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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khart Tolle

Realizing Pure Consciousness 순수의식의 실현 / 에크하르트 톨레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3.20|조회수129 목록 댓글 1

Realizing Pure Consciousness

순수의식의 실현 / 에크하르트 톨레

Is presence the same as Being?

 

깨어 있다는 것은 현존하는 것과 같습니까?

 

When you become conscious of Being, what is really happening is that Being becomes conscious of itself.

When Being becomes conscious of itself - that's presence.

 

우리가 존재를 의식할 때는 사실,

존재가 스스로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존재가 자신을 의식하게 되면 그것이 현존 입니다.

 

Since Being, consciousness, and life are synonymous,

we could say that presence means consciousness becoming conscious of itself, or life attaining self-consciousness.

 

존재, 의식, 그리고 삶은 동의어이기 때문에

현존이란 자신을 의식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생명이 자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But don't get attached to the words,

and don't make an effort to understand this.

There is nothing that you need to understand before you can become present.

 

그러나 단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현존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I do understand what you just said, but it seems to imply that Being, the ultimate transcendental reality, is not yet complete, that it is undergoing a process of development.

Does God need time for personal growth?

 

방금 당신이 한 이야기는 현존, 즉 궁극적인 초월적 실재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지금도 발전과정을 겪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신은 개인적 성숙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할까요?

 

If a fish is born in your aquarium and you call it John, write out a birth certificate, tell him about his family history, and two minutes later he gets eaten by another fish - that's tragic.

 

당신은 수족관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태어났다고 합시다.

당신은 그 물고기를 '존'이라고 부르고 출생증명서를 작성하고

족보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서 2분쯤 후에 그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 먹힌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But it's only tragic because you projected a separate self where there was none. You got hold of a fraction of a dynamic process, a molecular dance, and made a separate entity out of it.

 

그것이 비극인 이유는 당신이 '물고기에게 분리된 자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당신은 역동적인 과정에 있는 하나의 단편 , 하나의 분자가 춤추는 춤을 보고 거기에서 분리된 개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Consciousness takes on the disguise of forms until they reach such complexity that it completely loses itself in them.

In present-day humans, consciousness is completely

identified with its disguise.

 

의식은 형상들 안에서 자기자신을 완벽하게 잃어버릴 만큼의

복잡성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장 합니다.

오늘날의 인간들에게 의식은 그렇게 변장된 형태의 것과

동일시 되었습니다.

 

It only knows itself as form and therefore lives in fear of the annihilation of its physical or psychological form.

This is the egoic mind, and this is where considerable dysfunction sets in.

It now looks as if something had gone very wrong somewhere along the line of evolution.

But even this is part of lila, the divine game.

 

자신을 오로지 모습으로만 알고 있으므로,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모습이 소멸 될까 봐 두려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에고의 마음이며 그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 납니다.

마치 진화과정에서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신이 하는 게임의 일부입니다.

 

 

Finally, the pressure of suffering created by this apparent dysfunction forces consciousness to disidentify from form

and awakens it from its dream of form:

It regains self-consciousness, but it is at a far deeper level than when it lost it.

 

결국 이렇듯 명백한 부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통의 중압감으로 말미암아. 의식은 모습과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자신의 형상일 뿐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자의식을 다시 찾게 되지만,

그 자의식은 그것을 잃어버릴 때보다 훨씬 차원이 깊어질 것입니다.

 

 

This process is explained by Jesus in his parable of the lost son, who leaves his father's home, squanders his wealth, becomes destitute, and is then forced by his suffering to return home.

When he does, his father loves him more than before.

The sons state is the same as it was before, yet not the same.

 

예수는 이러한 과정을 '돌아온 탕자'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빈 털털이가

되어 집에 돌아 옵니다. 그가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전보다 더 사랑합니다. 아들의 상태는 예전과 같으면서도 같지 않습니다.

 

It has an added dimension of depth. The parable describes a journey from unconscious perfection, through apparent imperfection and "evil" to conscious perfection.

