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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무엇을 위해서인가?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1.07|조회수113 목록 댓글 1

기적수업 : 텍스트 4장



VI. 에고(Ego) - 몸 환상(Body Illusion)


1

모든 것은
선(善)을 위해
함께 일한다.


에고의 판단 외에는
여기에 예외가 없다.


통제는, 에고가
의식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것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에고가 가장
경계해 지키는 요소이다.


이것은
균형 잡힌 마음이

유지되는
방법이 아니다.


에고의 통제는
무의식적이다.


에고는, 자신의
일차적인 동기는

무의식적인 것으로
유지하고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통제를 앞세움으로써,

더욱
균형을 잃게 된다.


에고를 낳은,
에고가 섬기는
사고체계에 따라,

에고는 당연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온전한 판단은,
필연적으로

에고에 반하여
판단할 것이며,

따라서
자기 보존에
관심이 있는,

에고에 의해
제거될 수밖에 없다.


2

에고의
불균형 상태는,

에고가
<신>으로부터 오는 충동과,
<몸>으로부터 오는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주된 원인이 있다.


이런 혼동을 만드는
모든 사고체계는

제정신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런 미친 상태는

에고에게
필수적이다.


에고는 오직,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위협인가 아닌가에
의해서만 판단한다.


어떤 의미에서,
신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한,

에고의 두려움은
최소한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디어는,

에고를 정말로
물리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높은 근원으로부터 오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에고의 용어로는
어느 정도 말이 되지만,

에고가, 그렇게도
가깝게 동일시하는,

몸에 대한 두려움
전혀 말이 안 된다.


3

몸은, 에고 자신이
선택한, 에고의 집이다.


몸은, 에고가
안전함을 느끼는, 유일한
동일시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몸의 취약함>이야말로,

그대가
<신의 것일 수 없다>는
내용을 가진,

에고가 만들어낸
최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고가, 열렬히
후원하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에고는
몸을 증오한다.


왜냐하면,
에고는 몸이

자신의 집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마음이, 참으로
어리둥절해지는 지점이다.


마음은 에고에게서,

마음이, 실제로
몸의 일부이며

몸은, 마음을
보호해주는 것

이라고 들었는데,

동시에, 몸이,
마음을 보호할 수 없다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


물론 이 말은
정확할 뿐 아니라
아주 명백하다.


4

따라서 마음이

“내가 어디를 가야
보호받을 수 있는가?”

라고 묻자,

에고는
“나에게 의지해.”
라고 답한다.


마음은
타당한 이유를 들며
에고에게,

너 자신이
실로 몸과 같다
주장했으니,

보호받겠다고,
너에게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라고 상기시켜준다.


에고는
이 물음에 대한

진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는
정녕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고는 물론
전형적인 해결책은
갖고 있다.


에고는 그 질문을
마음의 자각에서
지워버린다.


일단
무의식화 되면,

그 질문은 불안함을
발생시킬 수 있고,

정말 발생시키지만,

질문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 질문은 답해질 수가 없다.


다음이 반드시 질문
되어야만 하는 질문이다:


“내가 어디를 가야
보호받을 수 있는가?”


심지어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이 질문을
무의식중에 하지만,

이 질문을
의식적으로 하려면

진짜
제정신이 필요하다.


5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라는 성서의 구절은,

그대가
인식하지도 못할
어떤 것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미 있는 추구란,

의식적으로 착수되고,
의식적으로 조직되며,

의식적으로
방향 설정되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히 세워져야 하며,

마음에
간직되어야 한다.


나는
경험 있는 교사로서,

배우기와
배우려고 소망하기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그대에게 상기시켜주려 한다.


모든 학습자는 그들이
배우려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
가장 잘 배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가치들은
위계가 있다.


또한, 그대가
배우고자 원할 수도
있는 모든 것이

지속되는 가치를
갖고 있지도 않다.


6

사실,
그대가 배우고자
원하는 많은 것은,

그 가치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선택된다.


에고는
영원한 것이라면
어떤 것에든,

 아예
전념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영원성은
에고가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조적으로 실패한
유일한 기능이다.


