더 이상 갖출 무엇이 있단 말씀이온지...?" "사랑이다" 유의태의 대답이 짧았다. "사랑이라니요?" "과거 공부를 시키다가 말고 왜 사랑타령이오니까." 오씨의 목소리가 끼여들었을 때,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 어미에 단호한 울림이 느껴졌다. "위엄 세우지 않고 다정하게 굴면 종당에는 약값을 깎으려 기어붙는 것이 병자들의 심성올시다." "의원의 신세를 지면 아무리 독하고 가난한 이라도 밥 한술은 먹여주는 터이니 병자의 빈부를 왜 굳이 따지려들꼬." 잠시 도지가 방만하게 웃는 소리가 났고, "그럼 의원은 흙 파먹고 삽니까?" 하는 오씨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유의태 앞에 술상이라도 놓여 있었는지 돌연 탕! 손바닥으로 술상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의원도 의원 나름. 고을마다 의원을 자처하는 자가 별처럼 깔렸으되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의원은 많지 않아." "긍휼?"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 허준의 뇌리에 유의태의 시퍼런 눈빛이 순에 잡힐 듯이 보였다. 이미 목소리가 자식을 공부시키는 부정을 담은 게 아니었다.
"의원으로 자처하는 허구많은 부류 중에도 여덟 가지 의원이 있다. 능히 네가 그 여덟 가지 의원의 부류를 알 수 있느냐?" "모릅니다." "붓을 들어라." "왜오니까." "적으랄밖에." "그것도 취재 시험에 나오는 문답이온지?" "나오지 않아도 의원이라면 평생 가슴속에 담아두어야 할 조목인즉." 허준이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붓도 종이도 있을 수 없는 남의 방 문 앞일 뿐이었다. 약재창고에 지필묵이 있었으나 달려갈 여유가 없는 걸 깨닫자 허준은 귀를 바짝 방문 쪽으로 열었다. "여덟 가지 의원 중 그 제일을 심의로 친다. 심의란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마음이 편안케 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병자가 그 의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로서 그건 의원이 병자에 대하여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고서야 가능한 품격이다."
"마음 심 자 심의오니까." 방안의 도지가 기록하며 묻는 소리가 났고 허준도 심의라는 글자를 입안에 뇌었다. "둘째가 먹을 식 자 식의, 병자의 병세를 판단함에 항상 정성이 모자라며 병자가 말하는 병병만 기억하고 약을 지어 먹이는 자다." 허준이 또 뇌었다. '식의.' "셋째가 약 약 자 약의, 이 부류도 스스로 병자의 성색을 판단하여 병의 경중을 찾아내려 않고 병자가 구술하는 대로 약방문에 의지해 약을 짓되 병이 조석으로 성쇠가 있는 법과 병자의 근력과 내장의 허실까지를 비교하지 않고 병자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위의 약만 마냥 먹이며 차도를 기다리는 자다."
'심의, 식의, 약의.' 허준이 마른 침을 삼키며 유의태의 한마디 한마디를 뇌리에 새겨갔다. "넷째는 또 무슨 의원이오니까?" "넷째가 어두울 혼 자 혼의, 병자가 위급해 하면 저도 덩달아 허둥대고 병자가 쓰러져 잠들면 저도 궁둥이 붙이고 앉아 눈만 뒤룩거리며 오로지 비싼 약 팔 궁리만 일삼는 자다." 도지가 무엇이 연상되는지 혼자 깔깔거리는 소리가 났고 유의태가 가차없이 말을 이었다. "다음이 미칠 광 자 광의로, 병자란 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항상 과장된다는 걸 모르고 오로지 병자의 말만 듣고 매운 약을 함부로 지어 먹이는 자다. 다음이 망의라 부르는 자로 병자의 고통보다 병자의 의복을 보아 약값을 많이 내는 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이 있고 또한 밤중에 찾아오면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행색이 가난하면 따돌리기 일쑤인 자로 낮에 찾아가도 병자의 마르고 부한 것조차 보지 않으며 오로지 전에 누굴 무슨 약으로 고쳤다는 것만 증험 삼아서 비싼 약이 잘 낫는다고 우기는 자다. 다음이 사의, 이 속일 사 자 사의는 오로지 의원의 행색만 흉내내며 스스로 안 아픈 이도 찾아다니며 병을 보는 체 하다가 그저 제가 꾸미는 한 가지 약으로 만병통치라 우기는 자이다."
