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11장
3. 기적의 메커니즘
1 두려움은 그대의 깊은 상실감의 증상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 안에서 상실감을 지각했을 때, 상실을 채워주는 법을 배운다면,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된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두려움이 그대 안에 존재하지 않음을, 그대 자신에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 자신 안에 두려움을 제거할 수단을 가지고 있고, 그대는 그 수단을 줌으로써, 그것이 그대에게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사랑은 그대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중 하나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으로 만들어졌는데, 부정은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정된 것이 존재한다는 진짜 믿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2 두려움을, 두려움이 그 저변에 숨긴 믿음에 대한 긍정의 확언으로 올바르게 해석함으로써, 그대는 그대가 유용하다고 여기는 두려움을 쓸모없게 만든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방어 수단들은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그대가 두려움이 감추고 있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우위에 놓는다면, 두려움은 무의미해진다. 그대는 사랑을 숨기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두려움의 힘을 부정한 것이다. 그대가 사랑의 얼굴 위에 드리웠던 가면은 사라졌다.
3 정녕 세상의 실재인 사랑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사랑에 반하는 모든 방어에서, 그 밑에 있는 사랑을 구하는 호소를 인식하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랑을 구하는 호소에 사랑을 줌으로써 응답하는 것보다, 사랑의 실재에 대해 어떻게 더 잘 배울 수 있겠는가? 두려움에 대한 성령의 해석은 두려움을 물리친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인식은 실로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령은 두려움을 사랑으로 대체하고, 잘못을 진리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그대는 분리의 꿈을, 합일(unity)이라는 사실로 대체하는 방법을, 성령에게서 배울 것이다. 왜냐하면, 분리는 오직 통합(union)에 대한 부정일 뿐이며, 정확하게 해석된다면, 통합이 진리라는 그대의 영원한 앎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4 기적은 단지, 부정을 진리로 번역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라면, 병든 자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을 치유할 사랑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자신에게 부정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안다면, 그들은 정녕 병들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적일꾼의 과제는 진리의 부정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병든 자들은 반드시 그들 자신을 치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가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리를 숨겼기 때문에, 다른 마음 안의 빛이 그들의 마음속을 비춰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빛은 정녕 그들의 빛이기 때문이다.
5 그들 안의 빛은 그것을 숨기는 안개의 농도와는 상관없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그대가 안개에, 그 빛을 숨길 아무런 힘도 주지 않는다면, 안개는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안개가 힘을 갖는 이유는, 오직 신의 아들이 안개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신에게서 오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신의 아들은 스스로 그 힘을 거둬들여야 한다. 그대는 이것을 아들 신분 전체를 위해 기억할 수 있다. 그대의 형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의 망각은 그대의 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의 기억함은 그의 기억함이다. 왜냐하면, 신은 홀로 기억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대가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그대 형제의 치유를, 그대 자신의 치유로 지각하는 것이, 신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신과 더불어 그대의 형제들도 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의 망각에 대한, 신의 응답이 그것을 기억하는 유일한 길이다.
