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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dhara meshwar Maharaj

대상에 대한 지(知)가 끝이 날 때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2.16|조회수125 목록 댓글 1

* 대상에 대한 지(知)가 끝이 날 때


개체적 자아는
그것의 믿음에 따라 존재합니다.

사물에 대한 여러분의 지각은
여러분의 믿음이나 신념에 따라 다릅니다.

일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집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입니다.
뭄바이(과거의 봄베이) 전체가
진흙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두 흙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뭄바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하나의 개념,
즉 그것을 '뭄바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의자라고 말하면 이것은 의자입니다.
나무라고 말하면 나무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개념입니다.

한 여자가 있는데 가족이 많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를 '아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은 '누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실은 그녀는
살과 뼈의 한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은
우리가 인식하는 바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개체적 자아는
그의 상상과 믿음에 따라
어떤 성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는 자부심을 '라바나(에고)'라고 합니다.

사실은 일체가 브라만일 뿐입니다.

몸이라고 하는
이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것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얽혀 있는
몸의 주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그 육체의식을 비워내야 하고,
브라만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감각대상들이 곧 나찰입니다.
여러분이 그것들을 숭배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나찰처럼 됩니다.

라바나(감각들의 세계)는
진짜 왕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의) 상상 속에서만
왕이 된 것입니다.

외부세계에 대한 앎을
참된 것으로 여기다 보면,
그가 (여러분의)
왕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노예 노릇을 하는데서
탈피하고 싶으면,

'대상들에 대한
지(知)'의 거짓 중요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모든 개념적 지(知)는
거짓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에고인 라바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만
죽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종(種)의 손에서는
죽지 않을 것이고,

수십만 번 환생한다 해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다섯 감각기관과
다섯 행위기관,
그리고 마음, 지성, 사고, '나'라는 느낌,
곧 에고의 네 가지 내적 원리가 함께

라바나가 지배하는
14가지 영역을 만듭니다.

천신들의 지배가 지구상에 확립되면
나찰들은 하계(下界)로 내려 갑니다.

나찰들이 지구를 지배하면
천신들은 숨어서 수행을 합니다.

나타나 보이는 모든 사물이
거짓임을 확신하면
죽음은 자동적으로 사라집니다.​

"나는 없다,
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십시오.

브라만에 대한 지(知)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식사를 하려고 앉으면,

그 식사와 연관된 모든 것이
브라만입니다.

자리가 브라만이고,
음식이 브라만이고,
먹는 자가 브라만이고,
음식을 내오는 사람도 브라만입니다.

그가 잠을 자면
침대가 브라만이고
간이침대도 브라만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일체가 브라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알기',
곧 대상들과 접촉하기가 끝이 나고
신의 왕국이 지배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브라만일 뿐입니다.

하나는 브라만이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만물이 브라만입니다.

그것은 얼음이 물이고,
물이 얼음인 것과 같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그것이 이전 형태는 사라지지만,
그것은 내내 물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해를 얻고 있으나,
여전히 자신의 육신을 위한
쾌락을 얻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이끌림을 제외하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몸에 대한
어떤 자부심(그것과의 동일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한 개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브라만입니다.

'드러난 것'과 '무형상인 것'은
하나일 뿐인데,
그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릅니다.

현상에 아무 변화를 주지 않아도
여러분은 참으로 브라만이 됩니다.

그럴때
신의 왕국이 다가오고,
나찰들의 지배는 종식됩니다.
나찰들이 사라집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은
하나의 '단일성'입니다.

환(幻)이 지속되는 것은
단지 심정적 개념들 때문입니다.

그 환이 사라질 때,
일체가 브라만이라는 것을 압니다.

음식이 브라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먹는 사람은,
식사를 해도
실은 단식을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베다적 진리입니다.

그가 걷거나 말을 할 때
그것은 브라만이고,
그가 잠을 잘 때
그의 잠은 삼매입니다.

그는 브라만일 뿐입니다.

왕은 어디를 돌아 다녀도
그대로 왕입니다.

왕이 복통이 났을 때 명령을 내려도
그것은 그의 권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여전히 왕입니다.

브라만은
'생명력' 짜이따니야 입니다.

진인, 곧 깨달은 자는
어떤 상황에 있어도 브라만일 뿐입니다.

자신의 참된 성품에 대한
깨달음을 가진 자는
늘 지고아 빠라마트만의 왕국 안에 있습니다.

몸뚱이는
똥 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집어 넣어도
똥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몸은
똥을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정말 경이로운 것은,
그 몸이 브라만을 깨닫는 도구로서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원리, 곧 의식인 비슈누는
천신들에게 불사의 감로를,
아수라들에게 술(감각의 세계)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감로를 마시고
천신이 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술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성(神性)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에게서
오직 브라만을 보아야 합니다.

묘목에 물을 주면 큰 나무가 됩니다.
그 나무가 튼튼하게 다 자라고 나면,
더 이상 나무를 돌보는
온갖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그대가 그것이다> 탐구사간, 대성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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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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