"그런 놈 많지요, 마지막은 무슨 의오니까?" "마지막이 죽일 살 자 살의다.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는 이치와 생명이 살고 죽는 이치를 알지 못하며 하물며 아파 고통받는 이를 보고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고 나아가 남은 지은 약방문에 일일이 '이다 아니다' 요란을 떨어 제 이름만 파는 자다." "결국 본받을 만한 의원은 심의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마다 의원이노라 행세할지라도 이 세상이 진실로 기다리고 바라는 의원은 오로지 한 부류의 심의뿐이다." 이은성, (동의보감 상권), 창작과 비평사
자! 이제는 심의의 증거를 불경에서 찾아보자. 인도의 전설적 명의 기바는 기실 세존과 동시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석가모니를 뵙고 장시간 요담(?)을 마쳤겠다? 친견실을 나오면서 하는 말... '나는 육체병의 왕이요, 세존께서는 심의왕이시다!' 물론 찬탄, 외경, 놀라움의 발언이 틀림없으리라. 이래서 부처님이 심의왕이라 불리워지기도 하는데... '마음 고쳐 먹어라!' 이 한 마디처럼 기분 나쁜 말이 없는데 꼭 하고 싶은 충고를 환자 비위 거스를까 무서워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딱 한 번 달리 생각하면 나을 수 있는데 그 말 했다간 침 치료도 거부하고 약마저도 안 드실 분위기의 환자...
이것 참! 문제 중의 문제이다. 무의식세계까지도 적어도 다 까뒤집힐 각오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예의범절, 체면, 수치 등을 고려하는 의사 병자의 위선이 방해가 된다면? '직심이 도량이라!' 솔직한 마음이 도 닦는 자리!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직심이 곧 치병소라!' 강력 주장하고싶다. 심의왕 세존께서는 이미 숙명, 타심통을 익히신지라 빤히 상대의 심리적 동기를 읽으신다. 그러나 환자의 의사나 같이 비슷하게 미혹된 이 사바세계에는 서로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느슨하게... 다른 신통보다 숙명, 타심을 먼저 기도하는 이 무능한 의생의 심정은 잘 이해 못 하시리라. 입이 타고 눈이 뻘개져 두통을 심히 호소하는 장면에 빨리 진통해열제 투여가 급하긴 하다. 허나 다음날, 다음날, 또 오는 그 증상은???
"부인! 저..., 누구를 증오, 시기, 질투하는 일 혹은 원한 품은 사건, 저..., 예를 들면 곗돈 떼어먹혔다든가, 증권회사 권유 믿었다 팍 쌌다든가, 남편이 몰래 낳아놓은 아이가? 아니면 반장선거에서 자식놈이 딱 한 표 차로 떨어졌다든가?" "..."
"돈이야 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왔나요, 뭐? 짊어도 못 자고 가지요? 댁을 방문한 그 아기도 알고 보면 부처요, 몰래 숨어산 그 여자의 고통은 오죽했겠어요? 이해! 이해! 어린 나이에 학생에게 명예심을 키우시려 반장 출마시키셨나요? 남 이겨서 얻은 영광의 과보는 패자의 눈물의 댓가 아닙니까? 인과를 아셔야..." "아니! 설교, 설법하는 거예요? 그런 거 원장님보다 제가 훨씬 더 잘 알아요! 그렇게 마음 잘 잡으면 제가 뭐하러 약 타먹으러 오겠어요?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내가 뭐 성인군자로 됩니까?" "저어! 부인..." "시끄러워욧! 빨리 치료나 해주시고 약이나 잘 달여놓아요. 빚 받을 시간 약속해 놓고 왔다니까요! 오늘 안 가면 그 X년은 말이죠! 잘됐다 핑계대고 돈 안 준다 뻐팅길 거예요!"
