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23장
4. 타협 없는 구원
1 공격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형태들을, 그대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어떤 형태의 공격이든, 그대를 해치고, 또한 그런 공격이, 그대가 알아차리는 다른 형태의 공격만큼이나, 그대를 해친다면, 그대가 고통의 근원을, 항상 인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따른다. 어떤 형태의 공격이든, 똑같이 파괴적이다. 공격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공격의 유일한 의도는 <살해>이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살인이, 살인자가 느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미칠 것만 같은 두려움을 덮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그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부정할 수 있으며, 공격할 때, 자신의 야만성을, 미소로 정당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고통받을 것이며, 악몽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바라볼 것이다. 악몽 속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공포에 질린 그의 의식으로, 그 목적이 떠올라, 그를 계속 추적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살인을 생각하는 한, 그 생각이 수반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의도가 죽음이라면, 그것이 취하는 형태가 무슨 상관인가?
2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보일지라도, 축복이겠는가? 신을 대신하는 음성이, 그대를 통해, 그대의 형제에게 말한다는, 표시이겠는가? 포장은 그대가 주는 선물을 결정짓지 않는다. 그리고 빈 상자는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친절하게 주어질지라도, 여전히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또한, 받는 자도 주는 자도, 오래 속을 수 없다. 형제에게, <용서>를 베풀지 않으면, 그대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대는 형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단지, 그대가 준 것만, 그로부터 받는다.
3 구원은, 어떤 종류의 타협도 아니다. 타협은, 그대가 원하는 것의 일부만 받아들이는 것, 즉 조금 얻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구원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구원은 모든 이에게 완전하다. 타협이라는 아이디어가, 들어오게 하는 순간, 구원의 목적이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목적에 대한 자각이 사라진다. 구원은, 타협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부정된다. 왜냐하면 타협은,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타협은, 그대가 조금 공격하고, 조금 사랑하며, 그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타협은 이와 같이, 같은 것의 일부가 다를 수 있다고, 그러면서도 같은 것은, 전혀 영향받지 않고, 하나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가르치려 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이 과연 이해될 수 있겠는가?
4 이 수업이 쉬운 이유는 단지, 이 수업이 아무런 타협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협이 가능하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 수업이 어렵게 보인다. 그들은, 만약 타협이 가능하다면, 구원은, 곧 공격임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구원이 이미 왔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확신을, 떠받쳐 줄 수 없음은 확실하다. 용서는 조금이라도 유보될 수 없다. 또한, 이런 이유로 공격하고, 저런 이유로 사랑하면서, 용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그대의 평화에 대한 공격을,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든, 인식하기를 원하지 않으려는가? 오직 그럼으로써만, 그대가 평화를 잃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대가 평화를 방어하지만 않는다면, 그대의 평화는 그대의 비전 앞에서, 영원히 분명하게, 그리고 결코 그대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고, 빛나게 유지될 수 있다.
5 평화를 방어할 수 있으며, 평화를 위해 공격이 정당하다고 믿는 자들은, 평화가 그들 안에 있음을, 지각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이 살인이 모종의 형태를 취해, 평화를 지켜준다는 믿음과, 용서를, 나란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들이 과연 그들의 야만적인 목적이, 그들 자신을 겨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아무도, 적들과는 동맹을 맺지 않으며, 목적도 함께하지 않는다. 또한 적과 타협을 하면서, 그가 주지 않고 숨긴 것 때문에, 그를 증오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6 휴전을 평화로, 또는 타협을 갈등에서의 탈출로, 잘못 생각하지 말라.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은, 갈등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문은 열려있다; 그대는 전쟁터를 떠났다. 잠시 총소리가 조용해지고, 죽음의 장소에 출몰하는, 두려움이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그대는 전쟁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움츠러든 희망을 가지고, 그곳에서 머뭇거리지 않았다. 전쟁터에는 정녕 안전이 없다. 그대는, 전쟁터 위에서, 안전하게 내려다보면서, 전혀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터 안에서는, 그대는 안전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아직 서 있는 나무 중에, 단 한 그루도, 그대를 피신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 단 하나의 보호의 허상도, 살인에 대한 신념에, 맞설 수 없다. 여기에, 소통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열망과, 죽이고 죽으려는 자연스럽지 않은 의도 사이에, 찢겨진 몸이 서 있다. 그대는, 살인이 취하는 형태가, 안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전쟁터에 죄책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갈등 속에 남아있지 말라. 왜냐하면, <공격>이 없다면, <전쟁>도 없기 때문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23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