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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묵상집

신의 교사를 위한 지침서(19:1– 20:6) : 정의와 신의 평화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2.21|조회수114 목록 댓글 1

* 신의 교사를 위한 지침서(19:1– 20:6)


19. What Is Justice?

1 Justice is the divine correction for injustice. Injustice is the basis for all the judgments of the world. Justice corrects the interpretations to which injustice gives rise and cancels them out. Neither justice nor injustice exists in Heaven, for error is impossible and correction meaningless. In this world, however, forgiveness depends on justice since all attack can only be unjust. Justice is the Holy Spirit's verdict upon the world. Except in His judgment, justice is impossible, for no one in the world is capable of making only just interpretations and laying all injustices aside. If God's Son were fairly judged, there would be no need for salvation. The thought of separation would have been forever inconceivable.

19. 정의란 무엇인가?

1

<정의>란 <불의에 대한 신성한 교정>이다.
<불의>는 <세상의 모든 판단의 기초>이다.

정의는
불의가 야기하는 해석들을 교정하여,
그것들을 상쇄한다.

정의도 불의도
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못은 불가능하고
교정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용서>는 <정의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모든 공격은
다만 불의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성령이 세상에 내리는 판결》이다.

《성령의 판단》이 아니라면,
《정의》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오직 공정한 해석만을 하고
모든 불의를 치워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공평하게 판단 받는다면,
구원의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분리의 생각은
영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Justice, like its opposite, is an interpretation. It is, however, the one interpretation that leads to truth. This becomes possible because, while it is not true in itself, justice includes nothing that opposes truth. There is no inherent conflict between justice and truth; one is but the first small step in the direction of the other. The path becomes quite different as one goes along. Nor could all the magnificence, the grandeur of the scene and the enormous opening vistas that rise to meet one as he travels on, be foretold from the outset. Yet even these, whose splendor reaches indescribable heights as one proceeds, falls short indeed of all that awaits one when the pathway ceases and time ends with it. But somewhere one must start. Justice is the beginning.

2

정의나 그 반대의 것이나
모두 하나의 <해석>이다.

그렇지만 정의는
진리로 이끌어가는 유일한 해석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정의는 그 자체로는 진리가 아니지만
진리를 반대하는
그 어떤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와 진리 사이에는
어떤 내재적인 갈등도 없다.

정의는
단지 진리를 향해 가는
작은 첫걸음일 뿐이다.

네가 걸어감에 따라
길은 아주 달라진다.

또한 네가
여행을 계속함에 따라

마주칠

그 모든 <장엄함과 웅장한 광경>,
그리고 <엄청난 풍경들>에 대해
출발할 때 미리 말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들조차,
네가 나아감에 따라
그 <화려함>이 말할 수 없을 만큼
극에 달하는 것들조차,

그 길이 그치고
그와 함께 <시간이 끝날 때>

너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비하면
정녕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출발해야 한다.
<정의가 그 출발점>이다.

3 All concepts of your brothers and yourself, all fears of future states, and all concern about the past stem from injustice. Here is the lens which, held before the body's eyes, distorts perception and brings witness of the distorted world back to the mind that made the lens and holds it very dear. Selectively and arbitrarily is every concept of the world built up in just this way. "Sins" are perceived and justified by this careful selectivity in which all thought of wholeness must be lost. Forgiveness has no place in such a scheme, for not one "sin" but seems forever true.

3

네 형제들과 너 자신에 대한
모든 개념들,

미래의 상태에 대한
모든 두려움,

그리고 과거에 대한
모든 근심은

불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몸의 눈 앞에 걸려있는
렌즈가 있다.

그 렌즈는 지각을 비틀어서,
그 렌즈를 만들었고

또 그것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게

다시 비틀린 세상에 대한
증거를 가져다준다.

세상의 모든 개념들은
단지 이런 식으로,

즉 선택적이고도
제멋대로 만들어진다.

이 용의주도한 선택성으로 인해
모든 온전한 생각이
상실될 수밖에 없으며,
“죄”가 지각되고 정당화된다.

이런 구도 안에는
용서가 있을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처럼
생각되지 않는 “죄”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4 Salvation is God's justice. It restores to your awareness the wholeness of the fragments you perceive as broken off and separate. And it is this that overcomes the fear of death. For separate fragments must decay and die, but wholeness is immortal. It remains forever and forever like its Creator, being one with Him. God's Judgment is His justice. Onto this—a judgment wholly lacking in condemnation, an eval‎uation based entirely on love—you have projected your injustice, attributing to God the lens of warped perception through which you look. Now it belongs to Him and not to you. You are afraid of Him and do not see you hate and fear your Self as enemy.

