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309과
나는 오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I will not fear to look within today.
실습 설명
워크북 파트 II 실습 설명을 읽으세요.
이것을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읽기: 레슨의 해설 문단을 천천히,
나의 이야기처럼.
◉ 기도: 레슨의 기도문대로 기도하기.
여러 번 할 것을 권합니다.
◉ 아침과 저녁: 그 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Open Mind Meditation )을 하세요.
◉ 매시간 기억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을 하세요.
◉ 자주 상기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잠시 명상을 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세요.
◉ 유혹에 대응하기: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여 평화를 회복하세요.
◉ “워크북 특별 주제”읽기: 하루에 한 번, 그날에 해당되는 워크북 특별 주제를 천천히 읽으세요.
해설
저는 종종
저 자신의 동기를
의심합니다.
과거에 제가
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너무나
잘 숨겨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비록 의식적으로는
어떤 것이 숨겨졌는지
알지 못할 때조차,
표면적인 나의 동기가
순수해 보일 때조차,
나는
무엇이 밑에 도사리고
있는지 의심합니다.
그러면서도
직시하기를 망설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저는
어떤 가까운 친구가 저를
멀리한다고 확신하면서
그 친구를
멀리한 적이 있습니다.
세 시간 동안의 언쟁 끝에
저는 그녀를 밀어내도록 만든
저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에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녀를 밀어냈다는 것을
격렬하게 부정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더 가까운
관계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그녀가 반응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이
에고의 속임수를 잘 안다면,
당신 자신을
신뢰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항상 제 마음 안에서 뭔가
교활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제가 계속
그것을 부정하고 해리하면서
숨겨온 듯이 느낍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내면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면을 본다면 이번에는
제 안에서 어떤 추하고
지저분한 것을 찾아낼까요?
“나는
내가 진리가 아닌
또 다른 뜻을 만들어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면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한다.”
(1:5)
내가 내면을 볼 때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은
종종 추하고 지저분한 것들
- “진리가 아닌 다른 뜻” - 입니다.
나는
그것들을 보겠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다른 뜻을
실재인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란
단지 환상입니다.
추함은 단지 연막, 가면,
내 마음의 영원한 결백함 위에
에고가
덮어 놓은 겉모습입니다.
그런 생각들을
성령과 함께 직시한다면
나는 그것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끔찍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성령은 나를 위해 그것들을
진리로 전환시킬 것입니다.
성령은 내가 그것들 안에서
사랑의 요청, 그 밑에 묻혀 있는
사랑에 대한 무의식적인 확언,
내가
결코 잃은 적이 없는
결백함이
왜곡되어 반영된 것으로
보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씀드린 사례에서
저는 친구를 밀어내면서,
저를 그 친구로부터
멀리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그녀의 사랑을 잃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가 저를 시간을 들여
함께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까봐 두려웠고,
그래서
제 두려움이 맞다는 것을
그녀가
저에게 확인해 줄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녀가
저를 밀어내기 전에
먼저
움츠려들려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서 저를
멀리함으로써
그녀를
(내가 상상한) 배신에
대해 벌주려 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을 잘못 평가했고,
저에 대한 그녀의 평가를
잘못 평가했습니다.
그날
제게 기적수업의 가르침이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레스토랑을 걸어 나가면서,
제가 너무나 큰
부정(denial) 상태에 있기에
앞으로 저와 관련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교착 상태는
해결될 듯싶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갑자기 그녀에 대한
저의 지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사랑의 요청으로 보았습니다.
제가 사랑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저에게
화를 내고 있었으며,
그녀는
나의 사랑을 잃을 거라는
생각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각하기에
그녀의 분노는 더 이상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도움을 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으나,
분노와
공격으로 그것을 찾으려고
잘못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용서하자,
저 자신 안에서도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에 저는
더 이상 내면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조종해 온
왜곡된
동기들을 보았습니다.
저 자신의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저의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그녀의 사랑과 결백함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저의
사랑과 결백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내면을 보기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면에 있는 것은 단지
“신이 창조하신 대로의,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뜻”(1:4)입니다.
내가 만든 것들,
추한 에고 생각들은
전혀 아무런
결과도 갖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내 곁의 성령과 함께
바라보고
웃을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이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그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나
더 깊은 곳에
신의 거룩함,
신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 선한 마음,
이런 친절하고 온화한 마음은
너무나 광대하고 열려있으며
관대하며,
모든 것을 품어 안습니다.
이것이 나의 참된 정체입니다.
이것이 나의 참모습입니다.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309/
ㅡ 기적수업ㆍ공부모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