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13과
A meaningless world engenders fear.
의미 없는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실습 지시사항
목적: 어제와 같음.
당신이 속상해하는 이유는,
당신이 본능적으로 세상에 내용이 없음을,
세상이 백지 상태(빈 석판)임을
감지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함.
이로 인해 당신은, 진리가
그 위에 쓰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오늘 연습은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은
정말로 백지 상태임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당신이 그 위에 써 놓은 것을 지우고,
신이 써 놓으신 것을 보도록 돕습니다.
연습:
하루 3-4회 1분 정도
(1분 이상은 하지 마세요).
◉ 눈을 감고 오늘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세요.
의미 없는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 눈을 뜨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러면서, “나는 의미 없는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반복해 말하세요.
◉ 이제 눈을 감고,
“의미 없는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키는 이유는,
내가
신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세요.
주의할 점:
당신이
마지막 맺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이 말에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저항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단순히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항하는 진짜 이유는,
이 말이 당신 안에 깔려 있는
신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당신 자신에게 말해 주세요.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은, 세상의 백지에 달려들어
그 위에 당신의 의미를 씀으로써
일시적으로
신을 패배시켰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이제
신의 복수를 직면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에 대응하려고
당신은 이 믿음을 무의식
안으로, 쑤셔 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연습을
마무리하는 말은
그 믿음을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이 말을 두려워하고 떨쳐
버리고 싶어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레슨은
맺는말을 곱씹지 말고
연습 시간 외에는
이 말에 대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해설
의미 없는 세상이
우리를 속상하게 한다는 말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의미 없는 세상은
우리 안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수업은 며칠에 걸쳐
세상이 의미가 없다고
우리를 설득한 후,
이제까지
했던 말을 뒤집습니다.
(the Course "reverses course"):
실제로
의미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2-3)
텍스트 서문은
“실재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T. 서언:4)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의미 없는 것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의미 없는 것들을
지각한다고 생각하고는
그 위에
우리의 의미를 써넣으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신이 이미 그 위에 써넣으신
의미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미 없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우리 안에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의미 없음이 제공하는
빈 공간에
누구의 의미를
써넣을 것인가를 두고
신과 에고가
서로에게 “도전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에고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거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확립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빈 공간이
자신이 실재가 아님을 입증하는 데
사용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이 점에서만, 에고는 옳다.
(2:2-4)
만약 에고가 대상들에
자신의 의미를 주기 위해
달려들지 않았다면,
신이 두신 의미가, 에고의
비실재성을 입증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고가 자신이
뭔가 써 넣어야 할, 빈 공간을
본다고 상상하는 이유입니다.
에고는 신이 이미 두신
의미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에게
우리 자신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수업은 만약 우리가
자신의 의미를 쓰기 위해
달려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들을 메시지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메시지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이것은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완전히 에고의 꾐에 넘어가, 말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합시다.
우리가
그의 말에서 듣는 메시지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우리가
듣기로 선택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정합니다.
만약
내 마음이 성령에게 맞춰져 있다면,
누가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든,
나는
내 안의 그리스도를 확인해 주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를 들을 것입니다.
“너의 형제가
너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에게 달려있다.
그가 너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너는 그가 무엇을
말하도록 하려는가?
네 형제에 대한 너의 결정이,
네가 받는 메시지를 결정한다."
(T,8:111)
우리가
신과 경쟁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것 때문에 신의 복수를
두려워한다는 아이디어는,
오늘의 아이디어가 인정하듯이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레슨은 우리에게
어쨌든 레슨을 하라고 요청합니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비록 우리가 어떤 것이든,
의미 없이 내버려 두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충분히
깨닫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을, 알아차리려고 시도합니다.
오늘 레슨은 우리가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라고 말할 의도를 낼 수
있게 작업하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오늘 레슨은 또한 우리에게
어떤 형태의 두려움이든
주의 깊게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그 두려움들을
극복하려고
시도하지 마세요.
단지 알아차리세요.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그 이유가 어쩌면,
어두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당신이 내버려 두면
신이 그것 위에
의미를 쓰실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13/
ㅡ 기적수업ㆍ공부모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