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6장
3) 오직 신과 그분의 왕국만을 위해 경계하라.
1
그대는 그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늘 비판적이어야(critical) 한다.
왜냐하면
그대의 구원은, 정녕 온아들 전체에
매우 중요하기(critical) 때문이다.
앞에서 성령은 평가적이며, 또 반드시 평가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성령의 평가는
그대를 넘어서 확대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성령의 평가를 공유할 것이다.
그대 마음 안에서, 그리고
오직 그대 마음 안에서만,
성령은
거짓된 것들로부터
참된 것들을 골라내며,
그대가
그대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모든 생각을,
신께서 그 안에
넣어두신 것의 관점에서,
판단하라고 가르친다.
성령은 이 관점과
일치하는 것은 간직하여,
그대 안의
왕국을 강화시킨다.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받아들여 정화한다.
그러나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거부한다.
바로 이것이 성령이 왕국을,
완벽하게 일관되고 완벽하게
통일된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2
그렇지만 그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이 거부하는 것을,
에고는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과 에고는
그대의 정체에 대해, 근본적인
불일치 상태에 있으므로,
모든 것에 대해,
근본적인 불일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정체라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한
에고의 믿음은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에고가 다양한 감정을
조장하는 이유이다.
성령은 이 점에 있어서 결코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령이 일으키는
유일한 감정은 기쁨이다.
성령은
기쁨을 촉진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기쁨을 보호한다.
따라서 오직 성령만이
그대를 온전히 기쁜 상태로
유지시켜 줄 수 있다.
3
성령은 그대의 마음이,
다른 마음들에게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대가
잘못을 가르침으로써,
그대 스스로
잘못을 배우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성령이 그대가
피하는 법을 배워야 할 그것을,
오히려
강화시키도록 허락한다면,
성령이 일관성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생각하는 자의 마음 안에서
정녕 비판적이지만,
그것은 단지
그 마음을 통합하여
그 마음이
판단 없이 지각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마음이 판단 없이
가르칠 수 있게 하고,
따라서
판단 없이 존재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그대가 거짓되게
투사할 수 없도록,
무효화는,
오직 그대의 마음
안에서만 필요하다.
신께서 직접,
그대가 너무나 안전하게
투사할 수 있는 것을
확립해 놓으셨다.
따라서, 성령의
세 번째 레슨은
다음과 같다:
“오직 신과
그분의 왕국만을 위해
경계하라.”
4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로 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대가 경계해야 할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하기에,
여전히
사고의 역전에
관한 레슨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로
사고의 역전이었던
첫 번째 레슨이나,
본질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두 번째 레슨보다는,
훨씬 발전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가
첫 번째 단계에
뒤이어 오듯이
두 번째 단계에 뒤이어
오는, 이 세 번째 단계는,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않은 것의
이분법
(dichotomy)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단계는
극적인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5
첫 번째 단계는
갈등을 증가시키는
것처럼 보이고,
두 번째 단계도
여전히 어느 정도
갈등을 수반하지만,
세 번째 단계는
갈등에 반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미,
그대는 에고를 위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만큼이나,
에고에 반해서
경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레슨은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레슨은
어려움의 순서에는
신경 쓰지 않고,
최우선적으로,
무엇을 위해 경계해야
하는지에만, 신경을 쓴다.
이 단계는 비록
예외를 만들려는
유혹이 일어날 것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떤 예외도
없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 아주 확고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대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유지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렇지만
혼란과 일관성은
상호배타적이므로
오래 공존할 수 없다.
6
그렇지만
그대가 무언가에 맞서
경계해야 하는 한,
그대는
이 상호배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그대에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가르침으로써,
그대는 전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결국에는 가르칠 것이다.
이것은
마침내 그대의 뜻을
선택으로부터 해방시켜
왕국 안에서
창조하도록 이끌 것이다.
성령을 통해 내리는 선택이
그대를 왕국으로 이끈다.
그대는
진정한 그대의 정체에
의해 창조하지만,
그 정체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그대가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배우는 방법은
세 번째 단계 안에 내재한다.
이 단계는
앞의 두 단계 안에 함축된
레슨들을 합한 후,
그것들을 넘어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간다.
7
너희가
자신의 마음 안에
오직
신께서 두신 것만
갖고 있기로 한다면,
너희는 정녕
신께서 창조하신 대로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온전하니,
그대는
평화를 믿기 때문에
평화를 가르친다.
마지막 단계는
여전히
신께서 그대를 위해
밟으실 것이지만,
세 번째 단계를 통해,
성령은 그대가
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성령은 그대가
소유에서 존재로
넘어가도록
준비시키는데,
그것이
성령과 함께 거쳐야 할
단계들의 본래 목적이다.
8
그대는 먼저
<소유>는 얻기(getting)가 아니라,
주기(giving)에 의존한다는 것을
배운다.
