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7장
11. 강함과 약함의 혼동
1
그대는
무엇이 기쁜 것인지
모르는 만큼이나,
무엇이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며,
사실상 그 둘을
혼동하는 경향이 크다.
성령의 주된 기능은
그대에게 그 둘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이것은 명백히 필요하다.
그 이유도 똑같이 명백하다.
그대에게는
기쁜 것이
에고에게는 정녕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대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한,
그대는
기쁨과 고통을
혼동할 것이다.
이 혼동이
희생이라는 아이디어
전체의 원인이다.
성령을 따르라,
그러면 그대는 반드시
에고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대는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그대가 이것을 믿는다면,
아무런 갈등도 없을 것이다.
2
그것이 바로
그대가 명백한 것을, 그대 자신에게
입증해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명백한 것이 무엇인지가
그대에게는 명백하지 않다.
그대는 신의 뜻과
정반대의 것을 행하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낫다고 믿는다.
그대는
또한 신의 뜻에 정반대의 것을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대는
불가능한 대안을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대안은
매우 두려운 것인 동시에,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신께서는 뜻하신다
(God wills).
그분은
원하지 않으신다
(He does not wish).
그대의 뜻은
신의 뜻만큼 강력하니,
그대의 뜻은 정녕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불가능한 것을 원하기에
에고가 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대도
불가능한 것을
원할 수는 있지만,
오직
신과 함께만
뜻할 수 있다.
이것이
에고의 약함인 동시에
그대의 강함이다.
3
성령은
언제나 그대와 한편이며,
그대의 강함과 한편이다.
그대가 어떤 식으로든
성령의 안내를 피하는 한,
그대는
약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약해지면 두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정은,
그대가 두려워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성령은
결코 희생을 요구하지 않지만,
에고는 항상 희생을 요구한다.
그대가
이렇게 아주 명백한
동기의 차이를 혼동할 때,
그것은
오직 투사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투사는
실로 동기에 대한 혼동이며,
이런 혼동 상태에서는,
신뢰가 불가능해진다.
4
아무도 자신이
신뢰하지 않는 안내자를
기꺼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 안내자가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항상 따르는 자가
신뢰할만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단지
따르는 자의 믿음의 문제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배신할 수 있다고 믿기에,
모든 것이 자신을
배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그가, 거짓된 안내를
따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려움 없이는
그런 안내를 따를 수 없기에,
안내를 두려움과 관련지으며,
어떤 안내도 따르기를 거부한다.
성령은 완벽하게 신뢰할만하다.
그것은 그대도 마찬가지이다.
신께서 직접 그대를 신뢰하신다.
그렇기에
그대의 신뢰할만함은
정녕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대가 아무리 그것에
의문을 많이 제기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5
우리는 앞에서 그대가
정녕 신의 뜻이라고 말했다.
신의 뜻은
헛된 소망이 아니며,
그대가
신의 뜻과 같다는 사실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녕
그대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신의 뜻을 공유하는 것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분리 전체가
이런 오류에 놓여있다.
이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대는 아무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이
신의 결정에 의해
그대에게 주어졌다.
이것이
정녕 신의 뜻이며,
그대는 그것을
무효화할 수 없다.
심지어
에고가 그렇게도
철저히 지키려 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그대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조차,
그대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뜻에 의해,
그대를 위해
이미 이루어졌다.
그분은
그대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않으셨다.
신의 음성은
반드시 그대에게
어떻게
고통과 기쁨을
구분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줄 것이며,
반드시 그대를,
그대가 만든 혼란에서
빠져나오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아버지와 같은 뜻을 가진
아들의 마음에는 혼동이 없으니,
아버지의 뜻은, 정녕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6
기적은
신의 뜻과 일치하지만,
그대는 자신이
무엇을 뜻하는지 혼동하기에,
신의 뜻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그대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에 대해
혼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대가 정녕
신의 뜻이면서도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대는 기쁨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적은 기쁨이
참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레슨이다.
기적은
공유하기에 대한 레슨이기에,
사랑에 대한 레슨이다.
그리고
사랑은 정녕 기쁨이다.
따라서 각각의 기적은
모두 진리에 대한 레슨이다.
그리고 진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대는 고통과 기쁨의 차이를 배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7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