4

<<구원>>은 <<신의 정의>>이다.

구원은
네가 쪼개지고 분리되었다고
지각하는 조각들의

온전성을
너의 의식에 회복시켜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왜냐하면
분리된 조각들은
쇠퇴하고 죽어야 하지만,

온전성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온전성은
그것의 창조주와 하나이기에,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그분을 닮은 채로 있다.

신의 심판(Judgment)이
그분의 정의이다.

너는 이렇게 '정죄'가 전혀 없는 심판,
전적으로 '사랑'에 근거하는 평가 위에

너의 불의를 투사해서,

네가 그것을 통해 보는
일그러진 지각의 렌즈를
신의 탓으로 생각했다.

이제 그 렌즈는
너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다.

너는 신을 무서워하고 있으며,
네가 너의 자아를
적으로서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5 Pray for God's justice, and do not confuse His mercy with your own insanity. Perception can make whatever picture the mind desires to see. Remember this. In this lies either Heaven or hell, as you elect. God's justice points to Heaven just because it is entirely impartial. It accepts all evidence that is brought before it, omitting nothing and assessing nothing as separate and apart from all the rest. From this one standpoint does it judge, and this alone. Here all attack and condemnation becomes meaningless and indefensible. Perception rests, the mind is still, and light returns again. Vision is now restored. What had been lost has now been found. The peace of God descends on all the world and we can see. And we can see!

5

신의 정의를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그분의 자비와 너 자신의 광기를
혼동하지 말라.

지각은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라.

너의 선택에 따라,
이것에
천국이나 지옥이 들어있다.

신의 정의는 천국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단지 신의 정의는
전혀 편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정의는
그 앞에 제출된 모든 증거를
받아들이며,

아무것도 빼먹지 않고,
아무것도 분리되었다거나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신의 정의는
이 하나의 관점에서,
오직 이 관점에서만
판단한다.

여기에서 모든 공격과 정죄는
무의미하고 옹호할 여지가 없게 된다.

지각은 쉬고,
마음은 고요하며,
빛이 다시 돌아온다.

비전이 이제 회복되었다.

상실되었던 것을
이제 다시 찾았다.

신의 평화가 온 세상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다!


20. What Is the Peace of God?
20. 하느님의 평화란 무엇인가?

1 It has been said that there is a kind of peace that is not of this world. How is it recognized? How is it found? And being found, how can it be retained? Let us consider each of these questions separately, for each reflects a different step along the way.

1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평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가?

그것이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그리고 발견된 후에는,
그것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을 따로따로 고찰해보자.

왜냐하면 각각의 질문은
길에서의 다른 단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2 First, how can the peace of God be recognized? God's peace is recognized at first by just one thing—in every way it is totally unlike all previous experiences. It calls to mind nothing that went before. It brings with it no past associations. It is a new thing entirely. There is a contrast, yes, between this thing and all the past. But strangely, it is not a contrast of true differences. The past just slips away and in its place is everlasting quiet. Only that. The contrast first perceived has merely gone. Quiet has reached to cover everything.

2

먼저, 신의 평화가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가?

신의 평화는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이전의 모든 경험들과
전혀 다른 단 한 가지에 의해 인식된다.

그것은 전에 있던 것은
아무것도 마음에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와 연관된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그렇다,
그것과 모든 과거의 것 사이에는
뚜렷한 대비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진짜 차이점들에 의한
대비가 아니다.

과거는
그저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영원한 고요함이 있다.

오직 그것뿐이다.

처음에 지각된 대비는
그저 사라져버렸다.

고요함이 다가와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3 How is this quiet found? No one can fail to find it who but seeks out its conditions. God's peace can never come where anger is, for anger must deny that peace exists. Who sees anger as justified in any way or any circumstance proclaims that peace is meaningless and must believe that it cannot exist. In this condition peace cannot be found. Therefore forgiveness is the necessary condition for finding the peace of God. More than this, given forgiveness there must be peace. For what except attack will lead to war? And what but peace is opposite to war? Here the initial contrast stands out clear and apparent. Yet when peace is found, the war is meaningless. And it is conflict now that is perceived as non-existent and unreal.

3

이 고요함이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단지 고요함의 조건들을
찾아내려는 자라면 누구도
고요함을 찾는데 실패할 수 없다.

신의 평화는
분노가 있는 곳에는
결코 올 수 없다.