 

이 비유는 완벽한 무지 상태에서 시작되어, 세속적인 불완전함과 악을 거쳐 완전한 깨어있음으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Can you now see the deeper and wider significance of becoming present as the watcher of your mind? Whenever you watch the mind, you withdraw consciousness from mind forms, which then becomes what we call the watcher or the witness.

Consequently, the watcher - pure consciousness beyond form - becomes stronger, and the mental formations become weaker.

 

당신은 이제 마음을 지켜보는 자가 되어 현존 하라는

말의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지켜볼 때마다 당신의 의식은

마음이 지어내는 형상으로부터 후퇴합니다.

 

 

When we talk about watching the mind we are personalizing an event that is truly of cosmic significance: through you,

consciousness is awakening out of its dream of identification with form and withdrawing from form.

 

This foreshadows, but is already part of, an event that is probably still in the distant future as far as chronological time is concerned.

The event is called - the end of the world.

 

이 과정은 언젠가 먼 미래에 연대기적인 시간이 정지할 것임을

예시하는 것이며, 이미 그 사건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When consciousness frees itself from its identification with physical and mental forms, it becomes what we may call pure or enlightened consciousness, or presence.

 

의식이 육체와 마음이 지어내는 형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면,

[순수의식]이나 [깨어있는 의식], 혹은 [현존]이 됩니다.

 

This has already happened in a few individuals, and it seems destined to happen soon on a much larger scale, although there is no absolute guarantee that it will happen.

Most humans are still in the grip of the egoic mode of consciousness: identified with their mind and run by their mind.

 

이런 일은 이미 몇몇 사람들에게서 일어 났으며,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 하고

마음에 의해 움직이는 에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If they do not free themselves from their mind in time, they will be destroyed by it. They will experience increasing confusion, conflict, violence, illness, despair, madness.

 

그런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지 않으면,

조만간 그것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혼란 갈등 폭력 질병 절망 광기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Egoic mind has become like a sinking ship.

If you don't get off, you will go down with it.

 

에고의 마음은 침몰하는 배와 같아서,

거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배와 함께 가라앉게 됩니다.

 

The collective egoic mind is the most dangerously insane and destructive entity ever to inhabit this planet.

What do you think will happen on this planet if human consciousness remains unchanged?

 

집단적인 에고는 이 지구상에 일찍이 없었던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인 실체 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지구상에 어떤 일이 일어 나리라고 생각 하십니까?

 

Already for most humans, the only respite they find from their own minds is to occasionally revert to a level of consciousness below thought. Everyone does that every night during sleep.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쉴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있다면,

가끔씩 생각을 멈추고

그 아래에 있는 의식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밤마다 잠 속에 그러하듯이.

 

But this also happens to some extent through sex, alcohol,

and other drugs that suppress excessive mind activity.

If it weren't for alcohol, tranquilizers, antidepressants, as well as the illegal drugs, which are all consumed in vast quantities, the insanity of the human mind would become even more glaringly obvious than it is already. I believe that, if deprived of their drugs, a large part of the population would become a danger to themselves and others.

 

어떤 사람들은 섹스, 알코올, 마약을 통해 과다한 마음의 활동을

진정 시키기도 합니다.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는 알코올, 안정제, 항우울제,

그리고 불법적인 약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의 광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두드러질 것입니다.

그런 약들을 빼앗아 버린다면 인류의 상당부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These drugs, of course, simply keep you stuck in dysfunction.

Their widespread use only delays the breakdown of the old mind structures and the emergence of higher consciousness.

 

그러나 약물이란 사람을 단지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입니다.

그런 약들이 널리 확산되어 사용된다면,

낡은 마음의 구조가 붕괴되는 일을,

그래서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출현하는 것을 지연시킬 뿐 입니다.

 

While individual users may get some relief from the daily torture inflicted on them by their minds, they are prevented from generating enough conscious presence to rise above thought and so find true liberation.

 

그런 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의해 가해지는 나날의 고통으로부터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생각을 넘어서서 생생하게 깨어있음으로써 진정 자유로워 지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셈 입니다.

 

Falling back to a level of consciousness below mind, which is the pre-thinking level of our distant ancestors and of animals and plants, is not an option for us.

