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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그대는 그대가 투사하는 그것을 믿는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2.28|조회수106 목록 댓글 1

기적수업 : 텍스트 7장


3. 마음의 법칙


1

그렇다면
<치유하는 것>은,

그대 형제와 함께
<성령을 공유함>으로써,

그와 그대 둘 다 안에서
<지각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 둘을
왕국 안에 놓아주고,

너희의 마음 안에,
왕국의 온전성을
회복시켜 준다.


이것은
<증가하기를 통해 통일>시키고,
<확장하기를 통하여 통합>하므로,
<창조>와 매우 유사하다.


그대는
그대가 투사하는
그것을 믿는다.


이것은
왕국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바뀔 수 없는
<마음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는
그 내용이 다르다.


왜냐하면,
마음의 법칙이

이 세상에서
지배하는 생각은,

왕국에서의 생각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법이
질서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상황에 맞춰 조정되어야 한다.


2

이 세상에서 운용되는
마음 법칙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법칙을 지킴으로써

– 장담하건대 그대는 반드시
그 법칙을 지켜야 한다 –

그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법칙이,
이 세상의 상황에 맞춰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실로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있다고 믿어진다.


마음의 법칙은
생각을 지배하고,

그대는 서로 갈등하는
두 음성에 반응한다.


그대는
‘자유’를 대변하는 주장을
많이 들어왔다.


만약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우기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정녕 자유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자유’를 하나가 아니라

많은 것으로
지각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자유에 대한
옹호의 밑바탕에 깔린
주장은 완전히 타당하다.


자유는 진리이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유와 한편이 되어야 한다.


3

자유를 반대하는 자들은,
자유의 결과가 그들을 해칠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진실일 수 없다.


그러나 자유를 찬성하는 자들은,
비록 자유를 어떻게 옹호할 것인지에
대해 잘못 인도받고 있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리인 것과
한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양쪽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들을 수
있다면,
누구나 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에 대한
답을 정녕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반드시 먼저 개인 안에서 일어난다.


4

‘개인 안의(intrapersonal)’
라는 용어는 에고의 용어이다.


왜냐하면 ‘개인의(personal)’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들 사이의(Interpersonal)’라는
용어도, 서로 다른 혹은 분리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뭔가를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유사한 오류를 갖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계시>의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에 대해 말했을 때, 이 말에 이어서 즉시 공유라는 면에서, 계시의 불가피한 결과를 설명하였다.


어떤 개인이 자신을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주로 그 자신이 
묶여있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오직 자신을
마음이라고 지각할 때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 안의(intramental)’ 그리고 ‘마음들
사이의(intermental)’ 등의 용어들을

서로 다르다거나, 갈등한다고 보지
않으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들은,
정녕 완벽한 일치 상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왕국 밖에서는,
왕국 안을 지배하는 법칙

“그대는 그대가 투사하는 것을
믿는다.”에 맞춰 조정된다.


왕국 밖에서는, 배움이 필수이므로
이것은 가르침의 형태를 취한다.


이 형태는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 것,

따라서 그대가
그들의 정체라고 믿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그대의 정체를
배우게 됨을 의미한다.


왕국 안에는
아무런 믿음도 없기에,
가르침도 배움도 없다.


왕국에는
오직 확실성만이 있다.


신과 그분의 아들들은
존재의 확실성 안에서,

그대는
실로 그대가 투사하는
바로 그것임을 안다.


왕국 법칙의 이런 형태는
창조의 법칙이기에,
전혀 조정되지 않는다.


신께서
직접 그 법에 의해

창조하심으로써,
그 법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신처럼 창조하는 그분의 아들들은,

그들 자신의 창조가 그랬던 것처럼
왕국의 증가도, 그 법칙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쁘게 그 법을 따른다.


6

법은 도움이 되려면,
반드시 소통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것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을 위해
반드시 번역되어야 한다.


좋은 번역자는
형태는 바꿔야 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바꾸지 않는다.


사실상 번역자의 목적은
그 형태를 바꾸어 본래의 의미
유지되게 하는 것이 전부이다.


성령은 신의 법칙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번역해 주는 번역자이다.


너희 스스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상태에 있는 마음들은

하나의 의미에
충실할 수 없으며,

따라서 형태를 지키기 위해
의미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7

성령이
번역하는 목적은
당연히 정반대이다.


성령은 번역할 때
오직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언어로,
본래의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번역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형태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개념에 반대하여,

항상 그러한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성령의 메시지가
전하는 의미는 항상 같으며,
오직 의미만이 중요하다.


완벽한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

신의 창조의 법은
당신의 아들에게

진리를 확신시키기 위해서
진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진리의 확장이
곧 왕국의 법이며,

이는 진리를
알아야 가능하다.


이것은 너희가
물려받은 유산으로서,

배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에게
상속권을 박탈했을 때,

너희는
배우는 자가 되었다.


8

배움과 기억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배움은
기억되지 않는 한,
일관될 수 없기에,

기억 없이는
배움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실로 기억하기에 관한
하나의 레슨인 이유이다.


앞에서 성령은
기억하기와 잊기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잊기의 측면은
오직 기억하기를 일관되게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대는
더 잘 기억하기 위해
잊는다.


그대가
성령이 번역한 것들을 지각하는
두 가지 방법에 귀를 기울이는 한,

그대는
성령이 번역한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어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반드시 잊거나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그대가 정녕 일관성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럼으로써 그대는
마침내 일관성 있게 될 수 있다.


9

혼동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왕국의 완벽한 일관성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는가?


혼동은 의미를 훼손하며,
따라서 학습자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왕국에는 오직 하나의 의미만
있으므로, 어떤 혼동도 없다.


이 의미는 신에게서 비롯되며,
또한 이 의미가 정녕 신이다.


그 의미는 또한 그대이므로,
그대도 그대의 창조주가 그러셨듯이,
그 의미를 공유하고 확장한다.


그 의미는
완벽하게 이해되고 있기에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확장을 의미하기에,
정녕 확장을 필요로 한다.


소통은
완벽하게 직접적이며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다.


소통에는 전혀 긴장이 없다.


왜냐하면,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것도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소통>이
실로 <신의 왕국>인 이유이다.


소통은
본래 신께 속하며,
따라서 신을 닮았다.


이것이
신의 왕국의 실재이다.


그리고
왕국의 실재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7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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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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