다음으로 그대는
그대가 가르치는 것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그대가 평화를 배우기를
원한다는 것을 배운다.
평화는
<왕국의 조건>이므로
평화를
배우기를 원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왕국과
동일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대는 그동안
그대가 왕국의 밖에
있다고 믿어왔고,
그대의
믿음 안에서
그대 자신을
왕국으로부터
제외시켰다.
그러므로
그대가 틀림없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그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믿음만이,
그대가
제외해야 할
유일한 것임을,
그대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9
따라서
세 번째 단계는
그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단계로서,
그대가 오직
중심과만 동일시하게
해 준다.
그곳은 신께서
당신께 바치는 제단을
두신 곳이다.
우리는 이미 제단은
믿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과
그분의 창조물들은
믿음 너머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신을 대신하는 음성은
오직 의문 너머에 있는
믿음만을 대변해 말하는데,
이것은
의문 없이 존재하기를
위한 준비이다.
그대 마음 안에서 신과
그분의 왕국에 대한 믿음이
어떤 의심에
의해서라도 흔들리는 한,
그분의 완벽한 성취는
그대에게 분명하지 않다.
바로
이것이, 그대가 신을 위해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에고는
신의 창조에 반대하여
말하므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대가
<완전히 믿기> 전에는,
그대는
믿음 너머로 갈 수 없다.
10
전이는
정녕 확장으로서,
배움의 척도이니,
전이는
배움의 측정 가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곧 배움이 전달되는 대상이,
측정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배움이 온아들 전체로
- 온아들은
광대무변한 분(the Immeasurable)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측정 불가능하다 -
전이되지 않는 한,
배움 자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온아들을
예외 없이 가르치는 것은,
그대가
온아들의 온전성을,
지각하고 있으며
온아들이
정녕 하나라는 것을
이미
배웠음을 입증해준다.
이제 너희는
온아들의 하나인 상태를
마음에
간직할 수 있도록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의심이 들어오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는
온아들의 온전성에 대한
의식을 잃게 될 것이며,
그것을
가르칠 수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1
왕국의 온전성은
그대의 지각에
달려있지 않다.
그러나
왕국의 온전성에 대한
그대의 의식은 정녕
그대의 지각에 달려있다.
그대의 존재는 정녕
공격받을 수 없으므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그대의 의식뿐이다.
그렇지만 그대가
그대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한,
존재에
대한 진정한 느낌은
그대의 것일 수 없다.
바로 이것이 경계가
아주 중요한 이유이다.
존재에 대한 의심이
그대 마음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그대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확실성은
신에게서 오는 것으로서,
그대를 위한 것이다.
경계는
진리를 위해서는
필요 없지만,
환상들에 반해서는
정녕 필요하다.
12
진리에는
환상이 없으며,
따라서 진리는
왕국 안에 있다.
왕국
바깥에 있는 것은
정녕
모두 환상이다.
그러나 그대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만 하니,
그대가 진리를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는
마치 그대에게
진리가 없는 것처럼
그대 자신을 보았다.
너희가 가치를 둔
다른 왕국을 만듦으로써,
너희는 마음 안에
오직 신의 왕국만을
간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너희 마음의 일부를
그분의 왕국
바깥에 두었다.
이와 같이
너희가 만든 것이
너희 뜻을 갈라놓았고,
너희에게
치유되어야만 하는,
병든 마음을 주었다.
너희가
이런 병에 반해서
깨어있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일단
너희 마음이 치유되면,
그것은 건강을 발산하며,
따라서 치유를 가르친다.
이것은, 그대를
나처럼 가르치는 교사로
확립해준다.
경계해 깨어있음은
그대만큼이나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가르치겠다는
뜻을 세운 자들은
그들이
믿는 것에 있어서도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13
그렇다면
세 번째 단계는
그대가 무엇을 믿고자
원하는지에 대한 진술로서,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하겠다는 용의를
수반한다.
나는 그대가 두 번째 단계를
막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대에게 세 번째 단계가
뒤이어 온다고 말해주었다.
만약 그대가
성령을 따른다면,
성령은
그대가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경계해 깨어있음은
그대가, 성령이
그대를 안내해 줄 것을
원한다는 표시이다.
경계해 깨어있음은
물론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대에게
<노력 자체가 필요 없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대는
그대가 만든 것을
지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참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대는
그대가 만든 것에, 반하는 쪽으로
노력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오직 이것만이
노력의 필요성을 상쇄하고,
존재를 불러올 수 있다.
그대는
존재를 소유하고 있는
동시에
그 존재 자체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노력이 전혀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대의 존재는 이미 진리이며,
아무런 보호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존재는
신의 완벽한 안전 안에 있다.
따라서
포함함은 총체적이며,
창조는 한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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