에고가
그러기를 바랐다면,

영원한 것을
만들 수도 있었음을

알면,

그대는
놀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에고>는
<마음의 산물>이기에,

에고 창조자의 권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보다는

영원한 것을
만들겠다는
결정이야말로

에고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결정은,

- 그런
결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이 개발될 것이다 -

필연적으로
정확한 지각을
수반할 것인데,

이것은
참되게 판단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에고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7

이런 딜레마의
결과들도 괴상하지만,

그 딜레마 자체도
이에 못지않게 괴상하다.


여기서
에고는 다른 곳에서처럼
특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정신 질환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에고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서,

타당성의
문제가 아니듯이,

신뢰성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에고는 진짜 질문을
어떤 식으로든 건드리는
모든 사안과 타협하듯이,

영원성의
주제와도 타협한다.


에고는
지엽적인 주제에
몰두함으로써

진짜 질문을 숨겨
질문이 마음에 떠오르지
않기를 희망한다.


사소한 일로
분주해 하는
에고 특유의 모습은

정확히
이런 목적을 위해서이다.


8

납을 금으로 바꾸려는
연금술사의 오래된 시도에
대해 생각해보라.


연금술사가
스스로 묻기를

허락하지 않았던
하나의 질문은 바로

“무엇을 위해서인가?”였다.


그가 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비록
그가 금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이, 즉시
명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이
더 흔해지면, 그 가치가 하락하여,
그 자신의 목적도 잃게 될 것이다.


에고는 영원성의
아이디어들과의

몇 가지 이상한
타협안들을 장려하여,

자신은 위험에
빠트리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로서

영원성의 개념을,

사소한 것들과
관련시키려는

많은 이상한
시도를 해왔다.


따라서
에고는 마음들이

영구운동(perpetual motion)의
가능성에, 전념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영구적인 생각들(perpetual thoughts)의 가능성에, 전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9

해답이 없도록
설정된 문제들에 대한
관념적인 몰두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진 자들이,

배움에서 진정한
발전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에고가 즐겨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주어진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만들기,

원주율을
무한대까지 계산하기

등의 문제들은,
좋은 예들이다.


최근 에고의 시도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냉동 보존술로
몸을 보존함으로써,

에고가 용인할 수 있는,
일종의 제한된 불멸성
몸에 부여하는 것은,

에고가
최근에 마음에게 제시하는
매력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주의 분산용 책략들
가운데서,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절대로
제기하지 않는
유일한 질문이

“무엇을 위해서인가?”

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0

이것은 그대의 마음이
시도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그대가 반드시 묻기를
배워야 하는 질문이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은 자동적으로

그대의 노력을
집중시킬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대가
어떤 목적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그대는 이미
미래의 노력에 대한
결정을 한 것이다.


이 결정은 그대가
목적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 유효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11

심리학자들은 에고가,
아주 왜곡된 연관성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성행위와 공격성의 혼동,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적인 행동이

- 성행위든
공격성이든

그 결과적인
행동은 같다고
지각된다 -

좋은 예이다.


이것은 심리학자에게는
‘이해할만한’ 것이며 따라서
놀라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놀라움의 부재가
이해의 표시는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말도 안 되는 타협안을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고,

그 타협안을
자기 자신의 정신 질환이 아니라
환자의 정신 질환으로 여기며,

환자와 자기 자신에게
함께 물어야 할 질문들을

사소한 것들로 제한하는,

심리학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상이다.


12

이렇듯 비교적
가벼운 에고의 혼동은,

비록 가벼운 혼동이
보다 심각하게 그릇된

연관성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에고의 보다
심각하게 그릇된

연관성 중의
하나는 아니다.


너희의 에고들은
너희 마음이

반드시 제기해야 할
더 중요한 질문들을
가로막아 왔다.


너희가
환자의 마음에 대해
제기하는 질문들을

너희 자신이 제한하려 하는 한,
너희는 환자를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너희는 그 제한들을,

너희 마음에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가
환자는 물론 너희 자신도
치유할 수 없게 만든다.


기적심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도, 결코
순응하려 하지 말라.


그 상태 자체만으로도
그 지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4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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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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