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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그른 마음, 바른 마음, 한 마음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2.17|조회수107 목록 댓글 1

* 그른 마음,
바른 마음,
한 마음



그른 마음 상태

물질 세상을
육신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것이
에고의 전부입니다.


에고의 역동과
특별함의 내용을
설명하는,

기적수업의
모든 구절이
그 내용입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죄책감,
유죄가 실재이며,

타인에게 그것을
투사할 필요가 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잡아먹고, 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겉보기의 실재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교정인
바른 마음 상태는,

물질 세상,
에고 사고체계를
바라보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수입니다.


그것은
반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가
말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세상에서

사랑은 불가능
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반영인 용서
여기에서 가능합니다.


그는 여기에서
거룩함의 반영
대해 말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관계의
내용입니다.


그는
거룩한 순간
대해 말합니다.


그는 거룩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거룩함은 이 세상에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순간과 거룩한 관계
진실인 것의 반영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에고 사고체계,
이원적 사고체계를

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것에 대해
쓰는 방식,

그것을
제시했고, 우리에게
실천을 청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 상태
물질 세상을 바라보지만

비전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원성의 세상 안에
있다는 것으로,

여전히
허상(환영)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마음 상태는, 영안을 통해
영적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의 상태
직접 다루는 구절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많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구절은
기적수업에서

진리
무엇인지를
말하는 곳,

실재가 무엇인지,
비이원성이 무엇인지
말하는 곳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이해할 때,

적어도
지적으로, 당신은

무엇이 허상인지를
이해할 수 있고,

이원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 관점은,
당신이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서
오해하는 실수에 빠져

왜곡해서,

그 구절들을
당신이 원하는 식으로

의미하게끔 하지 않게
도울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방식은 언제나,

진리 대신에

당신의 특별함
실재라는 것을
확언하려 할 겁니다.


당신이 하나임,
실재, 비이원성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할 때,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의 관점,
하나의 맥락,
하나의 틀을

갖추는 것이고,

그런 틀에서
기적수업에서

말하는

바른 마음
상태의 구절들,

성령의 역할에 대해
다루는 모든 구절들,

기적과 용서의
역할을 다루는

구절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런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예수가
말하고 있는 것을
문자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그는 우리 수준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있다고 믿는 곳이
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기본적으로
예수가 우리에게,

그가 그 문제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는 수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가
알고 있는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줄
구절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의 학생들은

그가 수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구절들을
중요하게 보지 않아서

어떤 의미에서는
빼먹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지를 놓칩니다.


요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래야, 수업으로 하는
당신 평생의 작업은

정말로 생산적인
것이 될 것이며,

당신을 진짜 여정으로
이끌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당신 에고를 넘어서는
데에,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이
수업의 학생이라면,

보다
적은 것에 안주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언제나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근본 질문이 될 겁니다.


나는
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더 적은 것에
안주하려 하는가?


나는
완전한 사랑의

경험을
할 수 있음에도

왜 작은
사랑의 반짝임에
안주하려는가?


나는 왜
예수의 전존재를
얻을 수 있는데

예수의 핑크빛
새끼손가락만을
원하려 하는가?


모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적은 것에
안주하려 하는가?


그렇지만 그것이,
사람들이 기적수업으로
작업할 때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업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케네쓰 왑닉, CD,
은유로서 이원성 


ㅡ 기적수업ㆍ한국모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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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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