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갓난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는 거울 같은 눈동자, 그 속에는 ‘나’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오직 텅 빈 존재, 그러나 충만한 생명이 시간이 없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온전하고 완전한 어린아이의 세상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어린아이는 시간과 공간 속의 한 개체인 ‘나’가 됩니다.
모든 것이 이름과 개념으로 치환되면서 어린 시절 늘 경험했던 그 신비로움, 그 놀라움은 점점 퇴색되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는 더 이상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어른과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이제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나’는 점점 더 확장되고 강화됩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 ‘나’는 스스로를 둘로 나누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언제나 감시하면서 끝없는 비평을 늘어놓게 됩니다. ‘나는 이렇다, 나는 저렇다···’
그러나 이 ‘나’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출현한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본래 없습니다. 본래 없던 ‘나’가 등장하면서부터 성취와 실패,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존재, 영원한 생명은 어느새 잠이 들고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흙장난에 흠뻑 빠져 잇던 아이가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미련 없이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집으로 돌아가듯, 봄날 툇마루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살포시 들었던 잠에서 깨어나듯, ‘나’를 주인공으로 한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늘 있었던 그것이 여전히 눈앞에 찬란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것도 얻은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대로, 항상 이대로였습니다. 모든 꿈이 그저 이것이었을 뿐입니다.
출처 : "아쉬타바크라의 노래", 심성일 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