There is no way back. If the human race is to survive, it will have to go on to the next stage.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이나 동식물들처럼 마음 아래쪽에 있는 생각 이전의 의식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사항이 아닙니다.

되돌아 가는 길은 없습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합니다.

 

Consciousness is evolving throughout the universe in billions of forms.

 

의식의 진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우주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So even if we didn't make it, this wouldn't matter on a cosmic scale. No gain in consciousness is ever lost, so it would simply express itself through some other form.

 

그러니 우리 인간이 진화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주적인 규모에서

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의식 안에서는 전혀 잃을 것이 없으며,

스스로를 다른 형태를 통해 표현하면 그뿐 입니다.

 

But the very fact that I am speaking here and you are listening or reading this is a clear sign that the new consciousness is gaining a foothold on the planet.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이 사실이 지구상에 새로운 의식의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 입니다.

 

There is nothing personal in this: I am not teaching you.

You are consciousness, and you are listening to yourself.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식이며, 여러분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There is an Eastern saying: "The teacher and the taught together create the teaching." In any case, the words in themselves are not important.

They are not the Truth; they only point to it.

I speak from presence, and as I speak, you may be able to join me in that state.

 

동양에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배움을 창조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말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를 가리킬 뿐 입니다.

내가 현존하면서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현존 상태에서 나와 만나게 됩니다.

 

Although every word that I use has a history, of course, and comes from the past, as all language does, the words that I speak to you now are carriers of the high-energy frequency of presence, quite apart from the meaning they convey as words.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모든 언어가 그렇듯,

예전부터 사용되어 왔고 저마다 쓰임새가 있지만,

단어로서 전달하는 의미와는 별도로

현존의 고주파 에너지를 전달 합니다.

 

Silence is an even more potent carrier of presence, so when you read this or listen to me speak, be aware of the silence between and underneath the words. Be aware of the gaps. To listen to the silence, wherever you are, is an easy and direct way of becoming present.

 

침묵은 현존을 전달하는 훨씬 더 강력한 도구 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듣거나 읽으면서 단어 사이에,

혹은 그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침묵을 인식하십시오.

그 틈새를 인하십시오. 침묵에 귀 기울이면

언제 어디서든 직접으로 쉽게 현존할 수 있게 됩니다.

 

Even if there is noise, there is always some silence underneath and in between the sounds.

 

잡음이 있다고 해도, 소리와 소리 혹은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침묵이 있습니다.

 

Listening to the silence immediately creates stillness inside you. Only the stillness in you can perceive the silence outside.

And what is stillness other than presence, consciousness freed from thought forms?

 

침묵에 귀 기울이자마자,

여러분 안에는 즉각 고요함이 창조됩니다.

여러분의 내면이 고요해야만 외부의 침묵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요함이란 현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Here is the living realization of what we have been talking about.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해온 생생한 깨달음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Christ: The Reality Of Your Divine Presence

당신의 신성한 현존에 대한 실재

 

Don't get attached to any one word. You can substitute "Christ" for presence, if that is more meaningful to you.

Christ is your God essence or the Self, as it is sometimes called in the East. The only difference between Christ and presence is that Christ refers to your indwelling divinity regardless of whether you are conscious of it or not,

whereas presence means your awakened divinity or God-essence.

 

Many misunderstandings and false beliefs about Christ will clear if you realize that there is no past or future in Christ. To say that Christ was or will be is a contradiction in terms. Jesus was.

He was a man who lived two thousand years ago and realized divine presence, his true nature. And so he said: "Before Abraham was, I am ." He did not say: "I already existed before Abraham was born." That would have meant that he was still within. the dimension of time and form identity. The words I am used in a sentence that starts in the past tense indicate a radical shift, a discontinuity in the temporal dimension. It is a Zen-like statement of great profundity. Jesus attempted to convey directly, not through discursive thought, the meaning of presence, of self realization. He had gone beyond the consciousness dimension governed by time, into the realm of the timeless. The dimension of eternity had come into this world.

