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1장
기적의 50가지 원리(51-53)
51 사람이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기적이다.
오직
계시만이 시간을 초월할 뿐이며,
시간과 전혀 무관하다.
기적은 불필요한 상태를 촉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습 보조 도구라는 점에서,
몸과 매우 비슷하다.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영의 본래 상태에 도달하면, 몸과 기적은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몸> 안에 있다고 믿는 한, 사람은 <사랑 없는 표현 경로>와, <기적의 표현 경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는 빈껍데기를
만들 수는 있으나,
아예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기다리거나, 꾸물거리거나, 자기 자신을 마비시키거나, 자신의 창조성을 거의 무(無)의 상태로까지, 감소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발달 정지나 퇴행을 도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의 창조성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소통 수단>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잠재력>까지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창조되지 않았다. 오직 사람이 창조하는 것만이, 그가 결정할 수 있다.
기적심을 가진 자의 기본적인 결정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저절로 흘러가 버릴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낭비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적 일꾼은, 각각의 <시간 붕괴>가, 모든 사람을 시간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방,
곧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상태로, 더 가까이 데려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건 통제 요인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금은 <동등성>이,
<동질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온아들에 대한 개별적인
기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속죄가 완성되면, 모든 재능이,
신의 모든 아들에게 분배될 것이다.
신은 편파적이지 않으시다.
신의 모든 아이는, 그분의 다함 없는 사랑을 받으며, 신의 모든 선물은 아무런 대가 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그대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이란 말은,
그대가 신에 대한
<그대의 완전한 의존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대는
아버지와 참된 관계에 있는,
아들의 진정한 권능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를 원하는 그대는,
오직 <완전한 용서>에 의해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전에는, 그대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했던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지
말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 누구도
평화를 배우기 원할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평화를 필요(need)로 한다고
믿지 않는 한, 평화를 배울 수 없다.
신의 창조물에는,
결핍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사람의 창조물들 안에는, 그 개념이 매우 확연하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차이이다.
필요(need, 욕구)는
정의상 결핍을 함축한다.
필요는,
그대가 지금과는 다른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포함한다.
‘타락’보다 더 나은 용어인,
‘분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결핍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아무런 필요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스스로에게서,
박탈시키지 않았다면,
결코 어떤 필요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리> 이후,
<필요>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모든 행위는 기본적으로,
필요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지만,
행위 자체는 신의 속성이 아니다.
몸은, 행위를 위한
장치(mechanism)이다.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장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사람은 각자 스스로 확립한, 특정한 필요의 위계(hierarchy of needs, 욕구의 위계)에 따라, 행동한다.
그 위계는
결과적으로, 사람이 자신을
실제로
무엇이라고 지각하는가,
즉 그가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다고,
지각하는가에 달려있다.
<신에게서 분리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사람이 실제로 바로잡아야 할, <유일한 결핍>이다.
사람이 진리에 대한,
자신의 지각을 왜곡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결핍>되어 있다고
지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분리의 느낌>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종류이든, <필요의 위계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사람이 이런 근본적인 잘못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이미 서로 다른 필요들을 갖는, 여러 수준으로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은
통합되어가면서 하나가 되며,
그에 따라
그의 필요들도 하나가 된다.
통일된 필요는,
양면성이 부족하기에,
통일된 행동을 취한다.
<필요의 위계라는 개념>은,
사람이 <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잘못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먼저 그 자체의
수준에서 교정되어야만,
여러 수준을 지각하는
오류가, 교정될 수 있다.
사람이
갈라진, 여러 수준에서 활동하는 한,
사람은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여러 수준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교정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지금,
‘위’ 혹은 ‘아래’와 같은 개념이 의미 있는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공간>은,
<시간>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시공간의 믿음> 중 하나이다.
물질 세상은 오직, 사람이 자신의 불신을 교정하는 데, 그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본래 그 불신이, 사람을
물질 세상에 있게 하였다.
사람은
결코 두려움의 결과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니,
사람이
두려움을 만들었으며,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비록 <내용>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태도>에서는
자신의 창조주를 닮았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들에 대한,
완벽한 믿음이 있으시니,
그분이 그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창조물에 대한 믿음이,
그것의 실존을 낳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아무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것은, 그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에게 진실이다.
두려움의 모든 측면은,
거꾸로 된 지각에서 비롯된다.
더 진실로 창조적인 자들은,
지각적 왜곡의 교정에,
자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신경질적인 사람은,
<타협>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정신병자는,
자신의 잘못을 <어떤 진리로
확립함>으로써, 벗어나려 한다.
정신병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풀어주기가 제일 어려운데,
그는 진리를
일관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적은,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기적은, 단지
그것들이 오류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바로잡는다.
따라서 기적에 대해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52 기적은,
잘못된 지각의 정도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기적은 오류의, 정도나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효과적인 <지각 교정>을 위한
도구이다.
이것이 기적의 진정한
비차별성(非差別性)이다.
그리스도가
통제하는 기적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기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한다는
점에서, 선택적이다.
이것은 그들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적을 확장하게 만들 것이므로,
강력한 속죄의 고리가 엮어진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통제는,
기적 자체의 크기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크기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비실재적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실재에 대한 자각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만약 기적이 바로잡으려는, 오류를 지배하는 법칙에 구속되어 있다면, 기적은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이런 종류의 실수를 한다.
이것은,
사람 자신의 그릇된 믿음이 만들어 낸,
어리석은 일관성의 한 사례이다.
사람의 창조적 의지의 권능과 강점을
이해한 다음에야, 비로소 부정(denial)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포기할 수 있다.
부정은 단순한 부인(negation)이 아니다.
부정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릇된 창조물(miscreation)이다.
이 그릇된 창조물은, 그것을 만든 자에 의해서는, 불가피하게 믿어지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창조의 수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53 기적은 사람이 만든 것을, 더 높은 수준의 창조물과 비교하여, 그것과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것은 거짓으로서 거부한다.
두려움의 모든 측면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 높은 창조적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이 검사법에 제출할 용의를 내는 정도에
따라, 그의 지각이 그만큼 교정된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 위해,
기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만약 완벽한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낸다면.
그런데
만약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완벽한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완벽한 사랑만이
실제로 존재한다.
만약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상태를 만든다.”
이것을 믿어라, 그러면
그대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오직
신만이, 이런 해법을
확립하실 수 있으며,
이런 믿음은
정녕 그분의 선물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1장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