"저어어! 부! 부! 부인..." "아유! 알았어요! 담부터 열심히 절에 나갈게요! 이제는 요! 지금은 바빠요 바빠!" 그러고는 속으로, '아휴! 절에 가나 병원 오나 설법! 그저 설교! 그저 마음 마음! 저들도 잘 못 추스르면서...' 아! 유의태, 허준 선생님이시여! 이 가련한 의생은 도대체 팔의 중 어디에 속하게 되나이까? 모쪼록 굽어살피옵소서!
마음의 엔진오일
엔진오일 점검 방법엔 대충 네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레벨 게이지상에 검은 색으로 나타날 경우 카본의 희석으로 오일이 오염된 경우로 보면 되는데, 말하자면 오일의 윤활 작용이 어렵게 되는 원인이 카본 즉 피스톤 부분이 숯과 같이 되어버린 연소 불순물의 섞임이다. 둘째, 붉은 색에 가까우면 가솔린이 희석된 경우이니, 어째서 섞였는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엔진오일과 연료가 섞여 오일의 점도가 떨어질 것은 뻔하고 어딘가에서 압축가스 등이 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셋째, 우유색이라면 냉각수가 섞인 것이데, 수냉식 오일냉각 구조라면 어딘가 구멍이 뚫렸던지, 처음부터 오일 팬 부분에 물이 있었던지 의심해 보아야 하겠다. 넷째, 회색이라면 연소생성물이 혼합되어 버린 것인데, 정밀하게 봐야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줌을 조심스레 관찰해 보면 대개의 병을 짐작할 수 있다. 오줌 색깔이 검붉은 빛, 심지어 아예 검은 자주빛으로 나오면 정말 불순물이 섞인 것이다. 제대로 신장에서 걸러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과로로 인한 피로물질의 누적인 만큼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특히 지나친 긴장과 공포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희망과 낙관의 태도가 필요한데, 동양의학의 오색론에 보면 검은 색은 공포와 관계 있고 신과 연관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 검은 오줌을 경계하고... 빨간 오줌이야 물론 피가 섞여 나오는가 의학적으로 검사해야겠지만 그전에 본인이 지나친 쾌락을 의심해야 한다. 너무 지나친 오락과 음주와 방사는 즐거움의 열을 일으켜서 그 열이 피의 흐름을 망동시켜 피가 오줌에 섞이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마음의 동함이 신체를 움직여 질병을 일으키는데 심은 화요, 희인지라 지나친 희희낙락은 기가 늘어져 질병이 온다고 옛 경전에는 씌어 있다. 자! 빨간 소변을 두려워하시라... 소변이 너무 많으면 이것도 문제요, 냉각수 섞인 오일 같아서 몸이 차지는 않는가 조사해야 한다. 최근 냉음료수의 과다한 섭취는 없는가? 아니면, 싸늘한 원한의 마음과 우울한 마음은 없는가 심각하게 자기 심정을 진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이야 더할 수 없는 약이지만 표독하게 독한 음독의 생각은 신체의 흐름을 방해한다.
