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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세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이것이 세상의 목적입니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8.22|조회수19 목록 댓글 1

[8월 14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226과



나의 집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서둘러 집에 갈 것이다.


My home awaits me.

I will hasten there.



실습 설명


워크북 파트 II 에 대한

실습 설명을 읽으세요.


이것을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읽기:


레슨의 해설 문단을

천천히, 나의 이야기처럼.


◉ 기도: 


레슨의 기도문대로 기도하기.

여러 번 할 것을 권합니다.


◉ 아침과 저녁: 


그 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

(Open Mind Meditation )을

하세요.


◉ 매시간 기억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을 하세요.


◉ 자주 상기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잠시 명상을 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세요.


◉ 유혹에 대응하기: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여

평화를 회복하세요.


◉ “워크북 특별 주제”읽기: 


하루에 한 번,

그날에 해당되는


워크북 특별 주제를

천천히 읽으세요.


실습에 대한 코멘트:


오늘 기도문은, 신을

우리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을

시간에 엄마처럼,


신의 음성

집에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처럼,

신은 팔을 활짝 벌려


우리를

기쁨 속에 맞아들여


품어 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기도를 하면서


이런 것을

시각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은 팔도,

들을 수 있는 귀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런

통속적인 상징은


우리 마음이

상징이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해설


집.


너무나

좋은 느낌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입니다.


“나 집에 가고 있어.”


때로는

단지 추상적으로


집에 가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우리 안에

감정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것이 행복한

감정이기를 바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가정생활로 인해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이

퇴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제 집에서의 생활이

불행했을 때조차,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당연한 것처럼


집에 대한

깊은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집은

신 안에 있습니다.


집에 대한

우리의 그리움은


신 안에 있는

영적인 집에 대한


그리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을까요?


영가

“집으로 가네.”와

같은 노래는


우리가 죽으면

천국의 집으로 간다는

통념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기적수업은 이 점에서

아주 분명합니다.


기적수업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세상의 목적에 대한

마음의 변화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목적이 세상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한,


행복, 자유, 만족을

이 세상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결코 세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죽을“ 때조차 말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묶어 두는 사슬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두는 가치가


우리를

세상에 묶어둡니다.


만약 “내가

지금 세상을 보는 대로”

세상에 가치를 둔다면


내 몸이

허물어질 때조차


세상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보는 대로의”

이 세상에서


간직하거나 추구할 것을

아무 것도 보지 않으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문자 그대로

“내가 지금 보는 대로의”


그리고

“내가 보는 대로의” 의미를

가지는 세상이 있습니다.


에고의

지각 안에서, 이 세상은

처벌과 구속의 장소이며,


동시에 내 안에서

결핍” 되었다고 보이는 것을

찾으러 온 곳입니다.


내가 어떻게든

처벌과 구속에

가치를 두는 한


-- 대부분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나의 죄책감을 투사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


나는

세상에 묶여 있을 것이며,

집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한,


세상이 내게 그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세상에 가치를 두는 한,


나는 항상

세상에 묶여 있을 것이며

집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집이

나를 기다립니다.


우리 집은 지금

공사 중이 아닙니다.


우리 집은

이미 준비되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간

카펫이 펼쳐져 있으며,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신이 팔을 벌리고 있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2:2)


집은 바로 지금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선택하기만 한다면.


나는 오늘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들을

관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가 집을 찾지 못하도록 막는

방해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도 아쉬워하며,

나의 공주(혹은 왕자)가


내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나요?


나는 여전히

집에 가기 전에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있나요?


나는 여전히

(내가 보기에)

“사악한 자”가


고통 받을 때

속으로 기뻐하나요?


만약 이 세상이

앞으로 한 시간 안에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아쉬워할까요?


나는 떠날

준비가 됐나요?


만약 현관에서

커튼이 일렁거리면서


성령의 음성

“이 문턱을

넘어오면 천국이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넘어갈까요?


아니라면, 왜

안 가려고 할까요?


이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그 음성이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은

지금, 여기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어느 순간이라도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저지하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이 교실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의 목적입니다.


천국이 이렇게도 쉽게

제 것이 될 수 있는데,


제가

무슨 필요 때문에


헛된 욕망들과

부서진 꿈들의


장소에서

머뭇거리겠습니까?


(2:3)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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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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