왜냐하면 분노는
반드시 평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혹은 어떤 상황에서든
분노가 정당하다고 보는 자는
평화가 무의미하다고 선포하는 것이며,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조건에서 평화는 발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용서>는
<신의 평화>를 발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더 나아가, 용서가 있으면
반드시 평화가 있게 마련이다.

공격 말고
그 무엇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평화 말고
무엇이 전쟁의 반대인가?

여기서 최초의 대비가
뚜렷하고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평화가 발견되면,
전쟁은 무의미하다.

이제,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다고 지각되는 것은
바로 갈등이다.

4 How is the peace of God retained once it is found? Returning anger in whatever form will drop the heavy curtain once again, and the belief that peace cannot exist will certainly return. War is again accepted as the one reality. Now must you once again lay down your sword, although you may not recognize that you have picked it up again. But you will learn, as you remember even faintly now what happiness was yours without it, that you must have taken it again as your defense. Stop for a moment now, and think of this: is conflict what you want, or is God's peace the better choice? Which gives you more? A tranquil mind is not a little gift. Would you not rather live than choose to die?

4

일단 신의 평화가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어떤 형식으로든
분노의 복귀는 다시 한 번
무거운 장막을 드리울 것이다.

그리고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다.

다시 전쟁이
유일한 실재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너는 다시 한 번
너의 칼을 내려놓아야 한다.

비록 네가 이미 칼을
다시 집어 들었음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 네가
아주 희미하게나마
칼 없이 어떤 행복을 누렸는지
기억함에 따라,

<너의 방어>로서
<칼>을 다시 집어 들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잠시 멈춰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보라:

갈등이 네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평화가
더 나은 선택인가?

어느 것이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가?

평온한 마음은
결코 작은 선물이 아니다.

죽기를 선택하느니
차라리 살지 않으려는가?

5 Living is joy, but death can only weep. You see in death escape from what you made. But this you do not see—that you made death, and it is but illusion of an end. Death cannot be escape because it is not life in which the problem lies. Life has no opposite, for it is God. Life and death seem to be opposites because you have decided that death ends life. Forgive the world, and you will understand that everything which God created cannot have an end, and nothing He did not create is real. In this one sentence is our course explained. In this one sentence is our practicing given its one direction. And in this the Holy Spirit's whole curriculum is specified exactly as it is.

5

삶은 기쁨이다.

그러나 죽음은
오직 슬피 울 수 있을 뿐이다.

너는 죽음에서
네가 만든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본다.

그러나 너는,
네가 죽음을 만들었으며

죽음은
단지 '끝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죽음은 탈출일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반대되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생명은 신>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죽음은
대립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네가
죽음이 생명을 끝낸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용서하라,
그러면 너는
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끝이 있을 수 없으며,

신이 창조하시지 않은 어떤 것도
실재가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이 한 문장 안에서,
우리의 수업이 분명히 설명된다.

이 한 문장 안에서,
우리의 연습이 지향할
유일한 방향이 주어진다.

이 한 문장 안에서,
성령의 전체 커리큘럼이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명시된다.

6 What is the peace of God? No more than this—the simple understanding that His Will is wholly without opposite. There is no thought that contradicts His Will yet can be true. The contrast between His Will and yours but seemed to be reality. In truth there is no conflict because His Will is yours. Now is the mighty Will of God Himself His gift to you. He does not seek to keep it for Himself. Why would you seek to keep your tiny, frail imaginings apart from Him? The Will of God is one and all there is. This is your heritage. The universe beyond the sun and stars and all the thoughts of which you can conceive belong to you. God's peace is the condition for His Will. Attain His peace, and you remember Him.

6

신의 평화는 무엇인가?

신의 뜻에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 없다는
단순한 이해,

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어떤 생각도
신의 뜻에 상반되면서
진리일 수는 없다.

신의 뜻과 너의 뜻 사이의
대비는
그저 실재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 갈등이란 없다.

왜냐하면 신의 뜻이
너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신 자신의 막강한 뜻이
신이 너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신은 그 뜻을
당신 자신만 갖고 계시려 하지 않는다.

너는 왜 그분으로부터 떨어져서
<하찮고 덧없는 너의 상상물들>을
간직하려 하는가?

신의 뜻은 하나뿐이며,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이것이 네가 받은 유산이다.

해와 별 너머의 우주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생각들은
본래 너의 것이다.

신의 평화는
신의 뜻을 위한 조건이다.

신의 평화를 얻어라,
그러면 너는 그분을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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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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