아래는 덥고 위는 차야하는데 하초가 지나치게 차가우면 이것은 특히 50대 이후의 남자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근무의욕 상실과 더불어 나태, 권태감이 밀려오는데 잘 살펴야 할 조짐이다. 자! 너무 투명한 오줌도 조심! 희뿌연 침전물이 있는 소변이나, 아예 쌀뜬물 같은 것이 섞여 나오면 정말 빨리 조처를 취해야 한다. 동의에서는 '백탁' '유정' 등이라 하여 뿌연 오줌의 종류가 제법 있는데 말 그대로 혼탁해졌다면 잘 가라앉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음식도 잘 가려서 너무 진한 맛을 즐기지 말고, 마음도 갈등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것저것 다 쫓다가는 하나도 성취할 수 없는 법인데, 이 욕심 저 욕심 다 붙어서 번뇌가 쌓인다. 놀러도 가고 싶고, 사장집에 인사도 가야 하고, 골프도 치고 싶고, 룸싸롱에도 가고 싶고, 정치도 하고 싶고, 재벌도 되고 싶고... 차차 덩치 커가는 욕심에 산란한 마음과 육체는 모든 흐름에 갈피를 못 잡아 혼탁한 소변을 내놓는다. 소변은 소변 길로... 대변은 대변 길... 피의 갈 길은 제 갈 길로... 이것저것 섞이다 보면 마치 물과 기름이 섞이면 연소가 안 되듯, 인간의 생명력도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자! 탁한 오줌은 빨리 치료!
마음의 유막
슬랩(Slap) 현상과 스틱(Stick) 현상의 두 가지는 피스톤과 실런더 사이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극단적 병적 마찰이다. 피스튼과 실린더의 간극이 너무 클 때, 상하운동의 동력 행정시, 피스톤이 실린더 벽을 치는 현상인데, 간극의 차이가 너무 심하면 연소실의 압축 가스가 새서 블러바이(Blow-by) 현상이 나타나 동력저하, 기름 과소비의 원인이 된다. 거꾸로 간극이 너무 좁을 때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나친 열팽창으로 스틱 현상(소결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냥 늘어 붙어버리게 된다. 피스톤과 실린더의 적당한 간격에는 유막이 형성되어 상호 마찰운동이 적당해야 하는데 이 유막의 파괴로 마찰저항이 생겨서 동력손실을 가져온다.
이 적당한 간격. 나와 남과의 관계상 중용은 기막힌 상호 유막현상이다. 매끄럽게 돌아가는 중화의 마음은 곧 알맞은 경계를 만들어 건가한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 쉽게 밀착했다가 서로 원망하고 헤어지는 인간관계의 스틱 현상은 그 얼마이며, 너무 적조하게 소원하다가 오해하는 사이는 또 얼마인가? 특히 가족간의 친밀성은 오히려 스틱 현상에 가까워 그 매끄러움을 잃고 있다.
지나친 기대감은 곧 배신감으로 다가오는데, 남편과 아내는 일찍부터 실망한 채 살아간다. 과분한 짐을 자식에게 지워 걸머지게 하지만, 유능하고 지혜로운 남의 아이보다 못해 보여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게 되고 짜증과 분노가 중용의 유막을 파괴하고야 만다. 엔진의 과열로 삐걱거리는 가정은 숱하게 많다. 그러나 각자의 기대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현명함을 터득한 집은 드물다. 훌륭하게 잘된 표본에 비교하자면, 사실 비교하고 있는 나도 별 수 없지 않은가? 마음의 적당한 경계마찰을 형성하는 유막은 비교 당하지 않는 마음임을 명심하자.(경게마찰 : 유막 형성의 가장 이상적인 마찰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
마음의 냉각수
엔진오일도 126도가 넘으면 유막의 형성이 불가능하다. 85도가 이하가 적당한데 엔진오일도 냉각장치가 필요하다. 공기로 냉각시키는 종류와 물로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화가 끊으면 피도 끊는다. 끊는 피는 더 이상 피의 작용이 불가능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혈압 환자는 코피도 터지고 눈, 코, 입 등에서 출혈이 되는 수가 있다. 대부분 속 썩은 다음에 그렇다. 머릿속이 터지면 불구자가 되거나 아예 의식불명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끊는 피. 분기 탱천한 마음. 맑은 공기를 먼저 마시러 나가자! 시원하게 창자까지 시린 약수나 깨끗한 계곡물을 들이키러 가자! 