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8장
11. 기도에 대한 응답
1
무언가를
요청하기 위해
기도를 사용하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처럼
보이는 경험을 해 봤다.
이것은
해로울 수도 있는,
특정한 것과 관련된
요청만이 아니라,
이 수업의 정신과
엄밀하게 일치하는
요청과 관련해서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이 수업은 말만 그렇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는 ‘증거’라고,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이 수업의 목적이,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
그렇다면 그대가
성령에게 요청하는 것이,
그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그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비록 그것이
그대가 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얻는 것은,
더 이상
그대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것이,
치유의 상태가
정녕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특정한 형태의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한 개인이
몸의 손상이 두려워서,
육체적인
치유를 요청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그러나 동시에,
만약 그가 육체적으로
치유된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사고체계에
대한 위협이,
자신의 사고체계의
육체적인 표현보다,
훨씬 더 두려울 것이다.
이 경우, 그는 정말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증상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혀
치유를 위한 요청이 아니다.
3
성서는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어떤 노력도
허비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성령에게
무언가를 요청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응답을
보장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에게서 받는
어떤 응답도,
결코두려움을 증가시키는
응답이 아닐 것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로 확실하다.
성령의 응답을
듣지 못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성령의 응답이
상실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가
이미 받았지만,
아직 듣지 못한
응답들이 많다.
내가
확실히 말하건대,
그 응답들은
그대가 듣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노력도
허비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녕 진실이다.
4
그대의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신의 아들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라.
그에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맞서지 말라.
왜냐하면,
그에 대한 그대의 믿음이,
곧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신과
그분의 응답을
알고자 한다면,
그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없는,
나를 믿어라.
성령에게
진심으로 요청하면서
그대의 형제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형제 안에 있는
진리로 인해
그의 말은
진리임을 믿어라.
그대는,
형제 안의 진리와
합일(unite)할 것이며,
그의 말은
진실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형제에게서 듣는 대로,
나에게서 들을 것이다.
진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그대가 지금
이 순간 진리를 듣고,
마침내
진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
그대 형제가
그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대에게 달려있다.
그가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대는 그가 무엇을
말하도록 하려는가?
그대 형제에 대한
그대의 결정이,
그대가 받는
메시지를 결정한다.
성령이
그대 형제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성령의 음성은,
그를 통해
그대에게 말한다.
그렇게
거룩한 형제가
진리 말고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그것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그대 형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참으로 알고 있는
<빛>이 있다.
그 빛은
그대의 마음 안을
비춰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의 말을
진실한 것으로 만들고,
그대로 하여금,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대 형제의 말은
그대에게 주는
성령의 응답이다.
그에 대한
그대의 믿음은
그대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해 줄 만큼
충분히 강한가?
6
구원은 그대 형제에게서 온다.
성령은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형제의 마음으로 확장하여, 그대에게
응답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 안에서만
홀로, 신을 대변하는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응답은,
오직
그대의 정체에
대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갖는 신뢰를
그대가
확장하지 않는 한,
그대는 그 신뢰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다른 이 안에서
성령의 안내를
듣지 않는 한,
그대는 안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그대를 위한 것임을
믿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안내는,
그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 형제를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신께서
그대만을 위한 음성을
창조하셨겠는가?
그대가 들은 응답이
신의 모든 아들에게 주는
응답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대가, 내가
그대에 대해 듣기를
원하는 것을,
그대
형제에게서 들어라.
왜냐하면, 그대는
내가 속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7
신께서
그러시는 것처럼,
나도
그대 안에 있는
진리 때문에,
그대를 사랑한다.
그대의 속임수는
그대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나는
그대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그대를 의심할 수 없다.
나는
오직 그대를 통해 나에게 말하는
그대 안의 성령의 말만 듣는다.
그대가
내 말을 듣고자 한다면,
내 형제들의 말을 들어라.
그들 안에서
신의 음성이 말한다.
모든 기도에 대한
응답이, 그들 안에 있다.
그대가
모든 이 안에서
그 응답을 들을 때,
그대는
응답받을 것이다.
다른 어떤 것에도
귀 기울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진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8
그대 형제들을 믿어라.
왜냐하면, 내가
그대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대는
그대에 대한 나의 믿음이
정당하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신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을 위해,
그들을 믿음으로써, 나를 믿어라.
그대가, 그들에게
진리를 요청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들은 반드시 응답할 것이다.
그대 형제들을
축복하지 않으면서,
축복을 요청하지 말라.
왜냐하면, 오직
그런 방법을 통해서만,
그대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따름으로써,
그대는
정녕 그대 안의 진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 자신 너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로
가는 것이다.
신의 아들들 안에서
오직
신의 참된 응답만 들어라.
그러면 그대는
정녕 응답받는다.
9
불신하는 것은
반대편에 서거나
공격하는 것이다.
믿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한편이 되는 것이다.
믿음이란,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진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믿지 않는 것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가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것에
감사할 수 없다.
<판단>에는, 실로 그대가
<지불해야 할 가격>이 있다.
왜냐하면, <판단>은 실로
<가격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반드시 그대가
매긴 가격대로, 지불할 것이다.
10
만약 <지불>이
<얻기>와 동일시되면,
그대는 가격을
낮게 매기면서도,
수익은
높게 요구할 것이다.
이런 경우 그대는
가격을 매기는 것은,
가치를 매기는 것이며,
따라서 그대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그대가
판단한 가치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불>이
<주기>와 관련된다면,
지불은 상실로
지각될 수 없으며,
주기와 받기의
상호 관계가
인식될 것이다.
그러면
수익의 가치 때문에
가격이
높게 매겨질 것이다.
<얻기 위한 가격>은,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그대로 하여금,
그대가 받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게 만든다.
그대가
받는 것의 가치를
낮게 매김으로써,
그대는 그것의
진가를 인정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11
그렇다면,
그대는 그동안
그대가
받는 것의 가치를
정한 다음,
그대가
주는 것에 의해
그것의
가격을 매겨왔음을
절대로 잊지 말라.
조금 주고
많이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그대가 신과
흥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신의 법은 언제나 공평하고
완벽하게 일관성이 있다.
그대는 줌으로써 받는다.
그러나 받는(receive) 것은
받아들이는(accept) 것이지
얻는(get) 것이 아니다.
갖지(have) 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대가 가졌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졌다는 인식>은
<주겠다는 용의>이며,
오직
이런 용의에
의해서만
그대는
그대가 가진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주는 것은
그대가 가진 것에
매긴 가치로서,
그대가
가진 것에 둔 가치의
정확한 척도이다.
이것은 결국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가에
대한 척도이다.
12
그러므로
그대는 성령에게
오직 줌으로써만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오직 그대가
성령을 보는 곳에서만
성령에게 줄 수 있다.
만약 그대가
모든 이 안에서
성령을 본다면,
그대가
성령에게
얼마나 많이
요청하게 될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받게 될지 숙고해 보라.
그대는
성령에게 주지 않겠다고
부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성령 또한 그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고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성령과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대가 성령의 응답을
가질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응답은
그대가 요청할 수 있고
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나는, 나 자신을 알고자 뜻하므로,
당신을, 신의 아들이자 나의 형제로 봅니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8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