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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네가 보는 세상은 반드시 부정되어야 한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4.11|조회수107 목록 댓글 1

[1월 29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29과



내가 보는 모든 것에 신이 계신다.

God is in everything I see.



실습 설명


목적

“모든 것을 사랑과 감사와
열린 마음으로 보는 법

배우기
시작” (3:1)하기 위함.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거룩한 목적을 보기 위함.


긴 연습: 

6번, 각 2 분 동안


◉ 
오늘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세요.


◉ 
그리고는 주위에 보이는
대상들에 무작위적으로
오늘의 아이디어를 적용합니다. 


하나씩 이름을 부르며,
“신이 이 [잡지, 손가락]에 계신다.” 


혹은 “신이 저 [몸, 문]에
계신다.”라고 말하세요. 


이것은 신이 그 대상 안에
어떻게든 물질적으로 계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신이 그 대상에 신의 목적
신의 일부인 목적을 부여하셨다
주장하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오늘의 실습법을 기억하세요. 


가까운 대상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먼 대상으로 확장해 나가세요. 


오늘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며 말을
하는 동안, 각 대상을 계속 보세요.


“자신이 주도적으로 대상을
선택하려는 경향” (4:2)을 피하세요.


자주 반복하기: 

최소한 한 시간에 한 번, 
주위를 둘러보면서

오늘의 아이디어를
속으로 천천히 말하세요.



해설


오늘의 아이디어는
네가 왜 어떤 것에서든

모든 목적을 볼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왜
아무것도, 그것 혼자
혹은 그것 자체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지도 설명해준다. 


또한 왜
네가 보는 것은 어떤 것도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지를 설명해준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모든 아이디어는 물론

앞으로
다룰 모든 아이디어도
함께 설명해 준다. 


오늘의 아이디어가
비전의 전체적인 근거이다.

(1:1-5)


분명히
오늘의 아이디어는

기적 수업
사고 체계의 중심축이며, 

단지
그럴듯하고 감상적인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자연과 신이 같다는
다신교도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수업은 분명히,
“세상은 없다.” (W,132:5)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아이디어는

자연과 신이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보는 대로의 탁자 안에는
확실히 신이 계시지 않습니다.”

(2:3)


우리가 사물들을 볼 때, 어느 것도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탁자는 단지 탁자일 뿐이며, 
밥을 먹거나 포커를 하는 데
쓰이는 평평한 표면입니다. 


탁자는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탁자의 목적은 일시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탁자는
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신을 감춥니다.


신은
물질적인 탁자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은 탁자를 통해, 

탁자를 수단으로 하여
보이실 수 있습니다. 


만약 탁자가
우주의 목적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창조자의
목적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우리의 행복, 기쁨, 완성이며, 

그것은 신의 행복, 기쁨
완성에 필수적입니다.


“모든 것은
너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그것들이 있는 이유이며, 
그것들의 목적이며, 

바로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이다.”

(W,25:1)


“목적”
오늘 레슨과 어제 레슨의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모든 것은
신의 목적을 공유하므로

신은 내가 보는
모든 것에 계십니다. 


나의 시각(sight)은,
모든 것 안에서

빛나는 진리를
가리는 베일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만약
내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 베일을 관통
빛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각하는 방법으로는
신은 모든 곳에 계시지 않으며, 
사실 어디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만약 단지
육체적 시각만으로
충분했다면, 

우리는 모두 오래 전에
신을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을 가리기 위해
<우리의 시각>을 만들었지만, 

<그리스도의 비전>으로 보면, 

모든 것은
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어느 것도, 그것이
너에게 보이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신성한 목적은
너의 작은 범위 너머에 있다.

(3:4-5)


처음으로
이 레슨을 읽었을 때 저는,

“내가 보는 모든 것 안에
신이 계신다.”라는 아이디어가, 

전에 나온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설명한다는
말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만약 신이
내가 보는 모든 것에 계신다면, 

그것은 제가 보는 것들에게
풍부한 의미를 주어야 하고

저는 그것들이
우주의 목적, 창조주의 목적을
공유하는 것으로 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내가 보는 모든 것 안에
신이 계신다.” 에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논리적 귀결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저는
처음부터 분명해야만 했던
구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봄(seeing)” 또는 “시각(sight)”과 
“비전(vision)” 사이의 <구분>이었습니다. 


수업은 매우 일관되게
이 구분을 하고 있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시각과 비전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시각”은 우리의
일상적인 봄(seeing)의 방식, 
즉 몸의 눈이 보여주는 것이

마음 안의 갈망의 결과이거나
마음에서 의미가 투사된 것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비전”은
다른 종류의 감각(sense)으로서, 

몸의 눈과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 레슨이,

“오늘의 아이디어는
비전의 전체적인 근거이다.”

(1:5)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하세요.


“비전이 당신에게
세상을 비춰주는
거룩함을 보여줄 때, 

당신은
오늘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3:6) 


모든 것에서
신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비전이며, 

시각은 신을
드러내 주지 않습니다. 


신은 내가 보는
모든 것 안에 계시지만, 

시각은 내게
신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보는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까닭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것들을 
[비전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3:2) 


신은 거기에 계시지만, 
시각은 신을 보지 못합니다. 


시각은 모든 것에게
그것들이 가진 의미를 주는
바로 그것을 간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에서 얘기한 것을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내가 보는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라고 고쳐 말할 수 있습니다. 


의미는 거기에 있지만
나는 그 의미를 보지 못합니다.


네가 보는 세상은
반드시 부정되어야 한다. 


그것을 봄으로써
너는 다른 종류의 비전을
잃기 때문이다. 


너는 두 세상을
함께 볼 수 없다. 


각 세상은
서로 다른 종류의
봄(seeing)과 관련되며

네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T,12:60)


신이
모든 것에 계신다는 아이디어는 
“비전을 위한 토대의 전부입니다.”

(1:5) 


그것은 “다른 종류의 봄”
(T,12:60)의 토대입니다. 


우리가
비전으로 보기 위해서는, 

몸에 제한되어 있고
오직 자신의 에고가 보기를
원하는 것만 다시 보여주는

현재의 봄의 방식을 부정할 용의, 
혹은 무시할 용의를 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신이 모든 것에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데, 

몸의 눈으로 신을 보지 못한다면, 

분명히 다른 종류의 봄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열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전을 요청할 것입니다.


오늘 레슨은 우리의 봄의 
“작은 범위”(3:5)에 대해 말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신이 오직
빛의 적외선 범위에서만
보인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론 신은
어떤 물리적인 방법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은
적외선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적외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육체적 시각의
범위는 매우 좁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모든 종류의 “빛”이 있습니다: 

적외선, 자외선, 열, 방사선, 
전파, 마이크로파 등등. 


신은 모든 곳에 계시지만
우리 시각의 범위 밖에 계십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비전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오늘 레슨이 어떤 의미에서
우리 안에 일종의 불편함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레슨은 당황스러운
의문을 촉발시킵니다:

”신이 모든 것 안에 계신다면,
나는 왜 그 분을 못 보는 거지?” 


오늘 레슨은 우리가 
“시각”이라고 믿어 왔던 것의
한계를 알아차리게 만듭니다. 


오늘 레슨은
우리로 하여금

시각의 제한된
범위를 알아차리게 하고, 

그 모든 제한된
범위 너머를 보는, 

모든 것 안에서
우주의 목적을 보는

비전에 대한 열망을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킵니다.


내일 레슨은 계속해서, 우리가
비전을 찾도록 안내해 줍니다.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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