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CTIVITY IT COMES BACK TO LIFE.
행동함으로써 다시 삶으로 되돌아온다.
By activity you can maintain it.
움직임을 통해 그 고요함을 지속시킬 수 있다.
If you try to maintain it by continuous inactivity
it will be impossible;
지속적인 휴식만으로 그것을 지속시키려 한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one has to move into opposites
to remain always transcendental.
항상 초월적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그 반대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In the day you work, in the night you sleep.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라.
If you continuously work for twenty-four hours a day
it will be death;
24시간 동안 계속해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죽음일 것이다.
if you continuously sleep for twenty-four hours a day,
that will also be death.
24시간 동안 계속해서 잠만 잔다면 그것 또한 죽음일 것이다.
In the day work hard -- and in working hard
you are gaining the capacity to sleep.
낮에는 일을 열심히 하라.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 잠을 잘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In the night sleep completely -- in sleeping completely
you are regaining, refreshing, rejuvenating
your energies to work hard.
Move into a rhythm.
밤에는 완전히 잠을 자라.
완전히 잠으로써 그대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시 얻고 힘을 새롭게 기를 수 있다.
리듬 속으로 들어가라.
Lean to the right,
lean to the left and always keep the balance.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항상 균형을 유지하라.
Repose can be maintained, calm can be maintained,
only by not remaining inactive forever and ever.
휴식이 지속될 수 있다.
고요함이 지속될 수 있다.
그것은 영원히 휴식을 취함으로써가 아니다.
That mistake has been made in India.
sannyasins remaining inactive continuously
cannot remain silent.
이런 실수가 인도에서 나왔다.
계속해서 휴식하는 산야신들은 침묵을 지킬 수가 없다.
Be a householder and be a sannyasin together;
be in the world and be out of it also, together.
Remember always that life is a togetherness of opposites -- a deep harmony.
세속인이면서 또한 산야신이 되어야 한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 또한 세상 밖에 있어라.
삶은 반대편이 함께 있는 것이며,
깊은 조화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1-9>
If you are time conscious
you will be mad about accumulating things,
you will transform your whole life energy into things.
만일 그대가 시간을 의식한다면,
그대는 물건을 축적하는데 미친 듯이 몰두할 것이다.
그대의 삶 에너지 전체를 물건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A man who is conscious of the whole range will enjoy
this moment as much as he can.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사람은
가능한 이 순간을 즐길 것이다.
He will float.
He will not bother about the tomorrow
because he knows tomorrow never comes.
그는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떠다닐 것이다.
내일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He knows deeply that finally
only one thing has to be attained
-- that is one's own self.
그는 최종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곧 자기 자신임을 깊이 알고 있다.
Live, and live so totally that
you come in contact with yourself....
And there is no other way to come in contact with yourself.
전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대 자신을 만날 수 있도록 아주 깊이 전체적으로 살아라.
그대 자신을 만나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The deeper you live, the deeper you know yourself,
in relationship, in aloneness.
The deeper you move in relationship, in love,
the deeper you know.
더 깊이 살면 살수록,
그대는 관계 속에서나 홀로 있을 때나
더 깊이 그대 자신을 알게 된다.
관계 속으로, 그리고 사랑 속으로 더욱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대는 자신을 더욱더 깊이 알게 된다.
Love becomes a mirror.
And one who has never loved cannot be alone,
he can at the most be lonely.
사랑은 거울이다.
사랑을 해 보지 않는 사람은 홀로 있을 수가 없다
그는 기껏해야 외로울 수 있을 뿐이다.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1>
Through the other he comes to know his anger,
his greed, his jealousy, his possessiveness, his compassion,
his love, and thousands of moods of his being.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분노와 탐욕.
질투, 소유욕. 연민, 사랑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감정을 알게 된다.
Many climates he encounters through the other.
By and by a moment comes when he can now be alone;
he can close his eyes and know
his own consciousness directly.
That's why I say that for people who have never loved
meditation is very, very difficult.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많은 분위기와 마주친다.
차츰차츰 홀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는 눈을 감고도 자신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명상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Those who have loved deeply can become deep meditators;
those who have loved in a relationship
are now in a position to be by themselves.
사랑을 깊이 해본 사람은 명상을 깊이 할 수 있다.
관계 속에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이제 혼자 존재할 수 있다.
Now they have become mature,
now the other is not needed.
이제 그들은 성숙했다.
이제 다른 사람은 필요치 않다.
If the other is there they can share,
but the need has disappeared;
now there is no dependence.
만일 다른 사람이 거기 있다면 같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할 필요성은 사라졌다.
