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29장
9.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1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대는 안다고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우상들은, 그 자체로는 인식되지 않으며, 또한 결코 그것들의 실제 모습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상들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우상들의 목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상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숭배받는 이유는, 그대가 우상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상은 그대가, <그대의 형제의 참된 정체>보다, 더 가치를 두고자 하는, <그대 형제의 이미지>이다. <우상들>은,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대 형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결코 지각되지도 않고, 인식되지도 않는 것이다. 그 형태가, 몸이든 사물이든, 장소, 상태 혹은 상황이든, 소유한 것이든 원하는 것이든, 요구되는 권리이든, 얻은 권리이든, 다 같다.
2 우상들의 형태가, 그대를 속이게 하지 말라. 우상들은 그저, 그대의 <실재에 대한 대체품들>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 그대는, 우상들이, 그대의 확신과 마음의 평화에 맞서서, 집결한 군대를 가진 위험하다고 지각되는 세상에서, 안전을 위해, 그대의 작은 자아를, 완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상들은, 그대에게 결핍된 것을 공급해주고, 그대가 갖지 않은 가치를, 더해줄 힘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왜소함과 상실의 노예>로 만든 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우상들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작은 자아 너머로, 그의 머리를 들고, 세상이 반영하는 모든 비참함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위한 힘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그대를 세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확신과 고요함을 찾기 위해, <내면을 보지 않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3 <우상>은, <거짓 인상 혹은 거짓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와 그대가 보는 것 사이의, 간격을 이루는, 일종의 <적그리스도>이다. <우상>은 만질 수 있고, 형태가 주어진, 따라서 실재한다고 지각되고, 마음의 밖에서 보이는 <염원>이다. 그렇지만 우상은 여전히, <하나의 생각>이며, 그것의 근원인 <마음>을 떠날 수 없다. 또한, 우상의 형태는, 우상이 나타내는 아이디어와,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형태의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반대한다. 그리고 그대를 그리스도에게서 차단시켜, 어둠 속에 홀로 남겨놓는 것 같은 어두운 장막처럼,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린다. 그렇지만 빛은 거기에 있다. 구름은 태양을 꺼버리지 않는다. 더 이상 장막도, 그것이 분리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몰아내거나, 빛 자체를, 아주 조금이라도 어둡게 할 수 없다.
4 이 우상들의 세상은, 정녕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리는 장막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목적은, 그대의 형제를, 그대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둡고 무서운 목적이지만,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풀잎 하나조차도, 죽음의 표시로, 바꿀 힘이 없는 생각이다. 그 생각의 형태는,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그 생각의 근원은, 그대 마음 안에서, <신께서 머물러 사시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 있는 것이 제외되고, <따로 떼어내진 이곳>은 어디인가? 무슨 손을 들어서, 신의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누구의 음성이, 신께 들어오시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 이상의 것’은, 그대를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움츠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스도의 적은, 결코 그가 실재하는 것일 수 있는,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없다.
5 우상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우상이 생명을 얻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힘을 받으려면, 먼저 믿어져야 한다. 우상의 생명과 힘은, <우상을 믿는 자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과 영원한 평화를, 선물로 받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힘을 가진 자에게, 기적이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기적은 진리, 즉 사이에 펼쳐진, 장막이 꺼버리지 못한 빛을, 회복시키지 않는다. 기적은, 다만 장막을 걷어 올려, 진리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그 본래의 모습대로 빛나도록 할 뿐이다. 진리는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진리는 정녕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상은 <믿음>에 의해 확립된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거두어지면, 우상은 ‘죽는다.’
6 다음이 적그리스도이다 - <전능>을 넘어서는 힘이 있고, <무한> 너머에 있는 장소가 있으며, <영원>을 초월하는 시간이 있다는, 이상한 아이디어. 여기에, 이런 <힘>과 <장소>와 <시간>에, [형태]가 주어져, 불가능한 것이 일어난, 세상을 빚어낸다는 아이디어에 의해, [우상들의 세상]이 펼쳐졌다. 여기에서, <죽지 않는 자들>이 와서 죽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들>이 와서 상실을 겪으며, <초시간적인 자들>이 와서 시간의 노예가 된다. 여기에서, 변함없는 것이 변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에게, 영원히 주어진 <신의 평화>가, <혼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처럼, 완벽하고 죄 없고 사랑스러운, 신의 아들이 와서, 잠시 동안 증오하고,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죽는다.
7 우상이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무한한 것 안에 어떤 간격과 시간이, <영원>을 방해할 수 있는, 장소가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빛>인 곳에, 자리 잡은 어둠의 장소, 끝없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음침한 골방은, 정녕 있을 곳이 없다. 우상은, 신께서 모든 것을 영원히 두시고, 그분의 뜻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여지를 남기지 않으신 곳, 그 너머에 있다. 신께서 <모든 것>이자 <모든 곳>인 한, 아무것도 아닌 것, 그리고 어느 것도 아닌 것이, 우상임이 틀림없다.
8 그렇다면, 우상은 무슨 목적을 가졌는가? 우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것은 많은 답을 가진 유일한 질문이다. 각각의 답은, 그 질문을 누구에게, 물었느냐에 달려있다. 세상은 우상들을 신봉한다.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은 한, 그리고 <실재가 갖고 있지 않은 선물>을, 줄지도 모르는 우상을 구하려고, <아직도> 애쓰고 있지 않는 한, 아무도 세상에 오지 않는다. 각각의 우상숭배자는, 그의 <특별한 신들>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에게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반드시 더 많아야만 한다. 무엇이, 더 많아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많은 지성, 더 많은 부(富), 혹은 심지어 더 많은 고난이나 더 많은 고통. 어쨌든 뭔가를 더 얻는 것이, 우상의 목적이다. 하나가 실패하면, 다른 무언가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무언가’가 취하는 <형태들>에 속지 말라. 우상은, 더 많이 얻는 수단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9 신께는 많은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아들만 있다. 누가 더 많이 가질 수 있으며, 누구에게 더 적게 주어질 수 있겠는가? 천국에서는, 만약 우상이, 신의 아들의 평화를 침범할 수 있다면, 그는 그저 웃어버릴 것이다. 성령은, 바로 그 아들을 대변해서, 여기에서 우상은, 아무런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고, 그대에게 말해준다. 왜냐하면 그대는 결코, 천국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천국이 내면에 있는데, 그대는 왜, 신께서 그분과 하나로서, 그대의 형제와, 그대에게 주신 것 이상을, 그대에게 주기 위해, 천국을 가지고서, 더 적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 우상을 구하는가? 신께서는 그대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주셨다. 그리고 그대가,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없도록, 확실히 해 두시기 위해, 신께서는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에게도, 똑같은 것을 주셨다. 따라서 모든 살아있는 것은, 신 자신의 일부이듯이, 그대의 일부이다. 어떤 우상도 그대를, 신 이상의 것으로, 확립해 줄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신 이하로 존재하는 것에도,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29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