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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실재가, 그 자체이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를 초월해야 한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2.21|조회수128 목록 댓글 1

기적수업 : 텍스트 30장



9. 변함없는 실재


1 <겉모습들>은 속이지만 변할 수 있다. <실재>는 변하지 않는다. 실재는 절대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겉모습들 너머를 보는 데 실패한다면, 그대는 정녕 속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대는 전에도, 그것들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다시 그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재는 <형태>로 전락하고, 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재는 변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실재를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고, <실재>를 <모든 겉모습>과 분리시켜 놓는다. 실재가, 그 자체이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를 초월해야 한다. 실재는 정녕 변할 수 없다.


<기적>은, 모든 겉모습은, 실로 겉모습들일 뿐이며, 실재가 수반하는 <변함없음>을 가질 수 없기에, 모든 겉모습이 변할 수 있음을, 실례를 들어,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기적>은, 겉모습들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겉모습으로부터의 구원>을 입증한다. 그대의 형제는, 내면에, 겉모습과 속임수를 모두 넘어서는, 변함없음을 지니고 있다. 그 변함없음은, 그대가 형제의 실재라고 지각하는, 그에 대한 변하는 관점들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대 형제에 대한 <행복한 꿈>은, 그의 완벽한 건강, 모든 형태의 결핍으로부터의 그의 완벽한 자유, 온갖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이라는, 겉모습의 형태를 취한다. 기적은, 형태는 너무도 쉽게 변할 수 있기에, 그대 형제가 어떤 형태의 상실이나, 고통에도 묶여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형태는 결코 실재한 적이 없었으며, 그의 실재로부터 비롯되었을 수 없음을, 입증한다. 왜냐하면 그의 실재는 변함이 없으며, 천국이나 땅의 어떤 것도 바꿀 수 있는 결과들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모습들은 변하기 때문에, 실재가 아님이 밝혀진다.


허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려는 염원이, 곧 <유혹>이 아니겠는가? 유혹은, 실재가 아예 없기를 바라는, 염원은 아닌 듯하지만, 어떤 우상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실재가 아니기를 바라기가 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혹>이란, 기적이 어떤 꿈들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그 꿈들의 비실재성을 계속 가리고, 그 대신에 그 꿈들에게, 실재성을 부여하기를 바라는 기도일 뿐이다. 천국은, 이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며, 또한 그대가 좋아하지 않는, <겉모습을 치유>하라고, 기적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대가 한계들을 정했다. 그대가 요청하는 것이, 그대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은 한계를 알지 못하시는,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제한했다.


4 실재는 변하지 않는다. 기적은 단지 그대가, <실재>와 <그대의 의식>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대는 일부 겉모습은, 변화될 가망이 없다고 믿기에, 일관되게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기적으로부터, 모든 꿈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거두어지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치유>를 열망할 때, 그대가 갖지 못할 <기적>은 없다. 그러나 그대가 원치 않는 한, 그대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적>은 없다. 누구를 치유할지 <그대가 선택>한다면, 모든 기적을 주는 성령에게는, 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선물을 줄,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신의 아들은 유혹에 빠지면, 실재를 부정하게 되고, 실재 대신 선택한 것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노예가 된다.


실재는 변하지 않기에, <변하는 모든 것>을 치유하고, 두려움이 없는 행복한 형태로, 그대에게 보여주는 기적은, 이미 거기에 있다. 그대의 형제를 그렇게 바라보도록, 기적이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어떤 측면들에서는, 기적을 다른 식으로 갖고자 하는 한, 기적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그대가 형제가, 치유되고 온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대 형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완벽하다. 바로 이것이, 그대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대가, 이것보다 더 보고 싶어 하는, 그대 형제에 대한, 어떤 꿈도 없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대에게 오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대에게 나타났을 때, 그대는 그대가 그리스도를 닮았음을, 확신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대 형제 그리고 그대 안에 있는, <변함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 형제의 참된 정체 대신에, 간직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겉모습>도 없다고 결정할 때, 그대는 이것을 볼 것이다. 꿈을 선호하려는 어떤 유혹도, 여기에 불확실성을 들여오도록, 허용하지 말라. 그대 형제의 정체에 대한 꿈에 의해, 유혹받을 때, 죄책감을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 형제를 볼 때, 그 유혹에게, 그의 내면에 있는 변함없음을, 대체할 힘을 주지 말라. 그 대신, 그대가 기적을 요청하기만 한다면, 사라지지 않을 가짜 겉모습은 없다. 그대가 단지 그대 형제가, 그의 정체이기만을 바란다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은 없다. 그대가 왜 그대 형제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기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대는 그대가 보는 것 안에서, 다만 그대의 자아를 볼 뿐이다. 그대 형제가 치유됨에 따라, 그대가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진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이, 그대에게는, 정녕 <그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30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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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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