이제 의존은 없다.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1>
Consciousness can take two views.
의식은 두 가지 관점을 가질 수 있다.
One is to be afraid of life because through life comes death.
하나는 삶을 통해서 죽음이 오기 때문에
삶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Another is to love life so deeply that
you start loving death also,
because it is the innermost core of it.
다른 하나는 죽음이 곧 삶의 가장 내면에 있는
중심이기 때문에,
삶을 깊이 사랑하고 죽음 또한 사랑하는 것이다.
The first attitude comes from thinking,
첫 번째 사고방식은 사념으로부터 나오고
the second attitude comes from meditation.
두 번째 사고방식은 명상을 통해서 나온다.
The first attitude comes from too many thoughts,
첫 번째 사고방식은 너무도 과도한 사념을 통해서 오는 것이고
the second attitude comes from a thought-less mind,
from a no-mind.
두 번째 사고방식은 사념이 없는 마음,
즉 무심으로부터 나온다.
Consciousness can be reduced to thoughts;
thoughts can be melted down again into consciousness.
의식은 사념으로 축소될 수 있고
사념은 다시 의식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1>
ATTAIN THE UTMOST IN PASSIVITY
수동성의 극치에 도달하라.
and always remember that
all that is beautiful always happens: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은 항상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라!
love happens -- you cannot do it,
사랑은 일어난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meditation happens -- you cannot do it,
명상은 일어난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relaxation happens -- you cannot do it.
휴식은 일어난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n fact life has happened to you,
사실 삶은 그대에게 일어난 것이다.
you have not done anything about it,
그대는 삶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you have not earned it.
그대가 무엇을 해서 받은 것이 아니다.
And death will happen
-- you cannot do anything about it.
그리고 죽음 또한 일어날 것이다.
그대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All that is beautiful, profound, deep -- happens.
Only futile things are done by man.
모든 아름다운 것, 심오하고 깊이 있는 것은 ‘일어난다.’
인간은 오직 사소한 것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You cannot even do breathing,
that too happens.
Get in tune with the world of happening.
그대는 호흡조차도 할 수가 없다.
호흡 또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나는 세계와 조율하라.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1>
If you ask me, the material world is the world of doing
and the spiritual world is the world of happening.
내게 묻는다면, 나는 물질세계는 행위의 세계이며,
정신세계는 일어남의 세계라고 말할 것이다.
Do, but then you will attain only to things;
행하라, 그러면 단지 물질에 도달할 것이다.
be, and let things happen,
and you will attain to the very being of existence.
존재하라, 그리고 뭐든지 일어나게 놔둬라.
그러면 존재의 핵심까지 도달할 것이다.
God is never attained by effort,
God is a happening.
신은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신은 일어남이다.
You have to allow him to happen
-- you cannot force him.
그대는 신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를 강요할 수는 없다.
You cannot attack him,
you cannot be violent with him
-- and all activity is violent
-- you can simply allow him.
신을 공격할 수도 없으며 신에게 폭력을 쓸 수도 없다.
사실 모든 행위는 폭력이다.
그대는 단지 신을 받아들일 수만 있을 뿐이다.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1>
Look at the economy of life.
삶의 경제를 살펴보라.
The lower can exist without the higher but the higher
cannot exist without the lower, that's why it is higher.
아래는 위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위는 아래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위가 되는 이유는 아래가 있기 때문이다.
I am not creating a paradox, it is simple: the foundation of a building can exist without the building, but the building cannot exist without the foundation.
나는 어떤 역설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현상이다.
기초는 건물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나
건물은 기초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A man can exist in darkness,
but a man cannot exist in light alone.
사람은 어둠 속에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빛 속에서만은 존재할 수 없다.
A man can live the life of a sinner because it is lower,
but a man cannot live only the life of a saint.
사람은 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죄인의 삶은 아랫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성자의 삶만을 살 수는 없다.
The higher needs the lower.
It is lower because it can exist without the higher --
the higher is not a necessity for it --
but the higher cannot exist without the lower.
위는 아래를 필요로 한다.
아래는 위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래인 것이다.
위는 아래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위는 아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The roots can exist without the tree,
that is nothing impossible.
뿌리는 나무 없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If you cut the tree, the roots will still exist and
a new tree will be born; but try the other way --
cut the roots -- new roots will not be born.
나무를 잘라내도 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새 나무가 생겨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뿌리를 잘라 보라.
새 뿌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The lower is essential, the higher is a luxury;
it comes only when the lower is fulfilled.