그러고는 한 생각을 돌이켜야... 마음도 냉각이 필요하다. 외부의 공기나 물은 물질을 식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역시 마음은 마음으로 식혀야 그 역학관계가 맞는다. 어떻게 식히는가? 들뜬 마음의 관계가 경솔한 아들, 이리저리 광분하여 혈안이 된 복부인 엄마, 사업계획과 한탕 야심을 불끈 쥔 아버지, 허벅다리와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는 끼 많은 딸... 어찌 마음을 침착하게 고요하게 잔잔하게 할까나? 마음의 냉각요법만 개발되면 에이즈도 치료될 것 같은 이 지구촌. 우리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두려움, 공포는 순간 춥고 으슬으슬한 느낌을 준다. 추워도 좋다. 좀 오싹해도 좋다. 경거망동의 들뜬 마음과 사치, 음탕, 방종의 마음에는 마음의 냉각수, 찬물을 쫙 끼얹어야 한다. 그것은 곧 무서움! 두려움! 반성! 조심성! 긴장성! 세밀함! 정밀성! 등등이다. 서릿발 같은 위엄과 날카로운 지성의 회복은 이 괴질의 말세에 특효방인 마음의 냉각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본래 없는 질병과 건강
건강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 조용히 지난 삶을 반조해 보면 활력 있게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될까. 두통, 몸살, 소화불량 등등, 현대인들은 잦은 병치레를 겪고 있다. 심지어는 암이나 에이즈 같은 불치병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공포로 얼룩진 순간 순간들도 역시 병든 순간 순간들이 아닐까? 도대체 건전, 건강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초조감에 시달리는 순간부터 느슨한 안도감을 느끼는 평화의 시간까지 어느 곳에다 병적임과 아님을 긋는 선을 만들까? 안도감은 과연 건강함인가? 괴로울 때 급히 편안함을 구하기 시작하지만, 평안의 상태는 미래의 고통을 부르는 신호가 아니던가? 음악을 선명히 들으려면 귀를 어둡게 하여 정적감을 느낀 후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색깔을 뚜렷이 보려면 눈을 캄캄하게 한 후라야 사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맛을 즐기려면 냉수로 혓바닥을 가셔야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식작용을 환히 이해하려면 마음을 비운 후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소위 건강한, 활력 있는 상태를 세밀히 살펴보면 의욕과잉형일 뿐이다. 병적 상태는 의욕의 상실된 에너지가 배설된 허탈임이 분명하다. 모두가 여래의 열반에서 보면 돋아난 뿔일 뿐. 의욕적인 것이 곧 비의욕적인 것의 어머니다. 질병의 남편이 건강이며, 건강의 아들이 질병이다. 괴상한 촌수의 관계라 혼동이 오겠지만 이는 모두가 육체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상대적 현상이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보왕삼메론)의 첫머리를 왜 이것으로 출발했을까? 건강은 즉 탐욕의 형님이다. 탐욕은 곧 질병의 아버지다. 필자는 건강에 대해 장담하는 청장년을 만날 때마다 가소로움을 금치 못한다. 속으로 내일이나 모레쯤 진찰실에서 만날 기약을 예감하니까.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 '살아 있음은 대체로 부드러움이요, 죽음은 뻣뻣함이다.' 사실 사체보다는 생체가 훨씬 유연하지 않은가?
목에 힘 주고 뻣뻣하여 '나는 건강하다'라고 외치는 이런 사람은 기실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부류는 병이 와도 크게 온다. 모진 고통의 시련이 오고 나서야 한소식 깨달음이 온다. '아! 역시 나도 병이 드는 존재로구나, 늙은 존재로구나!' 가장 젊고, 영화와 부귀를 누릴 적에, 누구든지 가차없이 작용하는 늙고 병든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다. '나만큼은 예외!'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요망사항일 뿐이다. 왜 병이 드는가? '태어났기 때문!' 이것은 오직 성인만이 갈파한 원인론이다.