6 병(病)에서, 다만 사랑을 구하는, 또 하나의 요청을 지각하라. 그리고 그대 형제에게, 그가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없다고 믿는 것을 제공하라. 병이 무엇이든, 단 하나의 치료법밖에 없다. 그대는 온전하게 만듦으로써 온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병에서 건강을 구하는 호소를 지각하는 것은, 증오에서 사랑을 구하는 요청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형제에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그것을 그대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가 그대의 형제를, 그대 자신으로 알기를 뜻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을 구하는 그의 요청에 응답하라, 그러면 그대의 요청이 응답받는다. 치유는, 아버지와 그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7 전에 우리가 어린아이들의 무서운 지각들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해 보라. 그것들이 아이들을 겁먹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깨우침을 요청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들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러나 만약 아이들이 자신의 악몽을 감추면, 그들은 두려움을 간직할 것이다. 확신이 없는 아이를 돕기는 쉽다. 왜냐하면, 그런 아이는 자신의 지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대는 그대가 정말로 안다고 믿는다. 어린아이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두꺼운 담요 속에 머리를 숨기고 있다. 너희는 너희의 확신이라는 어둠 속에, 너희의 악몽들을 감추면서, 눈을 떠서 그것들을 직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8 악몽들을 간직하지 말자. 그것들은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선물이 아니며, 따라서 그대에게 합당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덮개를 벗고,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을 직시하라. 오직 예상만이 그대를 무섭게 할 것이니, 무(nothingness)의 실체는 정녕 무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체하지 말자. 그대가 꾸는 증오의 꿈은 도움 없이는 그대를 떠나지 않겠지만, 도움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혼란 가운데 고요하게 있는 법을 배워라. 고요함은 갈등의 종식이며, 이것은 평화로 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대를 지연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모든 이미지를 직시하라. 왜냐하면, 목표는 영원하기에, 그곳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목표는 다만 그대의 권리이며, 그대가 좋아하든 말든, 본래 그대에게 속한다.
9 그대는 여전히 신께서 뜻하시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악몽도 신의 아이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좌절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의 목적은 신께서 주신 것이며, 그것은 그분의 뜻이기에, 그대는 반드시 그것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깨어나 그대의 목적을 기억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대를 위해 성취된 것은, 그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대의 증오가 사랑의 길을 막고 서있게 하지 말라. 아무것도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10 잠시 후면, 그대는 반드시 나를 볼 것이다. 그대가 숨어 있다고 해서, 내가 숨겨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깨웠듯이 확실하게 그대를 깨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를 위해 깨어났기 때문이다. 나의 부활에 그대의 해방이 있다. 우리의 사명은 구원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형을 벗어나는 것이다. 나의 도움을 신뢰하라. 나는 홀로 걷지 않았으며, 우리의 아버지가 나와 함께 걸으셨듯이 내가 그대와 함께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가 평화 속에서 그분과 함께 걸었음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여정에서 평화가 우리와 함께할 것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11 완벽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우리는 단지 그대 안의 이미 완벽한 것을, 그대에게 완벽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것이다. 내가 나의 사명에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의 사명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갖는 완전한 신뢰의 이름으로, 단지 약간의 신뢰만 나에게 주어라, 그러면 우리는 함께 완벽함이라는 목표를 쉽게 성취할 것이다. 완벽함은 정녕 존재하며,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함에 대한 부정을 부정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부정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대가 우리가 함께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볼 때, 그것은 믿어질 수밖에 없다.
12 그대는 사랑을 몰아내려고 애써 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대가 두려움을 몰아내기로 선택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주님이 그대와 함께 있지만,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대의 구원자는, 그것으로 그가 창조된 평화 속에서, 그대 안에 살고 그대 안에 머문다. 그대의 두려움에 대한 의식을 이런 의식과 맞바꾸지 않으려는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두려움을 숨기거나, 최소화하거나, 그 전체 의미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이것이 정녕 그대가 볼 것이다. 그대는 진정한 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치워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치워버린다는 것은 거슬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본다면, 성령이 참되게 판단할 것이다. 성령은 그대가 감춰 둔 것을 밝혀서 쫓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을 성령에게 제공하지 않았기에, 성령은 그대로부터 그것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13 그러므로 우리는, 그대가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을, 성령에게 맡기는 법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치밀하게 계획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다. 성령은 그대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대는 성령이 아는 것을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성령에게 드러난 것 중에서, 신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대는 완벽한 용의를 가지고, 그것을 그대 자신에게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의 앎은 여전히 그대에게 쓸모가 없다. 확실히 성령은 그대를 돕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움은 성령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두려움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것을 영원히 보내버리는 것보다는, 그대가 지각하는 대로의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를, 더 많이 갖고 있지는 않은가?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11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