Eternity, of course, does not mean endless time, but no time. Thus, the man Jesus became Christ, a vehicle for pure consciousness.

And what is God's self-definition in the Bible?

Did God say "I have always been, and I always will be?" Of course not.

That would have given reality to past and future. God said: "I AM THAT I AM." No time here, just presence.

The "second coming" of Christ is a transformation of human consciousness, a shift from time to presence, from thinking to pure consciousness, not the arrival of some man or woman. If "Christ" were to return tomorrow in some externalized form, what could he or she possibly say to you other than this: "I am the Truth. I am divine presence. I am eternal life. I am within you. I am here. I am Now."

Never personalize Christ. Don't make Christ into a form identity.

 

 

Avatars, divine mothers, enlightened masters, the very few

that are real, are not special as persons.

 

영원의 스승들, 신성한 어머니들, 깨달은 마스타들은

매우 보기 드물지만 실재하며 보통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Without a false self to uphold, defend, and feed, they are

more simple, more ordinary than the ordinary man or woman.

격려하고 방어하고 만족시켜야 할 거짓자아가 없는 그들은

보통 남자들이나 여자들보다 오히려 더 평범하고 단순 합니다.

 

Anyone with a strong ego would regard them as

insignificant or, more likely, not see them at all.

 

에고가 강한 사람은 그들을 보잘것없이 여기거나

그들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If you are drawn to an enlightened teacher,

it is because there is already enough presence in you to recognize presence in another.

 

만일 당신이 깨달은 스승에게 이끌린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미 다른 사람의 현존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There were many people who did not recognize Jesus or the Buddha, as there are and always have been many people

who are drawn to false teachers.

Egos are drawn to bigger egos.

 

예수나 붓다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릇된 스승에게 이끌린 사람들은 많았고 지금도 있습니다.

에고는 더 큰 에고에게 이끌리는 법입니다.

 

Darkness cannot recognize light.

Only light can recognize light.

So don't believe that the light is outside you or that it can only come through one particular form.

If only your master is an incarnation of God, then who are you?

 

어둠은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로지 빛만이 빛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우리 바깥에 있다거나 어떤 특별한 형식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믿는 주님만이 신의 화신이라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Any kind of exclusivity is identification with form,

and identification with form means ego,

no matter how well disguised.

 

배타적인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눈에 보이는 형상에

동화되어 있는 것이며, 형상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 하게 위장을 해도 결국은 에고를 의미 합니다.

 

Use the master's presence to reflect your own identity beyond name and form back to you and to become more intensely present yourself. You will soon realize that there is no "mine" or "yours" in presence. Presence is one.

 

이름과 모습을 초월하여, 스승의 현존을 '나 자신은 진정 누구인가'를 비추는 거울로 이용하십시오

스스로 더 강하게 현존할 수 있게 하십시오.

현존 안에는 '내 것' '네 것'이 없다는 것을 당신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현존은 하나의 상태 입니다.

 

 

Group work can also be helpful for intensifying the light of your presence.

A group of people coming together in a state of presence generates a collective energy field of great intensity.

It not only raises the degree of presence of each member of the group but also helps to free the collective human consciousness from its current state of mind dominance.

This will make the state of presence increasingly more accessible to individuals.

However, unless at least one member of the group is already firmly established in it and thus can hold the energy frequency of that state, the egoic mind can easily reassert itself and sabotage the group's endeavors.

함께 모여서 수행하는 것 역시 현존의 빛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함께 모여서 현존 상태로 들어가면 매우 강력한 집단 에너지 장이 형성 됩니다.

구성원 각자의 현존하는 수준을 높여줄 뿐 아니라,

집단의식을 마음이 지배하는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현존상태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에고가 쉽사리 고개를 쳐 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은 이미 현존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그 상태의 에너지

주파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Although group work is invaluable, it is not enough, and you must not come to depend on it. Nor must you come to depend on a teacher or a master, except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when

you are learning the meaning and practice of presence.

 

단체수행은 매우 효과가 좋지만 충분하지는 않으며

거기에만 의존 해서도 안 됩니다.

현존의 의미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스승이나 지도자에게만 의존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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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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