병의 원인은 세균에 또는 기후에 있다는 등의 얘기를 자주한다. 이는 마치 변소에 들어앉아서 냄새의 원인은 똥에 있다고 주장함과 마찬가지다. 변소에서 뛰쳐나가면 맑은 공기가 절로 있게 마련인 것을. 질병을 건강식품으로, 약으로, 수술로 또는 침술로 고쳐서 건강하게 살아보겠다는 것은, 변소냄새를 향수 뿌려서 잊어보겠다는 투와 같이 않은가? 필자 같은 의생 노릇은 향수나 뿌려주는 화장품업자에 불과한 것이다. 부끄럽다! 똥 냄새와 잘 어우러진 향수냄새가 어찌 청청한 무색 무취의 청아한 공기를 당하겠는가? 권위자, 박사의 건강론이나 길가 돌팔이의 학설엔 그만 귀를 기울이자. 제발! 똥의 종류에 따라 향수 제조업자도 많이 나타나게 된다. 이제는 지겹다. 변소를 벗어나자! 변소에서 문 잠그고 하는 법이 아닌, 문 열고 나오는 법을 공부하자. 다시는 육체 없고 태어남이 없는 피안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의심에 이르러 정을 잊고 마음이 간절한 곳에 금 까마귀 야밤 삼경에 하늘로 사무쳐 날아보자.
내면으로의 여행에서 획득되는 참된 건강
김포공항에 10분 만에 한 대씩 비행기가 뜨고 내려도 오히려 비좁다고 야단들인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웃지 못할 해외관광의 바지저고리 부대가 벌이는 한판의 해프닝들은 쓴 웃음이 절로 나게 하지 않는가? 옛말에 귀한 자식 여행 자주시키라 했는데, 아마도 그 깊은 뜻은 다른데 있지 않을는지... 돈을 풍족히 들고 나가 쾌락을 찾아 돌아다니는 여행에서 무슨 창조성이 있겠으며, 모험과 미지의 신빙성, 호기심, 두려움 등등의 신선한 충격들이 이 시대 관광여행에서 찾아질 수 있을까?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아는 세계로부터 탈출의 복합된 교차점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행위이다. 아는 것은 끈질기게 인간을 지루하고도 따분하게 만드는데, 실로 인류는 이 지식의 추구에 쓸데없는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이론과 추구 등은 대단한 마력을 지닌 악마의 근성에 불과하다. 그저 행복이라 느껴질 수 있는 행복관에의 지식 때문에도 마음은 쉽게 교란이 되고 만다.
여행을 안전하게!? 안전의 추구가 과연 행복이랄 수 있겠는가? 여행 조차도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하고 나서, 시간표를 짠 후 시행을 한다. 행정부의 시계 같은 관리들 모양으로... 그야말로 여행을 안전하게 실시하고 있다. 그런 여행에서 모험심 가득한 의미 있는 여로의 기대는 할 수 없다. 연습 없이 볼 수 있는 지혜가 곧 여행자의 자유로운 여행이다. 누적된 지식과 기억의 찌꺼기가 우리의 신선한 영감을 파괴함과 동시에 삶을 지루하게 한다. '지루함이 곧 질병'이라면 여행은 그 치료법 중 최고의 명약이다. 산천경계 구경나서는 운수납자의 만행을 최고의 명약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부정하겠는가? 그렇게 하여 점차 폭도 넓어져서 해외에 이르기까지 그 영약을 넓혀간다면 이야말로 불로장생의 약이다.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알고 보면 우리가 불로장생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행을 못 하는 데 있고, 여행을 못 하는 까닭은 형편이 여의치 못한 호주머니 사정에 있다. 그러므로 돈 없는 사람은 아예 불로장생을 포기해야 한다?! 포기할 수밖에 없을까? 만약 실제로 여행에서 얻는 신선감, 즉 지루함으로부터의 해방을 그렇게 많은 경비와 모험과 시간을 소비해야만 얻을 수 있다면 지극히 비경제적이면서도 불공평한 우주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우주의 섭리가 돈만이 최고의 희열을 알 수 있고, 외로이 산 속에서 수도를 하는 수행자가 그만한 희열을 알 수 없을까?
