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텍스트 : 제8장 귀향
1. 서문
1
그대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함으로써,
발전에
방해를 받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결핍에
매달리는 방법이다.
그대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기 위한
수업의 지시사항들을
따르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 수업에 대한 필요성은
그대의 거부에 함축되어 있다.
<앎>은
이 수업을 배우기 위한
동기가 아니다.
<평화>가
이 수업을 배우기 위한
동기이다.
앎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평화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 이유는 단지,
<갈등> 속에 있는 자들은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는
<왕국의 조건>이기에,
<앎의 조건>이다.
2
그대가
앎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앎은
회복될 것이다.
이것은
신께서 하시는
흥정이 아니다.
그분은 전혀
흥정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다만 그대가
신의 뜻이 아닌 뜻을 위해서,
신의 법칙들을
잘못 사용한 결과일 뿐이다.
<앎>은 정녕
<신의 뜻>이다.
만약
그대가 신의 뜻에
반대하고 있다면,
어떻게 앎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에
앎이 그대에게
무엇을
제공해 주는지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대가 이것을
온전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대가 그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면,
에고가 그대에게
충성을 요구할 때,
앎을
그렇게 쉽게 내던져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에고의 방해는
그대의 배움에 지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대가 에고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는 한,
에고는 그대를
방해할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다.
3
에고의 음성은
일종의 환청이다.
에고가
“나는 실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환청은
그야말로 실재에 대한
부정확한 지각이다.
그렇지만 그대는
환청을 혼자서 쫓아버리라고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다만
환청이 그대에게 남긴
결과를 평가하라고
요청받고 있을 뿐이다.
그대가
평화의 상실을 근거로,
환청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의 마음에서
그대를 위해
제거될 것이다.
에고에 대한
모든 반응은
전쟁으로의
부름이다.
그리고 전쟁은
정녕 그대에게서
평화를 앗아간다.
그렇지만
이 전쟁에는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평화를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그대가 해야만 하는
실재에 대한 재해석이며,
그대가 늘 해야만 하는
유일한 재해석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8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