It is possible only when the lower has been transcended,
not destroyed.
아래는 필수적이며 근본적이다.
그러나 위는 일종의 사치이다.
위는 아래가 충족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위는 아래가 파괴될 때가 아니라
초월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오쇼 :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Tao, The Three Treasures 2-9>
두드리려고 하는 마음이 문을 만든다.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단지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용기를 갖고 삶을 사는것 그뿐이다.
삶이 좋든 싫든, 성스럽든 악하든,
천당이든 지옥이든, 그 무엇이든 삶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숨으려 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마주치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있으라!
살아있을 동안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좋다.
세상에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끔씩 완전히 혼자 있는 곳으로
공간을 옮겨보는 것이 필요하다.
속세에 물들지 않은 순수성과 고독속에서
본래의 근원으로 갈수 있다.
질서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무질서가 일어난다.
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악마가 벌써 거기에 있다.
생각은 언제나 반대의 것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것을 구별한다.
그들은 단지 신이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모든 악은 어디에다 갖다 놓을 것인가?
신은 단지 선할 뿐이며 악할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삶속에는 많은 악이 존재한다.
이 악을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인가?
그래서 악마가 창조되었다.
신을 창조하는 순간 그대는 악마도 창조하는 것이다.
노자는 신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즉시
악마가 같은 문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문을 열면 그들은 같이 들어온다.
생각은 항상 반대의 것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선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대는
그대안에 악이 존재함을 더 많이 느낀다.
사랑하려고 노력해보라.
증오와 분노, 질투 그리고 소유욕을 느낄것이다.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보라.
그대가 얼마나 추한지 더욱더 심하게 느낄것이다.
이분법을 버려라.
분열증적인 태도를 버려라.
단순해져라.
단순해질때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아름다운지 추한지 모르게 된다.
그대는 항상 선택한다.
그대는 아름다움을 선택한다.
그러면 추함은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그대는 종교적이기를 선택한다.
그러면 종교적이지 않은 것이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그대는 성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면 죄는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그러면 그대는 어려움에 처할것이다.
선택! 그것이 삶을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택하지 마라.
선택없음이 되라.
삶이 흘러가도록 놔둬라.
때로는 그것이
신처럼 보이고, 때로는 그것이 악마처럼 보인다.
그둘은 다 아름답다.
선택하지 마라.
성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마라.
양자를 다 이용하라.
선택하지 마라.
인생은 상호 의존적이다.
삶에는 어느것도 목적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삶은 혼돈이 아니다.
삶은 의미있는 질서이다.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의지해서 완전해지며
길고 짧음은 서로 의지해서 대조되며
높고 낮음은 서로 의지해서 위치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의지해서 조화를 이루며
앞과 뒤는 서로 의지해서 사귄다.
노자는 반대되는 것은
진정으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라고 말한다.
그 둘을 나누지 마라.
나누는 것이 잘못이다.
그것들은 하나다
그것들은 서로 의지한다.
어떻게 사랑이 증오 없이 존재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비가 분노 없이 존재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삶이 죽음없이 존재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행복이 불행없이 존재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천국이 지옥없이 존재할수 있겠는가?
선택하지 마라.
그 둘을 다 즐겨라.
둘이 거기에 있도록 놔둬라.
둘 사이에 조화를 창조하라.
결코 선택하지 마라.
그러면 그대의 삶은
서로 대립되는것들로 이루어진 심포니가 될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삶이다.
어떤면에서는 가장 평범하지만
다른면에서는 가장 비범할것이다.
삶이 균형을 이루는 곳에 상호의존이 있다.
모든것은 다른것과 함께 존재한다.
모든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꽃을 다치게 하면 곧 벌을 다치게 한것이다.
어느것도 섬처럼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취하라.
삶이 오는대로 살아라.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기고 미래나 과거에 구애받지 마라.
니체가 말했다.
'하늘에 닿기를 원하는 나무는 땅속 가장 깊은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뿌리가 지옥까지 깊이 내려가면 가지들이 하늘에 닿을수 있다.
나무는 하늘과 지옥, 가장 높은곳과 가장 깊은곳 둘다에 존재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악마와 신성을 모두 만나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갑자기 모든것이 성취되었음을 발견한다.
삶이 그와 함께 비밀을 나누기 위해서
스스로 그에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텅빈사람이 되고
그 빈공간을 삶이 그의 비밀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삶은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대가 텅비면 모든것이 스스로 찾아온다.
노자 도덕경
두드리지마라 문은 열려있다
두드리려고 하는 마음이 문을 만든다
- 오쇼의 강의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