돈의 발생 이후 돈의 가치는 권력, 곧 힘과 같다고도 하는데 정말 그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세존께서는 왜 버리는 모양의 연극을 한바탕 연출하셨을까? 돈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거나, 성적인 사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신선한 희열을 얻을 수 있다면 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며 지름길일 것이 아니겠는가? 인도 첫 요가수행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들은 얘기지만 그는 사랑에 빠졌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연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공포에 마음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이 즐거움이 저 연인에게 의존하여 생기는데, 과연 나의 연인은 항상 내 옆에 있어줄 수 있는가? 세상에 죽지 않는 생명이 없었는데, 죽음이 갈라놓을 것이 뻔한데, 그때의 이별의 고뇌를 나는 감당할 수 없다.' 그 요가수행자는 대단히 솔직하고 민감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길거나 짧거나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은 피할 수 없고, 어차피 의존성은 공포를 수반하게 된다. 의존되어진 즐거움에는 잃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다. 겉으로야 아닌 척하지만 실제로 모든 힘(권력, 금력)을 가진 자들은 은근히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다.
여행에 꼭 의존해야만 하는 활력의 되찾음은, 수도하는 사람이 지향할 바가 못된다. 일찍이 노자는 '방구석에 앉아서 천하의 일을 훤히 안다'하셨다. 그 요가수행자는 역시 그럴 수 있는 힘을 갖고자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기필코 의지하지 않는 즐거움을 발견해서 저 사랑스러운 그대에게도 가르쳐 주리라!' 드디어 그는 성취했다. 연인에 의지하지 않는 커다란 환희를! 아마도 그의 연인도 성취시켜 주었으리라. 이것이 요가수행의 출발이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우리 내면 속으로의 여행은 무궁무진한 보물찾기, 탐험의 묘미가 있다. 그런데 오늘도 여행 떠나게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자녀들... 마치 해외여행 가는 행위만이 이 시대를 앞서가는 삶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비교해 내어 우울해하는 엽전 근성. 모두 벗어버리자! 가장 적은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경제 원칙에 걸맞는 자신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자! 비교하는 마음을 선뜻 내던지고 고요하게 스스로를 반조해 보면, 우선은 거미줄 이상으로 기막히게 얽혀 있는 의식 구조를 발견하게 되리라. 처음에는 말이다. 그러나 밝아져 가면 묘한 건강의 느낌이 다가오고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병도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생긴다. 소위 신유 능력이 창조되는데, 모두가 다 내적 여행의 산물이지 결코 방랑자의 소유가 아니다.
동양의학 입문 첫날, 병아리 예과 1학년 (의학개론) 첫 강의 시간이었다. 수염이 허연 노교수께서 칠판에 그린 것이 바로 아래에 그린 원상 하나다. 모든 동양의학도가 수천 년 탐독해 온 이천 선생의 저서인 의학서 (의학입문) 의 첫 페이지에도 이런 원이 있으니 건강의 개념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듯하여 소개하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선천도. 후천도. '삶을 잘 양생코자 하는 자가 이것을 깨달아 알게 되면, 곧 자연히 분노를 징계하고 탐욕을 막아서 수는 승하고 화는 강하여 사귀니 태평하고,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가 원을 하나 밝히면 자연히 사물을 판별하고 방법이 정하여져서 침체한 질병이 단번에 회복된다. 이것을 이 책머리에 둥글게 그려서 글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도 편리하게 하고, 책을 열면 숙연하여 지극히 간단하고 쉬워서 참맛을 보아 특별한 취미가 있게 한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