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ome to nirvana by way of samsara.
삼사라를 거쳐 열반에 이른다
Adyashanti 아디야 샨티
What we yesterday may or may not have an impact on today.
If it's still alive and vital and that's the perception from which we are seeing things, fine; We are free.
어제 우리가 얻은 깨달음이 오늘 의미를 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어서
우리가 그 경지로부터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면, 좋다.
우리는 자유다.
If it's not, then we must come out of denial.
We mist be willing to see that we are believing something; that somewhere, we 're grasping.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부인(否認)의 태도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굳게 믿고 있음을,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있음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This willingness to not bypass illusion is very important.
My teacher told me that We come to nirvana by way of samsara. We come to see the true nature of things by seeing through the illusory nature of things.
환영을 비켜가지 않으려는 용기는 정말 중요하다.
나의 은사는 말하기를,
우리는 삼사라(samsara, 윤회계)의 한가운데를 거쳐서
열반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는 속박의 길을 통해 진리와 자유에 이른다.
우리는 사물의 환영과 같은 성질을 꿰뚫어봄으로써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We don't come to nirvana by avoiding samsara.
We don't come to heaven by avoiding hell or trying to sidestep it.
We don't come to clarity by avoiding confusion.
We don't come to freedom by avoiding that which is less than freedom.
The truth is quite the opposite.
삼사라를 피해 돌아가서는 열반에 이를 수가 없다.
지옥을 회피하거나 에둘러감으로써는 천국에 이를 수가 없다.
혼동을 회피함으로써는 명확함에 이를 수 없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회피함으로써는 해방에 이를 수가 없다.
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Our illusions-the beliefs we hold on to-are the very doorways to our freedom.
우리가 가지는 환영,
우리가 매달려 사는 신념이야말로
해탈 쪽으로 열려 있는 통로이다.
We simply have to enter through them, without grasping or pushing away.
We must not believe them, but we must not run from them, either.
우리는 그저 그 환영을
움켜쥐지도 않고 멀리하지도 않으면서,
그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그것에 도망쳐서도 안 된다.
We need to see each moment of apparent bondage as an invitation to freedom.
Then it becomes an act of love, an act of compassion, to stop running away.
어느 모로 보거나 속박이 분명한 순간순간을
해탈로의 초대로 맞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때 그것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
사랑의 행동이 되고 자비의 행동이 된다.
Each moment is the moment that needs to happening.
매 순간순간이 모두 일어날 필요가 있는 순간이다.
Each experience we have is the divine invitation.
우리가 겪는 하나하나의 경험이
모두 신성의 초대장이다.
It may be a beautifully engraved invitation, or it may be a very fierce invitation, but each moment is the invitation.
그것은 갖가지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초대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사나운 초대장일 수도 있다.
모든 순간이 초대장이다.
I couldn't possibly emphasize this more: the texture and flow of our lives, from moment to moment, is itself what reveals freedom.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삶이라는 흐름은
매 순간순간마다
그 자체가 해탈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Life itself shows us what we need to see through in order to be free.
삶 자체가,
해탈을 얻기 위해 우리가 꿰뚫어 보아야만 할 것들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So it is necessary that we don't run from life, we actually face what's happening in an honest and sustained way.
그러니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고도 일관된 태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실제로 맞닥뜨려야 한다.
When we do this, we come to see that we truly do come to nirvana by way of samsara.
Instead, we unhook ourselves from it.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과연 삼사라의 한가운데를 통해 열반에 이르게 됨을
깨닫는다.
이 말은 우리가 삼사라에 갇혀서 지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을 삼사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We un-Velcro our samsaric and illusory thoughts, and doing so, we end up in nirvana.
우리는 윤회하는 환영과 같은 생각들을 놓아 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끝내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Awakening reveals our already perfect inherent freedom. It also becomes the groundwork from which we develop the wherewithal-the clarity and courage-to look into anything that may have the power to Velcro us into pain and identification.
깨어남은 우리 안에서 이미 완전한, 본연의 자유를 드러내준다.
깨어남을 또한 우리를 고통과 동일시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모든 것을 들여다 보게 하는 도구인 명확함과 용기를 키우는 터전이 되어준다.
Over time, this seeing and releasing becomes natural; it becomes spontaneous. At the beginning, it may be somewhat tedious. It may take quite a bit of time and intention, maybe even some real effort and discipline.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알아차림과 그에 따르는 해방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그것은 자동적인 것이 된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며, 진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As time goes on, however, it becomes more and more natural, more and more spontaneous. At a certain point, this seeing and releasing becomes so internalized that it’s almost automatic.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것은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자동적인 것이 된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알아차림과 해방은 아주 내면화되어서
거의 자동화되어 버린다.
A thought arises, and there may be an instant of identification. Inquiry meets the thought, and it opens itself to freedom.
Once this inward releasing is deeply internalized, the whole process can take a split second. That’s the way awakening moves.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순간 즉각적인 식별이 수반된다.
의문이 그 생각에 가 닿으면
생각은 그 의문을 충족시키고, 자유로이 개방된다.
일단 이렇게 내 안의 해방이 깊이 내면화되면,
이 모든 과정이 눈 깜박할 사이에 완결된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 작용하는 방식이다.
At times, we don’t even know it’s happening.
But it is happening: Awareness is freeing itself, over and over and over.
And as I have said, the key is sincerity.
It’s the willingness to meet, sincerely and honestly, what is happening in our body and mind.
때로는 그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조차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자각의식은 스스로를 한없이 끊임없이 해방시키고 있다.
그리고 앞서 강조했지만, 핵심적인 요소는 진실성이다.
즉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진지하고도 정직하게 거기에 기꺼이 마주하려는 용기이다.
That is always the doorway to freedom—a freedom that only happens now and now and now and now.
이것이 해탈으로의 진정한 관문이다.
오로지 지금, 지금, 또 지금의 이순간에만 생겨나는 해탈인 것이다.
~ Adyashanti; from The End of Your World