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21과
나는 다르게
보겠다고 결심한다.
I am determined to see
things differently.
실습 지시사항
연습:
다섯 번, 매 번 1 분을
충분히 사용하세요.
*오늘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세요.
*그리고는 눈을 감고,
마음을 주의 깊게 살펴,
아무리 약한 것이더라도
당신에게 언제라도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을 찾아내세요.
각 상황을 마음에 담고,
“나는
[구체적인 사람이나 상황의 이름]을
반드시 다르게 볼 것이다.”
라고 말하세요.
“작은” 분노의 생각이든
“큰” 분노의 생각이든
똑같은 주의를 주세요.
당신을 화나게 하는
특정한 사람의, 구체적인
특성에까지 이름을 붙여
연습을 더 구체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 이름]의
[그 특성의 이름]을
반드시
다르게 볼 것이다.”
라고 하세요.
주의할 점:
이 연습은
우리 분노의 강도가
중요하다는
오류를 피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오류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합니다.
첫 째 형태는, 예를 들어
약한 짜증 같은 작은 분노는
너무나 작은 것이므로
연습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형태는,
특정한 분노의
“분명한” 원천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런 특별한 경우에는
화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진실은,
모든 분노는 최대치이며
어떤 분노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레슨에는
두 번째 오류도
언급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분노가
어떤 사람의 특정한 성격에
국한되어 있다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기본적으로는
그를 사랑해.
그 사람 전체에 대해
화내는 게 아니라,
단지 나를
짜증나게 하는 어떤 특성에
대해 화가 나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레슨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이런 식으로
별 탈 없이
잘 제한 될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전반적입니다.
우리는 이 오류가
실습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오류처럼)
오히려 실습 대상에
이 오류를 포함시킵니다.
즉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그 특성에 적용합니다.
(7문단 참고)
유혹에의 대응:
어떤 상황이
분노를 일으킬 때마다.
지각된 분노의 근원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오늘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세요.
“나는
[사람이나 상황의 이름]을
반드시 다르게 볼 것이다."
해설
오늘 레슨에서 우리는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들을
다르게 보겠다는 강조와 함께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합니다.
지각을 변형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이 연습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이 레슨에 있는 한 구절의
내용은 특히 놀랍습니다.
그것은 텍스트를 공부하고
수업이 가르치는 정신적인
훈련을 점점 더 해갈수록,
“사소한 성가신 느낌도
강한 분노 위에 드리워진
베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더 알아차리게 될 것”
(2:5)이라는 내용입니다.
텍스트 1장에 제시된
첫 번째 “기적의 원리”는,
“기적에는
어려움의 순서가 없다.”
(T-1.I.1:1)입니다.
오늘 레슨에서
제시된 위의 아이디어는
바로
기적의 첫 번째 원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분노에는
심각성의 정도가 없습니다.
<사소한 성가심의 느낌>은
<강한 분노>와 같으며,
사실 <위장된 격노>입니다.
모든 형태의 분노는
같은 근원에서 나옵니다.
몇몇 심리학파는
오랫동안 모든 이들이
깊게 묻힌
원초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것은
문명의 포장에 의해
완화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 밑의
무의식에는
폭력적인 격노가
놓여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진화과정에서 우리가
동물에 기원을 둔
탓으로 돌려왔습니다.
그러나
기적수업은 분노를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봅니다.
우리는
실재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고
천국의
통일성을 파괴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특별한 대우와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유치하게 화를 냄으로써
우리 자신의 집을 파괴했고,
다시는
거기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격노를 느끼지만,
자기혐오라는
그 죄책감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격노를
밖으로 돌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보이는
다른 대상들에게
던져댑니다.
이렇게 분노를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것에
해당하는
용어가 “투사”입니다.
우리 안의 에고는
분노의 원인이
내면이 아니라
밖에 있다고
우리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어슬렁거리며”
정당해
보이는 이유로
분노를
투사할 상황을
찾아다닙니다.
약한 짜증부터
격노까지
모든 분노의 폭발은,
이와 똑같은
깊고 원초적인 자기혐오가
세상에 투사된 것입니다.
분노들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수업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의 공격은
다른 형태의 공격보다
정당하다고 믿지 말라고,
그리고
“작은” 분노의 생각도
연습대상에서
제외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입니다.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21/
ㅡ 기적수업ㆍ공부모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