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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우상들을 숭배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2.07|조회수101 목록 댓글 1

기적수업 : 텍스트 30장



5. 허상들 뒤의 진리


그대는 <만족을 주지 않는 것>을, 반드시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대가 그것을 지어냈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허상들과 싸운다. 왜냐하면 <허상들 뒤의 진리>는, 자애로운 온유함으로, 너무도 사랑스럽고 너무도 고요해서, 그대가 그것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방어심>을 완전히 잊고, 진리의 품속으로, 달려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결코 공격받을 수 없다. 그리고 우상들을 만들 때, 그대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우상들은, 이것이 잊혀지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대는 단지, 거짓 아이디어들을 공격할 뿐, 결코 진실한 아이디어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우상>은 그대가, 그대 자신과 진리인 것 사이에, 생겼다고 생각하는, <간격>을 채우려고 만든, <거짓 아이디어들>이다. 그리고 그대는, 우상들이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그대는 우상들을 공격한다. 우상들 너머에 있는 것은, 정녕 공격받을 수 없다.


2 그대가 만든, 싫증 나게 하고, 불만족스러운 신들(gods)은, <부풀려진 아이들 장난감>이다. 닫혀있던 상자가 갑자기 열리면서, 나무로 만든 머리가 튀어 올라오거나, 부드럽고 조용하던 털로 만든 곰 인형이, 아이가 손에 쥐자마자, '끽' 하는 소리를 내면, 아이는 깜짝 놀란다. 그가 상자와 곰에게 정해준 규칙들이, 그를 저버렸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그의 ‘통제’를 와해시켰다. 그리고 아이는 그 규칙들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이제 아이는, 상자와 곰이 그를 속이지도 않았고, 규칙을 깬 것도 아니라는 것을, 또한 그의 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안전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아이는 무엇이, 그를 안전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오해했고,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거기에 없는 간격>은, <무수한 형태의 장난감들>로 채워졌다. 각각의 장난감은, 그대가 그것을 위해, 정해 놓은 규칙들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난감들은 결코, 그대가 생각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장난감들이, 그대가 정한 안전 규칙들을 깨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규칙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위태로워지지 않았다. 그대는 튀어 오르는 머리나, 소리 지르는 장난감이, 전혀 자신에 대한 위협이 아님을 배우는, 아이처럼, 그것들을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는 동안에는, 아이는 여전히 장난감들이, 그가 즐기기 위해 만든, 규칙들을 지킨다고 지각한다. 따라서 여전히 규칙들이 남아 있어, 장난감들이 이를 어기고, 그를 놀라게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아이가, 정말로 장난감들에 의해, 휘둘릴 수 있는가? 그리고 장난감들이, 정말로 아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겠는가?


4 실재는, 그대가 정한 규칙이 아니라, 신의 법을 따른다. 그대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그분의 법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 믿는 모든 <허상>은, 어떤 법도 따르지 않는다. 허상들은, 그대가 그것에게 정해준 규칙에 따라, 잠시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나의 아이들아, 그것들은 장난감들일 뿐이란다. 그것들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그것들의 춤은, 그대에게, 결코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대를 겁먹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비록 그것들이 그대의 규칙을 따를지라도, 그대를 안전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소중히 여기거나, 공격할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이들 장난감>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들에서 <하나의 의미라도 보라>, 그러면 그대는, 모든 허상에서 의미를 볼 것이다. 그것들에서 <아무런 의미도 보지 말라>, 그러면 장난감들은, 그대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5 겉모습들은 속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재가 아니라, 겉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겉모습이든, 얽매이지 말라. <겉모습들>은 실재를 가릴 뿐이며, 진리를 숨기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져온다. 그대 자신이 속기 위해, 그대가 만든 것을 <공격>하지 말라. 그럼으로써 그대는, 그대가 속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공격은 허상들을, 실재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공격이 만드는 것은 무(nothing)이다. 어느 누가, 전혀 아무런 영향력도, 가질 수 없는 힘에 의해, 두려워질 수 있겠는가? <공격>이 단지, <사물들>을 그 자체처럼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허상>이 아니라면, 무엇일 수 있겠는가? 조용히 그 장난감들을 직시하고, 그것들은 <헛된 열망>에 맞춰, 춤추는 우상들일 뿐임을 이해하라. 그것들을 숭배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공격할 때, 똑같이 잊혀진다. 신의 아들은, <자신의 꿈들>에 맞서, <방어>할 필요가 없다. 그의 우상들은, 그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잘못>은, 그것들이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상들의 힘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겉모습들은, 그저 속기를 원하는 마음만, 속일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를 <영원히 속을 수 없는 위치>에 놓아줄, <단 하나의 단순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하나의 아주 단순한 결정>, 즉 그대가 우상이 준다고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을 때, 이미 엄청난 변화가, 재빨리 일어났음을, 반드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결정을 통해, 신의 아들은, 자신이 <우상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정녕 자유롭다.


구원은 정녕 <모순>이다!

<행복한 꿈>이 아니라면,
<구원>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구원은 단지 그대에게,
아무도 결코 행한 적이 없는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거기에 없는 것>을
<간과>하라고,

<비실재>를 <실재>로
보지 말라고, 요청할 뿐이다.

그대는 다만, <그대의 뜻>이 이루어지게 허용하라고, 그대가 원치 않는 것을, 더 이상 구하지 말라고, 요청받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대는, 결코 그대가 아니었던 <모든 꿈>으로부터, 그대 자신이 자유로워지게 허용하라고, 더 이상 헛된 소망들의 힘으로, 신의 뜻을 대체하려 하지 말라고, 요청받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분리의 꿈>이, 퇴색하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거기에 없는 간격>에, <그대가 만든 공포의 장난감>이 없다고, 지각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구원이,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조금 요구한다는 것에, 정녕 기뻐하라. 구원은 실제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허상들 속에서조차, 구원은 단지 <두려움>이, <용서>로 대체될 것만을 요구한다. 이러한 것이, <행복한 꿈들>을 위한, <유일한 규칙>이다. 간격에서, 두려움의 장난감들이 치워지고, 이제 간격의 비실재성이 분명하다. 꿈들은, 무(nothing)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신의 아들은, 꿈들을 필요로 할 수가 없다. 꿈들은 신의 아들에게, 그가 원할 수도 있는, 단 하나의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뜻>에 의해, 허상들로부터 구원되어, 다만 그의 정체로 회복된다. 신의 아들을, 신 자신께 드리기 위한 수단 외에, 과연 무엇이, 아들의 구원을 위한, 신의 계획일 수 있겠는가?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30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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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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